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정빈 기자4.5“I’m here” 1. 일전에 극찬한 적 있는 <메어 오브 이스트타운>은 국내엔 많이 알려진 드라마는 아닌 것 같다. 정말 훌륭한 작품이어서 잠깐 소개하자면, 작년에 방송된 HBO 드라마이고 케이트 윈슬렛이 주연했다. 메타크리틱 평점은 81점. 이 사이트에서 42개 매체의 평점 평균이 80점을 넘었다는 건 완성도가 매우 높은 작품이라는 의미다. 윈슬렛은 이 드라마로 골든글로브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웨이브에서 볼 수 있다. 2. '메어 오브 이스트타운'은 삶의 고통에 관한 드라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메어(케이트 윈슬렛)라는 인물에 관한 이야기다. 그렇다고해서 메어의 고통에 대해서만 얘기하는 건 아니다. 제목엔 분명 한 단어가 더 있다. 이스트타운. 이스트타운에 사는 메어의 이웃들 역시 삶이 고통스러운 건 마찬가지다. 말하자면, 이 작품은 기막힌 불행을 마주한 예외적인 한 인간을 담은 게 아니라 보통의 불행 속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그리려 한다. 3. 징하게도 눈물겹다. 이 드라마 속에서 벌어진 비극의 크기 때문이 아니다. 크든 작든 비극은 종종 우릴 찾아온다는 것. 그 불행을 온몸으로 다 받아내면서도 결국 살아간다는 것.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갖 오물을 뒤집어쓰고 수차례 주저앉고 고꾸라지면서도 죽지 않고 견뎌내고 있는 그 광경은 애처로워서 자꾸 가슴을 친다. 이처럼 개같으면서도, 그래서 숭고하기만 한 이 삶이란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4. 사실 여기까지만 얘기하면 '메어 오브 이스트타운'은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 '삶의 고통과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에 관해 얘기하는 뛰어난 영화·드라마는 이 작품 전에 이미 있었으니까(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영화는 '맨체스터 바이 더 씨'였다. 이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메어 오브 이스트타운' 역시 좋아할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이 드라마를 특별하게 만드나. 그건 바로 메어의 직업이다. 5. 메어는 형사이기에 이스트타운에서 벌어지는 사건들 그리고 그 사건에 얽힌 사람들의 사정에 관해 잘 알수밖에 없다. 그런데 경찰이 개입해야 할 일이라는 건 대개 부정적인 것들이지 않나. 말하자면 메어는 그가 형사가 아니었다면 몰랐거나 혹은 자세히 알 수 없는 이스트타운 사람들이 겪는 갖가지 (고통스러운) 사건·사고를 매일같이 의무적으로 지켜봐야 하며 그런 일들에 관한 각종 사실 관계 등을 빠삭하게 알 수밖에 없다. 6. 그러니까 '메어 오브 이스트타운'에서 형사(메어)는 수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고통과 슬픔을 함께 겪어내는 사람이다. 메어는 언제나 비극의 현장에 있어야 한다. 게다가 그 모든 환난의 경과를 파헤쳐 최대한 진실에 다가가야 한다. 또 이 과정에서 범법 행위가 있었다면 법의 심판을 받게 하고 죗값을 치르게 해야 한다(메어는 매우 유능한 형사다). 나는 이런 비슷한 일을 하는 존재를 알고 있다. 이 세상에서 벌어진 모든 일과 함께하며, 그 일들의 진상 또한 알고 있으며, 죄인을 벌하는 존재. 바로 신이다. 메어는 마치 성서 속 하나님을 대리하는 인물처럼 보인다. 혹은 하나님으로 보인다. 7. 여기서 잠깐, 반드시 짚고 넘어거야 하는 장면이 있다. 마크 부제(副題)의 설교 장면이다. 이 작품의 중심이 되는 사건이 발생한 후 그는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를 하나 해준다. 남자친구를 오토바이 사고로 떠나보낸 여자의 얘기다. 어느 날 성당 밖을 나오는데, 한 여자가 찾아와 자신과 신을 향해 욕설을 퍼부으며 소리를 질러댔다는 것이다. 그 목소리는 마치 왜 이런 일이 있어난 것인지 신을 변호해보라는 것처럼 들렸다고 한다. 마크 부제는 당시엔 아무 말도 못했지만, 이젠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I'm here)." 8. 메어는 정말 하나님 같다. 그는 마치 구약성서 속 신이 그런 것처럼 매우 유능하면서(신이니까) 때론 난폭하다. 메어는 자신에게 주어진 힘(수사 권한)으로 이스트타운에서 벌어진 일들의 진실을 알고 있고(알게 되고), 그 내용을 공표함으로써 그 일에 엮인 이들에게 그들이 겪어야 할 합당한 고난을 기어코 가져다준다. 이스트타운의 사람들은 일이 생기면 메어를 찾고, 일이 해결되지 않으면 메어를 비난한다. 마치 우리가 하나님에게 그러는 것처럼 말이다. 가장 노골적인 설정은 메어가 아들을 잃었다는 점이다.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세상에 내려보내 고통받게 하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 것처럼. 9. 