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요커 선정 올해의 책 (2019)
*퍼블리셔스 위클리 선정 올해의 책 (2019)
*전미 도서 비평가 협회상 최종 후보 (2019)
*윈덤 캠벨상 논픽션 부문 수상 (2020)
어둠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인간의 마음은 이해할 수 없어진다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케빈에 대하여〉는 학교에서 대량 살인을 저지른 청소년 케빈과 그의 어머니를 그린 작품이다. 이 영화가 인상적인 이유 중 하나는 살인의 정확한 동기를 밝히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에 가면 어머니가 교도소에 수감된 케빈에게 묻는다. “이제는 말해 줘, 왜 그랬어?” 그러자 케빈은 이렇게 대답한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 학우들을 죽인 이유는 명확히 존재하지 않거나, 혹은 아무도(당사자조차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보다 직접적으로 현실 속의 총기 난사 사건을 묘사한 구스 반 산트의 영화 〈엘리펀트〉는 그보다 좀 더 냉소적인 입장을 취한다. 이 영화는 ‘보통 사람들’이 청소년 총기 범죄의 원인으로 지목할 만한 원인들, 예컨대 폭력적인 게임 같은 것들을 영화 속에 언뜻 내보인 다음, 그것들이 이 공허한 범죄 행동의 원인이 되기에는 너무나도 작고 사소한 것들임을 알려 준다. 왜 아이들이 학교로 가서 사람들을 죽였는가? 그 이유는 누구도 알지 못하며, 그것이 이 영화가 선보이는 가장 슬프고도 무서운 메시지다.
『고통을 말하지 않는 법』 속에도 이와 비슷한 일화가 등장한다. 『한낮의 우울』로 유명한 작가 앤드류 솔로몬이 콜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 중 한 명의 부모님을 찾아간 이야기다. 그는 이 부부를 인터뷰한 뒤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가장 친밀한 인간관계에서도 곧잘 발견되는, 인간은 타인을 조금도 알아낼 수 없다는 끔찍한 사실의 피해자.”
그렇다면 어둠과,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마음들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
많은 사람은 누군가와(특히 약자와) 연대하기에 앞서 그를(그들을) 이해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에게는 그에게 적합한 것을, 즉 그가 필요로 하는 것을 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에 따르면 이해를 우선하지 않는 연대는 일방적인 호혜에 가깝고, 이는 결국 결례와 오만을 내보이는 행위로 변질될 수 있다.
하지만 마리아 투마킨은 그 이해조차 ‘이해해 주려는 사람’이 섣부르게 베푸는 호혜일 수 있다고 말한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해하려는 노력 자체는 타인을 향한 태도로써 합당하다. 그러나 투마킨에 따르면 타인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행복한 결말은 결코 다다를 수 없는 (자기 만족적인) 환상이다. 내가 아닌 타인을, 나를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려는 노력은 결론에 다다를 수 없는 영원한 과정일 뿐이다. 게다가 그 과정은 성공보다는 실패와 좌절을 더욱 자주 마주하게 된다. 따라서 타인과의 연대는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만 지속될 수 있다. 상대를 완전히 이해하게 되는 날은 영영 오지 않을 것임을 인정하면서, 수없이 좌절하면서 기어코 계속 시도하는 것.
그렇다면 왜 상대를 이해할 수 없는가. 먼저 투마킨은 오스트레일리아를 비롯해 소위 선진 국가에 존재하는 여러 사회 문제들을 다루면서 그 당사자들과 대화한다. 자살 생존자, 마약 중독자, 홈리스, 전쟁 이민자, 나치 집단 수용소 생존자, 가정 폭력 피해자…… 그런데 이 당사자들의 증언과 그들을 둘러싼 상황들은 세간의 통념으로부터 어딘가 벗어나 있다. 정서적 외상 없이 습관적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청소년들이 있고, 최선을 다해 홈리스를 도운 결과 그를 사망케 한 사건이 일어나고, 나치의 눈길을 피하고자 가짜로 만들어 낸 정체성을 감쪽같이 흡수하고 연기한 서너 살짜리 아이들이 있다. 투마킨은 자살 생존자나 마약 중독자 등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데려온 뒤 그들을 둘러싼 세간의 통념을 보여 주고, 이어서 그 통념을 뒤집는 사례들을 가져온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하나의 주장으로 이어진다. 어느 한 인간의 내면을 알아내는 데 있어서 이론이나 선입견은 보조적인 도구에 불과하며, 오히려 악영향을 끼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이 책은 누군가를 이해하는 건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라고 말한다. 오직 그 각각의 인격들과 치열한 소통을 펼친 뒤에야, 그나마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서 인간을 분류하고 집단으로 묶어야만 하는 거의 모든 사회 제도는 그 지점에서 궁극적으로 실패하게 된다.
