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파스테르나크의 유일한 장편소설
어둡고 고통스러웠던 혁명 시대에 대한 가장 인간적이고 진실한 예술적 증언
혁명과 내전의 폭풍이 휩쓸었던 20세기 초 러시아 민중의 삶을 생의 존엄함에 대한 찬미의 시로 그려낸 파스테르나크의 유일한 장편소설 『닥터 지바고』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으로 출간되었다. 1945년에 집필하기 시작해 십 년 만에 완성한 이 작품은 자국 내 출간 불허로 1957년 이탈리아에서 처음 소개되며 세상에 알려졌고, 파스테르나크는 이듬해인 1958년 “동시대 서정시와 러시아 서사문학의 위대한 전통의 계승에 기여한” 업적으로 이반 부닌에 이어 러시아에서 두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하지만 사회주의혁명을 부정적으로 그렸다는 거센 비판과 추방 압력에 “모국을 떠난다는 것은 나에게 죽음과도 같다”고 밝히며 결국 수상을 거부했다. 그리고 이 년 후 침묵과 고독 속에서 생을 마감했다. 폭력과 부조리에 신음하던 러시아에서 인간적이고 예술적인 삶을 희구했던 지바고의 생애를 통해 당대를 증언하고, 동시대인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함께 위로를 건네는 이 소설은 알베르 카뮈가 이야기했듯 “위대한 사랑이야기이자 전 세계적인 소설”로, “인간의 문학적, 도덕적 역사에서 일어난 가장 위대한 사건 중 하나”로 세기를 뛰어넘어 불멸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역사적 사건과 인간 존재의 참담한 간극
삶을 잃어버린 자들에 대한 소환과 애도
『닥터 지바고』는 1905년 혁명 전야부터 1914년 1차세계대전과 이어지는 내전, 1922년 러시아에 세계 최초의 사회주의정권이 수립되기까지 대격변의 시기를 살았던 유리 지바고의 생애를 통해 인간의 존엄과 삶의 가치를 되새기는 작품이다. 시인이자 소설가 파스테르나크의 삶이 투영되어 있으며, 자유롭지 않은 세상의 한계를 뛰어넘어 인간을 인간답게 살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전대미문의 격동기에 의사로서 시인으로서 앞날을 촉망받던 주인공 유리 지바고의 교양 있고 윤택했던 삶은 현저히 굴절된다. 개인의 생활과 존엄, 인간다운 감정조차 허용되지 않는 수난의 시대였다. 이야기는 자유로운 개인을 상징하는 지바고, 가정을 상징하는 토냐, 강인한 생명력의 표상 라라, 혁명을 대표하는 파샤(스트렐니코프)와 악을 대변하는 코마롭스키를 주축으로 전개되고, 그 밖의 다양한 인물의 상징적인 삶들이 빠른 속도로 교차한다. 그들의 인생은 혁명이라는 열차가 달려간 러시아 격변의 역사와 같은 시간, 같은 레일을 달린다.
『닥터 지바고』가 출간된 뒤 파스테르나크는 소비에트작가연맹에서 제명되는 시련을 겪었고, 작가 생전 모국에서는 출간되지 못하다가 약 삼십 년 후인 1988년에 비로소 출간되었다. 이 소설을 쓰기 전에도 그는 반혁명적 작가라는 꼬리표 때문에 창작활동은 거의 접은 채 번역으로 남은 나날을 잇고 있었다. 『먹구름 속의 쌍둥이』 『방책을 넘어서』 등의 시집을 발표하며 시인으로서 먼저 주목받았던 파스테르나크의 『닥터 지바고』는 냉전시대에 사회주의 체제에 반대하는 선전을 위한 상징적 작품으로 자주 이용되고 거론되었지만, 정작 작가는 결코 그러한 목적으로 이 소설을 쓰지 않았다. 파스테르나크는 정치적인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체제에 대한 저항으로서가 아니라, 혁명 정부의 냉혹한 검열과 처단으로 사라지거나 죽거나 조국을 떠나간 사람들을 애도하고 그들을 추억하기 위해, 그 혼란 속에서 온전히 살아남은 사람으로서 마음에 진 무거운 빚을 갚기 위해 이 소설을 구상하고 써내려갔다 그리고 그것은 20세기 러시아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 소비에트의 들끓었던 역사를 더듬어가는 일이 되었다.
