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민5.0수많은 걸작을 아류로 만들어버리는 눈부신 오리지널리티, 대담하고 현란하게 그것을 구사하는 유아사 마사아키 . 아래는 강한 스포일러를 포함한 캐릭터별 분석. . 1. 아스카 료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이다. 작품은 "사랑은 없다."는 료의 독백으로 시작해 아키라에게 "내 곁에 있어 줘."라고 울부짖는 사탄의 독백으로 끝난다. 알고 나서 보면 료는 사실 아키라를 사랑했다는 흔적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하지만 그는 사랑은 없다고 믿었고, 자신의 감정마저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게 모든 비극의 원인이며 끝내 본인까지도 불행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에겐 미코, 미키, 아키라에게서 이어진 바톤을 료가 받지 않고 바닥에 떨어트리는 장면이 가슴이 미어질 정도로 슬펐다. 그는 인류에게도 자신에게도 가혹한 대가를 치르게 한 뒤에야 사랑을 배우게 된 것이다. 원작은 안 봤지만, 원작에 비해 전체적인 캐릭터성이 어린 애처럼 변한 것 같다. 인류가 멸망해야 하는 이유가 '지구를 더럽히기 때문에'에서 단순히 '약하기 때문에'로 변한 것이나, 아키라와 싸운 이유도 '아키라를 사랑하지만 어쩔 수 없이'에서 감정을 자각하지 못한 채 '아키라가 자신을 거스르니까'로 변한 것 등. 원작의 사탄 팬이라면 실망할지 모르겠만, 내 입장에서는 적절한 변경이었다. '인간은 악하다'는 아이디어는 데빌맨 원작 이후에 너무나도 많이 우려먹어 이미 한참 낡아버린 주제기 때문이다. 하지만 힘의 논리는 어떤 의미에서 절대적이며 영원히 낡지 않을 것이다. . 2. 후도 아키라 작품의 주인공이지만, 사실 아주 수동적인 캐릭터이다. 어릴때부터 툭하면 남을 위해 우는 울보일만큼 선한 본성을 가졌다. 하지만 그때문에 남을 너무 쉽게 믿어버리고 휘둘린다. 의존할 대상이 필요한 것처럼 보일 정도다. 그래서 작중의 아키라를 둘러싼 인간관계는 아스카 료와 마키무라 미키가 줄다리기를 하는 모양새가 된다. 최강의 악마 아몬에게 지지 않고 마지막까지 인간으로서의 이성을 유지한 채 싸우기를 결심하는 주체성을 마지막까지 보여주지만, 그건 모두 미키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 3. 마키무라 미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사건을 일으킨 건 사탄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아키라를 움직인 건 언제나 미키였다. 아키라에게 싸워야할 이유, 그 이전에 인간이어야 할 이유를 부여해준 것이 바로 미키다. 미키는 정말 강한 캐릭터이다. 사람들에게 의심받고 스스로도 확신이 없을 때 처음부터 아키라의 마음은 변한 적이 없다고 믿고 구해준 것도, 죽음을 각오하고 아키라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고 호소한 것도, 다른 데빌맨들이 "나도 데빌맨이다"를 외치며 최후에 아키라와 함께 싸우게 만든 것도 모두 미키다. 그렌라간에서의 시몬의 형 카미나와 비교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도 훨씬 근원적인 역할을 하는 캐릭터이다. 어쩌면 '사람 사이의 사랑과 믿음' 그 자체를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4. 마키무라네 가족들 모두 정말 강하고 올곧은 캐릭터들이었지만 그렇기에 그들이 맞은 비극은 더 끔찍하게 느껴진다. 남동생 타로는 7화 시작부터 데빌맨으로 변한다. 타로의 자아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으므로 악마가 아닌 데빌맨으로 변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하지만 식욕과 충동이 강해지는 건 마찬가지이다. 타로가 사람을 해치지 않도록 어머니인 아키코는 타로에게 자신을 잡아먹도록 한다. 그리고 그 장면을 아버지인 노엘이 보고 만다. 노엘은 갈등한다.그것은 여전히 내 아들인가, 그렇지 않은가. 그것을 쏴야하는가, 아닌가. 어느 쪽이든 지옥으로 향하는, 출구 없는 딜레마 속에서 노엘이 번뇌하는 모습은 모든 매체를 통틀어 내가 접한 절망 중 가장 깊은 것이었다. 영화 <곡성>에서 본 딜레마가 떠올랐다. 가장 깊은 절망은 딜레마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 5. 쿠로다 미키(미코) 미코는 언제나 미키의 그늘에 가려 지냈고, 미코라고 불리며 미키에게 이름마저 빼았긴 셈이다. 그래서 미코에게 마유타(쿠쿤)의 "누군가 나를 사랑해서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게 해줘"라는 고백은 남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로 다가왔을 것이다. 