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솔하고 우아하게 우주를 그리워한 과학자
칼 세이건과 우주를 담은 23년의 인터뷰
약 50억 년 전 우주 어딘가의 성운에서 태양이 만들어졌고, 약 46억 년 전 그 주변을 돌던 미행성과 기타 물질이 중력으로 뭉쳐 지구가 되었다. 영겁과 같은 세월 속에서 아주 우연한 한 시점에, 매우 무작위적인 조건으로 발생한 지구 생명은 결국 별과 같은 물질로 이루어졌다. 우주적 우연에서 생겨난, 우주의 물질로 이루어진 존재. 한 사람의 죽음은 한 우주의 죽음과 같다는 말이 상징이나 비약만은 아닌 것이다.
평생 친근한 언어로 학계와 대중의 경계를 허물며 우주와 깊은 유대감을 맺어온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라면 더욱 그렇다. 다섯 살 때 뉴욕만국박람회에서 처음 우주에 매료되어 매리너호 계획 등 NASA의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1980년 다큐멘터리 <코스모스>와 동명의 책을 내어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과학자”가 된 뒤에도 그는 세계 최대의 우주과학 민간단체인 ‘행성협회(The Planetary Society)’를 공동 창설하고 그 회장으로서 열정적으로 외계 생명을 찾아 헤맸다. 칼 세이건은 오직 인간이 아는 우주와 그 협소한 인식을 넓히는 데 평생을 쏟았고, 1996년 12월 20일 62세의 조금 이른 나이로 그에겐 좁았던 지구를 벗어나 넓은 우주로 나아갔다.
『칼 세이건의 말』은 2016년 12월 20일 20주기를 맞는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진솔하고 우아하고 용감한’ 민낯을 볼 수 있는 인터뷰집이다. 코넬대학교의 천문학 및 우주과학 정교수로 자리 잡은 뒤 이력의 절정으로 향하던 1973년 서른아홉의 젊은 칼 세이건부터, 자신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영화 <콘택트>의 각본에 참여했으나 그 완성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1996년의 칼 세이건까지, 모두 16편의 인터뷰에 그의 일생이 담겼다. 말년까지 간직하게 될 우주의 경이를 처음 깨달은 다섯 살의 기억, 그때의 감정을 이해하고 지지해주었던 부모님, 그 덕에 빠져든 에드거 라이스 버로스의 과학소설, 그러면서 갖추게 된 그만의 언어와 회의주의, NASA의 우주탐사 계획과 그의 오랜 숙원인 외계 지적 생명과의 만남, 그 탐색 과정에서 부닥친 다양한 종교적·정치적 반박과 사이비 과학에 대처하는 법 등, 칼 세이건은 단편적인 인터뷰에는 다 담을 수 없는 방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저서에서 하지 못한 여러 뒷이야기를 『칼 세이건의 말』에서 들려준다. 거의 평생에 걸친 그의 인터뷰에서 우주와 지구와 생물, 살아 숨 쉬는 모든 것에 대한 드넓은 애정을 느낄 수 있다.
한 가지 제가 변한 건 인생의 아름다움, 우주의 아름다움, 살아 있는 것 자체의 즐거움을 훨씬 더 강하게 음미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 매 순간을, 살아 있지 않은 모든 것을, 하물며 살아 있는 것의 뛰어난 복잡함은 말할 것도 없고요. 네, 이런 것들이 그리울 거라고 상상하면 갑자기 모든 게 훨씬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336~337쪽
일생을 두고 쓴 글, 평생에 걸쳐서 한 인터뷰에서는 자신을 감추고 도망갈 길이 없다. 모든 것이 드러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칼 세이건의 말』은 말하자면 칼 세이건의 감출 수 없는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 책이다. 그의 말은 진솔했고 우아했고 용감했다. 그도 진솔했고 우아했고 용감했다.
-이명현(과학저술가·천문학자)
진지함과 유머가 공존하는
칼 세이건과의 지적인 대화
우리가 과학을 들여다보면 그 속에서 정교함, 깊이, 탁월한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되는데, 전 그것이 어느 관료주의적 종교가 제공하는 이야기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고 믿습니다. 심지어 자연의 장엄함 앞에서 느끼는 경외감 그 자체를 종교적 체험이라고 부른대도 전 반대하지 않겠습니다.