이제 다시 말하자. 메어는 하나님 같은 게 아니라 하나님이다. 고통 받는 사람들은 외친다. 도대체 신은 어디서 무얼 하는 거냐고. 왜 내게 이런 고통을 안겨주는 거냐고. '메어 오브 이스트타운'은 메어를 이용해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내가 여기 있노라(I'm here)." 신은 우릴 버리지 않았다고, 신은 고통을 주지 않거나 덜어주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겪어내는 존재라고 이 작품은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메어(신)는 친구와 이웃에게 외면받고 욕을 먹고 심지어 폭행을 당하면서까지도 이스트타운을 떠날 생각이 없다. 그들과 함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메어는 극심한 고통을 떠안은 채 살아가는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가 이렇게 말한다. "I'm here."いいね70コメント0
siwon.hage5.0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인생의 한숨. 형사물도 아니고 범죄 스릴러도 아니다. 고통과 용서, 희생과 치유의 완벽한 드라마. (2시간짜리 영화에선 체험할 수 없는) ‘미니시리즈’란 매체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을 이 작품이 정확하게 이루어냈다. 케이트 윈슬렛의 삶에 찌든 연기가 이 드라마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데, 결국 인생이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란 걸 몸소 보여준다. -에반 피터스가 맡은 캐릭터는 연기도 그렇고 정말 옥에 티.いいね30コメント0
MayDay3.5범죄 드라마이면서도 '메어'를 포함한 이스트타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휴먼 드라마이다. 이름만 대어도 서로를 아는 작은 마을에서 시작한 범죄는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지다가 결국은 진실을 밝혀내지 못하며 마무리되나 싶다가도 드라마의 제목처럼 '메어'라는 인물을 주축으로 그녀의 속마음이 공개되면서부터 다시금 속도를 가하여 진실이 드러난다. 하지만, 여기서 이 드라마의 핵심은 처음 '메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다면, 후반에는 그녀 중심의 인물들의 이야기를 좀 더 상세히 다룬다. 이 작은 마을에서 형성된 서로의 관계는 진실함과 진정성으로 느껴질 만큼 정도 많고 끈끈하다고 생각이 들지만, 그 속은 각기 말할 수 없는 사정과 고민들로 가득 찬 인물들이었다는 것이다. 외롭고 지친 사람들, 서로를 의지하는 사람들. 그럼에도 모든 것을 다 털어낼 수 없던 관계들. 그리고 과거의 아픔으로부터 도망만 치던 메어가 어떠한 계기로 목 놓아 울음을 터트리는 그 순간에 만들어져있던 모든 인물들의 관계가 다시 구축되기 시작한다. 누구는 메어가 감정이 없고 직업정신이 투철한 인물로만 보이겠지만, 사실은 그녀는 이스트타운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떠날 법한 이 작은 마을을 떠나지 않고 지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메어 오브 이스트타운>이라는 제목이 잘 어울리던 드라마였다. 초반의 긴장감과는 달리 휴머니즘이 가득한 느낌으로 가서 긴박함을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드라마가 조금은 지루하게 다가올 수도 있을 것 같다.いいね26コメント0
이홍석5.01화 부터 엔딩까지.... 너무 현실적이여서 더더욱 가슴 아프다. 펜실베니아의 조그만 동네가 품고 있는 수많은 비밀들이 하나의 살인으로 샅샅히 밝혀지는 비참한 광경을 너무나 담담하게 그려낸다. 단순히 범죄 수사물인줄 알았는데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사람들의 심금 울리는 이야기였다. 케이트 윈슬렛의 완벽한 연기를 볼 수 있는, HBO 최고의 미니시리즈 중 하나.いいね19コメント0
손정빈 기자
4.5
“I’m here” 1. 일전에 극찬한 적 있는 <메어 오브 이스트타운>은 국내엔 많이 알려진 드라마는 아닌 것 같다. 정말 훌륭한 작품이어서 잠깐 소개하자면, 작년에 방송된 HBO 드라마이고 케이트 윈슬렛이 주연했다. 메타크리틱 평점은 81점. 이 사이트에서 42개 매체의 평점 평균이 80점을 넘었다는 건 완성도가 매우 높은 작품이라는 의미다. 윈슬렛은 이 드라마로 골든글로브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웨이브에서 볼 수 있다. 2. '메어 오브 이스트타운'은 삶의 고통에 관한 드라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메어(케이트 윈슬렛)라는 인물에 관한 이야기다. 그렇다고해서 메어의 고통에 대해서만 얘기하는 건 아니다. 제목엔 분명 한 단어가 더 있다. 이스트타운. 이스트타운에 사는 메어의 이웃들 역시 삶이 고통스러운 건 마찬가지다. 