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의 집
작품 해설
작가 연보
인형의 집
헨리크 입센 · キッズ/小説/戯曲
14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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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극의 선구자 헨리크 입센의 대표작. 남성 중심 사회에서 자아를 발견하려는 '노라'를 등장시킨 최초의 페미니즘 희곡으로, 결혼과 남녀의 역할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이번에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는 <인형의 집>은 노르웨이어 번역 원전으로 사용하였을 뿐 아니라, 수정되거나 삭제되었던 부분까지 모두 복원한 판본으로 번역하였다. 전체 3막으로 구성되었으며, 1879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초연된 이후 전 세계에서 공연되고 있다. 세 아이의 어머니이자 사랑받는 아내인 노라가 주인공이다. 작가 입센이 밝힌 대로 여성의 권리와 독립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그 외에도 개인과 사회, 사회의 통념과 개인의 판단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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著者/訳者
レビュー
200+目次
出版社による書籍紹介
아내나 어머니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찾아
허위와 위선뿐인 ‘인형의 집’을 떠나려는 노라,
근대극의 선구자 헨리크 입센이 ‘노라이즘’을 탄생시킨 최초의 페미니즘 희곡
▶ 발표된 지 130년이 되어 가는 『인형의 집』의 시사성은 이 작품이 무조건 관습을 따를 것을 요구하는 사회, 생각이 다른 집단을 주류의 규범에 따라 판단하는 현실에 회의를 제기하는 데 있을 것이다. - 「작품 해설」 중에서
근대극의 선구자 헨리크 입센의 대표작 『인형의 집』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248번)으로 출간되었다. 『인형의 집』은 남성 중심 사회에서 자아를 발견하려는 ‘노라’를 등장시킨 최초의 페미니즘 희곡으로 잘 알려져 있다. 결혼과 남녀의 역할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이 작품은 19세기 말 당시 하나의 사건과도 같았으며, 발표되자마자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번에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는 『인형의 집』은 노르웨이어 『인형의 집』을 번역 원전으로 사용하였을 뿐 아니라, 수정되거나 삭제되었던 부분까지 모두 복원한 판본으로 번역하였다. 번역을 맡은 안미란은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안정효의 장녀로, 노르웨이어를 비롯하여 13개국의 언어에 능통하며, 현재 이탈리아 라 사피엔차 로마 대학교 강사로 있다.
“오늘날의 사회에서 여성은 자기 자신이 될 수 없다.”
『인형의 집』은 전체 3막으로 구성된 희곡으로, 1879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초연된 이후 전 세계에서 공연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1925년 조선배우학교에서 처음 공연되었다.
주인공은 세 아이의 어머니이자 사랑받는 아내인 노라. 그녀는 즐거운 마음으로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고 있다. 결혼한 후 8년 동안 남편 헬메르의 병이나 넉넉지 않은 살림으로 생활이 쉽지 않았지만, 이제 새해가 되면 그가 은행 총재로 부임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헬메르는 마냥 철없고 아이 같아 보이는 노라를 “종달새”, “낭비꾼”이라 부른다. 그런 노라에게 학창 시절 친구인 크리스티네 린데 부인이 찾아온다. 그녀는 남편이 죽은 후 어렵게 살다가 도시로 나와 노라를 찾아온 것이었다. 린데 부인이 노라에게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하자 노라는 발끈하며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몇 년 전 남편이 죽을병에 걸려 남쪽 지방으로 휴양을 가야 했을 때 아버지의 서명을 위조하여 그 경비를 빌렸던 것이다. 그녀는 그동안 바느질이나 서류 작업으로 푼돈을 벌어 남편 몰래 그 돈을 갚아 왔다. 하지만 이제 모든 일이 잘되어 가고 있으므로, 헬메르에게 린데 부인의 일자리를 부탁할 여유까지 생겼다.
헬메르는 린데 부인을 고용하는 대신, 자신이 눈엣가시로 여기던 남자를 해고하는데, 그가 바로 노라의 비밀을 알고 있는 크로그스타드였다. 그는 남의 약점을 캐내 폭로하는 등 비열한 짓을 해 온 남자였다. 크로그스타드는 직장을 잃을 위기에 처하자 노라를 찾아와 남편에게 비밀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한다. 한편 남편의 오랜 친구인 랑크 박사가 노라에게 사랑을 고백해 온다. 그러나 노라는 마음을 굳게 먹고 남편의 명예를 위해서라면 목숨을 바칠 각오까지 한다.
