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자 서문
들어가며
희망과 행위
희망과 인식
삶의 형태로서의 희망
미주
색인
불안사회
한병철 · Social Science/Humanities
172p

![[운영] <만약에 우리> 1000 캐시백_보드배너](https://an2-img.amz.wtchn.net/image/v2/T2XWO8sp57dxThcuH2WbGw.jpg?jwt=ZXlKaGJHY2lPaUpJVXpJMU5pSjkuZXlKdmNIUnpJanBiSW1KbklsMHNJbkFpT2lJdmRqSXZjM1J2Y21VdmNISnZiVzkwYVc5dUx6STFNRE01T0RVNU1URTFNakV5TmpZaWZRLmxRUnhKZDJxUi1vYVdHcjR4bzFFS3dJRVJxM3pGemZTeWVKemlqRkxSbmM=)
![[운영] <만약에 우리> 1000 캐시백_보드배너](https://an2-img.amz.wtchn.net/image/v2/NCIXGDs3-yKIR6aK2qBkNw.jpg?jwt=ZXlKaGJHY2lPaUpJVXpJMU5pSjkuZXlKdmNIUnpJanBiSW1KbklsMHNJbkFpT2lJdmRqSXZjM1J2Y21VdmNISnZiVzkwYVc5dUx6ZzJNak00T1RBME5qRTBOelV5TXlKOS5YT2NoLXpsZUsyanl2OFRuWVJGUm80Q2tKWU04OGpQVko0OXhNOTZnRHlN)
10년 전 『피로사회』로 한국에서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던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철학자 한병철의 또 하나의 논쟁적 저작.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라고 말하는 그는 최신작 『불안사회』에서 이 시대의 질병을 ‘불안’이라 진단하며 불안이 잠식한 사회에서 끊어져 버린 연대와 만연한 혐오에 경종을 울린다. 불안을 체제적으로 사용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희망하는 법을 잃어버렸다. 이 책은 짙은 불확실성과 깊은 무기력에 빠진 현대인의 삶에 필요한 것은 ‘희망’임을 강조한다. 불안에 잠식되어 미래를 그리지 못하고 과거의 트라우마에 빠져 허우적대는 삶은 그야말로 ‘생존의 삶’ 그뿐이다. 실패에 대한 불안, 소외에 대한 불안, 도태에 대한 불안… 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그저 살아남기 위해 달려간다. 문제는 질병처럼 창궐하는 불안이다. 엄습하는 정체 모를 위협감에 대화와 경청, 공감과 화해가 붕괴된 사회는 감옥과 다름없다.
지금,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 🖤
~3/10까지 '고마워' 1,000 캐시 선착순 증정!
왓챠 개별 구매
지금,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 🖤
~3/10까지 '고마워' 1,000 캐시 선착순 증정!
왓챠 개별 구매
Where to buy
본 정보의 최신성을 보증하지 않으므로 정확한 정보는 해당 플랫폼에서 확인해 주세요.
Author/Translator
Comment
30+Table of Contents
Description
피로사회에서 불안사회로…
시대적 상처를 진단하는 철학자 한병철,
불안의 시대에 공감과 연대의 힘을 역설하다!
“왜 우리는 희망하는 법을 잃어버렸나?”
10년 전 『피로사회』로 한국에서 뜨거운 반향을 일으켰던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철학자 한병철의 또 하나의 논쟁적 저작.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라고 말하는 그는 최신작 『불안사회』에서 이 시대의 질병을 ‘불안’이라 진단하며 불안이 잠식한 사회에서 끊어져 버린 연대와 만연한 혐오에 경종을 울린다. 불안을 체제적으로 사용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희망하는 법을 잃어버렸다. 이 책은 짙은 불확실성과 깊은 무기력에 빠진 현대인의 삶에 필요한 것은 ‘희망’임을 강조한다. 불안에 잠식되어 미래를 그리지 못하고 과거의 트라우마에 빠져 허우적대는 삶은 그야말로 ‘생존의 삶’ 그뿐이다. 실패에 대한 불안, 소외에 대한 불안, 도태에 대한 불안… 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그저 살아남기 위해 달려간다. 문제는 질병처럼 창궐하는 불안이다. 엄습하는 정체 모를 위협감에 대화와 경청, 공감과 화해가 붕괴된 사회는 감옥과 다름없다.
미래도 없고, 연대도 사라지고 깊은 무기력에 빠진
현시대에 대한 통렬한 비판 『불안사회』 출간!
