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SF 어워드 대상 수상 작가 심너울의 진면목!
우리 사회의 숱한 부조리에 대해 뼈를 때리는 풍자와 해학,
전통 SF 작가로서의 풍모.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풍성한 소설집!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지만 전공과는 무관해 보이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생업을 잇던 심너울 작가는 2018년 여름 단편 <정적>으로 데뷔한 이후, 무서운 속도로 수준 높은 중단편과 장편 소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데뷔 1년 6개월 만에 단편 <세상을 끝내는 데 필요한 점프의 횟수>로 2019 SF 어워드에서 기라성 같은 후보작들을 제치고 중단편소설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했고, 이어 같은 작품으로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안 필름마켓 토리코믹스 어워드까지 받으며 한국 SF계의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2019 SF 어워드에서 심사를 맡은 심사위원들은 “SF 팬들이 가장 좋아할 만한 작품”, “미시적인 동시대성과 규모 큰 SF 테마를 한데 버무린 ‘판교 소설’로서 특유의 풍미가 일품”, “마법과 구분되지 않는 과학이 손안의 도구인 동시대의 한국을 배경으로 이런 이야기를 자아낼 수 있었다는 점이 놀랍다”고 심너울 작가를 평가했고,
현재 장르를 넘어 한국 최고의 블랙 코미디 작가라 할 곽재식은, “예리한 포착, 생생한 묘사, 흥이 넘치는 서술, 유려한 풍자와 즐거움, 무난한 마무리. 과연 소설은 이렇게 써야돼 라는 생각이 드는 훌륭한 소설”이라며 심너울 작가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그사이 심너울 작가는 한 권의 장편 소설과 미니 단편집을 단독으로 냈고, 두 권의 앤솔로지에 작품을 수록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데뷔 2년 만에 작가 심너울의 진면목을 보여줄 작품들을 모두 모은 본격 중단편소설집이 나왔다.
이미 퇴근을 했어도 퇴근이 하고 싶은 대학원생의 ‘웃픈’ 연구를 다룬 <초광속 통신의 발명>을 시작으로, 상속세를 내지 않으려고 10년 가까이 연명 치료를 받고 있는 대기업 오너 일가와 그 기업 산하 연구원들이 벌이는 블랙 코미디 <SF 클럽의 우리 부회장님>, 욕실에 물때가 끼는 이유조차 모르는 무능한 이혼남에게 생긴 충격적인 사건을 다룬 <저 길고양이들과 함께>, 등 독자들이 무릎을 치며 공감할, 동시대 청년의 눈으로 본, 지금 우리 사회 인간 군상들의 모습이 가득하다.
뿐만 아니라, 인체의 몇 퍼센트가 기계로 대체되면 안드로이드로 대체되는가 하는 주제를 다루는 <감정을 감정하기>, 서구 황금기 고전 SF를 방불케 하는 우주 탐험기 <거인의 노래>, 타임 패러독스의 대명사라 할 쌍둥이 역설을 새롭고도 감성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한 <시간 위에 붙박인 그대에게> 등 전통 SF 작가로서의 풍모 역시 손색이 없다. 가히, 두 마리의 토끼를 다 잡은 풍성한 소설집이라 할 만하다.
이 난잡하고 피로한 세상을 무단 횡단하는 얼빠진 우리들
상황과 환경이 엉망진창인 곳이야말로 희극의 천국이라고들 한다. 혼돈과 고통은 웃음의 진원지다. 이 점을 생각하면 희극에서 책상은 일견 별로 매력적인 장소로 보이지 않는다. 책상 앞에서 일어나는 일은 조용하고 지루할 뿐, 극적이거나 다채로운 고통이 있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랜 시간 많은 작가가 증명했듯, 책상은 충분히 ‘골 때리게’ 다양한 혼돈과 고통을 안겨줄 수 있다.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도 이를 증명하는 책이 될 듯하다.
화이트칼라 직군의 인물들이 이렇게 줄줄이 등장하는데도 다들 어딘가 얼이 빠져 있는 소설집을 오래간만에 보는 것 같다. 이 책의 인물들은 그런대로 제 몫을 하며 잘 살고 있으면서도 그렇지 못하다. 머릿속에 퇴근 생각밖에 없고, 도대체가 입이 방정이고, 타인에게 사랑받기 어려운 인격의 소유자로 살았고, 내 구역을 침범한 똑똑한 기계가 무섭고, 젊음이 이미 지나갔음을 인정하기 무섭고, 천재 애완동물이 실은 애완동물이 아님을 알지 못하고……. 각 단편의 인물들이 서로에게 퉁명부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이보시오, 나도 이게 좀 이상한 건 아는데… 그런데 이미 그렇게 살아버린 걸 어쩐답니까? 당신은 이러지 마십시오… 그런데 당신도 이미 그렇게 살고 있군요.”
