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후와 세기
Sang sattawat
2006 · 드라마 · 오스트리아, 프랑스, 태국
1시간 45분 · 전체

![[왓챠웹툰] 최애 여주 대전 👑](https://an2-img.amz.wtchn.net/image/v2/L0sC9bu-g3IIedSK2KRrfA.png?jwt=ZXlKaGJHY2lPaUpJVXpJMU5pSjkuZXlKd0lqb2lMM1l5TDNOMGIzSmxMM0J5YjIxdmRHbHZiaTh4TkRRek5qZ3pPRGcwT1RBek5URWlmUS55RVNmVVB0MXF1ZXNLM29iZEFjQk9UNE15QXlyb1JvTEU5VW01UFo3NkF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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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흐름’에 관한 영화이다. 일반적인 영화의 관습적 형식이나, 완결된 구조 모두가 관심 밖이다. 아피찻퐁은 어떠한 ‘흐름’을 만들어 냈는가? 먼저 일상의 대화이다. 등장인물들의 대화는 이야기를 끌고 가기 위한 대화가 아니다. 아피찻퐁은 그들의 대화에 귀 기울일 뿐이다. 관습적인 숏/리버스 숏도 무시되고, 영상과 사운드의 분리도 시도된다. 외형적으로는 사랑을 이야기하는 듯 하지만, 그것은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기 위한 부분일 뿐이다. 여의사 테이(Tei)를 짝사랑하는 토아(Toa), 테이가 호감을 가지고 있는 오키드 농장의 눔(Noom) 사이의 대화도 그렇거니와 치과의사 쁠레(Ple)와 승려 사크다(Sakda) 사이의 대화는 어떤 결말을 향해 달려가거나, 극적인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지 않는다. 그리고, 천천히 움직이는 카메라의 움직임을 통해서도 ‘흐름’을 만들어 낸다. 카메라가 훓고지나가는 공간 자체가 단순한 배경이 아닌, 등장인물들처럼 ‘흐름’을 만들어내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이 흐름에 동참하면 관객은 색다른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2006년 제11회 부산국제영화제/ 김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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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NE
3.5
문명의 변화가 가져오는 기묘한 긴장감
Jay Oh
4.0
떨쳐낼 수 없는 몽롱한 기분. 마치 기억나지 않는 다른 삶에 못 미치듯. Afflicted by our time and space.
mekong1922
4.0
앞만 바라봤음에도 이어지던, 이어졌던. 윤회적으로 현재가 돌아가듯이, 환풍구 속에 연기가 빨려가듯 자연과 체화함으로써 세상을 관조하는 우리들. 어딘가 딱딱하게 석상처럼 변해버린 ‘당신’과 ‘나’에게. 서로 대비되는 요소의 배경을 2부의 형식으로 가져오면서 예전의 소통과 불통이 전해주던 따뜻함과 사랑이 다시 오길 바라는 듯한 것처럼 보인다. 서로 다른 곳을 쳐다보고, 윤회, 전생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하지 않으며, 가벼운 언어적 유희조차 없는 곳에서. 그런 곳에서도 지금 우리가 하나 되는 곳은 분명 존재하기에. 그러한 명목으로 영화는 우리에게 스트레칭을 하며 관절을 풀자고 제안한다. 나에겐 부조리극이라거나 현대 사회를 ‘비판’하는 영화보단 그때의 ‘여유’를 그리워하고 노래하는 영화로 보였다.
Dh
3.5
아피찻퐁의 세계 속 시간, 공간, 기억의 흐름 #불위에 있는 심장 #DDTY #Pandora
별,
4.0
영화의 절반을 기점으로 하여 나뉘는, 시골과 도시의 병원을 소재로 한 이야기는 서사적으로 전반과 후반을 나누어 도식화할 수 밖에 없다. 느슨하고 자유로우며 햇볕이 나른하게 내리쬐는 야외로 향하는 카메라를 따라 낭만적인 분위기의 노래가 나오는 전반부와 꽉 조이고 폐쇄적이며 어두컴컴하고 답답한 지하로 향하는 카메라를 따라 전자 사운드로 꽉 찬 인공적인 분위기의 노래가 나오는 후반부는 분명히 대조를 이룬다. 그 속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역시 소통과 불통, 낭만과 욕망으로 구분되어질 수 있는 대구를 이룬다. - 다른 장소지만 같은 이야기로 진행되는 듯한 이 두 이야기가 달라지는 후반부의 어느 지점에 이르면 신경을 긁어대는 듯한 기계 소리와 벽을 두들겨대는 소리와 함께 기묘하게 웅웅거리는 음향이 있는 힘껏 보는 이를 압박하기 시작하는데, 이들을 통해 보다 편하게 살기 위해 발달한 문명이 오히려 인간의 정신을 피폐하게 하고 억압한다는 도식적인 의미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게 한다. - 전작인 <열대병>과 후작인 <엉클 분미>의,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자연스레 넘나들며 일어나는 감정의 아찔한 동요와는 거리가 먼 작품이고, 또한 두 작품보다 의식적인 도식화가 강해 오히려 불편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서로 원을 그리며 연결되는 이 기묘하여 매혹적인 세 작품을 3부작으로 여기고 생각해보면 문명의 발전으로 인해 강제로 유폐된 인간의 본성 또는 욕망을 끊임없이 일깨우는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의 영화는 영화 자체의 형식적으로나 서사적, 그 어떤 것들을 생각해보더라도 우리를 향하여 인간의 본성에 대해 지속적인 대답을 갈구하는 그의 영화적 시도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비록 그 실험적인 시도들의 악명 높은 난해함과 더불어 정글과 유령이 공존하는 태국의 오리엔탈리즘으로 명성을 쌓았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조영재
