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전후 문학계 대표적인 작가 엔도 슈사쿠의 『깊은 강』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160번)으로 출간되었다. 엔도 슈사쿠는 특히 종교적 문제, 신과 구원의 문제에 천착한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가톨릭에서 큰 영향을 받아 왔지만, 그의 작품들은 종교소설의 범주에만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특정 종교의 벽을 뛰어넘어, 보편적 삶과 그 삶의 진실을 꿰뚫어보는 통찰력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아 왔다. 『깊은 강』은 엔도 슈사쿠의 마지막 작품으로, 그가 평생 동안 추구해 온 모든 가치들을 집약해 놓은 그의 대표작이다.
상처 받은 인간들에게 신이 내미는 구원의 손길
『깊은 강』은 엔도 슈사쿠가 1993년 완성한 마지막 장편소설이다. 이때는 그가 여러 차례 수술을 받으면서 투병 생활을 하던 때로, 이 작품은 자신의 50년 가까운 문학 인생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다. 엔도 슈사쿠는 자신에게 커다란 명성을 안겨 준 『침묵』과 함께 이 책을 관 속에 넣어 달라고 유언하기도 했다.
이 작품에서 엔도 슈사쿠는 다양한 등장인물을 통하여 지금까지 자신이 추구해 왔던 모든 주제들을 그려 내고 있다. 삶의 기쁨과 슬픔이나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 같은 인생의 여러 굴곡을 겪고 이제 황혼기를 맞은 네 사람이 인도 단체 여행을 계기로 만난다. 이소베는 평범하게 살아온 가장이었다. 그러다 아내는 갑작스레 암 선고를 받고, 고통스런 투병 끝에 숨을 거둔다. 그녀는 꼭 다시 태어날 테니 자신을 찾아오라는 말을 남겼다. 동화 작가인 누마다는 병으로 죽음의 고비를 맞았을 때 구관조에게 큰 위안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난 후 구관조는 마치 그를 대신하듯 죽어 버렸고, 그는 아직도 그 구관조에 대해 애틋한 마음을 품고 있다. 기구치는 태평양 전쟁에 참전했다가 미얀마에서 부상을 입고 낙오되었을 때 동료인 쓰카다가 곁에 남아 주었다. 쓰카다는 기구치를 살리고 자신도 살아남기 위해 다른 동료의 시체를 먹어야 했고, 그는 일본으로 무사히 돌아온 후에도 그 처참한 기억을 떨치지 못하고 평생 괴로워했다. 미쓰코는 이소베의 죽어 가는 아내를 간호했던 자원 봉사자였다. 그녀는 대학 시절 가톨릭 신자인 오쓰를 그저 장난으로 유혹했다가 버린 기억이 있다. 그녀는 신부가 된 오쓰가 인도의 수도원에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오쓰는 신부의 길을 걷기 위해 프랑스 수도원에서 수련을 하지만 신과 구원에 대한 그의 생각은 그곳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인도로 가서, 홀로 죽어 가는 사람들을 갠지스 강으로 데려다 주는 일을 하게 된다.
『깊은 강』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지울 수 없는 슬픔을 가슴속에 품은 채 살아간다. 등장인물들의 삶, 나아가 이 작품 전체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깊게 드리워져 있다. 이들은 자신의 가장 소중한 존재, 가장 가까이에 있던 사람의 죽음으로 인해 인생의 문제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이들은 인도에서 불가촉천민부터 수상이었던 인디라 간디까지, 신분과는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품어 안는 갠지스 강과 그곳에서 진정한 평화를 얻는 사람들을 보면서 강한 인상을 받는다.
구원에 이르는 강의 이미지, 인간 내부에 존재하는 신의 모습
『깊은 강』은 다음과 같은 흑인 영가로 시작되며, 엔도 슈사쿠는 이 흑인 영가에서 작품의 제목을 따왔다.
깊은 강, 신이여, 나는 강을 건너,
집회의 땅으로 가고 싶어라.
흑인 영가에 나타나는 ‘강’은 그들의 고달픈 기억과 고통에서 해방되어 만나는 새로운 세계, 구원의 세계에 대한 간절한 꿈을 이루어 주는 신과 같은 존재를 의미한다. 소설 ??깊은 강??에서 말하는 ‘강’은 힌두교도들이 죽음을 맞기 위해 찾아오는 성스러운 갠지스 강, 나아가 삶의 모든 고통에서 벗어나 구원의 세계로 이끌어 주는 어머니와 같은 깊고 큰 강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작품 속에 등장하는 힌두교의 여신 차문다를 통해 인간들의 고난을 상징적으로 그려 내면서, 나아가 그 고통을 함께 하고 또 끊임없이 사랑을 베푸는 신의 존재를 보여 준다. 이는 역시 강의 상징적인 이미지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의 오랜 병고를 대신 짊어진 채로 그들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여신은 우아하고 고결한 성모마리아와 대조적인 이미지로 다가온다. 엔도 슈사쿠는 차문다를 통해 인간 위에 있는 신이 아닌, 인간과 함께하며 인간 안에 살아 숨 쉬는 신의 모습을 그리고자 했다.
