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대학 입시와 능력주의
입시의 윤리 | 능력 지표 따내기
CHAPTER 1. 승자와 패자
포퓰리즘적 불만에 대한 진단 | ‘테크노크라시’와 시장 친화적 세계화 | 빈부격차를 그럴싸하게 설명하는 법 | 능력주의 윤리 | 굴욕의 정치 | 기술관료적 능력과 조직적 판단 | 포퓰리즘의 준동
CHAPTER 2. “선량하니까 위대하다” 능력주의 도덕의 짧은 역사
왜 능력이 중요한가 | 우주적 능력주의 | 구원과 자기 구제 | 과거와 지금의 섭리론 | 부와 건강 | 자유주의적 섭리론 | 역사의 옳은 편 | 도덕 세계의 궤적
CHAPTER 3. 사회적 상승을 어떻게 말로 포장하는가
고된 노력과 정당한 자격 | 시장과 능력 | 자기 책임의 담론 | 재능과 노력이 허용하는 한도까지 | 마땅히 받을 것을 받는다 | 포퓰리즘의 반격 | 과연 “하면 된다”가 맞나? | 보는 것과 믿는 것
CHAPTER 4. 최후의 면책적 편견 ?학력주의
무기가 된 대학 간판 | 불평등의 해답은 교육? | 최고의 인재들 | 스마트해지기 위한 일 | 대중을 내려다보는 엘리트 | 학위가 있어야 통치도 한다 | 학력 간 균열 | 기술관료적 담론 | 테크노크라시냐 데모크라시냐 | 기후변화 논란
CHAPTER 5. 성공의 윤리
기술관료의 지배나 귀족의 지배냐 | 능력주의의 어두운 면 | 능력주의를 다시 생각한다 | 완벽한 능력주의는 정의로운가? | 재능은 자신만의 것인가? | 노력이 가치를 창출하는가? | 능력주의의 두 가지 대안 | 능력주의에 대한 거부 | 시장과 능력 | 시장 가치냐 도덕적 가치냐 | 쟁취한 자격인가, 권리가 인정된 자격인가? | 성공에 대한 태도 | 운수와 선택 | 재능 계산하기 | 능력주의의 등장
CHAPTER 6. ‘인재 선별기’로서의 대학
능력주의 쿠데타 | 능력주의의 폭정, 그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다 | 코넌트의 능력주의 유산 | 돈 따라 가는 SAT 점수 | 불평등의 토대를 더욱 다지는 능력주의 | 명문대가 사회적 이동성의 엔진이 되지 못하는 이유 | 능력주의를 더 공평하게 만들기 | 인재 선별 작업과 사회적 명망 배분 | 상처 입은 승리자들 | 또 하나의 불타는 고리를 넘어라 | 오만과 굴욕 | 유능력자 제비뽑기 | 인재 선별기 부숴버리기 | 명망의 위계질서 | 능력에 따른 오만 혼내주기
CHAPTER 7. 일의 존엄성
일의 존엄성 하락 | 절망 끝의 죽음 | 분노의 원인 | 일의 존엄성 되살리기 | 사회적 인정으로서의 일 | 기여적 정의 | 일의 존엄에 대해 논쟁하자 | ‘열린 어젠다’의 오만 | 금융, 투기 그리고 공동선 | 만드는 자와 가져가는 자
결론: 능력, 그리고 공동선
공정하다는 착각
マイケル・サンデル · 社会科学
42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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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이라는 하나의 화두를 두고 각계각층이 충돌하고 있는 상황에서,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이후 8년 만에 쓴 신간 <공정하다는 착각>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란 원제로 미국 현지에서 2020년 9월에 출간되어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샌델은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너무나도 당연히 생각해왔던, 개인의 능력을 우선시하고 보상해주는 능력주의 이상이 근본적으로 크게 잘못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능력주의가 제대로 공정하게 작동하고 있는지, ‘공정함=정의’란 공식은 정말 맞는 건지 진지하게 되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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著者/訳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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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目次
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마이클 샌델 8년 만의 신간, 《공정하다는 착각》 출간!
