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는 이유가 있어서 이렇게 살아왔던 게 아닌가 싶다.
내가 선택한 고독의 수준이 어떤 면에서든 내게 좋았기 때문에,
나와 내가 잘 맞았기 때문에 그래 왔을 것이다.”―캐럴라인 냅
세상 어딘가에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다는 안도와 위안
독자들이 알아본 공감 에세이 《명랑한 은둔자》
시인 김소연, 겨울서점 김겨울, 북튜버 편집자K… 강력 추천
김명남 번역가의 섬세하고 우아한 번역
★ 2020 시사IN ‘출판인이 추천한 올해의 책’
★ 2020 교보문고 ‘올해의 책’
★ 2020 채널예스 ‘올해의 책’
★ 2020 문화일보 ‘올해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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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명랑한 은둔자야.”
고독의 즐거움, 고립의 괴로움을
우아하게, 솔직하게, 유머러스하게 말하는 지적인 목소리
“캐럴라인은 내 친구 같고 내 자신 같다. 아마 당신도 그럴 것 같다.”
―김소연 시인
캐럴라인 냅은 지적이고 유려한 회고록 성격의 에세이를 쓴 작가로, 2002년 마흔둘이라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냅은 살면서 몇몇 끔찍한 중독에 빠진 경험이 있는데, 삶의 불가사의한 두려움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을 땐 술로, 그런 자기 자신을 호되게 통제하고 싶을 땐 음식을 거부했다. 그는 이런 자신의 깊은 내면 이야기를 솔직하게, 우아하게, 또렷하게 고백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드링킹, 그 치명적 유혹(Drinking)》은 알코올 중독의 삶을, 《욕구들(Appetites)》은 다이어트 강박증과 섭식장애에 관한 기록이다. 개를 향한 지나친 애착이 염려스러울 정도로 개를 사랑하여 그 마음을 《남자보다 개가 더 좋아(Pack of Two)》라는 책에 담기도 했다.
《명랑한 은둔자》는 그의 유고 에세이집으로, 캐럴라인 냅이라는 작가의 삶 전반을 빼곡히 담고 있는 초상과 같은 책이다. 캐럴라인 냅은 삶의 미스터리가 크든 작든 그 모두를 예민하게 살피고, 무엇보다 거기서 자기 이해를 갈망했던 작가다. 그는 《명랑한 은둔자》에서 혼자 살고 혼자 일했고, 가족과 친구와 개와 소중한 관계를 맺으며 자기 앞의 고독을 외면하지 않았던 삶을 이야기한다. 또한 알코올과 거식증에 중독되었으나 그로부터 힘겹게 빠져나왔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옥죄었던 심리적 굴레를 벗어나 자유와 해방감을 경험한 한 인간의 깨달음을 들려준다.
“캐럴라인 냅의 목소리는 워낙 또렷하여,
그를 만나본 적 없는 사람마저도 그를 그리워하게 된다”
“이전에 나는 냅의 글을 하나의 키워드로 요약하라면 ‘중독’이 그 키워드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명랑한 은둔자》를 옮기고 나니 그 생각이 바뀌었다. 냅의 글은 늘 변화에 관한 이야기였다. 과거의 악습이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려고 애쓴 이야기, 느닷없이 닥친 상실이나 깨달음을 수용하려고 애쓴 이야기였다. 단순히 중독을 극복한 성공담이 아니었다. 사람은 누구나 언제나 조금은 달라질 수 있고, 달라지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점점 더 편안한 (더 자유롭고, 더 즐겁고, 더 자신다운) 자신이 될 수 있다고 증언하는 글이었다.”
