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펙토르의 가장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탐험
유의할 점은 하나, 오직 무방비할 것
리스펙토르의 가장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위태로운 모험
유의할 점은 하나, 오직 무방비할 것
클라리시 리스펙토르가 쓴 모든 글은 이상하고 열렬한 수수께끼에 휩싸여 있지만, 그중에서도 『아구아 비바』는 가장 위태로운 자리에 놓여 있다.
이 작품은 뼈대가 없다. 전개도 결론도 없다. 리스펙토르는 언어 너머의 세계를 탐구하면서도 그 과정을 기록할 때만큼은 소설적 구조를 일부 차용했지만, 『아구아 비바』에서는 예외적으로 그 틀을 완전히 부수어 버렸다. 즉 이 작품 속의 리스펙토르는 가장 자유로운 리스펙토르이고, 따라서 그 뒤를 쫓는 건 완전히 불가능하다.
사람들은 이 작품에서 범신론적인 고뇌나 철학적인 사고를 발견했지만, 리스펙토르(정확히는 ‘이 책의 화자’)는 그런 생각들마저 하나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마치 돌이나 풀을 바라보듯 가만히 관찰할 뿐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의미는 증발하고 오직 대상 자체만이 남게 된다. 방금까지는 하나의 생각이었지만 이제는 하나의 덩어리에 가까워진, 따라서 보고 만지는 데에 더욱 특화된 그 무엇. 그래서 『아구아 비바』의 화자는 자신이 하는 말을 ‘피상적으로만 들으라’고 권한다. 문장을 이해하려 들지 말고 마치 색깔이나 소리를 느끼듯이 감지해 보라는 요청이다. 사고를 감각적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이렇듯 『아구아 비바』는 이성의 방어를 천천히 무너뜨리며 육박해 오는 ‘문학-같은-것’이다. 여기서 의미는 내내 파괴되고, 리스펙토르는 그 폐허에 색깔과 소리와 향기와 맛에 관한 묘사를 심으며, 그러는 이유는 작가 자신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 이상한 무지無智에서는 다른 어떤 문학 작품에서도 만날 수 없는 에너지가 흘러나온다. 이것은 정말로 이상한 경험이다. 리스펙토르를 사랑하는 독자들이 가장 아끼는 작품으로 『아구아 비바』를 꼽은 건 이 기묘하고 열렬한 감각 때문일 것이다.
문학의 경계를 허물어 버린 작가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가장 깊은 심연
리스펙토르를 소개할 때 가장 인기 있는 문구는 이렇다. “주의할 것. 리스펙토르는 문학이 아니다. 주술이다.” 그만큼 리스펙토르가 쓴 모든 글은 이상하고 열렬한 수수께끼에 휩싸여 있다. 하지만 『아구아 비바』는 그중에서도 가장 과감한 작품으로 꼽힌다.
이 작품의 내러티브는 단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다. “화자가 ‘당신’을 향해 글을 쓰고 있다.” 그 외에는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다. 게다가 화자는 종종 그림을 그린다는 사실 외에는 자신에 대해서도 알려 주지 않는다. 화자와 ‘당신’이 어떤 사이인지도 정확히 알 수 없다. 심지어 이 정체불명의 화자는 종잡을 수 없는 문장들을 연이어 늘어놓고, 그 말들은 논리와 체계를 무너뜨리며 ‘살아 있는 물(Agua Viva)’처럼 터져 나온다. 『아구아 비바』는 언어로 만든 홍수다. 보통의 인간이 살아가는 의미 혹은 세계는 이 지적 재해 속에 잠기고 만다.
그래서 많은 평론가와 독자들은 이 작품이 리스펙토르가 쓴 글 가운데 가장 급진적이고 난해하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아구아 비바』는 오늘날 리스펙토르를 사랑하는 팬들이 가장 아끼는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굿리즈닷컴에서 리스펙토르의 작품 중 독자 평점 1위). 그 이유는 이 작품이 가장 순도 높은 리스펙토르를 선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언어 너머의 세계를 탐구하면서도 그 과정을 기록할 때만큼은 소설적 구조를 일부 차용했지만, 『아구아 비바』에서는 예외적으로 그 틀을 완전히 부수어 버렸다. 즉 이 작품 속의 리스펙토르는 가장 자유로운 리스펙토르이고, 따라서 그 뒤를 쫓는 건 완전히 불가능하다.
오직 무방비하게
혹은 ‘피상적으로만’ 읽을 것
따라서 이 작품은 이해를 허락하지 않는다. ‘어렵다’는 의미가 아니다. 어렵다는 건 답이 존재하되 그걸 찾는 과정이 힘겹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구아 비바』는 애초에 답을 갖고 있지 않으므로 어려울 이유조차 없다. 사람들은 이 작품에서 범신론적인 고뇌나 철학적인 사고를 발견했지만, 리스펙토르(정확히는 ‘이 책의 화자’)는 그런 생각들마저 하나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마치 돌이나 풀을 바라보듯 가만히 관찰할 뿐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의미는 증발하고 오직 대상 자체만이 남게 된다. 방금까지는 하나의 생각이었지만 이제는 하나의 덩어리에 가까워진, 따라서 보고 만지는 데에 더욱 특화된 그 무엇. 그래서 『아구아 비바』의 화자는 자신이 하는 말을 ‘피상적으로만 들으라’고 권한다. 문장을 이해하려 들지 말고 마치 색깔이나 소리를 느끼듯이 감지해 보라는 요청이다. 사고를 감각적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리스펙토르는 이런 식으로 의미 바깥을 향하려 했고, 그녀의 생애 내내 지속되었던 그 바람은 지성이 아니라 어떤 본능에 따른 것이었다. 어느 인터뷰에서 왜 글을 쓰느냐는 질문을 받은 리스펙토르는 이렇게 되물었다고 한다. “당신은 왜 물을 마시나요?” 기자가 “목이 마르니까요”라고 대답하자 리스펙토르는 그 답을 정정했다. “물을 마시지 않으면 죽기 때문이죠.” 가장 순도 높은 리스펙토르는 그저 쏟아져 나오는 것이다.