“왜 우리는 희망하는 법을 잃어버렸나?”
팬데믹, 전쟁, 기후위기가 불러일으키는 거시적 불안부터 취업난, 노후빈곤, 물가상승이 불러일으키는 일상적 불안까지 우리 사회는 그야말로 다중 위기 속에 놓여있다. 하나의 재앙에서 다음 재앙으로 마치 줄타기하듯 이어지는 삶에서는 불확실성의 공포와 짙은 무기력이 동시에 느껴진다.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철학자인 한병철은 신작 『불안사회』에서 이 시대의 질병을 ‘불안’이라 진단하며, 난무하는 불안에 미래와 자아를 빼앗긴 현대인의 삶을 적나라하게 꼬집는다. 물론 미래에 닥칠 위험을 감지하고 우려하는 것은 정당한 불안이다. 문제는 질병처럼 ‘창궐’하는 불안이다. 불안을 자극하기 위한 모든 행위는 결코 미래지향적이라고 볼 수 없다. 엄습하는 정체 모를 위협감에 대화와 경청, 공감과 화해가 붕괴된 사회는 감옥과 다름없다. 불안만으로는 미래에 닥칠 그 어떤 문제와 위험에도 적절히 대비할 수 없다.
이 책을 먼저 접한 해외의 독자들은 “한마디로 최고다”, “그는 언제나 우리 사회와 정신에 대해 아주 훌륭한 성찰을 내놓는다”, “독자들을 철학과 문학의 역사를 가로지르는 지평선 너머로 데려가는 책”이라며 그의 메시지에 열광했다. 실패에 대한 불안, 소외에 대한 불안, 도태에 대한 불안… 우리는 모두 끊임없이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그저 살아남기 위해 앞으로 달려나가고 있다.
“무엇이 우리를 계속 불안하게 하는가!”
가쁜 숨을 몰아쉬는 생존사회에서
우리를 병자로 만드는 ‘불안’에 대한 고찰
우리를 집어삼킨 불안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력해지고 있다. 안정적인 미래를 그릴 수 없는 불확실성 속에서 사람들은 쫓기듯 주식 투자를 하고, 이른바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로 집을 산다. 직장에서는 더 좋은 성과를 내기 위해 체력과 정신을 갈아 넣고, 혹시 모를 나중을 위해 진심 없는 인간관계에 매달리기도 한다. 전에 없던 펜데믹을 겪은 후 상황은 더 나빠졌다. 전쟁, 기후위기와 같은 재난 상황에서 국가나 체제가 우리를 도울 수 없다는 불신은 우리 사회를 더욱 개인주의적으로 만들고 있다. 안개 속에 갇힌 미래를 위한 끊임없는 희생과 막연한 비상체제에 사람들은 지쳐가고, 그 와중에도 늘어만 가는 경쟁과 성과 강박 속에서 연대와 공감은 힘없이 붕괴된다. 실패에 대한 불안, 뒤따르지 못하거나 도태될 거라는 불안이 우리의 자아를 빼앗는다.
이에 한병철은 『불안사회』에서 무엇이 우리를 계속 불안하게 만드는지, 불안이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면밀하게 고찰한다. 오늘날의 불안은 사실 영구적인 재앙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불안의 체제로 인한 것이다. 이 체제는 사람들을 서로에게서 떼어 내 개인으로 존재하도록 만든다. 끊임없는 경쟁과 성과에 대한 강박은 연대를 끊고 개인을 고립시킨다. 불안이 지배한 곳에 자유란 없다. 불안과 자유는 상호 배타적이기 때문이다. 불안은 사회 전체를 감옥, 수용소로 만들어 버린다. 불안은 이정표는 세우지 않으면서, 오로지 경고 표지판만을 세울 뿐이다.
그렇기에 불안사회에서 사람들은 늘 불안에 찬 눈으로 삭막한 미래를 곁눈질할 뿐이다. 어디에도 희망은 없어 보인다. 사람들은 하나의 위기에서 다음 위기로, 하나의 재앙에서 다음 재앙으로, 하나의 문제에서 다음 문제로 줄타기를 하며 살아간다.