샌델, 기울어진 사회구조 이면에 도사린 ‘능력주의의 덫’을 해체하다
또 다시 ‘공정’이 화두다.
언론 미디어를 통해, 부유층과 빈곤층, 청년과 장년, 정치인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온다. 기업은 정규직?비정규직 논란에서 비롯된 ‘공정 채용’ 문제로 혼란에 빠져 있고, 정치권에선 ‘공정경제3법’과 ‘재난지원금’ 등에 대한 각기 다른 해석으로 떠들썩하다. 대통령은 “하나의 공정이 또 다른 불공정을 부르는 상황”을 언급하며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렇듯 ‘공정’이라는 하나의 화두를 두고 각계각층이 충돌하고 있는 상황에서,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이후 8년 만에 쓴 신간 《공정하다는 착각》이 출간되었다. 이 책은 《The Tyranny of Merit: What’s Become of the Common Good?》란 원제로 미국 현지에서 2020년 9월에 출간되어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직역하면 ‘능력주의의 폭정: 과연 무엇이 공동선을 만드나?’다. 샌델은 이 책을 통해 “우리가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너무나도 당연히 생각해왔던, 개인의 능력을 우선시하고 보상해주는 능력주의 이상이 근본적으로 크게 잘못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능력주의가 제대로 공정하게 작동하고 있는지, ‘공정함=정의’란 공식은 정말 맞는 건지 진지하게 되짚어본다.
능력우선주의는 공정하게 작동하는가?
그리고 ‘공정함=정의’란 공식은 정말 맞는 건가?
시간이 갈수록 계층이동은 어려워지고, 불평등은 더욱 확고해지고 있다. 개개인의 능력을 불가침 가치로 둔 채 공정을 추구하지만,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샌델은 이 책을 통해 능력주의 하에서 굳어진 ‘성공과 실패에 대한 태도’가 현대사회에 커다란 부작용을 낳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승자들 사이에서 능력주의가 만들어내는 오만과, 뒤처진 사람들에게 부과되는 가혹한 잣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다음은 샌델이 책에서 제시한 ‘귀족주의 사회’와 ‘능력주의 사회’의 예시를 간략히 정리한 것이다. 문제의 본질이 압축되어 있다.
두 나라가 있다고 해보자. 둘 다 재산과 소득에서 ‘매우’ 불평등하다(불평등의 정도는 두 나라가 같다). 한 사회는 귀족정이며 소득과 재산은 어떤 집에서 태어나느냐에 달려 있고 고스란히 대물림된다. 다른 한 사회는 능력주의 사회다. 재산과 소득의 불평등은 세습 특권에 따른 것이 아니고, 각자가 노력과 재능에 따라 얻은 결과물이다. 당연히 후자가 더 정의롭게 보인다.
그렇다면 자신이 ‘부잣집에서 태어날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날지 모르는 상태’에서 당신은 둘 중 어떤 사회에 태어나고 싶은가? 내가 부자일 경우 자손에게 물려줄 수 있는 귀족제 사회가 정답일 것이다. 내가 가난하다면 노력으로 사회적 상승의 기회를 갖는 사회를 선호할 것이다. 그런데 두 경우 모두 정반대로 생각할 점이 있다. 귀족제 사회의 부자는 자신의 특권이 ‘성취가 아닌 행운’임을 인식할 것이며, 빈자는 자신의 불행이 ‘내 탓이 아닌 불운’이라 생각할 것이다. 삶이 고달프긴 해도 ‘이렇게 태어난 운’이 문제인 거지, 스스로를 탓하며 자괴감에 빠질 필요가 없다. 반대로 능력주의 사회에서의 부자는 자신의 성공이 ‘행운이 아닌 성취’임을 인식해 당당히 자랑스러워 할 것이며, 빈자는 부족한 자신의 능력과 노력을 저주하면서 깊은 좌절에 빠질 것이다.
