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에서 저항까지
Dalla nube alla resistenza
1979 · 드라마 · 이탈리아, 서독, 영국, 프랑스
1시간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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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된 작품이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체사레 파베세의 『레우코와의 대화(Dialoghi con Leucò)』 에서 발췌한 여섯 개의 고전 신화 이야기를 엮었다. 두 번째 에피소드는 파베세의 소설 『달과 모닥불(La luna e i falò)』 를 바탕으로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자(The Bastard)’라 불리는 한 이민자가 북이탈리아 랑게 지방의 고향 마을로 돌아오지만, 그가 알던 사람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고, 전쟁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바꿔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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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issan
4.5
스트로브-위예의 <구름에서 저항까지>는 어렵고 지루하면서도 내겐 그만큼 여전히 새롭고 신비롭다. 이들의 영화는 어떤 순수함에 가닿아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나침도 성급함도 화려함이나 성명도 없이 스스로 책장을 넘겨나가며 유유히 자신을 펼쳐나간다. 해설도 비평도 없이 순수하게 맞닿아있는 완전히 다른 매체, 번쩍이는 어둠과 침묵, 언어 외에 모든 게 잠든 영상. 이들이 원작을 영화 언어로 번역하며 만들어낸 형식은 단순히 읽힐 수 있는 복제, 번역 이상의 완전히 새로운 창조적 결과물을 만들어 냈으며, 영화라는 매체가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더욱 넓혀냈다는 사실은 분명해보인다.
김병석
3.5
서로 다른 시점의 인물이 번갈아 침묵 너머를 찬찬히 바라볼 때, 인류사에 산재한 익명의 비극들이 영화의 자장으로 끌려온다. 신이 끝내 대지를 유기한 어느 신화의 순간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이 내내 감내해야 했던 구조적 폭력의 망령들이 그 빈자리에 내려앉는다.
s au
4.0
원작: 체사레 파베세 [레우코와의 대화]는 산문 형식의 철학적 대화집이다. 시적인 대화를 그대로 옮긴 것 같은 이 영화는 반응이 극명하게 나뉠듯하다. 풍경과 말이 영화를 구성하는 두 축이다. 말소리에만 집중할 수 있게끔 인위적인 효과음은 없다. 인물들은 마치 연극 대본을 읽듯이 대사를 읊는다. 대체로 조곤조곤하고 담담한 어조로. 연극의 현재성이 싫은 사람이라면 이 영화의 형식을 환영할 것이다.
귤껍질
2.5
이런 영화는 그냥 각본집으로 보는게 나을 것 같다 한줄한줄 소화될 시간도 안 주고 쏟아내는 말들의 폭격 때문에 정신이 날아가고 의식이 흐릿해짐 각본집을 낸다고 해도 문제인게 거의 문장당 각주를 두개씩 달아야 할거 같은데 그나마 그런 데 특화된 책이라는 매체를 두고 왜 영화로 봐야되는지 전혀 모르겠음 찍는 사람들은 이 프로젝트를 구상하면서 가슴이 뛰고 설레고 재밌었을까?
청소년관람불가
2.5
라디오 같네
정현석
4.5
이들을 논하지 않고 21세기 영화들을 말할 수 있을까. 페드로 코스타, 라브 디아즈, 차이밍량, 지아장커, 홍상수, 심지어 고다르의 후기작까지도 이들 영화의 영향 위로 구축됐다. 정성일 평론가의 말마따나 영화의 거대한 축은 장 르누아르와 존 포드다. 그러나 21세기 영화(포스트 시네마라 불러도 좋은)의 정신은 장 마리 스트라우브와 다니엘 위예에서 왔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라 본다. 지금의 우리는 이들을 더 적극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양해섭
4.0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야 합니까? 영화는 눈을 감는다.
Yrsnö
3.0
“성(性) 위에는 신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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