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주받은 카메라
Peeping Tom
1960 · 드라마/공포/스릴러 · 영국
1시간 49분 · 1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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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는 현재 영화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카메라맨이다. 그는 과외 시간을 이용해서 옐로우 잡지나 신문 등에 암거래하는 누드 사진을 찍는 부업도 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이상 실험에 영향을 받아 연속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살인자. 거리의 여인들을 촬영하고는 잔인하게 살인을 저지르고 피해자의 얼굴에 장난을 치는등 미친 짓을 계속한다. 드디어 경찰은 조사를 시작하고 마크의 방에서 엄청난 필름들을 발견하기에 이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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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NE
4.0
카메라라는 남근을 단 남성의 쓸쓸한 발정기
Jay Oh
4.0
카메라의 폭력성, 공포, 심리. 헌데 우리도 스크린을 보며 관음하고 있지 않은가. Cinema's voyeuristic tendencies.
Cinephile
4.5
자신이 종사하는 영화 예술의 본질이 공격적 성향을 지닌 촬영에 있다는 점을 두고, 감독 본인부터 그것을 굉장히 쓸쓸한 자해 행위처럼 인지하고 있다. 그러한 메타적 측면 외에도 극적 긴장의 적절한 조절과 주인공의 음침한 연기력 등 출중한 요소들이 많다.
JE
4.0
스포일러가 있어요!!
P1
3.5
두려움을 엿보는 관음증 환자.. "내가 두렵다는 게 기뻐요"
차지훈
4.0
피튀기는 살인 장면을 보고 싶어 안달나게 만들어, 우리네 또한 관음증의 한 단면 속에 살고 있음을 영리하면서도 소름끼치게 내비친다. 흥미로운 인물들을 나열해놓고 이를 제대로 활용하여 보는 내내 지루한 장면이 없는 호러 작품.
카리나
4.0
카메라의 폭력적 속성을 이 영화처럼 직접적으로 다룬 영화는 아직도 전무후무하다. 카메라는 무기( 총, 날카로운 칼, 발기한 남성성기, 살인도구, 엽기적 관음증, 음침한 욕망, 변태적 집착, 도착적인 성욕 )이다 그리고 영화를 찍는 행위란 가장 공격적인 살인행위일수도 있다는 강력한 메타포를 담고 있는 이 영화를 보니 까이에 뒤 시네마의 편집장이었던 세르주 다네의 충격적 언설이 생각난다. "난 파블로프의 개처럼 사디스트적이고 마 조히스트적인 충동의 노예가 되어 영화가 나의 충동을 자극하기를 원치 않는다. " 그러나 수 많은 영화산업이 이런 파블로프의 개를 만들어 내는데 주저함이 없으며 여성은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포르노그래피의 지속가능한 희생물이 되어왔다. 이런 위험한 무기를 아무런 윤리의식없이 휘두른 남성들의 세상, 그냥 두고 봐야하나
김로
4.0
관음증에 걸린 위대한 배우가 말하는 법 (스포일러) * 이 영화가 다루는 관음증에 대해 얘기하려면 고전적인 정신 분석을 해야만 한다. 바로 어머니와 아버지로부터 유발된 정신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의 주인공인 마크에게는 어린 시절, 늘 쫓아오던 것이 있었다. 바로 아버지의 카메라이다. 아버지는 단지 촬영만을 목적으로, 어린 마크가 어딜 가든 카메라를 들고 뒤를 밟았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침대에 누워있던 마크에게 도마뱀을 던지고, 두려워하는 모습을 찍기도 했다. 마크의 정신은 자연스레 아버지에게 사로잡혔다. 그에게 사생활은 없었고, 개인으로서 할당받은 영역은 지극히 좁았다. 그는 아버지를 필두로 한 누군가의 시선을 항상 견뎌내야 했으며, 그것과 함께 살아가야 했다. 그 시선은 아버지가 죽고, 마크가 성인이 되고 나서도 따라왔다. 마크가 다른 사람들과 대화하기 힘들어하는 것은 이런 성장 과정 때문일 것이다. 보이지 않는 시선을 신경 써야하는 우울한 습관을 유지하는 것만으로 신경을 다 써서, 다른 사람을 상대할 여유가 없었다. 이런 그에게도 마음의 안식처가 있다면 바로 여성들, 어머니의 존재일 것이다. 아버지가 마크를 촬영한 영상에서 어머니는 침대에 누워있을 뿐, 딱히 어떤 행동을 하지 않는다. 오로지 피사체로서 바람직한, 수동적인 자세만을 취한다. 마크도 이런 시선으로 어머니를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어머니에게서 피사체들의 기묘한 공감대를 느꼈다. 