자, 이런 상황에서 어느 사회를 택할 것인가? 당신은 어느 사회가 ‘더 낫다(또는 정의롭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 CHAPTER 5. 성공의 윤리학 中 일부 내용 축약
승자에겐 오만을 패자에겐 굴욕을 주는 ‘능력주의의 민낯’
능력 있는 자들만을 위한 낙원, 현대사회의 그림자를 들추다
또한 샌델은 해결책도 모색한다. “하면 된다”는 공통의 신념이 무자비하게 흔들리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근본적으로 타개할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기본적으로는 ‘운’이 주는 능력 이상의 과실을 인정하고, 겸손한 마인드로 연대하며, 일 자체의 존엄성을 더 가치 있게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과 함께 샌델은 몇 가지 대안을 내놓는데, 특히 교육 영역에서의 다음과 같은 구체적 제안은 충격적이면서도 그 발상이 매우 기발하다.
“4만 명의 지원자들 가운데 하버드나 스탠포드에 다니기 힘들어 보이는 일부와, 동료 학생들과 잘 해나갈 수 없을 것 같은 일부만 솎아낸다. 그러면 아마 3만 명, 또는 2만 5,000명이나 2만 명의 지원자가 남으며 이들은 누가 합격하더라도 충분히 잘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들을 두고 극도로 어렵고 불확실한 선별 작업을 다시 할 것이 아니라 제비뽑기 식으로 최종 합격자를 뽑는다. 달리 말해 그들의 지원 서류를 집어던져 버리고 아무나 2,000명을 골라잡는 것이다.
이 대안은 능력주의를 완전히 부정하지는 않는다. 능력이 있는 사람만 합격 가능하다. 그러나 능력을 극대화되어야 할 이상으로 보기보다 일정 관문을 넘을 수 있는 조건으로만 본다. 이 대안이 의미 있는 까닭은 무엇보다도 현실적 타당성이 있다는 데 있다. 가장 현명한 입학사정관이라 해도, 아무리 심혈을 기울여 따져본다고 해도 18세 청소년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훌륭한 경력을 쌓았는지 판별하기 어렵다. 우리가 재능을 높이 평가한다고 해도 대학입시의 맥락에서 재능이란 모호하고 둔한 개념이 된다. 아마 수학 신동을 가려내기란 쉬울 것이다. 그러나 재능의 일반적 평가는 더 복잡하고 더 예측하기 어려운 과제다.”
- CHAPTER 6. ‘인재 선별기’로서의 대학 中
샌델은 이렇게 ‘파격적’ 제안을 하면서도 한 발 더 나아가, 이에 대한 반론(학업능력 저하, 다양성 확보, 동문우대 및 기부금 입학, 대학명예 실추 등)을 예상하고 나름의 대답까지 준비해놓는다. 독자들은 너무나도 당연히 생각했던 사안들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훌훌 털어져 나가는 믿지 못할 논리적 경험을 하게 된다.
교육에서뿐만이 아니다. 샌델은 직업과 현실적 삶에 대한 대안도 제시한다. 그는 사회적 기여 측면에서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카지노왕과 고등학교 교사 사이의 소득(보상) 격차 등을 예로 들며 ‘일의 존엄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논쟁하자’고 주장한다. 또한 ‘삶의 어떤 영역은 운수가 좌우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함으로써, 능력의 오만을 혼내주자고 제안한다.



Nyx
4.0
어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3루에서 태어났는데 자기가 3루타를 친 줄 알고 있다.