시인의 소설 마지막 17장은 25편의 시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이 소설을 구상하며 시를 먼저 썼고 나중에 그것을 줄기로 서사를 이어나갔다. 시와 산문의 혼합이라는 독특한 형식을 통해 파스테르나크는 심오한 세계관과 자연주의적 인생관을 드러내는 동시에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해답을 그만의 독자적인 방식으로 노래했다. 그는 “어리석게 고양된 암담한 인간의 웅변보다 자연의 외관상의 침묵 속으로, 길고 고된 노동의 정적 속으로, 깊은 잠과 진정한 음악 속으로, 영혼의 충만함에서 오는 조용하고 마음이 오가는 무언 속으로 들어”가길 바랐다. 후에 이 소설에 대해 “예술과 복음, 역사 속 개인의 삶, 그 밖의 많은 것에 대한 나의 견해를 표현한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결국은 돌아온다,
생명이 있는 모든 존재의 삶이라는 제자리
첫 장면은 이 소설을 통틀어 가장 의미심장하다. 어머니의 무덤가에서 소년 유리 지바고는 흐느껴 운다. 장례 행렬에 길을 비켜주는 행인들은 누구의 장례냐고 묻는다. “지바고의 장례”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주인공의 성 지바고(Живаго)는 러시아어와 교회슬라브어의 지보이(живой)에서 파생한 것으로, ‘생명이 있는,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뜻하며, 이것은 살아 있는 자의 장례와도 같았던 암울한 현실, 민중에게 닥친 죽음과도 같은 미래를 의미한다. 이때부터 유리 지바고의 삶에서 ‘안전’은 모조리 파괴되었고, 그는 그것을 아내와 가족에게서, 사랑하는 여자에게서, 시에서, 예술에서, 대자연에서, 노동에서, 복음서에서 찾으려 한다.
고리키와 숄로호프의 소설처럼 『닥터 지바고』 역시 러시아 혁명이 낳은 소설이었다. 또한 『닥터 지바고』는 러시아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기라 일컬어지던 스탈린 체제 때 쓰였다. 그러나 파스테르나크는 대부분의 소비에트 작가들처럼 혁명의 한복판에서 외부의 진폭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톨스토이 소설 세계로, 인본적인 세계로 돌아갔다. 그의 목표는 자유정신을 되찾고 현대의 정신에 러시아 정신을 부여하는 것이었다. 파스테르나크가 살았던 시대 분위기를 감안할 때 톨스토이 소설 세계로의 귀환은 그야말로 해방적 행동이었다. 유리 지바고는 톨스토이의 인물들처럼 자연과 예술을 사랑하고, 묵상하는 삶을 추구하고, 인간 삶의 연속성을 주장한다. 또한 자유롭지 않은 세상의 사회적 한계를 뛰어넘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의식적인 희열에 대해 이야기한다. 때문에 이 소설에서 볼셰비키 혁명은 결코 정면으로 묘사되는 법이 없고,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묘사도 지극히 짧다. 하지만 소설은 끝까지 시대의 우울함과 긴장감을 놓지 않는다. 추운 겨울 장작을 구하기 위해 썰매를 끌고 거리를 헤매는 사람들, 식량징발에 굶주릴 대로 굶주려 땅속에 감자를 숨기는 사람들, 거리에서 벌어지는 총격전, 조금이라도 먼 곳으로 피난하기 위해 아우성치며 열차에 오르는 사람들. 변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결코 혁명에 흡수되지 않았던 러시아 인텔리겐치아를 대표하는 인물 지바고 역시 그를 심판하려는 자들을 피해 자유가 있을 만한 더 먼 곳 더 조용한 곳으로 떠나지만, 그의 바람은 번번이 어긋나고, 계획은 실패하고, 재앙이 잇따른다.
노벨문학상은 파스테르나크의 운명에서 비극적인 역할을 했지만, 소설의 세계적인 명성에 공헌했다(한림원은 그의 수상 거부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1989년 그의 아들이 대리 수상했다.) 또한 1965년 데이비드 린 감독, 오마 샤리프, 줄리 크리스티 주연의 동명 영화가 크게 성공하면서 눈 덮인 시베리아 벌판, 끝없이 달려가는 열차는 오랫동안 러시아의 상징이 되었다. 『닥터 지바고』는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러시아 문학작품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으며, 소비에트시대 이후의 독자들에게는 예술가의 전체주의 권력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도 읽히고 있다. 가장 절박하고 절망적인 시대에 쓰인 만인을 향한 인간적이고 예술적인 증언이자 삶의 힘과 인간의 존엄을 되새기는 이 소설은 러시아문학의 황금시대를 잇는 가교이자,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들과 궤를 달리하는 독보적인 작품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상맹
4.0
고전은 고전이다. 역사와 개인, 이데올로기와 개인들간의 사랑, 정말로 다양하고 입체적인 군상의 캐릭터들, 예술과 구원, 혁명과 전쟁 등 단순한 소설이 아니라 그냥 어떤 한 세계를 구현해내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뭐랄까 20세기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근대문학의 고전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 등 러시아 문학의 계보를 충실히 지키고 그리스도-구원-예술-개인 등 근대문학의 테제들을 러시아 혁명 시기와 맞물려 그려낸 것 같다. 새로움보다는 다시 근원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들. 이 온갖 이념과 혁명 소동에도 삶 그 자체로 다시 회귀하는 질문들.
