きみの鳥はうたえる
きみの鳥はうたえる
2018 · ドラマ/ファンタジー · 日本
106分 · R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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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僕”(柄本佑)は函館郊外の書店で働きながら、小さなアパートで失業中の静雄(染谷将太)と共同生活を送っている。ある日、ふとしたきっかけで同じ書店で働く佐知子(石橋静河)と関係を持つが、彼女は店長の島田(萩原聖人)とも抜き差しならない関係にあるようだった。しかし佐知子は毎晩のようにアパートを訪れ、“僕”、佐知子、静雄の3人は夏の間、毎晩のように酒を飲み、クラブへ出かけ、ビリヤードをして遊ぶようになる。“僕”は佐知子と恋人同士のように振る舞いながら、お互いを束縛せず、静雄とふたりで出掛けることを勧める。夏の終わり、静雄はみんなでキャンプに行こうと提案するが、“僕”はその誘いを断る。ふたりでキャンプに行くことになった静雄と佐知子は次第に気持ちが近づいていく。“僕”は函館でじっと暑さに耐えていた。3人の幸福な日々も終わりの気配を見せ始め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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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평론가
3.0
여린 목소리로 끊길 듯 노래하는 작은 새처럼.
영화고독발버둥치며본다
3.5
[우리는 ‘엔(N)포 세대’가 아니다. 결혼, 집, 출산, 경력 등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그것들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다. 길을 잃고 헤매는 게 아니다. 나름의 방향과 속도로 움직이는 것이다. 표류와 부유의 차이는 크다. 전자는 구조해주는 게 맞지만, 후자는 내버려두는 게 좋다.] -전범선의 부유세대(한겨레 '삶의 창' 투고문)- . 푸르다 못해 낯빛이 새파랗게 잘린 청춘들의 삶 과 사랑을 보여주는 영화. . 영화를 보고서 부유냐 표류냐라는 평가 잣대를 들이내미는것은 하등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지나온 청춘과 떠밀리는 청춘은 다르기때문이다. . 영화 전반에 걸쳐서 딱 한번(고즈넉한 밤 퇴근길)을 제외하고 배경음악(영화속 세계 밖에서 들리는 음악)이 나오지 않는다. 같이 개봉한 '라라걸'과 상반된 연출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재윤
4.5
'소유욕이 전혀 없고 무기력이 팽배한 이 사회에 치료제는 결국 사랑밖에 없다.' 참 무책임하면서도 맞는 말이라 뭐라 말할 수가 없네...
다솜땅
3.5
느낌은 있지만 도전이나 성취같은것 없이 그냥 살아가는 모습들이 많이 보여진다. 세명이 함께 하게된 그 집안에서 연애의 감정 넘어에서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마음의 어떤 변화들. 조금씩 변해가는 감정은 나쁜느낌없이 세사람의 삶에 조금씩 조금씩 미묘한 변화를 가져온다.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맞이하는 시간. 그들의 감정까지 대변하는 영화는 아닐까. #20.4.24 (1006)
JE
4.5
활력과 무력감이 매혹적으로 공존한다. 이를테면 친구들과 술 마시며 한껏 떠들고 놀다 텅 빈 집으로 혼자 돌아가는 새벽 공기를 닮은 영화. 벌써 조금은 흐릿해진 기억과 마치 잔열처럼 남은 들뜬 기분, 약간의 피로함과 공허함까지.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는 하루의 끝인지 시작인지 모를, 즐거우면서도 혼곤한 새벽이 뜨고 저무는 풍경을 찍은, 마치 그런 영화 같다. 영화는 세 남녀의 삼각관계라는 다분히 뻔한 구도를 축으로 삼지만, 그들의 감정과 관계에 유난 떨 생각은 없어 보인다. 친구처럼, 연인처럼, 그저 떠들다가도 공허하게 순간을 흐트릴 뿐이다. 기분 탓인진 몰라도 <너의 새...>에서 원 숏은 웃고 있어도 외로워 보이고, 투 숏 내지 쓰리 숏은 자못 심각한 순간에조차 활기 차 보인다. 특히 <너의 새...>에서 가장 매혹적인 장면 중 하나인 클럽 씬은 이를 일부러 더 극대화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셋이서 함께 더없이 즐기며 웃다가도, 어느 한 인물의 얼굴/표정을 유심히 지켜보는 순간엔 지친 듯 찰나 경직되고 공허한 공기가 흐른다. 숫자를 세던 오프닝의 테이크와 편집, 180도를 넘던 이따금의 컷처럼 (영화 전반에 흐르는 듯한) 연결과 충돌 사이의 묘한 감각을 가장 절묘하게 가져다 주는 순간이었다. 한편 꽤나 무지한 말로 들릴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클럽 씬은 (분명 절묘하게 짜였을 테지만) 문득 떠오른 카사베츠의 <그림자들>보다 더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활력으로 다가왔다. 이처럼 <너의 새...>는 드라마보다는 배우들이 흘리는 분위기랄지 표정에다 더 많은 몫을 맡긴다. 그래선지 서로 다른 개성을 가진 세 배우의 마스크까지 괜히 조화롭다. 반항적인 듯 무표정하나 오히려 감정이 드러나 보이는 '나'와 늘 옅은 미소를 띄지만 되레 속내를 통 알 수 없는 '시즈오', 그들 사이에서 그야말로 한 마리의 새처럼 자유롭게 공명하는 '사치코'. 특히 <너의 새...>는 일종의 화자가 되는 '나'의 이야기긴 하지만, 분명 사치코의 영화이기도 하다. 120초를 세던 '나' 곁으로 뛰어오며 등장하던 사치코의 오프닝 속 환한 얼굴과 그제야 감정을 터놓는 '나'를 향한 복잡다단한 엔딩의 표정처럼, 시작과 끝을 수놓는 사치코는 <너의 새...>에서 가장 빛나는 활력이다. 묘한 활력과 정서로 가득하긴 하나, 따지고 보면 <너의 새...>는 무력하리만치 아무런 진전이 없는 영화다. 심지어 엔딩에 다다르면 이들의 이야기는 끝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새로 시작된다. 차라리 진짜 이야기라 할 만한 사건은 엔딩 이후부터가 아닐까. "나는 이 여름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고, "다음 계절은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던 '나'의 오프닝 대사를 빌리면, 결국 그에게도 이들에게도 다음 계절은 찾아오고 있는 셈이다. <너의 새...>는 분명 세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세 사람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래서 더 매혹적일 뿐만 아니라 뭉클하게 다가온다. 끝인지 시작이지 모를, 즐겁지만 혼곤한 새벽의 어귀에 영화가 서 있다.