김구리
3.0
능력주의라는 허상. . 당신은 능력주의를 믿나요? . 나는 sky를 졸업했다. 전국에서 공부로는 자존심 꽤나 부리는 학생들이 모인 곳이었다. 모교 커뮤니티에는 능력주의가 판을 친다. 자주 올라오는 글로는, 직업 비교, 서열질, 계량 연애학 등이 있으며 종종 전문대를 졸업한 사촌이 무려 sky를 졸업한 나보다 돈을 더 잘 번다는 사실에 현타를 느낀다는 글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그는 그 사실에 분개하지 않는다. 현타를 느낀다.) 계층을 이동하고자 고시나 전문 대학원에 진학한 이들은 일찍 결혼해 서울에 집을 마련한 이들을 부러워 한다. 실질적인 계층 상승은 부동산이었다며, 현 정부에 대한 비판과 비난을 반복한다. 갈수록 어려워지는 취업으로 지역인재전형에 온갖 조롱이 쏟아지고 역차별이라는 단어는 차별이란 단어보다 우위에 섰다. 이들은 노력을 무시하는 현 정부의 이러저러한 제도에서 대체 누가 노오력을 하겠냐고 물었다. 나는 죽을만큼 노력했는데 보상이 고작 이정도라니. 그들은 자신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 사실에 분노했다. . 이 모든 걸 지탱하는 건 능력주의 신화였다. . 마이클 샌델은 좌우진영을 떠나 능력주의 자체의 도덕에 의문을 품었다. 출발선만 공평하게 만든다면 능력주의 자체에 문제는 없냐는 것이다. 모두가 평등한 기회를 갖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평등한 기회를 줬으니 능력주의가 옳다는 생각은 너무나도 위험하다. 능력으로 줄을 세우면 누군가는 하위권에 들 것이다. 그 사람들에게 가난은 당연한 것인가? 상위권 그룹에게 부와 명예는 당연하고 정의로운 것인가? 책 말미에 나오는 야구 선수 행크 애런의 이야기에서 샌델은 우리가 능력주의를 애호해야 하는 게 아니라, 오직 홈런을 때려야만 벗어날 수 있는 인종주의의 부정의한 시스템을 혐오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불우한 환경에서도 꿋꿋이 버티며 성공한 “개천의 용” 혹은 “성공 신화”에서 우리는 능력주의의 타당성을 추켜세울 것이 아니라 개천에서는 용이 나오기 힘든 부정의한 시스템에 불편함을 느껴야 한다. . 이 책을 읽는 내내 생각난 영화가 있다. 바로 우디 앨럼의 <매치 포인트>다. 운을 믿고 이해해야만 우리네 삶을 달관할 수 있다. 우디 앨런은 극단적인 상황을 그리며 능력이나 논리보다 운이 좌우하는 인생의 아이러니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냈다. 결국, 인정하기 싫지만 운이다. 인생은 운이다. 운이란 불안정해서 그나마 계량이 가능해 보이는 노력에 늘 밀리곤 했지만, 운이다. . 나의 성공이 능력보다는 운이라고 생각하면 겸손은 자연스레 따라온다. 겸손한 사람들은 공동 선을 추구하기 쉬워진다. 그런 겸손함은 우리를 갈라놓고 있는 가혹한 성공 윤리에서 돌아설 수 있게 해준다. (p353) . 모교 커뮤니티의 분노로 돌아가보자. 입시 경쟁의 승자들은 패자의 굴욕감을 이해할 필요가 없었다. 다수의 승자는 죽을만큼 공부했기에 이 결과를 얻을 수 있었고, 그게 너무나도 뿌듯할 것이다. 어쩌면 재수, 삼수를 해가며 얻어낸 인생의 첫 승리일지도 모른다. 사교육 없이 해낸 나만의 능력일지도 모르고, 스마트폰도 없애가며 이뤄낸 독기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정말 능력주의를 타당화시킬 수 있는가. 출발선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라도, 능력주의는 그 자체로 계급사회로 이어지지 않는가. 사람 위에 사람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 능력주의 옹호자들도 이 명제는 옹호하기 어려울 거다. . 나는 정말 갖고 싶었던 능력은 아무리 노력해도 가질 수 없었다. 반면 sky 졸업장은 입학 시험의 운빨을 제대로 받았다. 나보다 잘하던 친구들은 떨어졌는데 이상하게 내가 붙었다. 그 떨어진 친구들은 또 더 좋다는 대학에 가기도 했다. 