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본주의의 종말보다 세계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이 더 쉽다
2. 여러분이 시위를 조직하고 모두가 참여했다. 무슨 일이 벌어질까?
3. 자본주의와 실재
4. 반성적 무기력, 안정 지향, 자유주의적 공산주의
5. 1979년 10월 6일: “어디에도 정 붙이지 마”
6. 견고한 모든 것이 홍보 속으로 사라진다: 시장 스탈린주의와 관료주의적 반생산
7. “하나의 현실과 다른 현실이 중첩되는 것을 당신이 볼 수 있다면”: 꿈 작업과 기억 장애로서의 자본주의 리얼리즘
8. “중앙 교환국은 없다”
9. 마르크스주의적 슈퍼 보모
부록. 우리는 현실주의자가 될 여유가 없다: 마크 피셔와 조디 딘의 대담
옮긴이의 글
자본주의 리얼리즘
마크 피셔
176p

오늘날의 자본주의를 간명하게 묘사하는 표현은 "자본주의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보다 세계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이 더 쉽다"일 것이다. 자본주의가 우리의 삶뿐 아니라 가능성과 상상력의 지평까지 잠식해 버린 것이다. 이 책은 이렇게 변화된 이데올로기적 환경을 '자본주의 리얼리즘'이라 명명한다. 자본주의는 스스로가 유일하게 유지 가능한 체계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모순과 비일관성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책은 자본주의 리얼리즘이 품고 있는 아포리아가 특히 두드러지는 현장으로 '새로운 관료주의'와 '개인화된 정신 건강'에 주목하고, 이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새로운 집합적 주체의 출현을 요청한다. 기존의 이론적 개념들을 이용해 각종 문화 현상을 명민하게 분석하는 이 책으로 마크 피셔는 동시대 영국의 가장 중요한 이론가 대열에 속하게 되었다. 더불어 이 책은 정치 에세이의 전통에 속해 있기도 하며, 당시 새롭게 등장한 정치 운동과 호흡을 같이하며 젊은 세대 공중의 지지를 얻기도 했다. 나아가 자본주의 리얼리즘이 초래한 문화 변동 및 새로운 집단적인 심리 구조 등은 우리 사회로 가져와 다시 읽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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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4340
4.5
벗어나기엔 너무 멀리와버린 세상. 그래도 쉽고 설득력있는 진단을 내린다. 유토피아는 없다!
상맹
4.0
쉽게 쓰기가 더 어려운 시대에 프레드릭 제임슨을 이은 문화적 맑스주의적 자본주의 비판. 야 왜 자본주의 바깥은 없다고 상상해 그게 자본주의 리얼리즘이야. 냉소와 허무주의 그리고 상상력 부재. 이데올로기도 아닌, 어떤 만연한 분위기에 가까운 자본주의 리얼리즘 - 냉소주의 이데올로기. 아이러니하게 행하고 있는 것. 반성적 무기력. 쾌락을 추구하는 것 말고는 다른 무엇도 할 수 없는 무능. 지연의 형태로서의 통제. 수치라는 대타자와의 조우를 지연시키는 것. 실재와 현실은 다르다. 실재는 현실이 반드시 억압해야하는 것으로 현실의 장 내에 있는 '균열'과 '비일관성'에서만 엿볼 수 있는 어떤 외상적 공백이다. 자본주의 리얼리즘에 대항하는 한 가지 전략은, 실재들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0과 1의 이분법으로 수치화되는 현실의 영역으로 환원시킬수록 AI의 역량은 늘어나기만 한다. 대체가능한 것들을 만드는 사람들. 그 사이의 공백과 여백과 욕망의 지연. 새로운 기억들을 만들지 못하는 무능. 익숙한 것들로의 회귀. 일관되지 않고 빨리 변하는 사회이니 기억을 조작하고 편집해 일관성을 만드는. 장기적인 방향의 무의미성. 현재적이고 즉각적인 것의 특권화. 전 지구적 자본주의가 초래한 정부의 주변화라는 결과를 거부하면서 보모 국가는 지속적으로 적대시하는 태도. 총괄하는 관리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불가능한 것. 부정무신론.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질 수 없는 무엇이 거기에 있다는 뜻. ‘책임화’의 필요성. 탈개인화된 시대. 그렇다고 원인이 곳곳에 편재하기에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으로 끝날 수는 없음. 기업도 주체과 명확하지는 않음. 저자는 자본이라고 함. 아버지 없는 부성주의. ~는 하지말라고 하지만 억압하지 않고 모델을 제시하지도 않음.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는 알려주지만 우리가 무엇을 생각해야하는지는 더 이상 말해주지 않습니다. 도덕을 안내하는 체계가 아니라 감정을 안내하는 체계. 도덕성이 감정으로 대체됨. 부성주의적인 것에 대한 거부는 상향식 문화가 아니라 점점 유아화된 문화를 낳았다. 욕망을 제한할 필요성.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모를 때, 낯선 것, 예상하지 못한 것, 기이한 것등에 대한 갈망으로, 이런 종류의 위험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있고 그 욕망에 내기를 걸 수 있는 자. 반자본주의는 자본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자본의 경쟁 상대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그 자체의 진정한 보편성을 통해 자본의 세계화에 대항해야 한다. 새로운 좌파의 실천은 신자유주의가 만들었으나 만족시킬 수는 없었던 욕망들에 기반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 리얼리즘은 자본주의 바깥을 상상할 수 없게 하는 상상력의 후퇴(상상조차 할 수 없는), 정서적 무기력과 냉소주의에서 오는 것. 디지털 자극에 사람들이 언제나 접속해 있다는 사실은 획기적인 문화적 생산을 위한 조건들, 가령 모종의 침잠, 반성을 위한 공간, 몰입하는 능력 등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참신함과 혁신에 대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문화가 점점 동질화되고 예상 가능한 것으로 변화해왔다는 점. 쾌락주의적 우울증. 불면증주의적 서핑. 매혹과 권태의 혼합물. 공산주의가 아닌 텅 빈 기표로서의 ‘포스트자본주의’를 상상하기. Q. 자본주의 리얼리즘 시대의 습속들. 다른 형태의 기억들. 이 기억들로 꿈꿀 수 있는 것은? 가속주의 혹은 질주학을 멈추는 방법 말고, 어떤 것이 있을까. 다른 세계를 꿈꾸는 것 그것의 정치화방향은? 결국 네이션-상부, 문화-하부 모순된 이중구조로서 관광객의 철학인 것인가. 트랜스-폴리틱?