리얼리스트
4.0
청춘은 때때로 언어로 설명하기 힘든 순간이있다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는 초여름 언저리에 있는 청춘들의 풍경을 살핀다
STONE
3.0
프랑스 뉴웨이브 영화가 선호하던 2남 1녀의 구도와 함께, 미래의 비전은 불명확해도 당장 오늘의 시간을 때울 때의 즐겁고도 공허한 심상을 잘 담았다. 다만 사회적으로 완전히 민폐에 가까운 인물상을 통한 청춘의 솔직함과 자유분방함은 불호다. 정작 궁금한 건 일자리도 없고 좀 특이한 친구를 두었을 뿐인 시즈오의 이야기인데, 영화가 아예 그 ‘특이한 친구’의 시점으로 진행되니 전체적인 감상도 특이하다는 것 이상을 남기진 못한다.
별,
4.5
알 수 없는 무기력함에서 비롯된, 삶을 향한 일관적인 수동성이 이 시대의 (일본의) 청춘일까.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배회하지만 그들의 젊음은 그러나 마치 제자리를 돌듯이 한 치 앞도 나아가지 못한다.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생생한 감정이 삼각형의 꼭지점을 이룰때 그들의 청춘 역시 활기를 띄지만, 청춘에게 허락된 시간은 그저 밤 뿐이라는 듯 유희의 살아있는 시간은 이내 새벽을 맞아 덧없이 사그라진다. 거기에 서사 속에 격정마저도 부재하다. 삼각 관계 속에 그 흔한 질투의 플롯조차 없이 세 사람의 사랑을 일상적으로 잡을 뿐이다. . 그런데 이렇게 영화가 지리멸렬한 현실 속 청춘의 사랑의 침잠을 담담하게 잡기만 하는데 놀랍게도 감정의 충만함이 느껴진다. '나'(에모토 타스쿠)와 사치코(이시바시 시즈카)의 베드씬은 수줍지만 또한 설레는 감정이 한껏 담겨있고, 이후 시즈오(소메타니 쇼타)가 끼어든 후 가는 편의점 장면에서의 카메라는 마치 그 순간이야말로 생기를 찾았다는듯 활기차게 그들의 주위를 미끄러지듯 맴돈다. 또한 그렇게 돌아간 이 셋의 보금자리처럼 느껴지는 '나'와 시즈오의 집에서의 즐거운 시간이 흐르는 밤의 장면은 가라앉은 청춘이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물론 이 활기찬 생동감은 오직 밤이라는 청춘의 시간만 생겨날 뿐 끝내 새벽은 오고 언제 그랬냐는듯 그들의 일상은 다시 침잠한다. 이 사실적이며 영화적인 대조 - 낮의 시간은 고정된 카메라로, 밤의 시간은 유영하듯 움직이는 카메라로. - 가 영화에서 있는 그대로 드러날때 영화 속 청춘은 말 그대로의 그 누구도 아닌 보편적인 한 젊음으로 정의된다. 그것은 라스트 시퀀스 이전에 드러내는, 그들 뿐만 아니라 그들을 둘러싼 인물들의 새벽을 보여줄 때 보다 확실하게 강조된다. . 그리고 라스트 시퀀스의 라스트 숏. 하마구치 류스케의 <아사코>(2018)와 이시이 유야의 <도쿄의 밤하늘은 항상 가장 짙은 블루>(2017)의 마지막 응시와 유사하지만 또한 대조되는 느낌의 모호한 응시. 무기력하게 일관적인 수동성에서 기어코 벗어난 청춘의 부름에 어떻게 답을 해야 될 지 난처한 세계의 모호함. 거기서 끝나는 영화는 세계에 부딪히는 젊음의, 청춘을 향한 낙관을, 아니면 비관을 바라본 것일까. 또 아니면 청춘의 본질은 그 무엇도 정의내릴 수 없는 혼돈의 에너지 그 자체인 것일까. 그 생생한 청춘의 사랑 끝에 대응하는, 세상의 모호함이 던지는 질문의 무게는 쉬이 덜어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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