최일섭
4.5
파스테르나크는 『닥터 지바고』의 성취 때문에 오히려 정치적으로 이용(노벨상 수상에 대한 CIA 개입설과 소련의 반발) 당하고 '내적 망명자'가 된다. 소설 속 여주인공 라라를 놓고 삼각관계를 이루는 지바고와 파샤는 혁명에 대해 상반된 입장을 취한다. 적극적 행동가로서 역사에 개입하려는 파샤와 달리 지바고는 회의를 품는다.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전쟁을 불사하고, 사소한 일을 가지고 사람을 죽이는 게 정당한가? 오직 라라만을 위해 살고자 했던 파샤는 혁명도 그 연장선상의 일이다. 지바고에게 라라는 시의 뮤즈이지만, 파샤에게는 러시아 민중의 상징이자 지배계급에 의해 고통받아온 인물이다. 그 고통 속에서 빠져나오게 하기 위해 혁명을 완수해야 한다! 하지만 라라는 "당신과 함께 살았던 그곳으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지구의 끝에서 무릎으로 기어서라도 가겠다"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라라에게 파샤는 그 자체로 온전한 사랑이었다. 이를 몰랐던 파샤는 목숨을 건 헛수고를 한 셈이다. 그는 한때 혁명 영웅이었지만, 이제는 반혁명 분자 취급을 받는 도망자다. 파샤의 자살은 곁의 사랑을 밀쳐두고 삶을 유예한 자에게 내린 심판이었다. 결국 『닥터 지바고』는 삶이 과정이나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라는 것, 혁명 역시 그러해야 함을 보였다. "인간이란 살아가려고 태어나지 삶을 준비하려고 태어나는 것은 아니오."
이현지
3.5
뮤지컬도 왓챠에 있었음 좋겠다ㅠㅠ 뮤지컬 별점은 4.5점!! 노래가 너무 좋아서ㅎㅎㅎ 지바고가 라라와 사랑하게 된 것은 불륜인데 이를 그 전쟁이 난무하는 정신없는 시대에 휩쓸린 일이라고 애써 합리화 시키면서 봤다. 코냐가 그렇게 대인배처럼 나올때 마다 그녀가 지바고에게 표출해 마땅한 화를 내가 대신 느끼고 지바고한테 화가 났다. 코냐도 어지러운 시대 탓을 하면서 단념한것일까? 하긴 어머니도 돌아가시고 모든것 잃고 자식과 함께 떠도는 중에 상대적으로 남편의 바람을 덜 심각한거라 느끼게 된걸수도 있겠다. 자신은 아직 지바고 많이 사랑하는데 그래서 더 문제 일으키지 않고 그가 편하게 글쓰고 행복해지게 빠져준건가... 그 복잡미묘한 심정 안고 그를 포기할 때의 기분이 어떠할지 가늠도 안된다. 사람 마음이란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알지만 만약 내가 그 상황에 처한다면 코냐처럼 대인배처럼 행동할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니 보내준다 하더라도 그에대해 갖는 감정은 절대 사랑으로 남진 못할거다. 그 뮤지컬도 그들의 사랑을 아니꼽게 보는 시선을 잠재우기 위해 라라와 지바고가 함께 부르는 노래들은 소름돋을 정도로 아름답게 만들어놓은건가.. 그 둘이 함께 부르는 노래는 하나같이 다 아름답고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음악들이었다. 앨범 파는거 봤으면 지금 내 재정난을 잊고 하나 사올뻔..ㅋㅋ 쨌든 그 노래들에 마음이 유해지면서 몰입해서 보고 있었는데 마지막 부분에서 또 화가 났다. 코냐가 지바고의 무덤에 그의 딸과 함께 온것. 라라와 바람피는 와중에 딸은 언제 임신시켰냐..?;; 그리고 딸한테 자랑스러운 아빠시를 읽으라하는데...딱봐도 라라 생각하면서 쓴 시를...이건 진짜 코냐 이해못하겠다. 