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이 시집은 책은 아니지만
새하는 순서
그 순서의 기록”
시작詩作 40년
한국 시의 뜨거운 이름, 김혜순의 신작 시집!
몸으로 시를 쓰는 시인, ‘시하는’ 시인, 하여 그 이름이 하나의 ‘시학’이 된 시인이 있다. 올해로 등단 40주년을 맞은 김혜순이다. 그가 전작 『죽음의 자서전』(문학실험실, 2016) 이후 3년 만에 열세번째 시집 『날개 환상통』을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했다.
김혜순에게 여성은 “자신의 몸 안에서 뜨고 지면서 커지고 줄어드는 달처럼 죽고 사는 자신의 정체성을” 보는 존재이다. “그러기에 여성의 몸은 무한대의 프랙털 도형”이라 했던 시인은 자신의 시가 “프랙털 도형처럼 세상 속에 몸담고 세상을 읽는 방법을 가지길 바란다”고 고백하기도 했다(『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 문학동네, 2002). 그렇게 그는 ‘몸하는’ 시를 쓰고, ‘시하며’ 40년을 걸어왔다.
김혜순의 시집을 관통하는 “고유의 실존적 목소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시인의 표현을 빌리면 그 실존의 실체는 ‘늘 순환하는, 그러나 같은 도형은 절대로 그리지 않는’ 파동”이라고 설파한 이는 11년 전, 김혜순의 아홉번째 시집 『당신의 첫』의 해설을 쓴 평론가 이광호였다. 그는 이어서, 그 파동의 흔적들이 “1980년대 이후 한국 시에서 하나의 강력한 미학적 동력을 제공해왔다”고 역설했다. 그리하여 김혜순이라는 이름은 하나의 ‘시학’이며, ‘김혜순 시학’은 하나의 공화국임을 확인하였다. 멈추지 않는 상상적 에너지로 자신을 비우고, 자기 몸으로부터 다른 몸들을 끊임없이 꺼내온 ‘김혜순 시학’은 단지 여성 시의 전범이라는 한정적인 자리에 머물지 않았다. 독창적인 상상적 언술의 가능성을 극한으로 밀고 나가며 언제나 자기 반복의 자리로부터 몸을 빼냈기 때문이다. 이번 시집에서 다시 한번 해설을 쓴 이광호는 김혜순이 문학 제도 안에서 시를 쓰기 시작한 1979년 이후, 지난 40년간의 한국 문학의 변화를 살핀다. 그리고 1980년대의 급진적인 도전들과 1990년대의 다른 감수성의 등장, 그리고 최근 페미니즘의 요동치는 시간들에 이르기까지, 김혜순의 시는 그 국면들을 뚫고 돌파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음을 짚어낸다. 차라리 광폭한 것이었던 그 시간에, “김혜순은 저 제도화된 역사들과 가장 먼저 작별하는 시적 신체의 최전선에 있었”으며, “그의 시는 ‘미시 파시즘’과 싸워야 할 이유가 선명해진 ‘촛불과 미투의 시대’, 그 근원적인 층위에 가장 먼저 도착해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시가 당대를 통렬하게 비판하며 시대를 앞서나간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이자 “적어도 지난 40년 동안 문학 언어의 정치적 급진성에 있어 김혜순보다 뜨거운 언어를 찾기란 쉽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는 이유이다.
이 시집은 책은 아니지만
새하는 순서
그 순서의 기록
신발을 벗고 난간 위에 올라서서
눈을 감고 두 팔을 벌리면
소매 속에서 깃털이 삐져나오는
내게서 새가 우는 날의 기록
새의 뺨을 만지며
새하는 날의 기록
-「새의 시집」 부분
시집의 처음에 놓인 시 「새의 시집」은 이번 시집으로 들어가는 중요한 안내자의 역할을 한다. 5부로 나뉘어 총 72편의 시가 실린 이번 시집에서 김혜순은 “시가 나를 ‘새하게’ 했다”고 밝히고 있다. ‘새하다’라는 말은 자연스럽지 못하게 들린다. 그러나 ‘새’의 위치가 주어도 목적어도 될 수 없거나 혹은 둘 다 될 수 있는 이 모호함이 이 문장을 시적인 것으로 만든다. 주어와 목적어, 주체와 객체 사이의 저 완강한 문법적인 경계를 허물어버리는 김혜순만의 언어가 이렇게 또 한 번 탄생한다. 주체와 대상 혹은 인간과 동물의 위계를 지워버리는 이 강력하고 매혹적인 수행문은 이 시집을 관통하는 동력 장치이다.