능력주의의 허상을 느낀 건 내 스스로도 능력을 믿지 못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나마 입시는 점수라도 나오지, 그 외의 것들은 점수로 계량하기도 어려우니, 내 스스로 능력에 대한 의문을 멈출 수 없었다. 자존심은 세서 가끔은 내 능력이라고 자만하기도 했지만...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결국, 나는 영화와 책에서 나의 의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했고 그렇게 찾은 게 “운”이었다. 운이 좋았네. 인사치레가 아닌, 진심으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마음에는 자연스레 겸손이 따른다. 오만은 떨어져 나간다. 겸손은 능력주의를 견고하게 만드는 온갖 이데올로기로부터 공동선을 추구하기 위한 열쇠다. 능력주의 신화가 무너져야 공동선을 좇을 수 있다. . PS: 책이 말하는 대전제 “능력주의는 그 자체로 정당한가”에는 깊이 공감하지만 샌델이 대안으로 제시한 조건의 평등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너무 이상적이랄까. 그래서 사람들이 출발선의 평등을 신봉하게 된 거 같기도? 다른 조건의 평등은 출발선의 평등보다도 믿기 힘드니까. . PS2: 이런 책에 꼭 대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저자도 신은 아니다. 양비론은 조심해야겠지만. 대안 제시는 그렇다치고 이야기가 자꾸 반복되는 느낌을 받아서, 굳이 책을 늘린 기분이라, 논의의 필요성을 떠나 책 자체는 높은 평점을 주기 어려웠다. . PS3: 월간 커넥트인가 tvN 교양 프로에서 샌델이 나와 하버드 대학 입학을 랜덤하게 하면 어떨까? 라는 서두를 던졌다. 기본 수학 능력이 있는, 지원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지닌 지원자가 2만명이 매해 지원하고 이중 반의 반 이상이 떨어지다 보니. 지원 가능한 조건을 지닌 사람들 중에서 랜덤하게 추첨으로 합격증을 배부하자는 거다. 물론 샌델은 사고 실험을 해보자는 거였지만, 내가 알기론, 네덜란드에서는 이미 랜덤 입학제를 시행하고 있다. <시험 국민의 탄생>이라는 책에도 나오는데 의대와 법대 입학생 중 일부가 완전 추첨제라고 한다. 네덜란드도 결국 능력주의에 의심을 품은 것이다. 네덜란드가 그런 모험을 한 이유도 책에 얼추 나오니 관심있다면 발췌독을 추천한다.
Ziwoo
読みたい
마이클 샌델의 신작이 궁금해졌다. 나는 작년 여름방학동안 이화여대와 하버드대 교류 프로그램에 참여했던터라 지금 내가 친한 미국인들 대부분이 하버드 학생들이다. 합정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코너에 당당히 자리잡은 책을 보고 냉큼 집어들었는데, 이게 웬걸... 한국어판 추천사를 모두 남성들로부터 받아온 것을 봐버렸다.(문용린 서울대 명예교수,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조영태 서울대 교수, 홍성국 국회의원) 으악 내 눈!!!!! 출판사가 요즘 핫한 '공 정' 코인을 타고싶었던 것인지 원제 The Tyranny of Merit을 너무 바꿔버린 것도 좀 그랬는데, 추천사를 죄다 남성들로부터만 받아온 걸 보니 이 책에 돈을 쓰기가 싫어졌고 그냥 도서관에서 빌려봐야겠다고 생각했다.(어느덧 책이든 영화든 미디어든 교육이든 뭐든 내가 내 소비 의사를 정할 때 이런 부분이 중요한 기준이 된 것 같다) 한국 출판사(와이즈베리)는 자신들의 신간으로 한국의 공정 담론에 올라타고 싶었다면, 추천사를 쓰는 필자들의 성비부터 고려했어야 했다. 더군다나 이건 2010년대 한국에서 일곱 번째로 많은 책을 팔아치운 슈퍼 밀리언셀러 저자의 책이 아닌가. 성평등의 기본과 상식을 자꾸 까먹는 조직이 너무 많다.
점수주는사람
2.5
번역의 수준이 매우 좋지 않습니다.
더블에이
4.0
샌댈 저서면 진보 엘리트들이 꽤 읽을텐데 ㅋㅋ그래서 그런지ㅋ그들에게 두페이지에 한번씩 니들이 잘난게 아니고 운이 좋았던거라고 오만하지말라고 ㅋㅋㅋ강조해줌. 정말 지들이 잘나서 모든걸 이룬거라고 생각했다니 그게 참 무섭다.