때문에 몇몇 비평가는 이 책이 대책 없이 암담하다고 평했다. 하지만 투마킨은 그 암담함을 직시하지 않으면 약자를 ‘선하고 힘 있는 사람들’의 입맛대로 다루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투마킨이 이 책에서 타인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암울한 현실을 밝히는 이유는 그 지점이 바로 ‘이해하기, 말하기, 연대하기’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그는 책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사람이 나일 수도 있었다’고 말하려면 우리는 먼저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물음에 주어진 답을 해독하는 데에는 보통 영겁의 시간이 걸리지 않던가? 한 인간에 관한 사실들은 대개 타인들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그중 대부분은 애초에 타인들이 결코 알아낼 수 없는 것이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무시하면 사람들은 상징의 집합체로 변해 버린다. 우리 자신이 좋아하는 음료만 골라 담은 물통으로, 일종의 도구로 변해 버리는 것이다. 타인을 온전한 인간으로 받아들인다는 건 그의 어떤 점이 우리와 다른지 알아차리는 것이며, 또한 그 다른 점을 굳이 비틀어 숭고함에 가까운 무언가로 왜곡하지 않는 것이다.”
부서진 마음과 기억을 형상화한,
W. G. 제발트를 떠올리게 하는 독특한 서술
『고통을 말하지 않는 법』이 국제적으로 주목받은 이유는 이러한 주장을 설명하거나 이론화하지 않고 글의 구조 자체를 통해 자연스럽게 보여 주기 때문이다. 인간 각자의 고통을 통해 부서진 기억들은 이 책 속에서 실제로 부서진 형태로 나타난다. 즉 여러 에피소드가 순차적으로 배열되지 않는다. 두세 가지의 다른 이야기가 섞여 등장하기도 하고, 여기에 시간 순서까지 뒤섞여 있다. 심지어 몇몇 에피소드의 조각은 백 페이지가 넘게 떨어진 곳에서 갑자기 발견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 시작한 독자는 ‘그래서 그 얘기가 어떻게 됐다는 거야, 갑자기 나온 이 사람은 누구야’라고 생각하며 당황할 수 있다. 하지만 독자는 곧 이런 서술 방식이 한 인간의 내면을 쉽사리 추적할 수 없다는 ‘사실’을 디자인적으로 구현하고 있음을 알아차리게 된다. 하나의 장이 끝날 때쯤이면 그동안 그러모은 파편들이 머릿속에서 조립되는 독특한 경험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즉, 이 책 속의 이야기-사건들은 이해되기 전에 구성된다. 혹은 이해를 거부하면서 발생한다. 몇몇 평론가들이 이 책의 구조를 W. G. 제발트의 작품과 비교했던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전미 비평가 협회가 2019년에 이 책을 논픽션 부분 최종 후보로 선정하면서 쓴 소개글은 그러한 특징을 잘 드러내 준다.
“당신이 누구이든, 이전에 무엇을 읽었든 간에, 나는 당신이 이 책과 같은 것을 읽어 보지 않았음을 보장할 수 있다. ‘읽었다’고 말하는 것은 이 책을 경험하는 데 있어 정확하지 않은 표현인 것 같다. 당신은 낯선 대상을 만나는 것처럼 그의 언어를 만난다. 당장은 그 윤곽을 추적할 수 없고, 계속해서 그 대상으로 돌아가서 그 독특한 변주에 안착해야만 한다. 투마킨의 업적은 우리가 지나치게 익숙해져 버린 현상들(언어뿐만 아니라 총기 폭력, 대량 학살, 지속적인 구조적 빈곤 등)을 완전히 낯설게 만든다.”
gurum
4.5
이해하려면 이해하지 않아야 하고 말하려면 말하지 않아야 하며 사랑하려면 사랑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 않음 속에 들어있는 유구한 사유가 결국 우리를 살게 한다.