―김명남 옮긴이
캐럴라인 냅은 거의 평생 고독의 즐거움과 고립의 절망감 사이에서 줄타기했던 사람이다. 브라운 대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할 만큼 매우 지적이고, 졸업 후 저널리스트로서, 베스트셀러 작가로서의 명성을 이어갔지만, 사실은 수줍음을 많이 타고 혼자 있는 시간에 평온함을 느끼는 내향성의 사람이다. 누구보다 가족과 친구와 개에 대한 사랑이 넘쳤지만, 마음 한구석에 자리한 공허와 불안과 사투를 벌였던 사람. 그런 자신이 지나치게 별나다는 생각이 들어 다음 생에는 너무 거창하지도 너무 복잡하지도 않은, 그냥 보통의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 이런 사람이 자기 자신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그 감정과 생각의 결을 낱낱이 풀어낸다. 아마 냅의 글을 읽는 사람들은 예의 이 솔직함에 웃고, 울고, 아플 것이다. 캐럴라인 냅의 글은 감정이입과 몰입의 글쓰기라고 할 수 있을 만큼 독자를 강렬하게 끌어들인다. 냅을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알고서는 반하지 않을 수 없다.
캐럴라인 냅의 삶을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중독, 결핍, 가족, 반려견, 우정, 사랑, 애착, 일, 성장, 슬픔, 상실, 고립, 고독……. 특히 중독은 냅의 삶에서 빠질 수 없는 키워드다. 그는 알코올 중독과 거식증을 겪으면서 자신이 어디까지 추락할 수 있는지 보았고, 그 까마득한 어둠으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 다시 한 번 자기 자신과 정면으로 맞서는 시간을 보냈다. 누구보다 캐럴라인 냅의 삶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 옮긴이 김명남의 말처럼, 냅은 자기 이해와 수용, 그리고 변화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애썼고, 더 자유롭고, 더 즐겁고, 더 자신다운 사람이 되기 위해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자신의 강함과 약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결국 삶의 명랑을 깨달은 저자로부터, 우리는 만난 적 없지만 오래 이어온 듯한 우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냅의 이야기는 내 이야기 같고, 내 친구 이야기 같다. 이것이 냅의 재능이고, 그의 글이 가진 힘이다.
자기 앞의 고독을 외면하지 않고
자신의 강함과 약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결국 삶의 명랑을 깨닫는다는 것
“무엇보다 오래 기억될 만한 점은, 냅이 혼자 살고 혼자 일하는 여성으로서 자신의 인생을 솔직하게, 전혀 감상적이지 않은 눈으로 살펴보았다는 것이다.”
―《커커스 리뷰》
캐럴라인 냅은 어느 날 느슨한 차림으로 늦은 저녁을 챙겨 먹기 위해 부엌에 선다. TV에선 곧 좋아하는 드라마가 방영될 테고, 사랑하는 개는 자기 옆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 메시지를 확인하라고 전화 자동응답기 알람이 깜박거리지만 굳이 서둘러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 그는 이 평범하기 그지없는 순간 불현듯 완전한 문장으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정의할 수 있게 된다. “나는 명랑한 은둔자야.”
캐럴라인 냅이 인생의 급경사를 여러 차례 오르내리며 다다른 길은 결국 자기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세상과 타인의 편견에 맞서 어떻게 관계하며 살아갈지에 대한 방법이다. 자신이 쌓아 올린 작은 세계, 다른 사람이 쌓아 올린 무수한 세계와 어떻게 만날 것인가, 어디까지 만날 것인가에 대한 자기 기준을 마련하는 것. 냅은 자기만의 삶의 기준과 가치를 문득 깨달았을 때, 이것이 고마운 선물이자 일종의 승리임을 실감한다.
캐럴라인 냅은 자신이 실수와 결함투성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아마 그랬다면, 자신이 어떤 경험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지 이토록 솔직하게 고백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들려주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회한, 최소한의 친구와 나누는 깊은 우정, 개와의 진정한 애착,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한 예리한 관찰, 그리고 자기 자신의 강함과 약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서 출발하는 자기 존중감에 대한 이야기는, 이에 대한 이해가 갈급했던 독자에게 공감과 위안이 될 것이다. 냅이 완전한 문장으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정의할 수 있었듯이, 이 책을 읽는 이도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난 후 그럴 수 있으리라 감히 생각해본다.