마침내 모든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 헬메르는 노라를 비난하며, 그들의 결혼 생활은 이제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한 것일 뿐이고 그녀는 아이들을 교육시킬 자격이 없다고 선언한다. 또한 “경박한 여자”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망쳤다며 노라를 모욕한다. 그러나 크로그스타드가 린데 부인 덕분에 마음을 바꿔 차용증서를 돌려보내자,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노라를 용서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노라는 깨닫는다, 그들의 결혼은 한 번도 진실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그리고 아내나 어머니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찾아 허위와 위선뿐인 ‘인형의 집’을 떠난다.
행복한 적은 없었어요. 행복한 줄 알았죠. 하지만 한 번도 행복한 적은 없었어요. (중략) 재미있었을 뿐이죠. 그리고 당신은 언제나 내게 친절했어요. 하지만 우리 집은 그저 놀이방에 지나지 않았어요. 나는 당신의 인형 아내였어요. 친정에서 아버지의 인형 아기였던 것이나 마찬가지로요. 그리고 아이들은 다시 내 인형들이었죠. 나는 당신이 나를 데리고 노는 게 즐겁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놀면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요. 토르발, 그게 우리의 결혼이었어요.
개인의 선택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에서 발견하는 『인형의 집』의 새로운 가치
노라가 아내나 어머니로서의 역할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찾기 위해 집을 떠나는 것으로 『인형의 집』은 막을 내린다. 그녀는 사회 통념이나 가치관, 법률뿐 아니라, “나는 종교가 뭔지도 제대로 모르겠어요.”라고 말하며 종교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이로 인해 1879년 처음 이 작품이 발표되었을 때 커다란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많은 비판을 받았다. 19세기 말 당시 유럽에서 성스러운 것으로 여겨지던 결혼과 남녀의 역할, 종교 등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이 작품은 하나의 사건과도 같았던 것이다. 그 당시 입센은 언론 조작, 이중적인 윤리, 사회와 개인의 갈등 등을 주제로 한 사회극을 다수 발표했는데, 특히 “오늘날의 사회에서 여성은 자기 자신이 될 수 없다.”라는 언급과 함께 발표한 『인형의 집』을 통해 전 세계적인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후에도 『인형의 집』은 노라라는 인물과 그녀가 집을 나간 후에 어떤 운명을 맞이했을지를 두고 논의가 지속되어 왔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엘프리데 옐리네크는 노라가 바깥세상에서 독립에 실패하는 것으로 그려 화제가 된 바 있다.
『인형의 집』은 입센이 밝힌 대로 여성의 권리와 독립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그 외에도 개인과 사회, 사회의 통념과 개인의 판단 등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작품이다. 발표된 지 이미 130년이 넘은 이 작품은 특정 집단이 만든 관습을 모든 개인에게 강요하고, 그것을 따르지 않을 경우 그 사회에서 살아갈 수 없는 현실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노르웨이어 원전을 옮긴 젊고 감각적인 『인형의 집』
『인형의 집』을 번역한 안미란은 소설가이자 번역가로 잘 알려진 안정효의 장녀이기도 하다. 안정효는 『하얀 전쟁』, 『은마는 오지 않는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등 다수의 소설을 발표하고 『최후의 유혹』, 『전쟁과 신부』, 『영혼의 자서전』, 『뿌리』 등 150권가량의 작품을 번역하여 제1회 한국번역문화상을 수상한 바 있다. 독일 킬 대학교 언어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한 후 현재 이탈리아 라 사피엔차 로마 대학교에서 강사로 일하고 있는 안미란 역시 덴마크어와 노르웨이어 등 13개국 언어에 능통하다.
헨리크 입센은 노르웨이어로 쓰인 작품이지만 그동안 한국에서 출간된 『인형의 집』은 영어나 일본어 중역이 대부분이었다. 중역을 배제하는 원칙에 따라 민음사에서는 노르웨이어 원전을 직업 번역하여 작가의 의도를 그대로 살려 냈다. 또한 입센의 모든 작품을 수정 없이 원본 그대로 전자 출간한 오슬로 대학의 판본을 원전으로 사용함으로써 작가가 처음 발표했을 당시 그대로의 작품을 한국어로 만나 볼 수 있다.



