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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 필링스
캐시 박 홍 · 에세이/인문학
27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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앳(at) 시리즈 1권. 지금 가장 영향력 있는 한국계 미국 작가 캐시 박 홍의 자전적 에세이. 저자는 은근하게 계속되어 끝내 내면화된 차별과 구별짓기가 한 개인의 마음속에 어떤 감정들을 남기는지 파고 든다. “차별받는다고 느끼는 건 네 피해의식이야”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저자는 이 책을 내민다. 퓰리처상 파이널리스트에 올랐으며, 각종 유력지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다.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자서전 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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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목차
출판사 제공 책 소개
★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 수상
★ 퓰리처상 파이널리스트
★ 앤드루 카네기상 우수상 후보
★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 타임스 선정 올해 최고의 10대 논픽션
★ 워싱턴포스트, NPR, 뉴 스테이츠먼, 퍼즈피드, 에스콰이어 올해 최고의 책
★ 뉴욕공립도서관 올해의 책
★ 아마존 문학비평, 예술 분야 #1위
“지금 가장 영향력 있는 한국계 미국 작가
캐시 박 홍의 자전적 에세이”
차별받는다고 느끼는 건 내 피해망상일까?
캐시 박 홍은 한국계 미국 이민자 2세대로, 미국에서 나고 자라 교육받고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캐시는 어느 순간 문학인으로서 자꾸만 좌절당하고 삭제당하는 현실이 ‘작품이 부족해서가 아닌 것 같다’는 의심을 품게 된다. 아시아인으로서 살아온 경험을 시로 쓰면 “또 인종 얘기”냐며 혹평받고, 자본주의, 세계화, 환경처럼 ‘진짜 중요한 얘기’를 다루면 그건 ‘비백인’에겐 어울리지 않는 소재라며 다시금 ‘인종 이야기’를 하라고 권유받는 모순적인 현실이 선명해진 것이다. 의심은 분석으로, 분석은 분노로, 분노는 제자리 찾기로 이어지는데, 이 책은 바로 그 첫 결과물이다.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보이지 않는 차별의 실체를 드러내기 위해 그는 ‘나는 누구일까?’라는 물음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이 작업이 간단치가 않다. 그는 자신의 평생뿐만 아니라 수백 년의 역사에 묻혀 있던 사건을 파고 들어야 한다.
“왜 이래야만 하지? 내가 속한 사회에 나를 설명하기 위해, 나는 왜 이토록 어려운 길을 택해야만 하지?”
나는 왜, 백인이 아니란 말인가
캐시는 이민 1세대가 미국에서 겪는 고통은 인종차별보단 고향을 떠나왔다는 뿌리 뽑힘에 있다고 생각한다. 애당초 자신을 한국인이라 여기기 때문에 한인 타운을 제2의 고향쯤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2세대는 다르다. 미국에서 나고 영어를 쓰며 자라 교육받고 일하는 미국인이지만, 어느 누구도 미국인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데에서 고통이 시작된다. 1세대는 차별의 이유가 ‘미국인이 아니어서’에 있다고 여겼다면, 2세대는 ‘백인이 아니어서’임을 너무나 뼈저리게 감각한 세대다. 이 책은 말하자면, 영화 「미나리」 속 이민 2세대, 바로 ‘데이비드’의 이야기이다.
나를 만들어온 ‘감정들’ 파헤치기
아시아인이어서, 여성이어서 당한 차별의 감정들을 결산하다
‘마이너 필링스’(minor feelings)는 직역하면 사소한 감정이겠지만, ‘마이너리티’의 사회적 맥락과 깊게 체결돼 있으니 ‘소수적 감정’으로 옮길 수 있다. 어쩌면 ‘소수자’로 분리되고 지목된 사람들이 안고 사는 불안과 짜증, 수치심과 우울감은, 음악용어를 빌리자면 단조(minor)의 감정이기도 하다.
캐시는 이 책을 일곱 개 장으로 쪼개고 글을 조각내 썼다. 통으로 쓰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주제 사라구마의 『눈 먼 자들의 도시』처럼 눈을 감아도 백색의 시선이 끈질기게 달라붙는 미국 사회에서 캐시가 아시아인 여성으로 살아온 시간은 일관되고 정연하게 서술될 수 없는 것이었다.
외면, 삭제, 침묵, 공허한 낙관이 뒤엉킨 인종차별은 한 개인의 삶 깊숙이 들어와 “놀랍도록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며, 삶의 모든 순간을 지배하는 ‘감정들’로 박혀 든다. 두려움, 슬픔, 수치심, 강박, 무기력, 짜증의 ‘마이너한 감정들’은 개인의 평정을 무너뜨리고 끝없이 좌절하게 한다. 그것이 마침내 외부로 표출되면 적대, 배은망덕, 시샘, 공격성으로 해석되어 급기야 백인들은 “도가 지나치다”며 캐시의 경험과 감정을 폄하한다.
내가 받은 상처뿐만 아니라
내가 남에게 준 상처에 관해서도 쓸 수 있을까?
백인은 아시아인이 ‘백인의 다음 차례’라면서, 성실하고 근면하며 권리를 내세우거나 욕심 부리지 않는다며 아시아인을 칭찬해왔다, 이민이 시작된 이래 지금까지. 물론 아시아인이 기업이나 정치, 문학계 최고 자리에 앉는 일은 거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아시아인은 어떤 정체성을 갖게 될까? 어떤 정체성을 인정받을까?
“너희들은 여기 있으면 안 돼, 빨리 나와! 이제는 저것들이 사방에 퍼졌구만.” 동네 공용 수영장에서 노는 아시안 아이들에게 한 백인이 다가와 소리치며 한 말이다.