말하자면, 이 작품은 기막힌 불행을 마주한 예외적인 한 인간을 담은 게 아니라 보통의 불행 속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그리려 한다. 3. 징하게도 눈물겹다. 이 드라마 속에서 벌어진 비극의 크기 때문이 아니다. 크든 작든 비극은 종종 우릴 찾아온다는 것. 그 불행을 온몸으로 다 받아내면서도 결국 살아간다는 것.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갖 오물을 뒤집어쓰고 수차례 주저앉고 고꾸라지면서도 죽지 않고 견뎌내고 있는 그 광경은 애처로워서 자꾸 가슴을 친다. 이처럼 개같으면서도, 그래서 숭고하기만 한 이 삶이란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4. 사실 여기까지만 얘기하면 '메어 오브 이스트타운'은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 '삶의 고통과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는 우리들'에 관해 얘기하는 뛰어난 영화·드라마는 이 작품 전에 이미 있었으니까(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영화는 '맨체스터 바이 더 씨'였다. 이 영화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메어 오브 이스트타운' 역시 좋아할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이 드라마를 특별하게 만드나. 그건 바로 메어의 직업이다. 5. 메어는 형사이기에 이스트타운에서 벌어지는 사건들 그리고 그 사건에 얽힌 사람들의 사정에 관해 잘 알수밖에 없다. 그런데 경찰이 개입해야 할 일이라는 건 대개 부정적인 것들이지 않나. 말하자면 메어는 그가 형사가 아니었다면 몰랐거나 혹은 자세히 알 수 없는 이스트타운 사람들이 겪는 갖가지 (고통스러운) 사건·사고를 매일같이 의무적으로 지켜봐야 하며 그런 일들에 관한 각종 사실 관계 등을 빠삭하게 알 수밖에 없다. 6. 그러니까 '메어 오브 이스트타운'에서 형사(메어)는 수사하는 사람이 아니라 고통과 슬픔을 함께 겪어내는 사람이다. 메어는 언제나 비극의 현장에 있어야 한다. 게다가 그 모든 환난의 경과를 파헤쳐 최대한 진실에 다가가야 한다. 또 이 과정에서 범법 행위가 있었다면 법의 심판을 받게 하고 죗값을 치르게 해야 한다(메어는 매우 유능한 형사다). 나는 이런 비슷한 일을 하는 존재를 알고 있다. 이 세상에서 벌어진 모든 일과 함께하며, 그 일들의 진상 또한 알고 있으며, 죄인을 벌하는 존재. 바로 신이다. 메어는 마치 성서 속 하나님을 대리하는 인물처럼 보인다. 혹은 하나님으로 보인다. 7. 여기서 잠깐, 반드시 짚고 넘어거야 하는 장면이 있다. 마크 부제(副題)의 설교 장면이다. 이 작품의 중심이 되는 사건이 발생한 후 그는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를 하나 해준다. 남자친구를 오토바이 사고로 떠나보낸 여자의 얘기다. 어느 날 성당 밖을 나오는데, 한 여자가 찾아와 자신과 신을 향해 욕설을 퍼부으며 소리를 질러댔다는 것이다. 그 목소리는 마치 왜 이런 일이 있어난 것인지 신을 변호해보라는 것처럼 들렸다고 한다. 마크 부제는 당시엔 아무 말도 못했지만, 이젠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제가 여기 있습니다(I'm here)." 8. 메어는 정말 하나님 같다. 그는 마치 구약성서 속 신이 그런 것처럼 매우 유능하면서(신이니까) 때론 난폭하다. 메어는 자신에게 주어진 힘(수사 권한)으로 이스트타운에서 벌어진 일들의 진실을 알고 있고(알게 되고), 그 내용을 공표함으로써 그 일에 엮인 이들에게 그들이 겪어야 할 합당한 고난을 기어코 가져다준다. 이스트타운의 사람들은 일이 생기면 메어를 찾고, 일이 해결되지 않으면 메어를 비난한다. 마치 우리가 하나님에게 그러는 것처럼 말이다. 가장 노골적인 설정은 메어가 아들을 잃었다는 점이다.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세상에 내려보내 고통받게 하다가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 것처럼. 9. 이제 다시 말하자. 메어는 하나님 같은 게 아니라 하나님이다. 고통 받는 사람들은 외친다. 도대체 신은 어디서 무얼 하는 거냐고. 왜 내게 이런 고통을 안겨주는 거냐고. '메어 오브 이스트타운'은 메어를 이용해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내가 여기 있노라(I'm here)." 신은 우릴 버리지 않았다고, 신은 고통을 주지 않거나 덜어주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겪어내는 존재라고 이 작품은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메어(신)는 친구와 이웃에게 외면받고 욕을 먹고 심지어 폭행을 당하면서까지도 이스트타운을 떠날 생각이 없다. 그들과 함께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메어는 극심한 고통을 떠안은 채 살아가는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가 이렇게 말한다. "I'm here."
