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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적인 미래 문명 비판 문학의 고전,
『멋진 신세계』 속 냉혹한 미래상은 이미 현재 진행 중이다!
올더스 헉슬리의 예언적 소설 『멋진 신세계』는 금세기에 미래를 가장 깊이 있고 날카롭게 파헤친 작품 중의 하나다. 현대식 에덴동산에서의 삶을 그린 이 이야기는 자유와 도덕 개념이 낡은 넝마가 되어버린 현대 문명사회를 회화적으로 묘사하여 그 속에 내포된 위험을 경고한다. 뼈아프게 비판하고 고결하게 지키려는 헉슬리의 웅변적인 인간 선언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_「새터데이 리뷰Saturday Review」
암울한 미래 세계를 그린 뛰어난 현대 고전을 남긴 올더스 헉슬리는 명문 집안 출신의 영국 작가로서 광범위한 지식뿐 아니라 예리한 지성과 우아한 문체, 그리고 때로는 냉소적인 유머 감각으로 유명하다. 그가 1932년에 발표한 작품 『멋진 신세계』는 금세기에 미래를 가장 깊이 있고 날카롭게 파헤친 작품 중의 하나로 평가받는다.
『멋진 신세계』는 과학이 최고도로 발달해 사회의 모든 면을 관리·지배하고, 인간의 출생과 자유까지 통제하는 미래 문명 세계를 그린 작품이다. 인간성을 상실한 미래 세계를 신랄하게 풍자하는 한편, 신의 영역을 넘보는 인간의 오만함을 경고·비판한다.
또한 조지 오웰(George Orwell)의 『1984』와 마찬가지로 충격적인 미래 예언을 통해 인간의 자유와 도덕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미 『멋진 신세계』에서 인간이 구성해놓은 미래의 전주곡이 진행되는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헉슬리의 풍자적이면서도 냉혹한 미래상이 앞으로 얼마나 현실로서 대두될지 사뭇 관심거리일 수밖에 없다. 헉슬리가 그리는 이 소름 끼치는 미래상은 더 이상 공상소설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성이 맞게 될 위기를 다루는, 인간을 소재로 삼은 작품이다. 『멋진 신세계』에서는 전체주의 국가가 인간을 파멸시키는 참혹한 과정이 생생하게 드러나며 유토피아가 곧 파멸이라는 역설이 두드러지고, 문명의 발달과 인간의 몰락이라는 반비례 원칙을 제시한다.
지금, 헉슬리가 『멋진 신세계』에서 설정해놓은 악몽이 빠른 속도로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다. 현대 과학 문명의 발달과 함께 점차 개성과 인격을 상실해가는 오늘날, 지금 세태의 종착지는 과연 어디인가.
자궁에서 무덤에 이르기까지, 인간을 설계하고 통제하는 세상에서
인간은 어느 만큼이나 인간일까?
가족이라는 유대가 사라진 세계, 죽음까지도 익숙해지도록 길들이기 훈련을 받는 세상에서 인간은 최소한의 존엄성과 인간적 가치, 그리고 스스로 생각할 자유마저 박탈당한다.
이곳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실론까지 다섯 계급으로 나뉘어, 인류를 ‘맞춤형’으로 대량 생산한다. 하나의 난자에서 수십 명의 일란성 쌍둥이들이 태어나고, 이들은 끝없이 반복되는 수면 학습과 세뇌를 통해 어떠한 의문도 갖지 않고 정해진 운명에 순응한다. 노화도 겪지 않고, 책임도 도덕도 없이 문란한 성관계를 맺고, 정신적인 외로움도 느끼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오로지 쾌락과 만족감뿐이다. 정해진 노동 시간 이외에는 단순한 자극으로만 이루어진 오락들로 꽉 짜여 있으며, 혹 나쁜 기분이 들거나 고통스러운 일을 겪으면 항상 소마(soma)라는 가상의 약을 통해 즉각적인 쾌감을 경험한다. 마약과도 같은 소마는 사람들의 정신을 지배하고, 사고할 능력을 빼앗는다. 때문에 이 완벽한 유토피아에서는 누구나 다 행복하다.
그러던 어느 날, 신세계와 격리된 원시 지역(Reservation)에서 살고 있던 ‘야만인’ 존이 우연히 이곳에 초대받는다. 그는 처음 보는 고도의 과학 문명과 모든 것이 완벽하게 설계된 세계에 감탄하지만, 소수의 지배자들에게 통제받으며 조작된 행복에 길들여진 ‘백치’와도 같은 사람들의 모습에 점차 환멸을 느낀다. 결국 그는 문명에 절망하고 좌절한 채 다시 원시 지역으로 떠나간다.