하지만 열등감과 질투심을 가지는 동시에 미키를 사랑하고 있었고, 그 마음은 데빌맨이 된 뒤 남아있는 본능 중 하나일 정도였다. 미키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는 자신을 깨닫고 분노하는 건, 그 사랑을 인정하는 게 미키에게 이길 수 없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 미코에게는 미키에게 이겨 이름을 되찾는 것이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는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코는 결국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한다. 바로 미키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인정하는 것이다. 미키를 미워하는 자신, 미키를 사랑하는 자신을 모두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장면은 정말 뭉클했다.좋아요68댓글0
Alexiah4.0데빌맨이 되어 악마들을 무찌르는 히어로의 이야기가 아닌 어떻게든 인간을 믿어보고자 애쓰고 발악했던 한 남자의 슬픈 이야기. 이토록 나약하고도 슬픈 주인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모든 만화의 클리셰를 처참히 깨부수는 이야기에 충격적인 후반부 전개까지도 너무 슬펐던 애니. 또 애니만이 표현할 수 있는 독특한 작화도 마음에 들었다.좋아요61댓글0
김다정4.01. 작화퀄 등등을 보면 당연히 ova에 쳐발린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데빌맨 영상화 작품중에선 원작처럼 가장 '강렬한' 작품. 2. Pc충들은 왜 '19금 데빌맨'을 굳이 봐놓고서 포르노니 선정성이니 타령인거냐 3. 세상은 사악하고 절망적이지만 사랑이 있기에 아픔을 딛고 함께 싸워낼 수 있는 것. 이걸 상징하는 미키라는 캐릭터는 Pc충들 시비터는 것마냥 소모품이 아니라 작품의 핵심을 관통한다. 4. 사운드트랙이건 각종 사운드건 소리면에선 완벽. 특히 사운드트랙 진짜 죽여줌. 작화부족을 연출과 사운드로 메꿈.좋아요30댓글0
무면4.5신이 하는 일은 인간이 감히 행할 수 없는 일이지만 악마가 하는 일은 인간이 행하는 데 전혀 무리가 없다. . 일본 만화의 대들보 중 하나를 원작으로 삼아 애니화하면서 어떤 두려움 없이 그것을 변주해 나아가는 감독의 역량에 감탄좋아요29댓글0
홀든 콜필드4.5<에반게리온>, <베르세르크>, <기생수>, <나루타루> 등 수 많은 후대 작품들의 아버지격이라는 데빌맨을 리메이크로 처음 접하게 되었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이걸 이제야 알게 되다니. 다른 작품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다는 걸 보는 내내 느낄 수 있었고, 때문에 데빌맨 세계관에 소름이 돋았다. 제대로 취향저격 당했다. 원작을 모르기 때문에 본 작품만 가지고 말하자면 먼저 유아사 마사아키는 정말 대단하다. <마인드 게임>에서 느꼈던 카타르시스와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의 궤변을 적절히 섞은 아스트랄한 작품. 그로테스크가 주는 쾌감과 과하지 않은 사이코틱한 은유. 과연 무엇이 악인지 그로 인한 선은 무엇인지 유치한듯 하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직설법으로 끊임없이 화두를 던진다. 또한 악을 주로 다루는 작품답게 퇴폐의 선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곡예를 부린다. 더 자극적이었어도 참 좋았을 것 같은데 아쉽진 않았다. 그리고 또 하나 놀라웠던 것은 랩을 활용한 함축이었는데, 이건 가히 미쳤다고 볼 수 있다. 환호 지를 뻔.좋아요28댓글0
filmxyz3.5악마같은 인간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결말은 문자그대로의 ‘충격과 공포’. 많이들 거론하는 9화는 절망이 가득했고, 10화는 그마저도 없었다.좋아요28댓글0
김재민
5.0
수많은 걸작을 아류로 만들어버리는 눈부신 오리지널리티, 대담하고 현란하게 그것을 구사하는 유아사 마사아키 . 아래는 강한 스포일러를 포함한 캐릭터별 분석. . 1. 아스카 료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캐릭터이다. 작품은 "사랑은 없다."는 료의 독백으로 시작해 아키라에게 "내 곁에 있어 줘."라고 울부짖는 사탄의 독백으로 끝난다. 알고 나서 보면 료는 사실 아키라를 사랑했다는 흔적이 곳곳에서 엿보인다. 하지만 그는 사랑은 없다고 믿었고, 자신의 감정마저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게 모든 비극의 원인이며 끝내 본인까지도 불행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에겐 미코, 미키, 아키라에게서 이어진 바톤을 료가 받지 않고 바닥에 떨어트리는 장면이 가슴이 미어질 정도로 슬펐다. 