물론 그들만 외롭게 얼이 빠져 있지는 않는다. 가장 얼빠졌고 얼이 빠지게 만드는 사건과 환경과 세상이 그들에게 눈웃음을 짓고 있다. 우리는 이들의 씁쓸하고 때론 오싹한, 혹은 감동적인 결말을 보며 동질감이 피어오르는 것을 느낀다. 이 기괴한 세상에서 우리도 이미 어느 정도는 얼이 빠진 채 살고 있으니.
소설집의 곳곳엔 씁쓸하고 골 때리는 유머가 가득한데, 그와 함께 여러 단편에서 보이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신기술에 대한 미묘한 거부감, 특히 사람 같은 기계와 사람의 자리에 끼어든 기계를 향해 은은한 적대감을 가진 인물이 바로 그것이다. SF 소설집에 등장하는 인물들치곤 의외지만, 그들이 우리처럼 얼빠져 있는 걸 생각하면 지극히 당연해 보이기도 하다. 그들은 기기묘묘한 주인공이 되기 위해 태어났다기보다는, 현실의 우리를 더 닮았다.
그리고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결말 역시 현실적이다. <SF 클럽의 우리 부회장님>, <컴퓨터공학과 교육학의 통섭에 대하여>,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감정을 감정하기>의 인물들이 특정 종류의 기술에 오싹함이나 불편함을 느끼든 말든 작가는 가차가 없다. 인물들은 기계와 기술을 못마땅해 할 수는 있어도 모르는 척하거나 벗어날 수 없다. 이미 신호등에 불은 들어왔고 그들은 미래로 걸어가야 하니까. 아니, 그들이, 우리가 건너가지 않으려 해도 미래가 자꾸만 우리를 향해 횡단해 오니까.
우리는 시대와 세월에 선을 여럿 그어놓고선, 선 너머 맞은편이 마치 정해진 순간에 다 함께 건너야 할 도로인 것처럼 굴지만, 그건 착각이고 단순한 바람일 뿐이다. 우리가 걸음을 멈추더라도 우리 발 앞의 길은 이미 바뀌어 있다. 때론 아무리 빨리 걷더라도 길은 우리보다 더 빨리 변해 있을 것이다.
얼빠져 사는 우린 대체 어찌해야 하나? 지금도 이미 충분히 피곤한 세상인데, 새롭게 피곤한 세상이 온다니 어쩌겠는가? 눈앞에 뭐라도 뵈는 게 있으면 닥치고 그곳을 향해 무단 횡단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소설 속 인물들은 울상을 짓고 머리를 쥐어뜯으면서도 결국은 걸음을 내디딘다. 내 옆으로 무엇이 달려드는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일단은 미친 척 농담을 지껄이면서. 내 곁에 있던 이들이 함께 길을 건너는 중이길, 행운이 함께하고 있길 기도하면서.
소설의 인물들에겐 그런 행운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안전하게 자기 자신과 화해하면서 미래로 나아가는 이가 있는가 하면, 세상을 무단으로 횡단하다 큰 상처를 받는 이도 있다. 하지만 그들을 완벽하게 홀로 고립시키지 않으려는 굳센 고집이 작가에게 있는 모양이다. 상처는 아물고, 삶은 계속되고, 한심한 사람에게도 두 번째 기회는 주어지고, 함께 배우고, 뒤늦게라도 깨닫고, 배려를 주고받고, 갚아나간다. 건강한 희극이다. 희극은 비록 고통으로 시작하더라도 고통으로만 끝나진 않는 법이다.
배움은 그러나 느리다. 사람은 어리석어서 깨달음에 시간이 걸린다. <컴퓨터공학과 교육학의 통섭에 대하여>의 교사는 어린 학생 앞에서 펑펑 울 정도로 마음고생을 해야 했고, <감정을 감정하기>의 주인공은 애인을 떠나보낸 데다 끔찍한 진실을 알고 나서야 생각을 바꾸었고, 표제작인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에서 주인공은 두렵고 외로운 하나의 깨달음을 얻기까지 젊음을 다 써야 했다. 심지어 <시간 위에 붙박인 그대에게>에선 평범한 사람들 기준의 반평생에 가까운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비록 느리고 완벽하지 못하더라도 변화는 온다. 인간의 변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은 이 소설집의 유머러스함에 버금가는
simple이스
3.5
미래 공상 과학의 탈을 쓰고 현 한국 사회를 해학적으로 웃고 떠드는 탈춤.