heyyun
4.5
생각할 거리 많음. 그러나 영국과 유럽에 국한된 이야기도 많다. 영국 정치에 관심도 지식도 없기에 잘 다가오지 않음. 1. 정신 질환이 만연한 것은 자본주의의 실패를 의미한다. 2. 세계는 서서히 망해갈 것이다. 3. 반성적 무기력(reflexive impotence)의 원인은 사회에 있다. 4.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홍보 속으로 사라져 간다. (근데 이건 사회주의에서도 해당돼서 .. 물론 그 형태는 다르겠지만) 5. 생태재앙의 원인은 어떤 비인간적인 구조다. 그러나 구조는 책임질 수 없다. 6. 자본주의 리얼리즘은 사고와 선택을 생존과 관련지어 모든 것을 탈정치화한다. 7. 소소한 쾌락들을 계속 소비한 결과가 어떤 전반적인 음울함이다. (소확행을 추구하는 사회는 결과적으로 서서히 망해갈 뿐) 8. 욕망을 제한할 필요가 있으므로 모종의 배급이 이루어져야 한다. ( 이런 일이 일어날까?..) 힙합의 부흥, 만연한 정신 질환, 부모와 교사의 역할 등 사회 전반을 꿰뚫는 지적들이 많다. 락의 쇠퇴의 이유가 자본주의 때문이라니.. 자본주의가 싫으면 북한에 가라, 는 대사가 나오다닠ㅋㅋㅋ ㅠ + 옮긴이 글을 읽으니 책의 저자는 우울증으로 자살을 했다고 한다. 휑하고 씁쓸하다. ++ 자본주의가 문화에 있어서 포스트모더니즘을 이끌었다 것도 나에겐 새로운 주장.
모나드25
4.5
후기자본주의 사회 진단과 분석, 비판에 공감가서 너무 좋았으나 내 일침을 가해야겠소. 자본주의는 더 큰 근대성(모더니티)의 일부인데, 당신처럼 알만한 자들도 근대적 시스템 안에서 사고하고 행위하니 맨 공허한 결론이 나오는거요. 완전히 다르게 사고하고 행위할 깜냥이 없으면 당신이 이미 썼던 것처럼 당신의 비판도 자본주의 작동에 도리어 창발적으로 기여할 뿐이오. 당신책을 서점에서 팔고, 또 팔려가지고는 안된단 얘기요. 이미 자본의 루프안에서의 소통이 어떻게 탈자본하겠냐 말이오? 이런 이야기가 출판-소통되는 맥락 자체가 이미 탈자본적이어야 된다는 얘기요.(왓차라는 플랫폼이 이미 지극히 자본적인데 무슨?) 예를들어 당신 책을 읽을 때 내가 돈을 지불하고 당신이 인세를 받는게 아닌 소통방식을 찾아봅시다.(불법복제하잔 얘기는 아니올시다) 교환양식이 아닌 무상증여나 호수성의 원리 말입습지. 책을 읽는 독자들이 돈을 받고 저자인 당신이 그들에게 돈을 내주는건 어떠시오? 그래도 책을 내시겠소이까? 어려우시겠지? 그럼 땡! 무슨말인고하면 이기심에 근원을 두는한 자본주의는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이외다. 그게 자본주의 외에 대안이 없는 이유요. 이타심(종교중세)이나 평등분배정의(공산주의)를 실험해 봤더니 다 망했잖소? 중공이고 소비에트고 권력적 전체주의 말고 뭐였소? 권력 역시 이기심의 한 양상이지요. 이기심을 긍정하고 활용하는 자본주의가 그래서 강할밖에. 여러 징후들에서 저항가능성을 찾으려 애쓰는 모습은 마치 자본주의는 자체모순(당신책에서는 갖가지 병증들) 때문에 망할거라는 막수스의 틀린 예언을 아직도 획책하고 있는 것처럼만 보여서 저으기 안쓰러웠소이다. acid코뮤니즘에 비해 알칼리현실이 너무 강하단 말이오. 자본주의는 나도 싫소만 어쩌겠소? 저쪽이 이기주의의 권총을 안내려놓으니 말이오. 이런 태도는 냉소주의적 이데올로기 복무라고 지젝-피셔 당신은 말하겠소만 이데올로기 바깥은 없다는 고데리다옹의 말씀처럼 당신이나 지젝 역시 이데올로기적인건 마찬가지요.어차피 이데올로기안에서 놀거라면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낫지않소? 아, 물론 대항정영의 꽃부리는 지젝쪽이 있어보이긴 하오나, 자본주의가 심화된 사회에선 비판도 자본 쌓아놓은 놈들이 할수있는 고급유희요. 체제비판조차 유한계급의 전유물이 돼버렸단 얘기요. 