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기 위한 사라지기 연습
빈칸이 되려는 언어의 은신술
제44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제44회 김수영 문학상 수상 시집 『회신 지연』이 민음의 시 338번으로 출간되었다. 수상자 나하늘 시인은 독립문예지 《베개》의 창간 멤버로 2017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파업 상태의 언어’와 ‘읽히지 않는 책’을 시라는 장르로 매개하는 작업을 지속해 오고 있는 시인의 작품 세계는, 독립출판물 『Liebe』와 『은신술』에서 확인할 수 있다. 『Liebe』는 문장부호만 남기고 글자들은 지운 채 발행되었고, 『은신술』은 양쪽이 모두 바인딩된 닫힌 책으로서 훼손 없이는 펼칠 수 없도록 제작되었다. 읽히기를 거부하는 이러한 책들은 의미의 고정점을 계속해서 흔들며 독자를 언어의 파업에 연루시킨다.
공백의 형식을 변주함으로써 의미의 확정을 유예하고, 나아가 인간의 존재 자체를 빈칸으로 만드는 나하늘 시인만의 스타일은 『회신 지연』에서도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다. 이 시집은 지금-현재라는 감각을 충분히 인지하면서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는 건축술에 능하다는 점에서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지지를 받았다. 문장이 단정하고 과장이 없으며, 시적 플롯이 탄탄하여 “무리한 파격으로 치닫지 않으면서도 다채롭게 전개되는 스타일에는 매번 합당한 이유가 있어” 보인다는 점도 다른 응모작들과 변별되는 지점이었다. 『회신 지연』은 자신의 언어가 어떤 궤적을 그리며 어디에 가닿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 시인 특유의 단단함으로, 세상에 셈해지지 않는 자리를 만든다. 경쟁으로 과열된 시대에 소진된 이라면 누구든, 과장 없는 담백한 언어로 구현된 나하늘 시의 빈칸 안에서 잠시 머물다 가도 좋을 것이다.
■ 공백의 존재론
지금 답장할 수 없다는 말은
쉬이 용서받기 어려운데
그러나
도저히 열어 볼 수 없었다고
그게
내가 살아 있다는 뜻이라고
―「회신 지연」에서
『회신 지연』은 지연(遲延)의 감각으로 가득한 시집이다. 정지의 반대는 나아감이다.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로 삼등분하기 시작한 이래로, 시간은 효율적으로 운용해야 하는 자산으로 취급되었고 그것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인간은 도태되었다거나 실패했다고 평가받았다. 생산성이라는 신자유주의의 메타 플롯은 전 세계를 집어삼킨 AI 열풍으로 대변된다. 이러한 시대에 나하늘은 시간을 멈추는 법에 대해 연구한다. 시간의 정지는 의미의 연착을 유발한다. 줄을 그어 문장을 완성하기 전까지는 읽을 수 없는 시(「문제 1」), 제목부터 본문까지 군데군데 뚫린 빈칸으로 온전한 독해가 어려운 시(「( )」) 등, 나하늘은 구조적으로 ‘읽을 수 없는’ 상태를 만들고, 그리하여 독자를 텍스트 앞에서 잠시 정지시킨다. 의미는 뒤늦게, 불완전한 상태로 도착하거나 아예 완결되지 않는다. 이는 문장의 차원을 넘어 ‘사라지기’라는 존재론적 차원에서도 시도된다.
■ 살아 있기, 사라지기
나는 l의 서가로 사라졌었고, 이후에는 l의 서가에서 사라지는 방식으로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내가 발견한 작동법은 이렇다. 처음부터 곧장 세계에서 사라지고자 하면 실패하기 쉽기 때문에 마음 둘 작은 공간 하나만큼, 사람 한 명만큼을 남겨 두고 사라지는 것이다. 이제 그 작은 공간에서 사라지거나 그 한 사람을 잃고 나면 비로소 당신은 사라지게 된다.
―「사라지기 -막」에서
「사라지기」 연작은 세상에서 사라지기 위한 시인의 실험을 담은 연작 시이다. “온라인상의 나를 지움으로써, 비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 실제 내 일부를 삭제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사라지기 1」)을 알게 된 시인은 소셜미디어를 탈퇴하고, 모든 관계에서 멀어지며 작은 서가에 칩거하고, 마침내 그 서가에서도 사라짐으로써 온전한 ‘사라지기’에 성공한다. 죽음과 사라지기는 무엇이 같고, 또 다를까? 사람들의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리하여 집계 불가능한 인간이 된다는 점은 같다. 그러나 사라지기는 내가 나로서 살아 있기 위해 세상과 ‘나’ 사이에 틈을 벌리는 일에 가깝다는 점에서 죽음과 구분된다. ‘하지 않기’(Undoing)의 적극적 수행으로서의 사라지기는, 효율성과 생산성으로 코딩된 세계에 오류를 유발하는 “급진적 수동성”의 저항을 보여 준다.