우울하고 탈진한 미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유일한 해결책
“절망이 깊을수록 희망은 강렬해진다, 그것이 희망의 변증법이다”
불안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저자는 ‘희망’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말한다. 저자가 말하는 희망은 낙관주의와는 완전히 다르다. 절망 속에서도 나아가려 애쓰는 마음인 희망과 달리 낙관주의에는 부정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희망은 ‘전진’이다. 미래도 없고, 연대도 사라지고 깊은 무기력에 빠진 현시대에 필요한 것은 바로 ‘희망’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대인에게 ‘희망’에 관한 긍정적인 기억 따위는 없다. 예전부터 희망은 현실을 보지 못하게 하고, 의미 없는 환상을 만들어내며, 실제 삶으로부터 사람들을 멀어지게 한다고 여겨졌다. 심지어 희망한다는 것은 도피하는 것, 발 디디고 살아야 하는 현재의 삶을 거부하는 것과 동일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한병철은 이 책에서 희망에 관한 기존의 생각들에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도대체 희망이 소위 ‘회피’하는, 심지어는 ‘배신’한다고들 말하는 ‘삶 자체’ 또는 ‘그 자체로 서의 삶’이란 무엇인가? 그저 영양분을 섭취하면 되는, 생존에 필요한 영양만 있으면 되는 삶인가? ‘관념’도 없이, ‘의미’도 없이 그럭저럭 살아지는 ‘그 자체로서의 삶’은 과연 생각할 수 있는, 갈망할 가치가 있는 삶인가?”
_『불안사회』 45쪽
『불안사회』에서는 철학자 스피노자, 비트겐슈타인, 에리히 프롬, 하이데거를 비롯해 작가 잉게보르크 바흐만, 바츨라프 하벨, 아힘 폰 아르님까지 다채로운 인용을 통해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는 이 책을 통해 그동안 비판적으로 인식되었던 희망을 샅샅이 해부해 그 실체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희망에 관해 제대로 아는 것에서부터 사회적ˑ개인적 불안이 치유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불안의 시대에서 연대와 공감, 희망을 외면한다면 우리는 결코 위기를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이것이 우리가 불안의 공포 대신 희망의 정신을 가르치고 배워야 하는 이유다.



진태
3.5
<피로사회>의 변용
모나드25
3.0
절망을 모르는 자들이 어찌 희망을 알겠는가. 희망은 하는게 아니라 불러일으켜지는, 아마 그런것이리라. "가능하지 않은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긴장은 믿음의 행위가 되어 미래를 열고 언어를 지속시킨다."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힘은 내재적인 것이 아니라 외부적 소여일 수밖에는 없다. 그것이 아니라면 내발적인 힘vis으로의 희망은 낙관이나 무지성 고집, 살기위해 스스로 꾸며낸 거짓과 구별되지 못한다. "절대적인 절망 앞에서도 나를 세우고 심연 속에서 서 있을 힘을 주는 것은 초월성을 지닌 타자의 존재다." 맞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희망함의 원천이 절망을 안겨준다면 어쩔 것인가? 희망할 수 있게 하던 대문자타자 때문에 절망하게 될 수도 있다...
COZYBOY
4.0
그럼에도 불구하고
Godo
4.0
희망의 사유는 내가 아닌 우리를 신뢰하는 것 불안이 아닌 희망에 대한 철학적 담론. 저자의 [서사의 위기]와 함께 읽어보면 좋을 듯 하다. p.25 “희망은 긍정적 사고와는 다르다(…) 긍정적 사고와 반대로, 희망은 삶의 부정성을 외면 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정성을 기억하려 하는 것이 희망이다. 희망은 사람들을 분리하지 않 고 연결하며 화해시킨다. 희망의 주체는 '우리'다.” p.145 “희망은 '자기' 안에서 힘을 만들지 않는다. 희망의 중심이 자기'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희망하는 이는 타인을 향해 나아간다. 희망하는 이는 '자기'를 넘어서는 일을 신뢰한다. 따라서 희망은 믿음에 가깝다. 절대적인 절망 앞에서도 나를 세우고 심연 속에서 서 있을 힘을 주는 것은 초월성을 지닌 타자의 존재다. 희망하는 이는 자기 자신의 힘으로 서 있는 것이 아니다. 하벨은 이러 한 이유로 희망이 그것의 근본을 초월적인 것에 두고 있다고, 즉 희망이 먼 것에서 온다고 생각했다.”