Laurent
4.5
노라 : 나의 거룩한 의무가 뭔가요? 헬메르 : 그걸 내가 말해야 아나?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책임이 아닌가! 노라 : 내게는 다른, 그만큼이나 거룩한 의무도 있어요. 헬메르 : 아니, 없어. 대체 무슨 의무지? 노라 : 나 자신에 대한 책임이에요. 헬메르 : 당신은 우선적으로 아내이며 어머니야. 노라 : 그 말은 더 이상 믿지 않아요. 나는 내가 우선적으로 당신과 마찬가지로 인간이라고 믿어요. 최소한, 그렇게 되려고 노력할 거예요. 토르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당신이 옳다고 할 거예요. 그리고 책에도 그런 비슷한 말들이 있죠.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말로 만족할 수 없고 책에 쓰여 있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어요. 나는 모든 일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설명을 찾아야 해요.
백_
5.0
노라가 우체통의 편지(남편을 살리기 위해 감수한 위법의 증거)에서 헬메르의 시선을 뺏기 위해 추던 춤은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타란텔라라는 이름의 이 춤은 타란툴라라는 독거미에 물린 뒤 발생하는 병(Tarantism)을 치유하기 위해서 추는 춤 혹은 독으로 인한 경련과 발적을 형상화 한 춤이다. 노라는 이 춤을 추며 마치 인형이 그렇게 하듯, 자신의 몸을 헬메르 앞에 전시한다. 헬메르의 검열이 필요하다는 핑계로 춤을 추고 있는 노라는 헬메르에 의해 만들어진 타자이고, 타자인 노라 자신에 의해 대상화 된 타자이다. 만들어진 여성성, 대상화 된 타자로서의 여성, 그 존재와 몸짓을 극단적으로 폭로하는 춤 이후에 노라는 자신의 주체성을 알아차리고 행동하기 시작한다. 그 행동이 ‘주체성을 회복시키는 전조’가 되는 노라와 그 행동을 보고 성적 욕망을 느끼는 헬메르의 대비는 대상화 된 존재와 대상화 하는 존재 사이의 폭력 구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머야 고스
5.0
희곡론 시간에 공부하고 책을 집에 가져다 놨더니 엄마가 밑줄 쳐 가면서 읽었더라. 헬메르 아빠랑 존똑이지 않느냐고... 엄마랑 내가 아빠한테 하고 싶은 말이 140년 전 책에 이미 다 적혀 있다. 문을 쾅 닫고 인형의 집에서 나갈 순간이 우리에게도 올까.
필용
3.0
이 작품이 쓰여진 시대에 비하면, 여성 인권은 조금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남성과 여성으로 편을 가르고 싸우는 모습을 보아하니 아직은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인권을 갖고 있다고 말하기에는 한참 멀었다. 이 희곡을 현시대에도 읽어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주인공 '노라'를 여성으로만 국한시키지는 않기를 바란다. '노라'는 여성이기 이전에 하나의 '사람'이다. 자신이 받았던 모든 억압을 벗어버리고, 자신의 자아를 찾기 위해, 자신의 삶을 주인답게 살기 위해 길을 떠난 것이다. '노라'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노라'는 우리 모두를 상징한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남성과 여성 모두, 그 형태와 정도만 다를 뿐 여러 억압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사회 구조 속에서는 필연적인 것이다. 우리 모두 자신이 받는 억압을 자각하고, 노라처럼 인생의 새로운 막을 열어가기 바란다.
도로시
5.0
울면서 읽었다. 우린 아직도 인형의 집에서 살고 있잖아!!
ㅈㅐ
3.5
노라는 자기 생의 객체로 살았으나 비로소 주체가 되어 안락한 객체로서의 삶을 떠났다. 가장 신성한 의무는 부인이나 어머니로서의 의무가 아니라 나에 대한 의무이며, 세상으로 돌아가 어느 쪽이 옳은지 밝혀내겠다는 그녀의 말이 고무적이다. 노라가 한국의 가부장적이고 지금보다 더 확연히 남성 중심적이며 남성 우월적이던 시대를 살아낸 여성들을 연상시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페미니스트의 정의조차 제대로 기재되지 않고 있는 지금을 살아내고 있는 여성들까지. 남성과 여성에 관한 은근한 세뇌와 폭력적인 사고, 시선 속에서 어떤 문제는 문제라고 인식하지도 못하며 사는 혹은 살던 나와 내 자매, 친구들, 그 친구들의 친구들 등 무수한 여성.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지 않았던 나는 이제 페미니즘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헤매고 있다. 알고 싶기 때문에 읽으며 듣는다. ‘인간은 평등하다’는 문구를 안다. 그 말을 믿으며, 페미니즘 역시 그 보편적이고 당연한 가치를 기반으로 두고 있으리라 믿는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성이라는 이유로 가해지는 모든 종류의 부당한 폭력을 거부하며 살겠다.