4.0
영혼이시여, 열병은 흐르는 시대에 두소서, 아무도 찾지를 않을터이니
오세일
5.0
아피찻퐁의 영화에서 상투적인 이야기의 흐름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인물들의 서사는 그저 영화 바깥에 존재하는 예술가(아피찻퐁)의 관념을 전달하기 위한 정보적인 초상 정도로 받아들이면 되며, 그보다 우리들이 집중해야 할 것은 스크린에 새겨지는 일련의 정서이다. 이를테면 1부에서 진료를 하다 말고 갑자기 노래를 부르는 치과 의사 쁠레, 차를 마시며 창밖의 풍경을 조용히 바라보는 여의사 테이, 자연에서 울려 퍼지는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투명한 창문 너머에서 바람에 몸을 맡기고 바람이 부는 방향대로 넘실거리는 갖가지 푸른 잎들 등. 그곳에서는 사랑 고백도 수줍지만 로맨틱하게 이루어진다. 비록 용기 내어 한 고백의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처방전 없이 약을 달라고 떼를 쓰는 스님과 그의 부탁을 거절하느라 애를 먹는 테이의 당혹스러운 순간도 (잊고 싶은 기억이 아닌) 한때에 겪었던 찰나의 추억들로 남겨질 뿐이다. 하지만 그에 반해 2부의 정서는 1부와 명확히 대비된다. 2부에서는 자연이 소실되고 그 자리에 건물이 풍경을 대체하는 시각적인 수단이 된다. 병원의 미관을 위해 인위적으로 설치된 몇 그루의 나무들뿐만이 정원에 자연의 미를 잃은 채 존재하며,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 대신 텅 빈 흰색의 병원 건물 내부를 거니는 피사체들의 보폭 소리만이 공허하게 울려 퍼진다. 또한 참전 용사(혹은 전쟁의 피해자)들의 잘려나간 팔다리가 강조되기도 하며, 그들의 육신을 고치기 위한 현대적 기술들이 난무한다. 마치 자연의 것들과 맞바꾼 듯한 현대화의 도식적인 풍경. 1부에서의 길지만 예뻤던 사랑 이야기는 짧지만 강렬한 정사의 표현으로 2부에서 다시 그려지며, 현대의 기술로도 고치지 못한 병을 타파하기 위해 차크라라는 비과학적인 수단까지 동원한다. 이미 인류가 진작에 버린 옛것의 마법적인 힘, 그러니까 순수한 사랑과 여유와 믿음이 있을 때만 비로소 기능할 수 있는 무언의 힘을 이제 와서 다시금 필요로 하는 아이러니한 광경. 그 순간 영화와 현실의 간극은 모호해진다. 차크라를 진행하는 전문가와 동행한 한 할머니는 뜬금없이 카메라를 인식하고 응시하는 행위를 보이며, 영화는 이러한 모순을 견뎌내지 못한다. 그리고 이내 (그들의 말에 따르면) 차크라를 필요로 했던 일산화탄소에 중독된 환자는 여자 친구가 있냐는 쁠레의 질문에 '판도라' 문신으로 답을 대신한다. 2부에서 유일하게 전생의 존재를 언급하고 믿던 환자. 하지만 전생이라는 개념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는 2부의 세계에서 그는 '일산화탄소 중독'이라는 병명이 붙은 환자로 인식될 뿐이며, 앞서 닭의 저주에 걸렸다고 두려워하던 스님 또한 '공황장애'라는 확정된 병명이 내려진다. 2부의 마지막에 다다르자, 얼이 나간 듯한 표정으로 멍하니 앉아있는 존재들이 여럿 포착된다. 그리고 이내 그들의 영혼은 연기가 되어 한 공간에 집결되고, 환풍구의 구멍에 빨려 들어가는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직후에 펼쳐지는 아피찻퐁의 가능 세계. 나른한 오후의 주말, 분명히 이곳은 2부와 같은 시공간대이지만 녹색이 우거진 자연의 경광이 먼저 눈에 담겨진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데 모여 파워 댄스를 추는 시민들. 이것이 바로 아피찻퐁이 그리는 가장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이 아닐까. 시대의 변화에는 순응하겠지만, 결코 옛것의 정서만큼은 잃어버리지 않은 인류의 일상. 내가 스님이 아니라 DJ를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바람의 상상도 해보지만, 상상을 현실로 이루지 못한 현재에 절망하지 말고 그 꿈을 향수로 품으며 살아갈 수 있는 용기. 어린 시절의 평화와 여유를 그리워하는 모든 어른들을 위한 영화.
CRITICS
4.5
자연과 문명 두 개의 이야기지만 아피찻퐁은 우열을 가리지 않는다. 단체로 체조하는 사람들 중에 만들어진 다리로 뛰고 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영화의 끝에서 아피찻퐁은 질문한다. 당신은 지금 이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냐고. 그리고 이 시기 이후에 따라올 다음 징후는 무엇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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