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가을, 나는 그애를 만났다
뜨거운 시대, 두 여성의 엇갈리는 삶과 우정의 연대기
“이 책은 여성이 자신의 경험을 전달하고 해석하는 방식에 관한 이야기다.
정의, 인종, 정치적 이상주의에 대한 물러섬 없는 탐구.”
-[뉴욕 타임스]
1968년, 극빈한 변방의 동네에서 뉴욕의 명문 대학으로 필사적으로 탈출하듯 떠나온 ‘나’, 조젯은 상류층 백인인 앤과 기숙사 방을 함께 쓰게 된다. 자신과 “최대한 다른 세계에서 온” 룸메이트를 부탁했다는 앤은 그런 나에게 엄청난 우정 공세를 퍼붓는다. 입학과 동시에 앤은 대단히 열성적으로 좌파 운동에 가담하고, 진보적 가치를 열렬히 좇으며 갈수록 부모를 포함한 자신의 출신 세계 전부를 적대시한다. 그렇게 1960년대 말의 혼란스럽고 광기에 가까운 학생 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두 학년을 보낸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이유로 대학 교육에 회의를 느끼고 학교를 떠나 각자의 길을 걷는다. 여전히 사회 운동에 헌신적인 앤, 잡지사를 다니며 생계를 이어가는 나는 조금씩 멀어지다가 어느 날 앤의 흑인 애인에 대해 사소한 대화를 나누다 크게 싸우게 되어 연락을 끊는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앤은 경찰 살인죄로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하며 나의 삶에 다시 등장한다.
내 다시없을 사랑들에게
젊고 뜨겁고 혼란스럽던 그 사랑들에게
“무엇보다 피곤하고, 깊은 밤과 음악과 앤의 조용한 목소리가 내게 마법을 거는 시간.
마법이라고 한 건, 사실 앤이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앤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졌기 때문이다.”(26~27쪽)
“우리의 관계는 로맨스의 사랑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랑인 건 맞았고, 대부분의 사랑이 그렇듯이 오래 지속되지 못할 터였다.”(55쪽)
우정은 때로 연인의 사랑보다 길고, 지난하고, 애틋하다. 처음에 ‘나’는 앤의 일방적인 우정을 거부하지만 잠시뿐, 이내 간간이 끼어드는 짧은 시간을 빼고 둘의 대화는 종일 끝도 없이 이어진다. 열여덟 살, 이제 막 새로운 세계에 설렘과 두려움의 첫발을 딛는 두 사람에게 모든 것을 나눌 수 있는 친구의 존재는 중요하고 또 중요하다. 특히 학생 운동과 마약과 록 음악이 혼재하던 1968년의 대학 캠퍼스에서라면 더욱 그렇다. 무엇이든 다 변화하리라는, 새로운 세상이 도래하리라는 기대와 열망으로 터져 나갈 듯 들끓던 때, 그 급류 속에서 두 사람은 만나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좁다란 기숙사 방에 나란히 누워 밤새도록, 담배가 떨어질 때까지, 비밀을 용납하지 않는 그들의 이야기는 맺을 줄을 모른다.
앤은 거의 모든 면에서 나와 대비되는 인물이다. 어릴 때부터 주목받으며 자란 앤, 무조건적인 사랑과 풍요 속에서 자란 부잣집 아이, 명석하고 철두철미하며 지칠 줄 모르는 사람. 나는 앤을 사랑하지만 전적으로 이해할 수는 없다. “전쟁도, 소유도, 굶주림도, 시기도, 탐욕도 없는 세상”을 꿈꾸던 1960년대 후반, 앤은 계급과 정의, 평등에 관해 배우고 들은 모든 것들을 실천하겠노라고 마음먹는다. 앤은 매 순간 진지하고, 누구보다도 자신의 이상과 원칙에 충실하며, 부자 백인 미국인이라는 자신의 계급에 철저히 비판적이다. 자신을 애지중지하는 부모조차, 아니, 부모야말로 가장 날카로운 혐오의 대상이다. 터무니없을 정도로 급진적이고 병적이리만치 이상주의적인 앤은 공공연히 비판과 조롱과 공격의 대상이 되지만, 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그게 다 뭐였냐며 그 시절의 광기에서 빠져나온 듯이 말하는 때가 와도 앤은 불가해한 모습 그대로 남아 남들과는 다른 시간을 살듯 살아간다. 나는 앤을 두고 “자기가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쏘아붙이는 사람들에게 “넌 앤을 몰라”라고 변명하듯 말한다. 그렇다면 달리 뭐라고 앤을 설명해야 할지는 모르지만 나는 앤이 사람들이 쉽게 오해하고 비난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만은 안다.