신혜미
4.0
참 웃긴 게 내 기질이 이렇다는 걸 인식할 땐 아 ㄹㅇ 버겁다,, 뭐든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느끼며 살고 싶다 이젠 극혐이다.. 이러다가도 누가 이런 사람 같아보이면 헐 그렇단 마뤼야아ㅡ!!하면서 살랑살랑 친해져보고 싶어하고ㅋㅋㅋㅋㅋㅋㅋ 겁나 모순 ㅠㅡㅠ
oowtiz
5.0
인터넷에 떠도는 MBTI 성격 유형 검사 질문 중에는 '종종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정당화시켜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가 있다. 내 대답은 늘 '동의'였다. (질문을 이해한 바가 옳은지는 모르겠으나,) 나의 다름을 구성원들에게 해명 아닌 해명을 하고 싶단 마음이 며칠에 한 번 씩은 울컥울컥 들기 때문이다. 그런 날이면 블로그를 켜서 나에 대한 또는 내 생각을 담은 글을 쓰지만 글을 제대로 완성 시켜 본 적은 아주 드물다. '나'에 대한 생각을 파고 파고 또 파다보면 아무도 안 볼 것을 알면서도 내 생각을 검열하고 거짓을 쓰게 됐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책의 문장들은 내게 한 여름의 스콜처럼 몰아쳤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냅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고독하게 보냈을까 하는 섣부른 공감으로. 나와 닮은듯 다른 이 사람의 일생을 응원하며 훔쳐보는 마음으로. 첫 페이지와 끝 페이지를 모두 벅차게 넘겼다. 2021년의 첫 책부터 느낌이 좋다!
라따뚜이
5.0
1990년대 미국 어딘가에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었다고 느껴진다니. 그리고 그게 이렇게나 위안이 된다니
SH
5.0
그냥 에세이가 아니라 존재의 불안에 관한 책
정세진
3.0
원래부터 한국어로 썼다 해도 믿어 의심치 않을듯. 이 에세이를 읽고 더 궁금해진 건 캐럴라인 냅의 다른 글이 아니라 김명남 번역가가 맡은 다른 책.
홍안
5.0
작가가 지닌 영혼의 본질이 놀랍도록 나와 닮아 있어서 마음이 갈 수밖에 없던 책.
천수경
4.5
188-193쪽 <더 이상 곁에 없는 사람을 수용하는 것> 요전 날 밤, 내 개와 함께 거실에 앉아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목소리가 녹음된 테이프를 틀어보았다. 무덤에서 망자의 목소리를 소환하려는 것처럼 음침한 일로 들리지만, 사실 나는 이 일로 수용에 관한 작은 교훈을 하나 배웠다. 상실을 수용하는 것, 나를 떠난 사람을 수용하는 것, 더 이상 내 곁에 없는 사람을 수용하는 것에 대하여. 아버지는 5년 전에 뇌종양으로 돌아가셨다. 정신분석가였던 아버지는 놀라운 지성의 소유자였고, 병을 진단받았을 때 막 책을 쓰기 시작한 참이었다. 뇌종양은 집필을 결딴냈다. 아버지는 오른손으로 펜을 쥐는 것조차 힘들었고, 생각은 점차 산만해졌다. 하지만 투병의 첫 몇 달 동안은 병이 아버지의 의지만큼은 꺾지 못했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삶을 지탱해준 힘이었던 일을 그만두기를 거부했다. 그래서 내가 아버지와의 대화를 테이프에 녹음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내가 책에 관해서 아버지에게 질문을 던지고, 아버지가 사실상 책 내용을 내게 구술하고, 그러다 보면 언젠가 그 톡취록을 원고로 묶어도 될 만큼 충분히 모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그 실험은 딱 하룻밤 실시되었다. 겨우 18분의 녹음이었다. 내가 이번에 들어본 것이 바로 그 테이프였다.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로 그날까지 그 테이프를 한 번도 듣지 않았다. 그런데 왜 하필 그날 밤에 집을 뒤져서 그것을 찾아낸 뒤 녹음기에 넣고 들어보았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이제 때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거나, 아버지를 되살릴 수는 없어도 기억은 되살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동기가 무엇이었든, 나는 그 테이프를 듣는 일이 무엇보다도 애도의 한 형태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어떤 면에서는 예상이 맞았다. 그 18분에는 슬픔이 가뜩 응축되어 있었다. 