아무도아닌
3.5
글이 쉽게 슉슉 읽히는 책들이 있다. 가령 심너울과 정세랑, 박상영.. 등등이 있을 수 있다. 그들은 현 시점에 가장 ‘핫’한 소재들로 막힘없이 이야기한다. 그야말로 이야기꾼. 그러나 나는 어쩐지, 여전히 이 막힘없이 술술 읽히는 문장들에 대해 어떤 석연치 않음을 느낀다. 문학적이지 않다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모르겠다. 이렇게 시나리오를 쏘야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나는 이 모양인가? (어느새 일기화 되어가는 왓챠평)
더블에이
3.5
되게 흔한 소재들인데 ㅋ사고실험을 본인의 개성이 드러나게 전개를 재밌게 잘하시는듯. 그 과정이 특별하진 않은데 그냥 말투가 웃기고 재밌음. b급감성이 물씬 느껴져서 작가님이 머글은 아닐것같음. 대놓고 b급인거 좋아함. ㅋㅋㅋㅋㅋ그러면서 또 시의성은 놓치지 않는것이 역시 한국소설이다싶었음. 역시 sf다라고 해야하나..
김쿼티
2.0
커뮤식 글 같았다 중성화 실험은 한 번 해봤으면 싶기도
rushmore
4.0
“내 발가락 때나 먹어라, 멍청이들아!”
깐깐한 김마루
3.0
빌드업을 강하게 쌓는다. 회색인간 류의 소설 이런류: 아이디어는 신선하니 결말이 애매하거나 어이없어도 아이디어 보는 맛에 읽는 SF류
John Doe
3.5
현실맛이 진해서 상상의 나라를 다녀오는 기분은 거의 없다. / 1. 초광속 통신의 발명 - …네? 뭐라구요? 2. SF 클럽의 우리 부회장님 - 오스쿠스 강령술이 끝난 뒤에야 이걸 읽게 되다니, SF 작품을 과거로 만들어버린 시대다 3. 저 길고양이들과 함께 - 간담회가 실화 기반이라 더 그럴듯하다. 4. 컴퓨터공학과 교육학의 통섭에 대하여 - 아주 좋다. 현재적이고 인간적이다. 왕년 베스트셀러 극장 같은 데서 조금은 바랜 색조로 그려내도 좋겠다. 5. 나는 절대 저렇게 추하게 늙지 말아야지 - 이건 픽션이 아니고 르뽀인데? 쉽지 않다… 자연스럽게 젖어들어서 알아야 하는 것 투성이니 다 건너뛰고 알맹이만 체득하는 게 어렵고, 신체능력도 달라지는데 그걸 본인이 인식 못하니 어쩔 도리가 없다. 6. 감정을 감정하기 - ‘왠지 섬뜩한 기분이 들려고 했다. (중략) “그거, 보험, 처리, 되는, 거죠?”’ / 해킹이 되게 만들다니 그건 좀… 7. 한 터럭만이라도 - ㅋㅋㅋㅋ 아주 윤리적인 욕 8. 거인의 노래 - 다른 거랑 달리 꽤 식상한 소재네 9. 시간 위에 붙박인 그대에게 - 서정적이긴 한데 뭔가 딱 이거다 싶지는 않네 * 작가의 말 - 작가의 말에 따르면 오스쿠스는 현실의 어느 회사도 아니며 같은 점이 있다면 순전히 우연이라고 한다. / 통섭편은 점 셋이면 얼굴로 인식하니까 ‘인간은 인간 외의 것도 포용할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다는데, 그 대목에서 든 생각은 반대로 ‘인간형이어야 받아들일 수 있으니 점만 있어도 얼굴로 여기는 거지’ 였다.
수땡
2.5
아니 뭐 나름 재미있게는 읽었지만, 고등학생들이 글쓰기 수업시간에 쓴 듯한 느낌이다. 그러니까 그냥 학생용 창작 소설 같았다는 말이다. #20220503 - 1. 흥미있는 소재들은 많았으나 소설들이 좀 유치했다. 그리고 단편이라 흡수되기 전 끝났다. 기억에 남던 건 음.. 앵무새 이야기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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