다른 사랑들도 있다. 내가 대학에 들어오고 얼마 되지 않아 집을 나가 실종된 여동생 솔랜지. 나는 그애를 폭력적인 환경에 두고 왔다는, 한번 돌아보지도 않았다는 죄책감을 느끼고, 그애가 사라진 몇 년간 아파한다. 가난과 폭력이 대물림되고, 서로를 구해줄 수도, 화해할 수도 없는 가족들. 하지만 어느 날 비 맞은 고양이처럼 문 앞에 나타난 솔랜지를 보며 나는 “그애의 심장이 내 손에 들어 있기라도 한 듯” 애정을 느끼고, 둘은 가족 중 유일하게 서로를 의지하며 함께한다. 가족은 안식처가 아닌 고통의 근원에 가까웠지만, 솔랜지와 나는 각자 떠나와 다시 만난 그곳에서 진정한 가족이 된다. 두 자매는 때때로 무너지는 서로를 돌봐주고, 미워하다가도 끝내 미워할 수는 없는 사이가 되어간다.
그리고 그 사랑, 차마 일인칭 ‘나’로는 써 내려갈 수 없는 그 사랑이 있다. 삼인칭 ‘조젯’은 마법처럼 사랑에 빠졌고, 조젯이 한 모든 키스가 그 사람을 구원했으며, 둘은 자신만만하게도 불가능한 사랑을 믿는다. 애초부터 미래를 꿈꾸기 힘든 처지의 두 연인. 입 밖에 내자마자 풀려버린 마법처럼 둘의 관계는 금세 끝나지만, 그 사랑은 이후 다른 모든 사랑의 기준이 된다. 다시는 그만큼 조젯을 가질 수 있는 사랑은 찾아오지 않는다.
책은 젊음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을 사랑들에 대해 들려준다.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도둑맞는 것으로 대도시에서의 첫날을 시작한 앳된 여성이 자기 삶을 꾸리고 두 아이를 다 길러내고 나이가 들어 그 기억들을 돌아볼 때까지 이 기나긴 삶의 이야기에서 우리는 우리 삶이 얼마나 많은 사랑들과 얼마나 많은 상실들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본다. 많은 것들을 잊어버리고 마는 삶의 씁쓸함을, 그럼에도 얼마나 많은 기억들이 우리에게 아문 상처처럼 새겨져 있는지를 다시 헤아리게 만든다. “조개껍질 열 듯 마음을 비집어 여는 진짜 칼”처럼 사람을 무방비하게 열어젖히는 기억들이 거기에 늘 있음을.
20세기에 대한 가슴 아프도록 정직한 초상
1960년대 후반의 분위기를 세밀한 부분까지 생생하게 그려내던 소설은 1968년이 제기한 문제들을 떠안고 계속 나아간다. 젊은 이상주의자들은 짧게, 너무도 짧게 등장했다 사라지지만 그들이 드러낸 문제들은 거기에 남는다. 그것은 한때 아름답게 평화와 자유를 외치던 젊은이들이 있었습니다, 하고 간단히 말해버릴 수가 없는 이야기라고 소설은 지적한다. 그들이 외치던 구호는 낡은 유물이 되어버렸지만 미국 사회는 전혀 개심하지 않았다. 그들이 꿈꾸던 평화와 자유는 아직 오지 않았고 그렇기에 앤은 멈출 수도 달라질 수도 없다. 앤이라는 문제적 인물이 그 극단을 보여준, 진보를 외치는 엘리트들의 한계는 곧 미국 사회의 계급과 인종 문제를 다시 한번 복잡하게 드러내기도 한다. 앤은 기꺼이 자신의 계급적 특권을 다 포기하지만 그조차 일종의 특권으로 여겨진다. 앤은 흑인 남성과 사귀지만, 그 역시 조롱당한다. 교도소에서 순교자처럼 살아가지만 아무도 그 ‘고고한’ 호의를 곱게 보지 않는다. 앤을 향한 사람들의 비판은 때로는 가혹하고 때로는 타당하다. 나는 그 모든 평가 사이에서 다만 앤을 이해하려고 애쓴다.
소설에는 앤과 나를 비롯해, 솔랜지, 친구 클리오, 엄마, 그 밖에 여러 여성들의 삶이 등장하고, 그 여성들 간의 다양한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소설은 20세기에 여성으로 산다는 것, 똑똑하거나 어리석거나 독립적이거나 망가졌거나 미쳤거나 제정신이거나, 뭐가 됐든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구석구석 날카롭게 지적한다. 페미니즘의 물결과 여성 지위의 상승, 성 혁명 등을 비롯한 거대한 역사적 전환을 몸소 살아내지만 그 혼돈 속에서 각자의 삶이 진보의 영광만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삶의 여러 단계에서 여성들은 크고 작은 벽들, 위험들, 폭력들을 맞닥뜨리고 때로는 꺾이고 때로는 넘어선다. 그리고 자매애, 우정, 모성애, 뭐가 됐든 여성들 간의 끈끈한 유대와 애정, 보살핌으로 그들은 서로를 잇는다. 그 관계들이 한없이 아름답기만 한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