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 생존자 임레 케르테스가 10여 년간 집필한 자전적 대표작
가장 비인간적인 공간 속에서도 가장 존엄한 인간성에 대한 명징한 성찰
▶ 야만적이고 제멋대로인 역사에 맞선 한 개인의 취약한 경험을 지켜 내려 한 작가. ― 노벨 문학상 선정 이유
본인의 홀로코스트 생존 경험을 토대로 깊고 의미 있는 울림을 오늘의 우리에게 전하며 ‘아우슈비츠 이후의 문학’을 정립한 임레 케르테스의 운명 4부작 중 대표작이자 작가에게 노벨 문학상을 안겨 준 『운명』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340)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실제로 아우슈비츠, 부헨발트, 차이츠 강제 수용소를 어린 나이에 거쳤던 헝가리계 유대인 임레 케르테스가 오랜 침묵 끝에 13년간의 집필 기간을 걸쳐 완성해 낸 작품으로, 발표 당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2차 세계 대전이 낳은 가장 성찰적인 소설 중 하나이자 인간성과 비인간성에 대한 준열한 고발 문학으로 꼽히고 있다.
이 작품은 부다페스트에 살던 열네 살 소년 죄르지가 갑작스럽게 타고 있던 버스에서 끌려나와 익숙했던 세계에서 갑자기 유리된 채 최악의 인간 조건으로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에서 부헨발트, 차이츠 수용소를 거치면서 겪은 처참한 상황과, 그 안에서 찾아낸 담담한 일상과 순간의 행복을 대조하며 가장 비인간적인 세계 가운데 인간이 인간으로 성립하기 위한 최소의 조건이 무엇인지를 묘사하고 있다.
유대인 강제 수용소의 존재를 아는 모든 이의 추측과는 반대로 수용소에서 보낸 시간 가운데 비참함 대신 자족과 수용을 느꼈던 소년 죄르지의 차분한 고백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운명의 본질과 함께, 개인이 품은 자유의 추구가 내포한 위험을 깨닫는다.
소설을 쓰면서 단 한 순간도 아우슈비츠를 잊을 수 없었다는 작가의 강렬한 체험이 그대로 담긴 이 결코 잊을 수 없는 작품은, 책을 펼친 모두에게 인간 존엄에 대한 우리의 피상적인 판단을 다시 한 번 재고하게 할 시대의 역작이다.
■ 매일매일 죽음을 일상으로 살아야만 했던
한 소년이 발견한 삶의 근본적이고 절대적인 진실
부다페스트의 중산층 유대인 부모 아래에서 아무런 걱정 없이 순진한 유년을 보내던 열네 살 소년 죄르지는 어느 날부터인가 자신을 둘러싼 세계가 조금씩 바뀌어 가는 것을 느낀다. 노란색 별을 가슴에 붙이게 되고, 생필품 배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지고, 아버지는 어느 날 노동 봉사라는 명목으로 죄르지 곁을 영영 떠난다. 한편 유대인 소년들에게 할당된 공장 노동에 징집된 죄르지는 공장을 향하던 버스에서 끌려나와 그를 기다리고 있던 잔혹한 운명에 조우한다. 갑작스러운 연행과 물 한 모금 주어지지 않는 비좁은 수용소행 기차, 죄르지가 도착한 곳은 지금까지 그가 알던 세상의 대척점에 위치한 땅, 바로 아우슈비츠였다. 아우슈비츠에서 부헨발트, 차이츠까지 악명 높은 강제 수용소를 전전하면서 소년은 매일 도처에 도사린 죽음과 마주한다.
그러나 가스실의 비참과 잔혹한 노동, 인간 이하의 생존 조건 가운데에서 그는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담담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받아들이고 모든 것을 견뎌 내는 법을 체득한다. 즉 죽음에서 일상을 찾아낸 것이다.
줄은 나를 포함해 똑같이 줄을 맞춰 느리지만 한 발 한 발 서서히 앞으로 나아갔다. 앞에 목욕탕이 있었는데 이를 보자 다시 힘이 생겼다. 하지만 그 전에 모두 의사에게 건강 검진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들이 말을 해 주기도 했지만 스스로 생각해도 이것은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업무 때문에 하는 일종의 징병 검사나 업무 적합도 검사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때까지 잠깐 쉴 수 있었다. 내 옆과 앞과 뒤에서 소년들이 서로 부르며 잘 있다고 손을 흔들었다. (중략) 역은 꽤 멋있었다.
― 본문 중에서
“이게 바로 말린 쐐기풀 수프야.”