근데 홍대병 걸린 허영덩어리들 말고 유한계급중에서 돈쓰는 쾌락과 자본증식게임 않고 뭣하러 자본이후를 사고하고 실천하겠소이까? 프레카리아트들이 비록 그 수가 많다하나, 먹고살기 바빠 체제 인식이나 제대로 할수있겠소? 그러니 유대감의 손자뻘 되는자의 무리들이 세치혀를 놀리며 괴변으로 누항선동이나 일삼는게지요. 남는건 두가지 뿐이오. 자본주의가 병증자의 급속증가를 좌시하는 큰실수를 하거나 예상못한 우연한 카타스트로피가 오는게 유일희망이오. FJ식으로 종말이 오는게 차라리 더 쉽지요...그나저나 월가 점령은 왜 잠깐하고 말았소이까? 쫌 오래해서 내전상태로 갔으면 싹수가 보였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오. 하기야 일시적 오합지졸들이 거리로 나와서 우왕좌왕할밖에 다른 할 일 찾기가 쉬운건 아니지요...자본주의는 신체와 일상과 무의식까지 주조했으니 이젠 저항자체가 가능한지조차 한탄스럽구려...
왓챠정리몬함
4.5
모든 저항문화가 강력한 상품으로 포장된 이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끝에서 우리는 좌절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까? 새로운 ‘집합적 주체’를 발굴해내야 한다고 말하는 이 책의 저자 마크 피셔 또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 신자유주의의 세계적 부상은 그 ‘자유’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관료주의 지배질서를 한층 더 강화했다. 아렌트가 지적한 파시즘의 특성과 무섭게도 닮은 이 ‘포스트포드주의적 관료주의’는 더 이상 전제적인 수직구조가 아니라 ‘미로’로서 파악된다. 저 끝을 알 수 없는 신자유주의의 대타자는 개개인을 ‘자기 스스로 감시’하여 치열한 경쟁구조 속에 능동적으로 자신을 던지게 한다. _ “포스트포드주의의 심사제도를 없애는 일은 노예제를 없애는 것보다 더 불가능해 보인다.”
여욱
4.5
우리는 모순 속에 살고 있습니다. 야만적이고 극도로 불평등한 상황, 모든 존재가 오직 돈으로 평가되는 이 상황이 우리에게 이상적인 것으로 제시됩니다. 이미 확립된 질서를 옹호하는 자들이 아무리 자신의 보수주의를 정당화하려고 해도 진정으로 이 질서가 이상적이라거나 멋지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대신에 이들은 나머지 모든 것이 끔찍하다고 말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가령 우리가 완벽히 좋은 상황에서 살고 있지는 않을 수도 있지만 운 좋게도 완전히 나쁜 상황에서 살고 있지도 않다고, 우리의 민주주의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피로 얼룩진 독재보다는 낫다고, 자본주의는 부당하지만 스탈린주의 같은 범죄는 아니라고, 우리는 수백만 명의 아프리카인이 에이즈로 죽도록 방치하지만 밀로셰비치처럼 인종주의적인 민족주의를 선포하지는 않는다고, 우리는 비행기로 이라크인을 살해하지만 그들이 르완다에서 하듯 마체테로 사람 목을 베지는 않는다고 말이죠.
김동근
4.5
너희를 허무하게 하겠다. 힘을 지닌 자들의 구조는 흩고 숨겨, 너희 모두에게 문제의 책임을 나눠 지우마. 자본주의는 실패하였으나, 무엇이 대안이냐. 찾지 마라, 허무는 체념이 될 것이니, 너희는 문을 걸어 잠그고 침잠하라. 바뀔 수는 있으나 바뀌는 건 없을 것이다. 허무에 대한 반항의 대가는 '거대한 없음' 너희는 그 '없음'을 견뎌낼 수 있는가. 그 건조하고 역겨운 '리얼리티'에서 돌팔매를 들수 있는가.
더블에이
4.5
자본주의는 무섭다 그리고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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