팜므파탈캣💜
3.5
피로한 불안사회에서 우리가 쫓아야 할 진짜 희망이란. 개념에 반전을 전해주는 수학 공식 풀이같아 쉽고 재미있다. 250302 (3.4) - 1. “종말론이 호황이다. 심지어 상품으로도 나온다” 2. “불안은 자유와 양립할 수 없다. 불안은 민주주의의 적이다“ 3. “문제는 질병처럼 ‘창궐’하는 불안의 기후다. 문제는 팬데믹에 대한 불안이 아니라, 불안의 팬데믹이다. 불안을 유발하는 사회운동은 결코 미래지향적 운동이라 볼 수 없다” 4. “불안에 빠진 사람의 눈에 이 세상은 감옥처럼 보일 뿐이다. 그에게 열린 공간으로 인도하는 문은 전부 닫혀 있다. 불안은 미래를 가로막고, 가능한 것과 새로운 것으로 향하는 통로를 차단해 버린다” 5. “희망의 정령 엘피스가 밤의 여신 닉스의 자식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닉스의 형제 중에는 심연의 신 타르타로스와 암흑의 신 에레보스 말고도 사랑의 신 에로스가 있다. 엘피스와 에로스는 친척 관계인 셈이다. 희망은 이렇듯 변증법적 모습을 띠고 있다. 절망이 지닌 부정성의 방향은 본질적으로 희망을 향해 있다“ 6. “비관주의도 근본적으로 낙관주의와 다르지 않다. 낙관주의자와 비관주의자는 가능성을 보는 눈이 멀어 있다” 7. “디지털 커뮤니케이션은 사람들의 고립을 심화한다.관계 맺기는 연락으로 대체된다. 거기에 접촉이란 없다. 타자가 ‘너’에서 ‘그것’, 즉 나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거나 나의 자아를 확인하는 목적에 지나지 않는 하나의 대상으로 전락할 때 타자와의 관계는 근본적으로 그 힘을 잃고 약해진다. 반사된 나 자신을 보기 위한 역할만을 부여받은 타자는 그의 다름Andersheit, 그의 타자성Alterität을 상실하게 된다. 연결과 접촉의 부재를 야기하는 사회의 늘어가는 자기애는 불안을 강화한다. 희망은 우리를 고립시키지 않고 연결하며 공동체화한다는 점에서 불안의 반대 개념이자 ‘반대 기분Gegenstimmung’이다” 8. “극도의 회피, 그건바로 희망이다. 희망한다는 것은 결국 포기를 의미한다“ “알베르 카뮈는 희망의 능동적인 면을 간과했다” 9. “희망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모든 악에도 불구하고 삶을 포기하지 않게 해 준다. 니체는 희망을 삶에 대한 단호한 긍정으로,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정의한다“ 10. ”제우스는 인간이 다양한 불행을 만나며 고통받더라도 삶을 체념해 버리는 게 아니라 새로운 불행에 또다시 고통받는 한이 있더라도 앞으로 계속 나아가기를 원했다. 제우스는 그런 식으로 인간에게 희망을 부여했다” 11. “스피노자에게도 희망은 비이성적인 것에 속했다” 12. “소원과 달리 희망은 서사적 욕망을 자극한다” 13. “언어를 쓰는 이들만이 희망할 수 있다. 동물의 언어에 공간적 미래를 포함할 수 없다. 희망은 미래에 존재한다. 동물은 내일이라는 개념을 이해할 수 없다. 내일이라는 개념은 서사적 성격을 띄고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물은 이러한 서사적 미래에 접근할 수 없다“ 14. “희망은 행위의 환상을 자극한다” 15. “‘활동하는 희망’은 미래를 계획하고 미래를 향한 낮의 꿈으로, 그 닻을 현실에 내리고 있다. 활동하는 희망은 낮의 꿈을 꾸며, 행위하기로 결심한다. 낮의 꿈은 결국 행위의 꿈이다. 행위의 꿈은 보다 나은 새로운 삶을 위해 눈앞의 나쁜 것을 없애는 꿈이다” 16. “밤의 꿈에는 유토피아적 움직임이 없다. 밤의 꿈은 행위하는 것을 싫어한다. 혁명가들은 낮의 꿈을 꾼다. 혁명가들은 앞을 향한 꿈을, 그것도 함께 꾼다. 세상을 더 낫게 만들고자 하는 꿈은 강렬한 희망에서 유발된 낮의 꿈이다. 밤의 꿈에 희망의 자리는 없다. 밤의 꿈은 대부분 소원과 불안의 꿈이다“ 17. “희망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내재해 있다. 시인이 말하는 한, 세상에 희망은 있다. 희망은 글쓰기에 있어 발효제와도 같다. 