그가 설명했다. (중략) 그가 다시 미소 지으며 말했다.
“군인에게 있어 첫 번째 법칙은 오늘 주는 것을 다 먹으라는 거야. 내일도 먹을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지.”
실제로 그는 자기 수프를 침착하고 태연하게 마지막 한 방울까지 얼굴 하나 찌푸리지 않고 다 먹었다.
― 본문 중에서
부족한 식량을 절도 있게 섭취하고, 주어진 노동을 묵묵히 수행하고, 그곳을 지배하는 폭력적인 규칙에 순응하면서 계속해서 삶을 살아 나가는 것에 집중하는 죄르지. 소년은 1944년 수용소에 들어가 1945년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해방되어 부다페스트 거리로 다시 돌아오지만 이미 단 일 년의 시간 동안 노인처럼 변해 버렸다. 그를 알던 거리의 이웃들과 그가 겪은 이야기를 세상에 발표하고 싶어 하는 저널리스트는 죄르지가 지구상 최악의 장소에서 끔찍한 일을 겪고 세상에 대한 분노에 차 있을 것이라 예상하지만 죄르지는 그런 그들에게 자신은 그곳에서 어쩌면 행복까지도 느꼈음을 피력한다.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에게 내뱉는 “운명이 있다면 자유란 없다. 그런데 만약 반대로 자유가 있다면 운명이란 없다.”라는 죄르지의 역설은 실제로 죄르지의 나이에 아우슈비츠와 부헨발트, 차이츠를 경험한 작가 임레 케르테스가 홀로코스트 이후의 인류에게 전하는, 인간성에 대한 준엄하고도 근원적인, 강렬한 깨달음이다.
■ 2016년 타계한 작가의 ‘운명 4부작’을 대표하는 작품
2016년 3월 홀로코스트의 생존자이자 아우슈비츠의 고발자 임레 케르테스가 타계하면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이 독특한 주제에 천착해 온 거장의 삶을 돌아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부다페스트의 목재상 부부에게서 태어난 임레 케르테스는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뚜렷이 인식하기도 전에 그의 생애를 변화시킬 만한 사건에 맞닥뜨린다. 소설 속 주인공 죄르지와 마찬가지로 불과 열네 살의 나이에 부모님과 살던 정든 거리에서 지상의 지옥이라는 별명이 붙은 폴란드 아우슈비츠에 끌려간 것이다. 그는 이후에 부헨발트와 차이츠에 각각 수용되었다가 종전 이래 다시 부다페스트에 돌아온다. 이때 겪은 강렬한 체험은 고발자로서의 사명감으로 변하여 이후 작가의 삶을 지배하면서 그의 문학 세계를 이루는 주요한 토대가 된다.
일간지 편집인, 공장 노동자, 프리랜서 작가, 번역자 등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며 전쟁 이후의 삶을 영위하던 임레 케르테스는 결국 13여 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의 집필 끝에 그의 운명을 바꾼 역작 『운명』을 발표하며 작가로 데뷔한다. 이 작품의 원제는 ‘Sorstalansag’로, 본래는 ‘운명 없음’이라는 뜻이다. 즉 죄르지가 소설 말미에 사람들을 향하여 부르짖는 “운명은 없다.”라는 한마디를 소설의 주제로 다루고 있는 것이다.