『아구아 비바』를 사랑하는 독자들은 그 쏟아짐에 매료되었다. 이성의 방어를 천천히 무너뜨리며 육박해 오는 문학-같은-것, 여기서 의미는 내내 파괴되고, 리스펙토르는 그 폐허에 색깔과 소리와 향기와 맛에 관한 묘사를 심으며, 그러는 이유는 작가 자신도 알지 못한다. 그리고 그 이상한 무지無智에서는 다른 어떤 문학에서도 만날 수 없는 에너지가 새어 나온다. 리스펙토르가 말했듯, 그런 에너지는 어쩌면 비유로서만 묘사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비유 A: 1975년, 리스펙토르는 보고타에서 열린 제1회 ‘국제 주술 회의’에 주빈으로 참석했다. 그녀는 주빈 연설을 거절하는 대신 자신의 단편 「달걀과 닭」을 낭독했다. 객석을 가득 채운 마녀들과 주술사들, 마법사들은 조용히 그 소리를 들었다.
비유 B: 리스펙토르의 고향인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슬라브 문화권은 독특한 이야기 소재를 하나 갖고 있다. 같은 이름과 효능을 지닌 물질이 서로 다른 내용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것이다. ‘살아 있는 물’이라 불리는 그 물질을 훼손된 신체에 바르면 그 부위가 재생되고, 죽은 이를 그 물에 적시면 되살아난다.
비유 Z: 소설가 레슬리 제이미슨은 뉴요커에 기고한 어느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삶은 일단 텍스트가 되고 나면 다시는 몸을 가질 수 없게 된다. 대신에 그것은 영원히 살 수 있다.”
만두
5.0
이러한 글들은 어느 카테고리에 속하나 소설이라고 쓰여있지만 글쎄? 내 무의식의 반영 같고 오프라인에서의 알고리즘 같기도 하고, 어떠한 잘 쓴 글들을 보면 아 내가 쓰고싶거나 생각했던 것들을 잘 표현해낸 느낌이었다면 이 책은 그냥 내 머리속을 그대로 읊어낸 모양새이다 나 라는 것이 현재를 스치고 지나간 과거가 현재가 된 미래가 그 모든 것이 순간이 아닌 흐름으로 인식되는 미완의 불완전의 모든 것- 무한화서 이후로 단숨에 읽어내고 또 꺼내보고 다 소리내어 읊어 내고 싶고 체화해 그 말랑한 또다른 말랑한 해파리 중 하나의 부위가 되고 싶은 왜 나를 통해서 무언가 남기고 발현하고 사라지고 싶은지 글을 쓰고 말하고 소리내고 싶에 만드는 연결감 가끔 만나는 이런 이유 모를 운명적인 것들 이유는 사실 필요도 없음 살아있게 하는, 무언가 잃어버린채 살아가다가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중심의 자석 같은 것
한수연
4.5
아구아 비바의 문장들은 마치 읽는 그 ’순간‘에 가장 살아 있는 느낌이다. 어떤 고정된 것이 아닌 살아 숨 쉬고 흐르는 의식과 사고에 대한 기록이다. 존재하지 않고 떠다니는 그 모든 사고와 감각, 그것을 이렇게 아름답게 포착하고 표현해내는 시도는 클라리시 리스펙토르가 아니면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youmokmyn
4.0
측량할 수 없는 거대한 가벼움, 공기같은 그것에 형태를 부여하는 시도. 달아나고 흩어지는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 그저 감각하고 감각될 뿐인. 독서란 어쩌면 메아리로 이어지는 대화같다. 언어는 항상 뒤에 오고, 글로 적히는 순간 의미를 가지는 동시에 사라지는데, 나무와 꽃과 새의 언어를 배울 순 없을까. 한줄 한줄 자신의 죽음을 유예하는 시구는 긴 행간을 남기며 끝나지 않고 그렇게 이야기가 되길 거부한다. ‘거울의 작은 한 조각은 언제나 거울 전체‘인데 우리는 코처럼 붙어있는 형용사따위 없인 홀로 있지 못한다. 우리에게 필요한건 동사처럼 살기위한 글쓰기. "I am not a thing—a noun. I seem to be a verb, an evolutionary process—an integral function of the universe." Buckminster Fuller, <I seem to be a verb>
하루살이
3.5
이해와 이해 너머 작가의 생각이 이해될 것이란 마음가짐으로 읽었지만 이해 못함. 책을 덮는 순간 내 머릿속에서 책이 사라지는 걸 보아 책 자체가 순간임
heyyun
4.0
나 대신 당신, 그 외 것들이 되어보고 싶고 순간을 잡아보고 싶고 말을 벗어나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작가의 욕망이 참 좋다.
JD
4.0
솔직함. 삶과 죽음. 육체와 영혼 정신
황현철
5.0
어떻게 책이 재즈
3104
4.0
의식의 흐름 기법의 극치 같은 느낌이라 진짜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근데 이 순간에 정말 클라리시 리스펙트로와 나만 있는 것 같은 그런… 진짜 ‘지금 이 순간’에 흠뻑 빠지게 됨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의 연속이라 내가 지금 뭘 읽고있나 싶은데 그냥… 말이 안 되게 너무너무 좋다. 이런 감정은 내 인생에서 클라리시 리스펙트로가 처음 알려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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