김혜순은 새의 실체를 재현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는 이 시집을 새가 태어나는 리듬을 드러내는 공간으로 삼는다. 인용한 시의 뒷부분에 나오는 “새하는 여자를 보고도/시가 모르는 척하는 순서” “여자는 죽어가지만 새는 점점 크는 순서”라는 구절에서 ‘새’가 여자로부터 탄생했다고 여길 수도 있지만, 그것은 ‘여자’라는 정체성의 범주를 벗어난다. 젠더가 그런 것처럼 ‘새’의 정체성 같은 건 없기 때문이다. 이광호는 이번 시집에서 ‘새’가 무엇인지를 묻는 일은 “실패할 수밖에 없고 ‘실패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새’는 ‘새하다’라는 수행문을 통해 비로소 구성되기 때문이다. “‘새하다’는 참과 거짓, 진실과 허구 같은 경계를 넘어서는 수행적 사건”이며, 이는 시의 뒷부분에 나오는 “이 삶을 뿌리치리라/결단코 뿌리치리라”라는 구절에 이르러 ‘내’가 ‘나’를 뿌리치는 행위와 연관된다.
하이힐을 신은 새 한 마리
아스팔트 위를 울면서 간다
마스카라는 녹아 흐르고
밤의 깃털은 무한대 무한대
그들은 말했다
애도는 우리 것
너는 더러워서 안 돼
[……]
오늘 밤 나는
이 화장실밖에는 숨을 곳이 없어요
물이 나오는 곳
수도꼭지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나를 위로해주는 곳
나는 여기서 애도합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검은 날개를 들어 올리듯
마스카라로 눈썹을 들어 올리면
타일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나를 떠밉니다
내 시를 내려놓을 곳 없는 이 밤에
―「날개 환상통」 부분
표제작 「날개 환상통」에서 ‘나’와 ‘새’는 애도의 권력을 가진 자들로부터 추방당한 채 ‘환상통’을 겪는 존재이다. 서로 구분되지 않는 ‘나-새’가 화장실에서 은밀하게 애도를 수행하는 것은 애도의 권력을 저격하는 제의적인 장면을 만들어낸다. “땅에서 내동댕이쳐져/공중에 있”는 ‘새’와 “시를 내려놓을 곳 없는” ‘나’의 모습은 하나의 존재로 보이기도 한다. 김혜순의 ‘새하기’는 어쩌면 환상통을 겪는 과정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한편 ‘3부 작별의 공동체’는 14편의 시가 하나의 장시를 이루고 있다. 이것은 ‘아빠의 죽음’에 관한 시이면서, 작별의 존재론에 관한 시이기도 하다. “아빠, 네가 죽은 방에서 나는 새가 된다”로 시작하는 시 「작별의 공동체―새의 일지」에서 보듯, 아빠의 죽음은 새의 출현 혹은 ‘새―되기’의 잠재성을 실현하는 계기가 된다. 모든 공동체는 작별의 공동체이며, 이 작별은 끝이 아니라 다른 잠재성의 출현이라는 존재론적 사건이다. 또한 ‘5부 리듬의 얼굴’도 같은 제목의 장시 한 편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리듬을 통해 생성과 작별의 운동 방식을 보여준다.
김혜순의 시에서 작별은 리듬으로서의 작별이며, 리듬은 작별하는 리듬이다. [……] 리듬이 만드는 사건은 시간에 대한 구획을 넘어서는 무한의 영역에 진입한다. 리듬은 비유보다 원초적이고 급진적으로 ‘시적인 것’이다. 리듬의 세계에서 시는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파동의 사건이다. 감각과 몸의 영역에 작용하는 리듬은 해석도 인식도 필요하지 않다. 김혜순의 리듬은 주체와 객체, 젠더와 상징질서의 구획을 돌파하는 언어의 파동을 통해 ‘현전’의 미학에 이르는 시적 에너지이다.
―이광호 해설, 「‘새-하기’와 작별의 리듬」에서
등단 40년이 되는 해에 펴내는 열세번째 시집 『날개 환상통』에서 김혜순은 또다시 독창적인 하나의 시 세계를 이루어냈다. 김혜순의 시적 상상력이 이번엔 작별의 자리에서 ‘새하기’를 통해 주체와 객체의 경계를 허물고, 젠더와 상징질서의 구획을 돌파해갔다. “늘 순환하는. 그러나 같은 도형은 절대 그리지 않는” 김혜순의 목소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므로 김혜순이라는 이름은 앞으로도 계속 뜨거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