Beaucoup
4.0
"나는 우리가 왜 죽은 이들을 살려 놓으려 애쓰는 지 안다." 조앤 디디온은 『상실 The Year of Magical Thinking」 에 서 이렇게 쓴다. "우리가 그들을 살려 놓으려 애쓰는 건 그들을 우리 곁에 두기 위해서다. 그리고 나는 우리가 우리 자신으로 살려면 죽은 이들을 단념하고, 그들을 보내 주고, 죽은 채로 있게 두어야만 하는 시점이 온다 는 것도 알고 있다." "마리나 츠베타예바®의 일기 어딘가에서 찾 아낸 거야. 그냥 들어 봐.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한 사람을 신이 그에게 의도했던 대로, 즉 그의 부모가 만들어 내는 데 실패한 모습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한 사람을 그의 부모가 만들어 낸 모습으로 바 라보는 것이다. 사랑이 식는다는 것- 그것은 그 사 람 대신에 테이블이, 의자가 보이는 것이 다.”" "안녕, 사라져 가는 친구야••••• 매일 너는 조 금씩 더 멀어지고, 나는 내 주위의 온갖 하 찮은 개소리들에 빠져 죽어 가고 있어. 내가 너를, 내가 가진 유일한 진짜를 잃어 가는 것 같아 무서워. 나 무서워, 듣고 있어? 물론 듣 고 있겠지. 내가 부를 때면 넌 언제나 들어주 잖아. 만약 네가 못 들었다면, 그건 그분께서 어마어마하게 잔인한 분이라는 뜻이겠지. 그분은 내가 널 못 본 지 14개월이나 된 걸로 는 충분치 않으신 걸까? 그런데, 제일 무서 운 게 뭔지 알아? 내가 너 없이 살아가는 일 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거야. 처음 몇 달 동안 은 그냥 울기만 했어. 도저히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어. '시간이 치유해 준다'는 말은 너 무 잔인한 농담처럼 들려. 난 시간이 나를 치 유해 주길 바라지 않아••••. 알았어, 이런 얘 기는 그만할게, 하지만·•··• 마지막으로 하나 만 더 말할게. 날 그냥 아프게 놔둬 줘." (우편 요금이 올라서 봉투에는 똑같이 생긴 세 정의 우표가 추가로 붙어 있다. 녹색과 회색으로 하프와 깃털이 그려진 우표다.)
도사장
4.5
이것과 궤를 같이하는 작품들을 알고 있다. 조앤 디디온의 <상실>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영화 <바늘을 든 소녀>... 마저 정돈하지 않은 감정으로 마른 가슴 안쪽을 박박 긁는, 상실에 관한 이야기고 전쟁이야기며 고통에 관한 이야기. 2026년의 첫 번째 완독 책으로 만들고 싶어 연말에 공들여 읽었다. 이런 책을 더 만나고 싶어 올해도 바쁘게 읽겠다 다짐한다. 본문에 언급된 "우리의 살을 뚫고 들어가고 다시 빼낼 수 없게 되는 바늘"같은 책들. ㅡ 번역가님 정말 인상적이다. 다른 책들도 찾아 볼 계획. 을유문화가 갓갓갓유... 책 디자인의 제일 목적은 가독성이라고 생각해왔지만 내면과 외면이 한덩어리가 되어 말하고자하는 바를 전달하는 하나의 예술일 수 있다고 읽은 다음에 이해한다. ㅡ 낮은 별점의 코멘트를 보며 우리들의 다름을 다시 느낀다. 이렇게 다른 우리가, 고통을 어떻게 나눌 수 있겠냐는 이 책이 더 와닿는다.
KAFKA
3.5
1독. 말하지 않음으로, 혹은 혼란스러운 이야기의 나열로만 표현할 수 있는 고통들.
인후
4.5
문학을 통과해 적는 작가의 논픽션 적절한 인용과 믿을만한 통찰이 좋으다 멜번에서 쓰여진 책을 멜번에서 읽는다는 것도 너무 좋았다
파랑
4.5
그 반대를 두려워하라. 충격의 부재를. 어떤 일기장과도 우연히 마주치지 않으며, 누구의 성으로부터도 급습당하지 않는 삶을. (본문 중)
heyyun
3.0
번진 듯한 디자인의 글씨체처럼 글 자체가 번진듯이 모호하다. 분명 단순한 사실들을 적고 있는데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아마 의도됐겠지만..
ChaeHyun
3.0
윤곽은 윤곽대로 추정은 추정대로 두기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왜곡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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