크리스 X 엔터테인먼트
4.0
케이트 윈슬렛의 과하지 않으면서도 파워풀한 연기력을 볼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볼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
siwon.hage
5.0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인생의 한숨. 형사물도 아니고 범죄 스릴러도 아니다. 고통과 용서, 희생과 치유의 완벽한 드라마. (2시간짜리 영화에선 체험할 수 없는) ‘미니시리즈’란 매체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을 이 작품이 정확하게 이루어냈다. 케이트 윈슬렛의 삶에 찌든 연기가 이 드라마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데, 결국 인생이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란 걸 몸소 보여준다. -에반 피터스가 맡은 캐릭터는 연기도 그렇고 정말 옥에 티.
토캉
見たい
왓챠 힘을내요!!! 보고싶어요 ㅠ
MayDay
3.5
범죄 드라마이면서도 '메어'를 포함한 이스트타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휴먼 드라마이다. 이름만 대어도 서로를 아는 작은 마을에서 시작한 범죄는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지다가 결국은 진실을 밝혀내지 못하며 마무리되나 싶다가도 드라마의 제목처럼 '메어'라는 인물을 주축으로 그녀의 속마음이 공개되면서부터 다시금 속도를 가하여 진실이 드러난다. 하지만, 여기서 이 드라마의 핵심은 처음 '메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다면, 후반에는 그녀 중심의 인물들의 이야기를 좀 더 상세히 다룬다. 이 작은 마을에서 형성된 서로의 관계는 진실함과 진정성으로 느껴질 만큼 정도 많고 끈끈하다고 생각이 들지만, 그 속은 각기 말할 수 없는 사정과 고민들로 가득 찬 인물들이었다는 것이다. 외롭고 지친 사람들, 서로를 의지하는 사람들. 그럼에도 모든 것을 다 털어낼 수 없던 관계들. 그리고 과거의 아픔으로부터 도망만 치던 메어가 어떠한 계기로 목 놓아 울음을 터트리는 그 순간에 만들어져있던 모든 인물들의 관계가 다시 구축되기 시작한다. 누구는 메어가 감정이 없고 직업정신이 투철한 인물로만 보이겠지만, 사실은 그녀는 이스트타운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떠날 법한 이 작은 마을을 떠나지 않고 지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메어 오브 이스트타운>이라는 제목이 잘 어울리던 드라마였다. 초반의 긴장감과는 달리 휴머니즘이 가득한 느낌으로 가서 긴박함을 원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드라마가 조금은 지루하게 다가올 수도 있을 것 같다.
영화는 나의 힘
4.0
고백과 용서의 과정 없이는 끊어내기 힘든 폭력의 줄기.
이홍석
5.0
1화 부터 엔딩까지.... 너무 현실적이여서 더더욱 가슴 아프다. 펜실베니아의 조그만 동네가 품고 있는 수많은 비밀들이 하나의 살인으로 샅샅히 밝혀지는 비참한 광경을 너무나 담담하게 그려낸다. 단순히 범죄 수사물인줄 알았는데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사람들의 심금 울리는 이야기였다. 케이트 윈슬렛의 완벽한 연기를 볼 수 있는, HBO 최고의 미니시리즈 중 하나.
서영욱
4.0
진실은 늘 가까이에 있지만, 그곳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고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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