나는 지바고 무덤 앞에서 코냐가 눈 무섭게 뜨면서 입만 씨잌 웃으며 그년이랑 가더니...크하하핰하하핰 이러면서 미친사람처럼 소름끼치게 웃고 오케스트라에서 날카로운 소리로 바이올린을 켜며 괴기스런 음악을 연주했어도 어색하지 않다 느꼈을 거다. 물론 엄청 소름끼치면서 뮤지컬 보다 처음으로 무서워서 소리질렀을수돜ㅋㅋㅋ그런 장면 무의식적으로 상상하다 너무 무서워서 접었다ㅋㅋㅋ 나중에 딸이 커서 그 시는 아빠가 엄마 버리고 다른 여자와 사랑에 빠져 쓴 시이고 엄마가 아직도 아빠를 사랑하며 그를 그 여자에게 보내준것을 알면 치가 떨리지 않을까. 그렇게 행동하며 아직도 아빠를 사랑하는 미련스러운(딸입장에선 대단하다기 보다 미련하다 느껴질것이다.) 엄마에 대해서도 화가나고 그 아빠란 작자에게도 화가 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 코..누구냐 이름 긴 악역으로 나오는(러시아 이름 너무 어려워..)변호사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써도 매력적일 것 같다. 그렇게 치를 떨며 자기를 죽이려던 여자를 잊지못해 계속 그녀가 자신에게 오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살리려고 하는. 라라의 남편이 죽어서 어쩌면 본인에게도 기회가 온 것일 수 있던 상황에 뜬금없이 그녀가 지바고와 있는 모습이라니.. 그렇게 고귀한척 하며 신념에 따르겠다고 세태에 따르지 않던 그 지바고가 왜 그 착하고 지고지순한 부인과 아이들을 버리고 내 라라와 함께있는거야 ㅂㄷㅂㄷ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ㅋㅋㅋ아 그 본남편 관점에서 써도 재밌겠다. 사랑하는 라라의 치욕을 씻겨주기 위해 시작해 그 자리까지 올랐는데 막상 라라는 자기의 그런 모습에 자신을 떠나버리고. 라라가 만나는 지바고를 증오하지만 그를 죽이면 라라가 자신을 증오하게 될까봐 차마 죽이지 못하고 데리고다니는 꼴이라니... 그 순진했던 청년이 그렇게 무자비한 인간이 되고 그러면서도 라라를 잊지 못하는게 정말 소설 주인공감이다.. 라라는 정말 마성의 여인인가보다. 강한 신념을가지고 본인 명예에 금갈 일을 하지 않는 꼿꼿한 지바고도 그녀에게 빠지고 위의 두 남자까지 평생을 그녀를 잊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것을 보면. (물론 그녀가 꽃뱀 이런건 절대 아니다.) 아 커튼콜때 라라랑 지바고가 손잡고 마지막에 나오고 코냐가 인자하게 웃으면서 그들보도 박수치는거 보면서도 화났다...마지막까지ㅂㄷㅂㄷㅋㅋㅋ 쨌든 주인공보다 서브들의 관점에서 깊게 생각해볼 수 있던 묘한ㅋㅋㅋ재밌는 뮤지컬이었다. 트랙들 찾아서 들어야지ㅎㅎ 노래 너무너무 좋았닿ㅎ
송현
5.0
책을 덮고, 현실로 돌아오기가 힘들었다. 읽으며 눈물 흘린 책이 얼마만인가.
지니콜라스
5.0
지바고와 라라의 사랑 이야기지만, 나와 닮은 성격 탓에 파샤에게 더 신경이 쓰임 혁명 완수라는 사명감에 압도 당해 역사를 일직선으로 밖에 보지 못하는 파샤와 삶을 무언가의 수단이 아닌 그 자체를 목적으로 보는 지바고가 대비되어 나타남 결국 파샤는 자살함 지바고처럼 조금 찌질하게 사는게 더 행복할지도
모험담
3.5
우연한 삶 속에서 직선을 닮은 사랑
강승희
4.0
수많은 상징이 어떨때는 더 큰 감동을, 어떨때는 더 큰 의문을 던져준다
나유정
3.5
스포일러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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