The Young and the Damned
Los Olvidados
1950 · Crime/Drama · Mexico
1h 2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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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group of juvenile delinquents live a violent and crime-filled life in the festering slums of Mexico City, and the morals of young Pedro are gradually corrupted and destroyed by the oth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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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솜땅
4.0
없이 살아가는 빈민가. 그 속의 아이들. 사회문제처럼 되어버린 빈민가의 범죄. 한 소년의 범죄가 퍼져가며, 목숨까지 잃는 아이들. 당시의 사회 현상이었을까... 이름도 남기지 못한 체 잊혀지는 아이들의 모습을 다큐처럼 화면에 담았다. #20.9.27 (2305)
이승빈
4.0
먼저 스스로를 다큐적이라며 규정하고 시작한 픽션영화의 카메라에, 민중이 반응하거나 또는 막상 반응하지 않는 차이의 유형들이 가시화되며 흥미롭게 다가와요. 이를테면, 카메라의 거리에 따라서, 원경과 중경, 근경에서 카메라와 민중의 관계가 달라지죠. 단순한 도식화는 위험하지만, 기억을 복기하는 차원에서 개인적인 인상의 단편들을 적는다면: "원경" 빈민가 너머 무대의 경계장치가 되는 고가 고속화 도로, 그 위를 유유히 지나는 자동차 모빌리티. / "중경" 부잣집 아이들이 타고 있는 회전목마를 돌리는 빈민가 아이들, 선만으로 이루어진 공사 현장 구축물 아래에서의 폭력과 살해. / "근경" 카메라의 방향으로 향하는 인간 투우, 카메라를 직시하고 카메라에게 달걀을 던지는 주인공. ... 등등. 거리의 갭에 기인한 차이들의 사이에서 관객은 자연스럽게 멕시코적 내지는 민중적인 희망을 찾게 되어요. 전후 1950년의 멕시코시티의 배경에서라면, 멕시코적 맥락이든 민중적 맥락이든 무엇보다 계몽주의를 그 방법으로 희망을 찾으려는 관객들이 상당히 많았겠죠. 그런데 그렇다고 [잊혀진 사람들]이 계몽영화일까요? '그' 루이스 부뉴엘이 스스로 자신한 멕시코 시기의 대표작이 계몽영화라면 그건 다소 당황스럽죠. 희망을 찾으려는 당대 관객의 반응을 미리 염두에 두고 계몽주의를 전면에 부각하는 구체적 부분(예를 들어 계몽주의자 교장과, 계몽주의적 내레이션)을 생각해볼 때, 이는 되려 본작을 단지 계몽영화라고 보기 곤란해지는 지점일 수 있어요. 영화사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의 한 사람일 부뉴엘이라는 이름을 애써 고려하지 않더라도요. 이 영화에서 계몽적 요소들의 배치는 정말로 이질적이고 과잉되게 이상하니까요. 계몽적 요소들은 리얼리즘과 초현실주의의 사이에 있기보다는 따로 어색하게 떠다니죠. 이는 계몽영화에서의 연출의 실수라기보다는, 계몽영화가 아닌 작품의 의도된 부유나 소격에 가까울 거에요. 그렇다고 이 영화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은 아니에요. 단지 희망이 계몽주의적 표면과는 분명 다른 것일 수 있겠죠. (여기서 다시 부뉴엘의 이름을 고려해보게 돼요. 부뉴엘이 아나키스트 예술가였다는 개별작품 외적일 정보를 다시 한번 상기해본다면 본작, 특히 결말부에서 말한 희망의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Jay Oh
4.0
인간에 의한 인간의 최악, 잊혀져서야. When it comes to our worst, all we can do is dream.
Dh
4.5
풍요로워 보이는 이면에 감춰진 어두운 실상 막을 수 없는 불행의 씨앗이 되어버린 빈곤.. #우리가 아이들 대신 가난을 가둘 수 있다면 #믿음과 애정
MayDay
4.5
“‘악’이 만들어지는 환경에 대하여” 사람이 성장하는 데 있어서 수많은 요인이 작용하겠지만 주변 환경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등장하는 아이들 모두 사랑과 관심이 부족한 아이들이지만 이들을 돌봐야 하는 어른들부터가 악인이다. 영화에서도 사회에서도 잊혀 가는 아이들을 바라만 보고 있는 우리도 방관자일 뿐이다. 초현실적으로 나타낸 꿈이 아이의 죄책감과 사랑이 고픈 마음을 나타냄으로써 심각한 현실을 더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먼지가 가득한 방에 넣어두고는 왜 더러워졌냐 오히려 꾸지람을 준다. 그게 아니라 먼지가 가득한 방에 누가 넣었느냐를 봐야 할 것 같고 깨끗하게 치우는 방법은 없는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은갈치
4.0
"우리가 아이 대신 가난을 가둘 수 있다면..." 390
Flick
4.0
거리는 냉혹하고, 아이들은 그보다 더 잔혹하다. 태어날 때부터 가난과 폭력 속에 던져진 아이들에게 삶은 단 한 번도 부드러운 손길을 내민 적이 없다. 그들은 배고픔과 두려움 속에서 서로를 밀쳐내며 살아가지만, 살아남는다 한들 기다리는 것은 더 깊은 나락뿐이다. 잊혀진 사람들은 사회가 외면한 아이들의 삶을 잔혹할 만큼 직설적으로 그려내며, 희망조차 허락되지 않는 현실을 가차 없이 폭로한다. 부뉴엘의 연출은 다큐멘터리처럼 건조하지만, 때때로 꿈과 환영의 초현실적 이미지가 스며든다. 뻑뻑하고 거친 거리의 공기는 현실을 날것 그대로 담아내지만, 그 안에서 불현듯 등장하는 악몽 같은 몽타주는 아이들이 지닌 내면의 불안과 욕망을 드러낸다. 카메라는 한 발짝 물러나 무심하게 아이들을 지켜보지만, 그 시선은 냉소적이지도, 동정적이지도 않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버려진 존재들을 조용히 응시할 뿐이다. 결국, 그들은 기억되지 않는다. 세상은 그들을 보지도 않았고, 그들 역시 끝내 세상을 붙잡지 못한다. ‘잊혀진다’는 것은 단순히 누군가의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지워지는 일이다. 부뉴엘은 이 잔혹한 진실을 직설적이고도 강렬한 방식으로 던져놓고, 관객에게 외면할 수 없는 질문을 남긴다.
시나문
5.0
지친 영혼이 꾸는 꿈은 달콤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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