나 역시 주어진 하나의 운명을 버텨 냈다. 그것은 나의 운명이 아니었지만 나는 끝까지 살아 냈다. 그들이 왜 내가 지금 그것을 품고 출발해 어딘가로 끼러들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지 정말 알 수가 없다. 그것은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던 착오이고 우연이고 일종의 탈선이었다고 말하는 것을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다. 그들은 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내 말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 본문 중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범죄의 피해자가 말하는 음성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차분하고 객관적인 목소리로 과거를 술회하는 죄르지의 입술을 빌어 임레 케르테스는 어쩌면 운명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곧 운명이라고 주장하며, 아우슈비츠를 사회적 폭력과 억압이 여전히 상존하고 있는 현대 사회까지 확장하여 그 안에서 ‘살아갈 의지’를 가질 것을 피력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비록 타계로 인해 더 이상 새로운 작품을 통해 새로운 음성을 들을 수는 없게 되었으나, 이 현대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점한 작가는 여전히 깨어 있는 독자들에게는 더없이 생생한 목소리로, 아우슈비츠가 특정 지역과 특정 시기에 속한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폭력적인 사회 안에서 여전히 자행되고 있는 진
전성원
4.5
임레 케르테스의 운명은 담담한 서술을 통해 소년이 강제수용소라는 극단적인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을 그려낸다. 작품 전반에서 드러나는 그의 소년성은 잔혹한 상황 속에서도 주변을 관찰하고 이해하려 애쓰며, 그 나름의 방식으로 삶을 받아들이는 태도에 깊이 배어 있다. 단순히 흘러가는 대로 시간을 보낸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눈치를 보고 현재를 파악하려는 그의 모습은 소년이라는 존재의 특징을 여실히 드러낸다. 그의 경험은 내가 군대에서 겪었던 환경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잔혹하고 비극적이다. 그러나 낯선 환경 속에서 적응해야 했던 나의 기억은 그의 삶을 바라보는 작은 단서가 되었다. 군대에서 나는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와 완벽히 통제된 질서 속에서 끊임없이 주변을 살피며 적응해야 했다. 시간은 나에게 가장 큰 고통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버틸 수 있는 틀이 되어 주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하루가 지나고 어김없이 밤이 찾아오며 아침이 돌아오는 시간의 반복 속에서, 나는 버틸 수 있었다. 이 점에서 시간의 양면성은 나뿐 아니라 주인공에게도 중요한 생존의 요소였음을 느꼈다. 작품의 마지막 몇 페이지에서, 집으로 돌아온 죄르지는 이웃들과의 대화를 통해 자신도 모르게 억눌러 두었던 감정과 생각을 드러낸다. 이 장면은 마치 작가가 당시 사람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소년의 입을 빌려 전달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담담한 서술로 이어지던 이야기가 마지막에 이르러 분출되는 이 순간은, 독자에게 소년의 내면과 함께 자신만의 경험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강렬한 여운을 남긴다. 결국 운명은 단순한 생존의 기록이 아니라, 극한의 상황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버티고, 삶의 본질과 시간의 역할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를 묻는 작품이었다.
134340
4.0
이제 우리 과장하지 말자! 내가 지금 이곳에 존재한다는 정말 어려운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허공에의 질주
4.0
이 작품은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며, 평생을 두고 그가 탐구했던 주제 의식이 빛난다. 소설로서 재미는 별로 없지만, 묵직한 주제의식에 걸맞은 작가의 고단한 인생 역정에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 한창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 시절, 아우슈비츠에 끌려가 강제 노동을 하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간 그는, 이후 평생에 걸쳐 홀로코스트와 인간 존재의 의미에 대해 지독하게 파고 든다. 사회주의 체제의 헝가리에서 그의 소설을 출판해 주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기에, 그는 스스로를 아파트 골방에 가둔 채 세상에 빛 볼 가능성 자체가 없는 작품을 수십 년 동안 써 나갔다. 그리고 결국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그의 나이 73세였다. 인간이 자신의 인간성을 부정당하고 인간이 아닌 짐승 취급을 받으며 극한의 고통에 내몰리면서도, 끝내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가는 그러한 질문을 던진다. 이 책에 직접적인 해답은 없다. 다만 그저 우리는 어떻게 하더라도 살아야 하니까, 그 자체가 인간의 길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 볼 뿐이다.
정선주
4.5
사람들에게 그저 '추상적인 끔찍함'으로 떠오르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시간을 '담담하고 구체적인 일상'으로 적어내고, 항상 밝거나 어둡기만 한 일상은 없듯 그 곳에서의 행복을 기억하며 책을 끝내는 임레 케르테스. 항상 손에 쥐고 있던 자유였지만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니 이 모든 것이 운명처럼, 아니 그 자신이 그저 운명인 것처럼 보인다. - 나는 그가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딱 두 번의 순간을 쉬이 넘기지 못한다.
유로
4.0
우리는 항상 이전의 삶을 이어 갈 뿐 결코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없다. (p.281)
루샐파
4.5
내가 선택하지 않았다 해도, 그것까지도 내가 살아낸 인생
Theo
4.0
-우리는 삶이 우리를 어떻게 대해줄지를 정할 수 없으며 단지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대할지만 결정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편집증 환자처럼 나쁜 일들에만 집중한다면 우리는 먹다 남긴 사과와 침대보에 비추는 햇살과 갓 구운 쿠키 냄새 같은 아름다움들을 놓치게 된다.(대니 그레고리,<모든 날이 소중하다>) -슬프면서도 지루할 수 있고 참담하지만 행복할 수 있는 인간은 복잡해서 다행인 존재
19thnight
5.0
읽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웠지만, 삶으로, 문학으로 고통을 견디며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믿게 해주었다. 그래서 계속 살아가고 걸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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