뇌종양 때문에 아버지의 목소리는 떨렸고 부자연스러웠다.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더 허약한 노인의 목소리 같았다. 아버지의 지성도 약해지고 있었다. 아버지가 자신이 손상되었다는 현실, 그 현실을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에 괴로워하는 것이 목소리에서 느껴졌다. 아버지는 생각의 흐름이 끊기곤 했고, 단어를 잊곤 했고, 한때 알파벳처럼 쉽게 내뱉을 수 있었던 개념을 말로 잘 설명하지 못하곤 했다. 그런 뒤에는 아버지가 말을 멈추고 자신을 추슬렀다. 그러다가 이런 말도 들렸다. “젠장할......젠장할.”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었던 아버지가 문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고, 그 사실을 자신도 아셨던 것이다. 우리가 실험을 중단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그 테이프가 아버지의 생각이 아니라 쇠락을 담아냈다는 사실을 우리 둘 다 말은 안 했지만 알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 테이프는 다른 것도 담아냈다. 나와 아버지, 그리고 내가 이해하기로 이상하고 강렬하고 어긋난 관계였던 우리 둘의 애착 관계가 거기 담겨 있었다. 아버지와 나의 관계는 심리치료를 10년 이상 받도록 만들 만한 것이었고, 그런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노라니 그 옛날로 시간 여행을 하여 그 엤날의 관계를 18분 동안 엿듣는 관찰자가 된 기분이었다. 나는 아버지를 흠모했고, 아버지를 공경하면서도 두려워했으며, 아버지의 인정을 몹시 바랐다. 내게 아버지는 신인 동시에 미친 과학자였고, 전능하고 탁월하고 곧잘 생각이 다른 곳에 가 있어서 내가 가끔씩만 가닿을 수 있고 그나마도 불완전하게 접촉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버지와의 접촉은 짧은 순간 갑자기 이뤄졌다가 끊어졌다. 평소 자신의 생각이라는 구름에 둘러싸여 있던 아버지가 잠깐 땅으로 내려와서 아주 잠시-10분, 18분-자신의 통찰력과 영민함을 내게 발휘한 뒤 다시 휙 사라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그 감정적 거리감이 어디에서 연유했는지를 아버지가 투병하는 동안 더 잘 이해하게 되었는데- 아버지는 우울증과 술과 내면의 어두움과 오랫동안 대체로 혼자만 아는 싸움을 벌여왔고, 그런 힘들에 떠밀려서 일로 사라졌으며, 그래서 늘 생각이 딴 데 가 있는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어렸을 때는 여느 아이들이 그런 것처럼 그 관계의 결함이 내 탓이라고 여겼다. 아버지가 내게 실망했기 때문에, 내가 아버지에 비하면 무가치한 사람이기 때문에 아버지가 내게 거리를 둔다고 여겼다. 이 모든 느낌이 그 테이프를 듣는 동안 되살아났다. 아버지의 지성은 강력했고, 아버지는 이론에 몰두해 있었으며, 그 앞에서 나는 투명 인간이 된 듯했다. 아버지가 오래전에 어느 분석력이 뛰어난 환자와의 상담에서 떠올렸던 이미지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듣노라니- 겨우 한 시간의 상담 중 한 조각에 불과했던 그것을 아버지는 이후 20년 동안 심사숙고하고 이해하려고 애써왔던 것이다- 내가 아버지의 일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듯했던 느낌이 되살아났다. 내가 아버지의 환자들만큼도 중요하지 않다는 느낌, 혹은 아버지에게 드릴 것이 없다는 느낌. 내가 아버지에게 질문하는 목소리를 듣노라니, 그 속에서는 자의식이 느껴졌다. 긴장감, 애써 태연한 척하려는 목소리, 자신의 부족함을 의식하는 듯한 울림. 아버지가 자기 일에 열중한 것을, 내가 아버지에게 열중한 것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걸 듣고 있자니 다른 놀라운 감정도 들었다. 아버지 생전에는 내가 아무래도 얻지 못했던 약간의 평온함, 받아들일 수 있겠다는 느낌이었다. 만약 내가 2년 전에, 혹은 3년이나 4년 전에 이 대화를 들었다면, 내 주된 반응은 아마 노여움이었을 것이다. 애도에 엮여든 분노였을 것이다. 내 목소리에서 자의식을 들었을 테고, 아버지가 내게 자신감 대신 두려움을 일으킨다는 사실에 화났을 것이다.