마크가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대상은 여성들이다. 마크는 피사체로서의 공포를 나누기 위해 대화를 시도한다. 헬렌을 제외하면, 살해하기 직전의 여성을 대할 때만이 함께 살아온 가족과 대화하듯이 편히 말할 수 있다. 마크에게 살해당했던, 무방비한 여성들은 그에게 있어서 어머니의 분신이었다. 자신의 공포를 나눌 수 있는 최적의 대상이었다. 그렇다면 그가 공유하려는 공포는 어떤 것일까? 중간에 마크가 살해하려는 엑스트라 여배우와 이런 대화를 하는 장면이 있다. “카메라 앞에 혼자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스타는 카메라 앞에서 외로워지고, 위대한 배우는 항상 고독하죠.” 나는 마크의 이 대사에서 마크가 달고 사는 공포의 근원을 직감했다. 그것은 아마도 혼자 있다는 공포일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자신이 혼자라는 것을 끊임없이 인식해야한다는 공포일 것이다. 마크가 헬렌에게 카메라의 숨겨진 칼날을 꺼내 들이밀 때, 헬렌이 본 얼굴을 생각해보라. 빛의 굴절로 인해 기괴하게 뒤틀린 상이 나타난다. 카메라에 노려지는 자신과, 그런 자신의 모습을 동시에 확인하면서 그녀의 자아는 엘리베이터 안의 거울처럼 무한한 공포의 상을 그리며 공명하고, 증폭한다. 이윽고 카메라라는 칼날 앞에서 혼자라는 사실을 끝없이 의식하게 되고 진정한 공포에 다다른다. 다른 피살자들의 얼굴이 공포로 일그러진 것도 같은 원인 때문일 것이다. 카메라에 노려지는 것이 공포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영화에서는, 카메라에 의해 연기를 요구받을 때야말로 사람이 가장 고독해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중간에 나오는 감독이 여배우에게 끈질기게 요구하듯이, 카메라는 그자체로 피사체에게 연기를 요구한다. 마크는 어린 시절 내내 요구를 받으며, 지금도 그 연기를 계속 해나간다. 자기 발소리도 신경이 쓰여 지워버린다. 마크는 앞으로도 연기를 요구받아 영원히 세상의 빛을 누리지 못하게 될 것을 두려워한다. 그는 기회가 될 때마다, 공포를 나누고 카메라를 든 주체로서의 쾌락을 얻으려 한다. 자신에게 ‘나는 카메라맨이다, 감독이다’ 같은 거짓말을 해가며 자신이 겪는 공포를 여성과 나누고, 나아가 세상에 알린다. 그러나 그의 살인이 창작보다는 고해성사에 가깝다는 점에서 여전히 그는 배우나 광대일 것이다. 영화에서 카메라는 무엇인가? 아버지의 폭력의 유산이자 여성들과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이자, 자기 위로를 위해 제물을 바치는데 일조하는 단검이다. 나아가, 그가 살인을 하는 이유도 어머니로 대변되는 여성들과 대화를 하고 불가해한 아버지와 교감을 해서, 자신의 고독을 달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런 그에게 헬렌의 존재는 고독을 잊게 해주는 다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결말에서 자살을 함으로써 그에게 내밀어진 동아줄을 끊어버린다. 극적인 결말이자, 아버지의 피사체로서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비극적인 결말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그 나름대로 자신의 최후만큼은 스스로 창작해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겠다. 스스로 카메라의 칼날로 자결한다는 것은, 마크가 피사체로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극기일 것이다. <저주의 카메라>는 대비가 심한 빛과 그림자를 다루고, 극단적인 초점 사용에 강렬한 음악을 넣어서 단순하지만 강력한 효과를 낸다. 이런 효과에 치중한 탓인지 헬렌과의 연애나 마크를 추적하는 수사과정이 매우 부실하다. 헬렌이 동화책을 쓴다는 얘기나, 마크가 유능해보였다는 것도 가까워질 계기를 억지로 마련한 느낌이고, 첫 번째 살인을 할 때에 주변 사람에게 얼굴까지 보였던 데다가 피해자가 그렇게 소리까지 질렀는데 잡히지 않은 것은 순전히 운이 좋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다음날에 범죄현장에 나타나기까지 했는데 말이다. 물론 영화가 말하려는 바를 생각하면 이런 것은 사소한 이야기이다. 오히려 관음증이란 소재가 가지는 힘을 알리고, 나름의 보편성을 발견했다는 점에서 제 역할은 하고도 남았다고 본다. 누가 알겠나. 카메라를 든 감독들 중에서도 실은 마크의 부모님과 대화하는 사람이 없다고 할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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