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erkalo4.51983년에 실제로 발생했던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의 고위 간부 (Issam Sartawi) 암살 사건이 극중 배경 아래 짙게 깔려 있는 가운데, 자살한 라우라의 전남편 이야기나 로버트를 쫓기 위해 집에 들이닥친 강도들, 총격전이 실린 신문까지 영화엔 죽음의 기운이 만연하다. 라우라의 말처럼 정말로 '죽은 나라' 같은 포르투갈에서, 파도에 운명처럼 떠밀려 온 남자와 만나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을까? 이를 깨달은 듯 그녀의 망연자실한 표정과, 떠나는 로버트를 바라보며 문을 닫는 (이는 분명 그녀가 마음의 여지를 남기지 않겠다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의 뒷모습이 지워지지 않는다. 영화가 롱테이크로 담은 해변의 맑은 경관은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엔딩에서 구슬프게 흐르는 바흐의 소나타와 함께 하나둘씩 닫히는 창문의 모습은 너무나도 절망적이다.いいね5コメント0
sendo akira4.0상실과 만남에서 수반되는 가슴속에 몰아치는 어떤 동요함은 마치 휘몰아치고 사라지는 쓰나미같다 잠시동안에 스침과 설레임 사라가 말하듯 남겨진 불행을 어떻게 쓸지 배워야하는것처럼 그렇게 행복이 오고 불행이 가듯 우리는 삶의 찰나를 그렇게 받아들여야 한다いいね5コメント0
아방가르드4.5“상실과 설렘, 사랑이라는 감정의 모호함과 동화적인 사랑의 끝에 있는 평범함에 대하여” 주앙 세자루 몬떼이로의 천재성이 보이는 영화이다. 그의 이야기는 그 어떤 이야기 보다 동화적이지만 평범하다. 작품 도중에 나오는 몇몇 장면들은 이 영화가 영화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보여주지만 “영화적임”의 정의를 극적인 사건에서 그 사건이 끼치는 인간의 삶의 변화로 변형 시킨다. 그렇게 영화는 성공적으로 극적인 사건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시선을 그 사건들의 영향으로 바꿔낸다. 그러나 그 영향은 그렇게 눈에 띄게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데. 비평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카메라 앵글적 연출, 심리 연기, 사소한 행동과 작품의 무드로 그 변화들이 극대화 된다. 몬테이루의 변태성도 작품에 노골적으로 반영된다. 1989년 작인 덕분에 전체관람가를 받았음에도 노골적으로 선정적인 이 영화는, 여성을 “바다”에 비유하고 남성을 “꽃”으로 비유하며 여성의 방식이란 아무 것도 들어가는 것을 허하지 않는 것 이라고 까지 말한다. 지극히 변태적이며 자신은 변태라는 것을 고의적으로 출현을 통하여 보여주기 까지 한다. 자신을 변태로 정의하며 감독이 보여주는 것은 무엇인가, 난 감독은 솔직함에 대하여 말하고 싶고 그렇기에 자신을 나체의 상태로 사회에 던지는 것 이다. 그의 영화는 언제나 솔직하다. 이 영화도 사랑을 지극히 솔직하게 말해낸다. 학살가를 죽인 살인자를 품은 여성들의 이야기는 예상을 뛰어넘거나 그 이야기 속에서 일어날 만한 가장 사실적인 스탠스를 취한다. 인물들이 사랑에 빠지고, 욕망을 느끼고, 또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행동들을 한다. 이는 엔딩의 허무하면서도 가장 현실적인 엔딩에서 돋보인다. “오래오래 살았답니다” 같은 동화 따윈 당연히 없다. 동화 처럼 우연히 만난 사람들, 동화 스러운 우연은 일어나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 동화스러운 우연은 반대로 말하면 격동을 남기는 것 일 뿐 이다. 영화 속 우연의 만남도 결국 격동만 남긴다. 자신의 과거와 모든 것을 이야기할 정도로 혼란스럽지만, 가겠다고 말하는 그를 잡으려 하지는 않는다. 격동이 비상식적인 행동을 취하게 하지도 않고, 그 사람을 미치게 하지도 않는다. 격동은 결국 불행일 뿐이고, 남은 불행을 잘 살아가야 될 뿐인 것이다.いいね2コメント0
Jay Oh
3.5
본래의 공허가 채워지진 않았지만, 번역되었다. Loneliness, not sated but translated.
Dh
3.5
오고 가는 것과 남겨진 자들의 몫 #상실 #부재
Hoon
4.0
바다에 파문이 인다 한들.