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는- 지적으로 분석하고, 생각이 딴 데 가 있고, 자기 생각에만 몰두한 목소리를- 오랜 좌절의 역사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그토록 닿을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기란 불가능하다는 데서 오는 좌절감을 다시 느꼈을 것이다. 아마 이튿날 득달같이 내 심리치료사를 찾아가서 아버지가 얼마나 까다로운 인간이었는지, 아버지 앞에서 내 가치를 인정받거나 연결되었다고 느끼기가 얼마나 어려웠는지 줄줄 토로했을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5년이 흐른 지금, 그 감정들은 다소 누그러졌다. 덜 통렬하고 덜 자동적이고 덜 필요한 것이 되었다. 나는 개를 쓰다듬으면서 생각했다. 우리는 각자의 부모에 대해서 오랫동안 남몰래 화낸다.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아닌지, 우리는 그들이 어떤 사람이기를 바라는지, 우리가 어떤 실망과 단절을 겪었는지, 그들이 우리를 키운 방식이 왜 이렇게 꼬여 있었는지, 이 모두에 대해서 화낸다. 이 괴로움을 놓아버리는 일은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고, 자기 인식과 성숙함과 시간이 절묘한 비율로 섞여야 가능한 일이다. 어떻게 혹은 왜 그 일이 가능해지는지, 부모에 대한 복잡한 감정에서 가장 아픈 모서리들이 깎여 나가는지,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그분이 돌아가신 뒤 내가 얼마나 멀리 나아왔는지를 떠올렸다. 나는 작은 눈물의 강을 타고서 우리가 그 테이프를 녹음했던 날부터 내가 마침내 그것을 틀어본 날까지 흘러왔다. 그리고 이제 나는 내 집에 있다. 이곳은 내게 성소처럼 느껴지는 곳이다. 그리고 이제 나는 내 개와 함께 있다. 나는 이 개를 조금의 두려움도 자제함도 없이 사랑하며, 이것은 내가 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었던 방식과는 전혀 다르기 떄문에, 이 사랑이 내게 엄청난 교정 효과를 발휘한다고 느낀다. 그리고 이제 나는 술을 끊은 지 4년이 되어간다. 나는 많은 일을 해낸 셈이고, 먼 길을 나아온 셈이다. 그리고 이렇게 멀리서는 과거가 좀 더 부드러워 보인다. 덜 고통스럽고 더 인간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날 밤 아버지와 내가 식탁에 앉아서 테이프를 녹음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휠체어에 앉아 계셨고, 나는 포도주잔을 생명줄처럼 움켜쥐고 앉아 있었다. 우리가 둘 다 서툴렀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둘 다 불완전하고 부자연스러운 방식으로나마 투병 기간 내내 서로에게 곁을 주려고 노력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잃어버린 기회와 놓친 연결감과 이런저런 후회도 떠오르지만, 무엇보다도 크게 느끼는 것은 일종의 평온함이다. 나는 생각했다. 우리는 노력했어. 마지막에는, 우리 둘 다 최선을 다했어. 이런 감상에는 슬픔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뿐만은 아니었다. 평화도 있었다.
rushmore
5.0
“내 경우, 가장 중요한 과제는 고독과 고립의 경계선을 잘 유지하는 것이다. 실제로 그 둘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사회적 기술은 근육과도 같아서 위축될 수 있고, 내가 경험한 바로도 육체적 건강을 유지하는 것처럼 사람과의 접촉을 유지하려고 애쓸 필요가 있다. 타인과의 접촉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지 않으면, 지극히 간단한 사회적 행동마저도 엄청나고 무섭고 피곤한 일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고독은 종종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배경으로 두고 즐길 때 가장 흡족하고 가장 유익하다. 적절한 균형을 지키지 못하면, 삶이 약간 비현실적인 것이 된다.” 그냥 원래 한국어로 적혔다고 해도 충분히 세밀한 김명남 번역가님의 문장들.. 작가와 비슷한 성정을 가진 여자라면 이 책을 안 좋아할 수가 없을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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