최일섭
4.0
좋음이 사라지고 옳음의 논리가 지배하는 오만과 굴욕의 세계. 용 나오는 개천을 만들기 위해 수위를 맞춰갔지만, 정작 수질의 상태는 망각됐다. 떠난 용은 멀어진 개천의 다른 생물들과 자신의 격차가 클수록 으쓱했고, 개천의 사회적 기여를 잊었다. 기회의 사다리에만 목을 매다 보니 정작 시민이 사라진다. "일의 존엄성을 회복함으로써 우리는 능력의 시대가 풀어버린 사회적 연대의 끈을 다시 매도록 해야 한다."
영사기, 필름 그리고 관객들
4.5
오타니도 만다라트에 운(Lucky)을 굵은 글씨로 적어놓는걸....
유안이아빠
5.0
《공정하다는 착각》 1독 완료/2020.12.17./별점 ⭐⭐⭐⭐⭐ ⠀ ✒ 자칫 능력주의 신화에 심취하게 되면 '운'의 엄청난 영향력을 간과하기 쉽다. 열심히 공부한 건 자신의 노력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언정 다른 걱정 없이 공부에만 몰입할 수 있는 '환경'과 태생적으로 취득한 '재능'은 '운'의 영역이다. 부모의 재력이 한 사람이 갖게 되는 능력 및 기회와 높은 상관 관계를 보인다고 말하는 수많은 통계를 보았을 때, 실력만으로 누구나 상류층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능력주의 신화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게 아닐까. 자신의 성공과 성취를 노력 덕분이라고만 생각한다면, 겸손과는 멀어지게 되고, 우월 의식이 자리 잡게 되면서 공동선에 대한 배려는 없어지게 된다고 생각한다. ⠀ ✒ 재능으로 얻은 보상은 온전히 개인의 것이어야 할까. 시장이 없고, 다른 사람들이 없고, 공동체가 없다면 노력과 재능이 있다한들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시장이 그 재능에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에 보상을 얻을 수 있는 게 아닐까. 결국 재능으로 얻은 보상은 시장이 부여한 선물이지 않나. 이러한 논리에 따르면 재능으로 얻은 보상을 공동선에 기여하게끔 하는 시스템은 충분히 정당성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 ✒ 갈수록 심각해지는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에 대한 거부감을 갖고는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러한 불평등이 자본주의·능력주의 사회에서 불가피하게 생기는 일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오늘날 능력주의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능력주의 자체에 대해서는 별다른 의구심이 없었다. 그렇다. 나는 능력주의를 꽤나 신뢰하고 있었다. 이 책에 나오는 샌델 교수의 통찰을 빌려 비로소 '능력주의' 자체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게 되었고, 나 또한 능력주의의 수혜자이자 피해자임을 알게 되었다. ⠀ ✒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시스템은 사회적 기여도에 따라 보상 받는 사회이다. 시장 가치를 사회적 기여도의 지표로 삼기에는 무리가 있다. 청소·택배·배달근로자, 전기기술자, 배관공 등이 전문직이나 컨설턴트, 연예인 등보다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적어서 임금의 차이가 이토록 심한 것일까. 그리고 사회적으로 소외 받고 있는 자들을 도우며 숭고한 가치를 실현하는 사람들은 과연 시장에서 정당한 보상을 받고 있는가. 이처럼 시장 가치는 사회적 기여도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진짜 문제는 능력주의 신화가 시장 가치를 사회적 기여도와 동일시하는 데 있다. 과거에는 '출생이나 특권'으로, 현재에는 '시장에 부합하는 능력'으로 사회적·경제적·문화적 혜택을 받고 있다. 나는 여기서 더 나아가 '사회적 기여도'와 '공동선'으로 그 혜택들이 분배되는 세상이 되길 바라본다. 그러려면 많은 사람들이 '능력주의' 그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논쟁하는 데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책이 그 시작을 도와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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