이현지
4.5
입센은 인형의 집을 통해 당시 여성들에게 ‘어떻게 살아야한다’를 보여주기 보다는 여성에게 문제가 되는 사회구조를 깨닫는 시점을 보여준다. 처음에는 그저 철부지에 생각 없어 보이는 말투로 말하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마치 각성한 듯 말투와 태도가 바뀌며 집을 나가는 장면은 읽는 독자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한다. 이 책이 쓰이고 백여 년이 지난 지금, 사회에서 여성의 이미지는 어떠할까? 예전에 한 실험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피실험자들에게 ‘여자아이’같이 뛰어보라고 했을 때 아이들 집단은 그냥 열심히 달린 반면, 어른 집단은 과장되게 뒤뚱거리며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뛰었다. 무엇이 이 두 집단의 차이를 가져왔을까? 시몬 드 보부아르는 「제2의 성」에서 “사람은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라고 말하며 사회적 성인 ‘젠더’라는 말을 사용했다. 태어날 때는 그저 생물학적 차이만을 가지던 어린 아이들이 ‘너는 여자니까’, ‘너는 남자니까’라는 말을 듣고 자라면서 사회적인 ‘여성’이 되고, ‘남성’이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요즘 많이 구분이 완화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성역할이 아직도 뚜렷하게 구분되어있다. 맞벌이가 증가하는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가정일의 주체는 여성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직장에서의 성차별도 여전히 존재한다. 입사할 때부터 남성에 비해 여성은 외모도 중요한 스펙이라는 말이 많았다. 그리고 실제로 한 마케팅 업체에서는 여성의 신체조건을 자격요건으로 내건 채용공고를 올리기도 했다. 입사를 하고 나서도 여성들은 ‘유리천장’에 자주 막히고는 한다. 하지만 남녀의 성역할 구분은 남성의 시각으로 볼 때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여성들이 본인 스스로를 바라볼 때도 일어난다. 경기가 어려워 취직이 힘든 요즘 ‘취집’(취직과 시집을 합한 신조어)이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취직이 잘 안되니 좋은 조건의 남자를 만나 시집이나 가야겠다는 말인데, 남성에 의존적인 태도의 단어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체력을 많이 요구하지 않는 3차 산업에 종사 중인 상황에서 남성에게 자꾸 의존하려는 태도는 성역할을 계속해서 뚜렷하게 구분시킬 뿐이다. 남녀의 역할 구분은 너무 오래전부터 당연하게 우리사회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에 잘 인지되기 어렵다. 하지만 사람들이 이를 깨닫게 된다면 생물학적 성만 존재하고, 젠더의 개념은 약해지는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크로그스타는 노라 부부의 진정한 화해(문제를 감추기 보단, 모든 진실을 알고 난 후 문제를 함께 풀며 하는 화해)를 위한 기적을 주었다. 하지만 그가 의도한 방향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고, 대신 노라가 자기 스스로를 깨닫게 된 기적이 일어났다. 남녀가 평등하고, 오히려 여자가 남자보다 더 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의 불합리함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으면 좋겠다. 노라와 같이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를 깨닫게 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남성적, 여성적으로 이분화 되어 온 사회의 사고체계는 바뀌게 될 것이다.
상맹
4.0
법도 도덕도 사랑도 윤리도 모두 내가 스스로 책임질 수 있을 때까지, 그렇게 납득할 수 있을때까지 뜯고 씹고 맛보러 굳이 세상으로 나가겠다는, 그 고난의 길로 떠나는 노라의 뒷모습에 박수를. 앞으로 펼쳐질 인형에서 사람이 되는 그 길의 이미지와 쉽지 않은 결심들의 순간이 만들어 줄 씨퀀스들에 박수를. 고전은 고전인게 현재 어느 주위를 둘러보더라도 너무 눈에 치이게 보이는 인형 가족들과 여전히 드문 노라같은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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