그녀의 젖가슴은 이미 노파처럼 쭈글쭈글합니다. 하지만 그 쭈그러든 젖가슴에서 젖을 내어, 줄지어 있는 아이들한테 나눠 줍니다. 그녀의 오른발이 문둥병으로 짓물러 있는 걸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배도 허기 때문에 움푹 꺼질 대로 꺼졌고, 게다가 그걸 전갈이 물어뜯고 있습니다. 그녀는 이런 병고와 아픔을 견디면서도, 쭈그러든 젖가슴으로 인간에게 젖을 주고 있습니다.
평생 신을 좇는 삶을 살아온 인물인 오쓰 역시 엔도 슈사쿠가 말하고자 하는 ‘강’의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다. 오쓰는 스스로 인식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에 이미 가톨릭교도가 되었고, 평생을 진정한 신을 찾아 헤매었다. 자신이 태어나 자란 나라를 떠나 프랑스까지 갔지만, 모든 인간을 품어 안는 신을 찾던 그는 신학교에서마저 배척당한 후 인도로 오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계급이나 성별 등 인간이 만들어 놓은 두터운 벽과는 상관없이 모든 이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갠지스 강에 감동한다. 결국 엔도 슈사쿠가 ‘강’의 이미지를 통해 이야기하는 주제는 종교를 초월하여 인간의 영혼이 갈구하는, 선과 악이 혼재한 모든 삶을 포용하는 지닌 신의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김상윤
4.0
인간은 이토록 슬픈데 주여, 바다는 너무도 푸르릅니다.
혀녕
4.0
“두 사람 바로 밑에서는 장밋빛 아침 해를 온몸에 받으며 갠지스 강물을 입에 머금고, 알몸의 남녀가 나란히 합장하고 있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인생이 있고, 타인에게 말 못하는 비밀이 있고, 그리고 그들은 그걸 무겁게 등에 짊어지고 살아간다. 갠지스 강에서 정화해야만 하는 무언가를 그들은 갖고 있다.”
이은규
5.0
깊게 깊게 흐르는 양파와 낮게 낮게 잠기는 애송이의 사랑
Equalp Sun
4.5
겐지스 강은 치유이자, 구원이며 절대로 국적과 종교, 이유와 목적을 묻지 않는다. 어쩌면 시체를 화장한 재와 동물의 사체, 쓰레기로 뒤덮인 겐지스 강은 그들이 섬기는 여신 차문다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갈빗대가 앙상한 삐쩍마른 가슴으로도 젖을 내어주며, 코브라와 전갈에 살 점을 뜯기면서도 두발로 땅을 딛고 일어서 있 듯.. 삶은 계속 되고, 믿음은 이어진다. 그리고 강 역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흐른다.
정공진
4.5
출퇴근하면서 조금씩 거의 한달에 걸쳐서 '깊은강'을 읽었다. 읽으면서 예전에 흥미롭게 본 '사일런스'와 유사한 가치관이 담겨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보니 '사일런스'가 엔도슈샤쿠의 '침묵'을 원작으로 하고있었다. 엔도슈샤쿠가 '신'을 대하는 태도는 대다수 일본인들이 믿는 '신토'의 '카미'와 궤를 같이하면서도, 크리스챤을 받아들인 것으로서 사실상 '이단'이다. '사일런스'에서 이노우에가 '신토'를 기독교가 자리잡을 수 없게 하는 '늪'이라고 하는데, 신토의 범신론적 관점은 기독교의 유일신론과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깊은강'에서 엔도슈샤쿠의 페르소나인 오쓰는 기독교 신부지만 신을 관념적이거나 초자연적인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범신론적 관점에서 종교가 추구하는 가치관을 행하는 데 중점을 둔다. 알랭드보통이 말한 '무신론2.0'이 신앙을 버리고 가치관만을 취하는 것이라면, 난 이게 신앙을 갖되 가치관에 중점을 둔다는 점에서 '유신론 2.0'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종교를 초자연적인 것이 아닌 가치관의 실행과정으로 보는것. 그러면 아마도 비록 그 사람의 삶은 신앙에 있어서는 흔들리는 불빛이겠지만, 여전히 어둠을 밝힐 것이다.
Dahee Song
4.5
저마다의사람들이저마다의 아픔을 짊어지고 강앞에서 기도한다.죽음과 삶이 이어지는 강 사람들을 보듬으며 강이 흐른다 인간의 깊은 강의슬픔. 2021.02.14.일
조재혁
5.0
수심을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깊은 인간의 내면, 그 바닥까지 통찰하는 걸작
아몬드꽃
4.0
<침묵>을 읽고 굉장히 강렬한 감정을 느꼈기에, 이 책도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깊이 있는 성찰의 결과란 꼭 이런 작품을 두고 하는 말 같다. 인생과 종교와 사랑에 대해 고뇌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쓸 수 없는 이야기다. 누구든 무엇이든 쉽게 비웃어 버리거나 결코 얕잡아보아서는 안 된다는 다짐을 다시금 해 본다. 책을 읽는 내내, 이토록 슬픈 인간으로서 이야기의 푸르른 바다에, 깊은 강에 온 몸과 마음이 푹 적셔진 것 같은 느 낌을 받았다. 사는 동안 앞으로 어디쯤 가 닿을지 도저히 모르겠으나 최소한 산조 부부와 비슷한 모습은 아니기를 간절히 바란다. 오래 잊히지 않을 작품이 될 것 같다. 오쓰와 미쓰코에게서는 <인생의 베일>이, 이소베와 그의 아내에게서는 <운수 좋은 날>이 겹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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