보라색 후드티
4.0
0. 한줄평 모든 규정된 범주는 불안하고 미끄러지는 법임을 탈구축해버리는 데리다적이고 들뢰즈적인 시집 1. 총평 나는 너무 좋았다. 포스트구조주의적인 시였다. 제목에 지연이 들어갔기에 이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데리다적으로 들뢰즈적으로 읽혔다. 좋은 시집이었다. 다음 시집도 기대 중. 2. 첫 시 「문서 정보」 첫 시부터 이 시집의 전체를 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자라고 생각"했고 "디스포리아"를 느꼈으나 "자매애"로 묶일 때는 "이상하다"고. "문자 수"는 "공백 포함"이다. 즉 규정되는 범주에 대한 의문을 품는 시. 여자가 아니라 여자라고 "생각"했고 디스포리아를 느꼈으나 자매애로 묶였을 때는 반발심이 있는 것. 매끈한 언어는 존재의 모든 것을 포괄하지 않는다. 시의 제목처럼 문서 정보에는 "공백"이 담겨 있다. 글자만이 아니라 공백까지도 문서의 정보가 되며, 곧 삶에서도 공백-우리가 알지 못하는 규정되지 않는 것들-이 중요하다는 것. 즉 공백을 보겠다는 시집의 의도가 담겨 있다. 3. 포스트구조주의적 제목에 '지연'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데리다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에이 설마 데리다겠어 했지만, 두 번째 시 「교외 실습」을 보면 "시간을 다루는 법"을 마법으로 비유한다. 언어는 규범은 의미는 도착하지 않고, 과거-현재-미래는 일정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베르그송이 말하듯 겹겹이 쌓이고 소환되고 마주친다는 것. 또한 의미의 규정은 결국 '집합'을 통해 가능하듯이 (이것은 매우 들뢰즈적) 반대로 집합을 해체하면 실제 공백 안에 담긴 또다른 삶을 우리는 엿볼 수 있다. (철학 잘 아는 척함) 4. 결론 그러므로 이 시는 계속해서 "순서에 맞게 배열"(15쪽)하라고 주문하거나, 매끈하게 "번역하는 일을 자주 포기하는"(21쪽) 마음을 담고 있거나, 이물감이 들지 않는 유일한 언어인 비유를 잃어버리자 "어긋나는 기분"(28쪽)을 느낀다거나, "허구적 시간과 실제 시간의 불일치는 발생할 수 있다"(39쪽)고 전제하거나, 이 문장을 읽지 말라고 썼지만 결국 이 글을 읽을 수 있는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독일에 있는 "한국인 유학생"(47쪽)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다음 시집이 기대되는 시인이었다.
곰아름
3.5
이 시집을 읽어가며 내가 당신의 지연에 참여한다. 우리는 함께 느리게 간다. 이제부터 우리가 아닌 것은 바깥이 된다. 바깥의 속도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푸름
5.0
나하늘이라는 사람이 존재하고 그런 사람이 오랜 시간 시를 써왔다는 것 자체가 너무 감동이고 희망이고 위로이다... 참 사랑스러운 시집. 영화 <해피 엔드>(네오 소라)를 글로 읽는 기분... 그만두는 건 어때 고양이를 놀래키는 일은 ? 그 어떠한 의도성 없이 제시해주는 한 가지 가능성 - 이라는 점에서 스스로 쳐보는 점술(占術)과도 닮아 있다. 독자에게 스스로 알레고리를 창작해볼 것을 제안하는, 포옹하는 시집. + 살며 처음 느껴보는 감정을 느낌. 친구가 쓴 책이 이토록 사랑스럽다면 어떻게 평가를 할 수가 있을까?
pe1er
3.0
말갛다, 빈무덤
syng
3.0
말비빔만 좋았다!
Gun
3.0
p. 48, 58, 60, 84, 102
소마
2.5
질병이 벌이 아니라는 사실을 언니를 통해 일찍이 배웠다. 언니는 어려서부터 여러 번 죽었다 살아났다. 베를린에 가는 것을 사람들이 만류할 때 걔는 거기 가야 살아요, 하고 나를 변호했던 유일한 사람. 언니는 죽음에 대해, 죽음의 속성에 대해 우리 중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솜소미
3.0
나에겐 재단되지 않을 용기가 얼마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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