그는 인류에게도 자신에게도 가혹한 대가를 치르게 한 뒤에야 사랑을 배우게 된 것이다. 원작은 안 봤지만, 원작에 비해 전체적인 캐릭터성이 어린 애처럼 변한 것 같다. 인류가 멸망해야 하는 이유가 '지구를 더럽히기 때문에'에서 단순히 '약하기 때문에'로 변한 것이나, 아키라와 싸운 이유도 '아키라를 사랑하지만 어쩔 수 없이'에서 감정을 자각하지 못한 채 '아키라가 자신을 거스르니까'로 변한 것 등. 원작의 사탄 팬이라면 실망할지 모르겠만, 내 입장에서는 적절한 변경이었다. '인간은 악하다'는 아이디어는 데빌맨 원작 이후에 너무나도 많이 우려먹어 이미 한참 낡아버린 주제기 때문이다. 하지만 힘의 논리는 어떤 의미에서 절대적이며 영원히 낡지 않을 것이다. . 2. 후도 아키라 작품의 주인공이지만, 사실 아주 수동적인 캐릭터이다. 어릴때부터 툭하면 남을 위해 우는 울보일만큼 선한 본성을 가졌다. 하지만 그때문에 남을 너무 쉽게 믿어버리고 휘둘린다. 의존할 대상이 필요한 것처럼 보일 정도다. 그래서 작중의 아키라를 둘러싼 인간관계는 아스카 료와 마키무라 미키가 줄다리기를 하는 모양새가 된다. 최강의 악마 아몬에게 지지 않고 마지막까지 인간으로서의 이성을 유지한 채 싸우기를 결심하는 주체성을 마지막까지 보여주지만, 그건 모두 미키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 3. 마키무라 미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사건을 일으킨 건 사탄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아키라를 움직인 건 언제나 미키였다. 아키라에게 싸워야할 이유, 그 이전에 인간이어야 할 이유를 부여해준 것이 바로 미키다. 미키는 정말 강한 캐릭터이다. 사람들에게 의심받고 스스로도 확신이 없을 때 처음부터 아키라의 마음은 변한 적이 없다고 믿고 구해준 것도, 죽음을 각오하고 아키라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고 호소한 것도, 다른 데빌맨들이 "나도 데빌맨이다"를 외치며 최후에 아키라와 함께 싸우게 만든 것도 모두 미키다. 그렌라간에서의 시몬의 형 카미나와 비교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도 훨씬 근원적인 역할을 하는 캐릭터이다. 어쩌면 '사람 사이의 사랑과 믿음' 그 자체를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4. 마키무라네 가족들 모두 정말 강하고 올곧은 캐릭터들이었지만 그렇기에 그들이 맞은 비극은 더 끔찍하게 느껴진다. 남동생 타로는 7화 시작부터 데빌맨으로 변한다. 타로의 자아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었으므로 악마가 아닌 데빌맨으로 변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하지만 식욕과 충동이 강해지는 건 마찬가지이다. 타로가 사람을 해치지 않도록 어머니인 아키코는 타로에게 자신을 잡아먹도록 한다. 그리고 그 장면을 아버지인 노엘이 보고 만다. 노엘은 갈등한다.그것은 여전히 내 아들인가, 그렇지 않은가. 그것을 쏴야하는가, 아닌가. 어느 쪽이든 지옥으로 향하는, 출구 없는 딜레마 속에서 노엘이 번뇌하는 모습은 모든 매체를 통틀어 내가 접한 절망 중 가장 깊은 것이었다. 영화 <곡성>에서 본 딜레마가 떠올랐다. 가장 깊은 절망은 딜레마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 5. 쿠로다 미키(미코) 미코는 언제나 미키의 그늘에 가려 지냈고, 미코라고 불리며 미키에게 이름마저 빼았긴 셈이다. 그래서 미코에게 마유타(쿠쿤)의 "누군가 나를 사랑해서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게 해줘"라는 고백은 남이 아닌 자신의 이야기로 다가왔을 것이다. 하지만 열등감과 질투심을 가지는 동시에 미키를 사랑하고 있었고, 그 마음은 데빌맨이 된 뒤 남아있는 본능 중 하나일 정도였다. 미키에게 웃으며 손을 흔들어주는 자신을 깨닫고 분노하는 건, 그 사랑을 인정하는 게 미키에게 이길 수 없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 미코에게는 미키에게 이겨 이름을 되찾는 것이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는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미코는 결국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한다. 바로 미키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인정하는 것이다. 미키를 미워하는 자신, 미키를 사랑하는 자신을 모두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장면은 정말 뭉클했다.