-176~177쪽
칼 세이건은 특정 분야에 갇히지 않았기 때문에 막연히 ‘<코스모스>를 만든 과학자’ 또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로서 더 유명하지만, 열여섯 살에 시카고대학교에 들어간 영재에 천문학과 천체물리학을 전공하고 하버드대학교와 코넬대학교 등에서 30여 년을 강의했으며 20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한 부지런한 과학자다. 그러면서도 그는 오랫동안 한 분야에 매진할 때 흔히들 실수하는 것과 달리, 아집에 빠져들거나 경계에 갇히지 않았다. 이런 그를 이끈 것은, 인터뷰 곳곳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드넓은 우주와 그 안에서 기적 같은 확률로 생겨난 지구 그리고 생명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그가 “종교적 체험”에 빗대기도 한 우주와 생명의 경이로움은 특정 학문이 전유할 수도, 그 혼자 감당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질시하는 여느 과학자들이 조롱을 담아 말하는 “과학 대중화 전문가”(342쪽)이기를 마다하지 않았고, 결국 대중의 공감을 얻었다. 칼 세이건 이전에도 과학이 있었고 이후에도 과학이 있지만, 그가 전하는 것만큼 과학이 친근했던 적은 없다.
요즘 우리가 쏟아내는 어마어마한 양의 전파 에너지가 나오는 곳은 세 군데입니다. 하나는 AM 라디오에서 높은 주파수 대역이고, 두 번째는 일반적인 가정 텔레비전 방송이고, 세 번째는 미국과 소련의 레이더 방어망입니다. 지구에서 먼 곳에서 지구의 지적 생명이 내는 신호로서 감지할 수 있는 건 이 세 가지뿐입니다. 이것은 제법 숙연한 기분이 드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자주 거론하는 의문 중에 이런 게 있죠. 외계 지적 생명이 정말로 존재한다면 대체 왜 아직까지 지구에 오지 않았을까? 이제 우리는 답을 압니다. 우리가 내보내는 방송을 한번 들어보라고요.
-43쪽
칼 세이건이 공감을 얻은 건 무엇보다 그의 유머러스하고 친근한 화법과, 작은 질문에도 공들여 대답할 줄 아는 진지함과 배려 덕분이었다. 『칼 세이건의 말』에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로서 칼 세이건의 매력이 흠뻑 배어 있다. ‘외계 지적 생명 수색 작업’인 세티(SETI)와 그가 참여했던 NASA의 우주 프로그램들에 관한 크고 작은 뒷이야기는 물론이고, 흔히 과학의 대척점으로 여겨지는 종교에 대해, 심령술이나 네스 호 괴물 같은 사이비 과학에 대해, 그리고 과학교육과 환경과 정치와 SF영화에 이르기까지, 그는 비아냥거림과 냉소로 일축하거나 젠체하지 않고, 모든 대상 모든 질문에 논리와 유머와 솔직함으로 답한다. 『칼 세이건의 말』에서는 질문자가 점성학자여도, 종교학자여도, 나아가 어린아이여도,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최상의 논리를 대중적이되 진지하고 지적인 언어로 내보이는 칼 세이건의 면모가 곳곳에서 드러난다.
비결은 하나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전문용어를 쓰지 말라는 것 입니다. 자기 동료들에게 말하는 것처럼 하지 말라는 겁니다. 대신 자신이 뭔가 이해되지 않을 때 스스로에게 속으로 말하듯이 하라는 겁니다. 사람들에게 사실을 전문용어가 아닌 평이한 언어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청중의 지성을 존중하되, 단 그들은 당신처럼 전문교육의 혜택을 받은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278쪽
‘과학’이 아니라 ‘과학적인 것’에 대한 믿음
인간의 원동력은 회의주의
제가 말하고 싶은 건, 감정적으로 정말로 우리를 끌어당기는 무언가에 대해서도 우리는 적절한 증거가 있는지 꼭 물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12년 전, 15년 전에 양친을 잃었습니다. 저는 부모님과 관계가 좋았어요. 두 분이 정말로 그립습니다. 두 분의 영혼이 어딘가에 살아 있다고 정말로 믿고 싶습니다. 1년에 5분만이라도 두 분과 함께 보낼 수 있다면 무엇이든 기꺼이 내놓겠습니다. (…) 우리는 가장 엄격한 수준의 증거를 요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일 때는 더욱더 그렇습니다. 따라서 영매가 되었든 뭐가 되었든 어떤 사람이 제 앞에 나타나서 “부모님과 접촉하게 해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한다면, 전 그 말을 절실히 믿고 싶기 때문에 더더욱 여분의 회의주의까지 발휘해야 한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