모르그
4.0
넘실거리는 파도, 흔들리는 삶.
zerkalo
4.5
1983년에 실제로 발생했던 팔레스타인 해방 기구의 고위 간부 (Issam Sartawi) 암살 사건이 극중 배경 아래 짙게 깔려 있는 가운데, 자살한 라우라의 전남편 이야기나 로버트를 쫓기 위해 집에 들이닥친 강도들, 총격전이 실린 신문까지 영화엔 죽음의 기운이 만연하다. 라우라의 말처럼 정말로 '죽은 나라' 같은 포르투갈에서, 파도에 운명처럼 떠밀려 온 남자와 만나 행복한 미래를 꿈꾸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을까? 이를 깨달은 듯 그녀의 망연자실한 표정과, 떠나는 로버트를 바라보며 문을 닫는 (이는 분명 그녀가 마음의 여지를 남기지 않겠다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의 뒷모습이 지워지지 않는다. 영화가 롱테이크로 담은 해변의 맑은 경관은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엔딩에서 구슬프게 흐르는 바흐의 소나타와 함께 하나둘씩 닫히는 창문의 모습은 너무나도 절망적이다.
sendo akira
4.0
상실과 만남에서 수반되는 가슴속에 몰아치는 어떤 동요함은 마치 휘몰아치고 사라지는 쓰나미같다 잠시동안에 스침과 설레임 사라가 말하듯 남겨진 불행을 어떻게 쓸지 배워야하는것처럼 그렇게 행복이 오고 불행이 가듯 우리는 삶의 찰나를 그렇게 받아들여야 한다
sade
5.0
마음에 동요가 인다.
아방가르드
4.5
“상실과 설렘, 사랑이라는 감정의 모호함과 동화적인 사랑의 끝에 있는 평범함에 대하여” 주앙 세자루 몬떼이로의 천재성이 보이는 영화이다. 그의 이야기는 그 어떤 이야기 보다 동화적이지만 평범하다. 작품 도중에 나오는 몇몇 장면들은 이 영화가 영화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보여주지만 “영화적임”의 정의를 극적인 사건에서 그 사건이 끼치는 인간의 삶의 변화로 변형 시킨다. 그렇게 영화는 성공적으로 극적인 사건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시선을 그 사건들의 영향으로 바꿔낸다. 그러나 그 영향은 그렇게 눈에 띄게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는데. 비평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카메라 앵글적 연출, 심리 연기, 사소한 행동과 작품의 무드로 그 변화들이 극대화 된다. 몬테이루의 변태성도 작품에 노골적으로 반영된다. 1989년 작인 덕분에 전체관람가를 받았음에도 노골적으로 선정적인 이 영화는, 여성을 “바다”에 비유하고 남성을 “꽃”으로 비유하며 여성의 방식이란 아무 것도 들어가는 것을 허하지 않는 것 이라고 까지 말한다. 지극히 변태적이며 자신은 변태라는 것을 고의적으로 출현을 통하여 보여주기 까지 한다. 자신을 변태로 정의하며 감독이 보여주는 것은 무엇인가, 난 감독은 솔직함에 대하여 말하고 싶고 그렇기에 자신을 나체의 상태로 사회에 던지는 것 이다. 그의 영화는 언제나 솔직하다. 이 영화도 사랑을 지극히 솔직하게 말해낸다. 학살가를 죽인 살인자를 품은 여성들의 이야기는 예상을 뛰어넘거나 그 이야기 속에서 일어날 만한 가장 사실적인 스탠스를 취한다. 인물들이 사랑에 빠지고, 욕망을 느끼고, 또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행동들을 한다. 이는 엔딩의 허무하면서도 가장 현실적인 엔딩에서 돋보인다. “오래오래 살았답니다” 같은 동화 따윈 당연히 없다. 동화 처럼 우연히 만난 사람들, 동화 스러운 우연은 일어나기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 동화스러운 우연은 반대로 말하면 격동을 남기는 것 일 뿐 이다. 영화 속 우연의 만남도 결국 격동만 남긴다. 자신의 과거와 모든 것을 이야기할 정도로 혼란스럽지만, 가겠다고 말하는 그를 잡으려 하지는 않는다. 격동이 비상식적인 행동을 취하게 하지도 않고, 그 사람을 미치게 하지도 않는다. 격동은 결국 불행일 뿐이고, 남은 불행을 잘 살아가야 될 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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