시는 희망의 언어다“ 18. “흩어져 사라지더라도, 나는 그것을 즐거이 잃겠다. (…) 나는 더 이상 나를 위한 그 무엇도 하고 싶지 않다. 나는 무너져 버리고 싶다. 무너진다는 것–그것은 바다로 가서 다시 보헤미아를 찾는 것이다. 밑바닥에 도달하면, 나는 다시 조용히 눈을 뜰 것이다. 그때 비로소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직 나를 잃지 않았다는 것을” 절대적 절망에 맞서는 절대적 희망에 프란츠 카프카의 시가 인용되었는데, 한참 삶이 힘들 때 자주하던 말이라 놀랐다 19. “도착하지 않음이 절대적 희망의 본질이다. 희망은 삶에 태연과 확신을 부여한다” 20. “사유이미지는 신체적 차원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 느낌, 감정, 정서, 자극 없이 인식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것들이 사유를 활성화한다. 이것이 바로 인공지능이 사유할 수 없는 이유다. 느낌과 정서는 아날로그적이고 신체적으로 일어나는 사건이므로 알고리즘으로 나타내기 불가능하다” 21. “ 바보가 될 수 있는 사람만이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고, 이미 존재하는 것들과의 근본적인 단절을 할 수 있으며, 기존의 존재했던 것을 떠나 앞으로 도래할 것으로 나아갈 수 있다. 바보만이 희망할 수 있다” 22. “타자와의 생생한 관계인 에로스는 ‘사유 자체를 가능케 하는 조건이자 살아 숨 쉬는 범주이자 초월적 체험’이다. 에로스 없이는 동일함의 지옥에 갇히게 된다. 인공지능은 친구도, 연인도 없으므로 사유할 수 없다. 인공지능에게 에로스는 없다. 인공지능에게는 타자를 향한 욕망이 없기 때문이다“ 23. “불안에 처해 있을 때, 현존재가 비로소 세인에 맞서 자신의 가장 고유한 ‘자기das Selbst’를 붙잡고 자신의 가장 고유한 ‘존재할 수 있음’을 실현할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이 바로 『존재와 시간』의 핵심이다. 불안이 비로소 그러한 소외 관계를 종결짓는다. 불안 속에서 현존재는 종국에 자기 자신sich selbst을 발견한다. “낯섦 속에서 현존재는 근본적으로 자기 자신과 함께하게 된다”“ 24. “희망은 메시아적 기분이다“ 25. 이 관점이 재미있네. 인간은 사유함으로서 고유할 수 있고 기분이 사유의 시작. 사유하지 못하는 낙관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개인이 없어진 소외된 상태이지만 불안을 기분하면서 비로소 고유한 존재가 되고 그 불확실한 부정적 감정 속에서 나아가려는 불확실한 행동하는 긍정 희망을 해 전진한다는 것. 캬 26. “‘죽음을 향해 달려감’이 아니라 ‘새로운 탄생을 향해 달려감’이 희망하는 사유의 작동 방식이다. ‘세계로 나아감’, 즉 탄생이 희망의 기본 공식이다” 27. 무지성 희망이 불안으로 가득한 피로한 사회에 얼마나 폭력적인지, 진짜 낮의 꿈을 꾸는 희망이 무엇인지. 우리가 불안한 이유는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한지, 엄청 체계적으로 잘 설명해준다. 와 재밋는데?
천만배우김현진
4.0
늘 그렇듯 현 사회에 대한 한병철의 진단은 변함이 없으나, 이제는 그 너머를 바라보려는 사유의 태동이 느껴진다. 앞으로의 책이 기대된다
지유우
4.5
그동안 내 삶의 과업은 비관 속 낙관을 찾는 일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제 깨달았다. 내 삶의 과업은 그것이 아니라 절망 속 희망을 찾는 일이라고. 이제서야 나는 진실로 희망을 믿는다.
홍태희
3.0
주제를 내내 반복하며 주창하면서도 조금씩 내용을 변형하고 차츰 쌓아가는 게 한병철의 매력이라고 생각하는데, <불안사회>는 주제의 유의어들만 잔뜩 늘어놓는 느낌이다. 책이 이야기하는 ‘희망’에 전혀 공감이 안 간다. 스르륵 책장 넘기면서 시간 떼우기엔 좋다
Please log in to see more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