“하지만 난 안락함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신을 원하고, 시를 원하고, 참된 위험을 원하고, 자유를 원하고, 그리고 선을 원합니다. 나는 죄악을 원합니다.”
“사실상 당신은 불행해질 권리를 요구하는 셈이군요.” 무스타파 몬드가 말했다.
야만인이 도전적으로 말했다. “나는 불행해질 권리를 주장하겠어요.”
“늙고 추악해지고 성 불능이 되는 권리와 매독과 암에 시달리는 권리와 먹을 것이 너무 없어서 고생하는 권리와 이(虱)투성이가 되는 권리와 내일은 어떻게 될지 끊임없이 걱정하면서 살아갈 권리와 장티푸스를 앓을 권리와 온갖 종류의 형언할 수 없는 고통으로 괴로워할 권리는 물론이겠고요.”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 “나는 그런 것들을 모두 요구합니다.” 마침내 야만인이 말했다. _ 본문 362~363쪽
헉슬리는 야만인 청년 존을 통해 두 세계, 즉 유토피아 세계와 원시 세계를 비교함으로써, 우리의 현재와 미래상을 병립시켜 보여준다. 오로지 최대의 능률과 발전만을 목표로 삼는 현대 과학 문명에 대해 신랄한 비판과 함께, 곧 도래할 섬뜩한 미래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낸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에게는 무엇이 참된 이상향이며, 우리들은 그곳에 다다르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그 해답을 알아내는 것은 우리에게 여전히 중요한 숙제로 남아 있다.
번역의 대가 안정효의
최신 완역 개정판, 독점 출간
이번 『멋진 신세계』는 『하얀 전쟁』, 『은마는 오지 않는다』,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안정효의 오역 사전』 등의 저자이자 번역의 대가인 안정효의 최신 완역판으로, 오역을 최소화하고 원서의 표현에 충실히 따랐으며, 더욱 세세한 설명과 뛰어난 문학적 표현으로 고전 작품을 읽는 참된 즐거움을 선사한다.
정가
4.0
행복과 자유가 뭔지 모르는 사람은 행복하고 자유롭다
코나
4.5
현실은 1984의 미래보다는 이쪽으로 가까워지나보다
서영욱
4.5
선행, 순결, 연민, 윤리, 도덕심 등도 모두 세뇌 학습의 결과다. '비인간적'이라는 말은 우등생인 '인간적'인 자들이 만들어 낸 환상이다. 마치 '사피엔스'의 소설판을 보듯 문명, 과학, 종교, 인간을 꿰뚫는다.
연엠
4.5
옷, 음식, 집, 섹스는 무제한적으로 공급된다. 굶어죽는 일도 없고 얼어죽는 일도 없고 병으로 죽는 일도 없다. 사람들은 진실만 말하고 사랑과 육체적 성애에 솔직하며 연애는 자유롭다. 전쟁도 없고 마녀사냥도 없다. 슬픔과 고통은 약한 수준의 허가된 마약으로 다스릴 수 있다.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 수 있고 아무런 대가도 필요하지 않다. 멋진 신세계는 유토피아다. 욕망은 신성하다. 멋진 신세계의 인간들이 분노할 때는 욕망이 부정당할 때다. 욕망의 부재는 불건전한 것으로 취급된다. 욕구불만의 상태로 빠지지 않는 것이 좋다는 생각은 욕구충족은 필수라는 믿음으로 이어졌다. 욕망은 무한정 긍정된다. 사회 시스템은 인간의 욕망을 채우는 데 맞추어져 있다. 이들은 노예다. 흔히들 노예의 삶을 끔찍한 것으로 여긴다. 좋아하는 물건을 살 수도 없고 원할 때 산책을 나갈 수도 없고 좋아하는 사람과 연애를 할 수도 없으므로. 그러나 이는 부자유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욕망 거세에 대한 두려움이다. '할 수 있음의 제거'가 아니라 '원하는 것의 제거'에 그 두려움의 뿌리가 있다. 노예에 대한 공포는 자유로이 욕망을 탐하지 못하는 데에 대한 공포다. 욕망을 무제한적으로 긍정받는 노예라면? 멋진 신세계의 주민들이 그렇다. 그들은 대체로 행복하지만 욕망을 무한히 '실현받을' 뿐 자기만의 고유한 욕망을 위해 살아가지 못한다. 독립적으로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노예들의 유토피아다. 그래서 겉으로는 자유를 갈망한다고 말하며 동시에 행복을 갈망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완전한 자기모순에 빠져 있는 것이다. 행복은 자유의 여러 부속물 중 하나에 불과하다. 진정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은 행복에 목매지 않는다. '오직 행복'은 족쇄기 때문이다. 자유는 자유롭지 않을 자유를 포함한다. 