Alexiah
4.0
데빌맨이 되어 악마들을 무찌르는 히어로의 이야기가 아닌 어떻게든 인간을 믿어보고자 애쓰고 발악했던 한 남자의 슬픈 이야기. 이토록 나약하고도 슬픈 주인공을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모든 만화의 클리셰를 처참히 깨부수는 이야기에 충격적인 후반부 전개까지도 너무 슬펐던 애니. 또 애니만이 표현할 수 있는 독특한 작화도 마음에 들었다.
시예
4.0
현대적인 사운드트랙에 휘몰아치는 전개, 과격한 묘사는 덤
빼액종우
3.5
결말이 역대급으로다가 충격적이었다.
김다정
4.0
1. 작화퀄 등등을 보면 당연히 ova에 쳐발린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데빌맨 영상화 작품중에선 원작처럼 가장 '강렬한' 작품. 2. Pc충들은 왜 '19금 데빌맨'을 굳이 봐놓고서 포르노니 선정성이니 타령인거냐 3. 세상은 사악하고 절망적이지만 사랑이 있기에 아픔을 딛고 함께 싸워낼 수 있는 것. 이걸 상징하는 미키라는 캐릭터는 Pc충들 시비터는 것마냥 소모품이 아니라 작품의 핵심을 관통한다. 4. 사운드트랙이건 각종 사운드건 소리면에선 완벽. 특히 사운드트랙 진짜 죽여줌. 작화부족을 연출과 사운드로 메꿈.
무면
4.5
신이 하는 일은 인간이 감히 행할 수 없는 일이지만 악마가 하는 일은 인간이 행하는 데 전혀 무리가 없다. . 일본 만화의 대들보 중 하나를 원작으로 삼아 애니화하면서 어떤 두려움 없이 그것을 변주해 나아가는 감독의 역량에 감탄
홀든 콜필드
4.5
<에반게리온>, <베르세르크>, <기생수>, <나루타루> 등 수 많은 후대 작품들의 아버지격이라는 데빌맨을 리메이크로 처음 접하게 되었고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이걸 이제야 알게 되다니. 다른 작품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다는 걸 보는 내내 느낄 수 있었고, 때문에 데빌맨 세계관에 소름이 돋았다. 제대로 취향저격 당했다. 원작을 모르기 때문에 본 작품만 가지고 말하자면 먼저 유아사 마사아키는 정말 대단하다. <마인드 게임>에서 느꼈던 카타르시스와 <밤은 짧아 걸어 아가씨야>의 궤변을 적절히 섞은 아스트랄한 작품. 그로테스크가 주는 쾌감과 과하지 않은 사이코틱한 은유. 과연 무엇이 악인지 그로 인한 선은 무엇인지 유치한듯 하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직설법으로 끊임없이 화두를 던진다. 또한 악을 주로 다루는 작품답게 퇴폐의 선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곡예를 부린다. 더 자극적이었어도 참 좋았을 것 같은데 아쉽진 않았다. 그리고 또 하나 놀라웠던 것은 랩을 활용한 함축이었는데, 이건 가히 미쳤다고 볼 수 있다. 환호 지를 뻔.
filmxyz
3.5
악마같은 인간들이 판치는 세상에서,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결말은 문자그대로의 ‘충격과 공포’. 많이들 거론하는 9화는 절망이 가득했고, 10화는 그마저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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