자유롭지 않은 자유는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자유, 욕망이 부정될 자유, 고통스러울 자유, 헉슬리에 따르면 이 자유는 동시에 권리이기도 한 것으로 "나이를 먹어 추해지는 권리, 매독과 암에 걸릴 권리, 먹을 것이 떨어지는 권리, 이가 들끓을 권리,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서 끊임없이 불안에 떨 권리, 장티푸스에 걸릴 권리, 온갖 표현할 수 없는 고민에 시달릴 권리"다. 이런 자유와 권리를 박탈당한 인간은 노예다. 일시적인 행복의 박탈을 하나의 피하고픈 가능성으로만 여기면서 그것이 중대한 권리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인간은 자유의 대가를 모르는 것이다. 진정으로 자유를 원한다고 할 수 없는 까닭이다.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이려 할 만큼의 용기는 쉬이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정말로 소중한 무엇은 얻을 수 있지만 얻지 못할 수도 있는 무엇이다. 유토피아아야말로 끔찍한 디스토피아다. 욕망 긍정은 단순하게 비유하면 3S정책이고 과감하게 비유하면 성매매 제도고 고급지게 비유하면 자유주의다. 물론 이때의 자유주의는 진정한 의미의 자유가 아니라 '행복'으로 오도되는 자유다. 욕망 성취의 표준화는 인간의 표준화나 계급화와 마찬가지로 사회 안정을 위한 것이다. 혹시나 싶어 덧붙이자면 사회 안정은 긍정적인 것이 아니며 만인의 노예상태를 의미한다.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세계야 말로 자유로운 세계다. 그러나 이 책이 구세계에 대한 찬미라고 볼 수 없는 건 강간과 끔찍한 전쟁과 마녀사냥과 거짓말이 판치는 구세계에 대한 환멸이 고스란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신세계는 범죄가 없을지언정 인간을 노예화한 곳이고 구세계는 인간의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대가로 범죄를 피하지 못한다. 흥미로운 건 마르크스다. 그는 욕망을 제대로 긍정받지 못하는 결여된 인간이며 그래서 반사회적이다. 그가 가진 인간 고유성에 대한 갈망과 혁명성은 겉으로는 우아하고 멋져보이지만 실상은 정상이 되지 못한다는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다. 제도권에 편입됐을 때 그는 누구보다 저열해졌다. 오래된 책인데도 1:1연애나 결혼제도의 맹점을 정확히 비판한다. 오래된 책이라서 동성애와 자유연애를 과도한 욕망 긍정의 예시로 삼거나 욕망 추구를 '탄력적인' 여성과 섹스하는 일로 간편하게 치환해버린다. 저자가 21세기를 살았다면 과도한 욕망 긍정의 사례로 동성애가 아니라 소아성애나 비인간에 대한 성애를 들진 않았을까 싶지만, 그것도 100년 뒤엔 구식 비유가 될 수 있단 걸 감안한다면 확실히 사회는 바뀐다 싶다. 물론 욕망의 제거나 무한긍정은 둘 다 노예화일 뿐이며 그렇다고 불안한 인간이 노예보다 나은 건 아니라는 헉슬리의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영
1.5
전달하고자 하는 메세지는 오늘날에도 유의미하다. 그러나 번역은 조악했고 무엇보다도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방식과 전반에 짙게 깔린 여성혐오가 역겨웠다. 데미안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완성하고 고민하는 것은 남성들의 신성한 서사. 여성혐오 없는 고전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 고전들이 고전이라는 이유로 여전히 가치있다고만 여겨진다면 더욱 끔찍한 일이 아닌가. 시대는 바뀌었다.
천유정
4.0
1984가 공산주의의 말로였다면 이 책은 자본주의의 말로다.
마키베리100
4.5
몇 가지 심리학이랑 생물학 이론으로 30년대에 이런 미친 세계관을 만들었다니 진짜 천재가 분명하다. 잘쓰여진 공상과학일수록 현실적이라는 역설이 이렇게 와닿을 수가 없다. 존이랑 총재랑 논쟁하는 부분에서는 소름까지 끼쳤음..
성유
4.0
당신에게 절실한 것은 모처럼 한 번씩이나마 흘리는 눈물입니다. 이곳에는 대가를 치러야 할 만큼 값진 것이 하나도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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