“난 절대 중국인한테는 문 안 잡아줘!” 백인 남성이 쇼핑몰 로비 문에서 황급히 손을 떼며 아이들에게 내뱉은 말이다.
저것 아니면 중국인이다. 코로나 이후엔 바이러스. 백인은 아시아계 개인을 고유하게 대해야 할 필요성을 아예 느끼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아시아인’은 어떤 의미일까? 아시아인들 사이에 퍼져 있는 흑인에 대한 혐오에 대해서는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캐시는 이 혼란을 인정하고 생각하길 멈추지 않는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일에 대해 내가 어떻게 쓸 수 있을까? 내가 받은 상처뿐만 아니라 내가 남에게 준 상처에 관해서도 쓸 수 있을까? 그러면서도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을까? 죄책감은 상대에게 용서를 요구하고 따라서 이기적이다.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내가 속한 사회가 나를 모른 척한다면,
내가 그 사회를 설명해주겠다
캐시는 마지막에 “보편성을 갈가리 찢어버리고 싶다”고 일갈하며 “차단된 상태”에 처한 “비백인”을 호명한다. “과거에 식민 지배를 받았던 자, 조상이 이미 멸망을 겪은 아메리카 원주민 같은 생존자, 서구 제국이 초래한 기후 변화 때문에 악화된 가뭄과 홍수 또는 집단 폭력으로부터 피신한, 현재 멸망을 겪고 있는 이주자와 난민”이다.
무엇이 ‘아니라는’ 이유로 존재의 삭제 또는 축소를 경험하는 수많은 소수자들이 수없다. “네가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라는 질문 앞에 작아지는 여성들, “하필 설 연휴에 지하철에서 시위를 해가지고”라는 부당한 비난을 당하는 장애 인권 운동가들, “성소수자 축제를 안 보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고민하겠다는 정치인들의 말에서 한순간 공공의 장소에서 추방당한 성소수자들. 그들, 아니 우리 안에서 ‘소수적 감정’이 자라고 있다. 얼마만한 크기일까? 어떤 모양일까? 『마이너 필링스』를 ‘이민자 2세대’의 자전적인 글로만 협소하게 본다면, 우리에게 던지는 이 질문을 놓치고 만다. 지금 이 시대의 변화와 퇴행 모두를 관통하는 개념인 정체성과 교차성, 그리고 감정이 개인과 역사, 개인과 정치, 개인과 문학 사이에서 어떻게 얽히고설키는지 이 책이 보여준다.
마티의 앳(at)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앳 시리즈는 정체성 탐구의 복판을 관통하는 질문 ‘이 세계에서 내 위치는 어디일까’에 답해가는 작업이자, 개인의 몸과 감정을 통해 지배 구조를 재인식하고 비평하는 ‘자기 이론’(AutoTheory)적 시도입니다.
여성/남성, 피억압자/억압자, 빈자/부자, 장애인/비장애인, 성소수자/이성애자 등의 대립항에 갇혀 있지 않으려는 몸부림, 교차하는 정체성의 스펙트럼 속에서 쉬지 않고 움직이는 역동, 그리고 자신의 지식과 경험이 부분적임을 알고 나와 타인의 위치와 연결될 때 종합적인 성찰이 가능하다고 여기는 신념을 엮고자 합니다.
권력 바깥에 있는 사람들, 침묵의 자리를 거부하는 사람들, 기득권에서 기꺼이 탈주한 사람들과 책이라는 장소에서 함께하고자 합니다.



adela
4.0
누가 한국전쟁참전사실을 밝히자 언짢아진 아버지이야기를 필두로 결국에 나는 이 사회에 빚이 없으며 배은망덕히 살아갈것이라 마무리하는 작가의 태도가 좋았다. 한국 전쟁후 미군에게 뭔가를 얻어먹던 이야기는 모두 심심찮게 들었을텐데 나는 몇년전 중동에 파병된 미군이 찍은 영상에도 애들이 사탕달라고 모여드는걸 보고 좀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작가는 지구상의 가련한 자들은 모두 그 사탕을 안다고 하며 한국 사회에서 그 사탕이 어떤 씨앗이 되었는지도 명시하는데 나는 작금의 아이들이 그것을 빚이라 생각하지않길바란다. 그것은 생각보다 중요한 삶의 태도이기에
아몬드꽃
3.0
글쓴이의 엄마 말대로, 참 일부러 피곤하게 산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특유의 공격적인 예민함에 읽는 내내 힘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줌파 라히리, 호밀 밭의 파수꾼, 문라이즈 킹덤을 가차없이 깨부수는 것에도 적잖이 놀랐다. 그럼에도 이 책을 끝까지 읽은 건, 내가 미국에 미국계 한국인으로서, 혹은 한국이 아닌 곳에 여행자가 아닌 생활인으로 지내본 경험이 전무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무슨 할 말이 이렇게나 많은지 궁금했다. 내가 경험하지 않은 세계의 내면과 이면을 알고 싶었다. 다 읽고 보니, 모르는 게 약도 아니고, 아는 것이 힘도 아닌 것 같다. 그러나 최소한, 내가 사는 한국에서 이민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선 알게 된 것 같다. 그것이,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pizzalikesme
3.5
때때로 나는 뉴스 기사에서 범죄 피해자가 아시아인이면 일부러 읽지 않는다. 왜냐하면 아무도 그 사건에 주목하지 않는 다는 사실에 주목하기 싫기 때문이다.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상관하기 싫다. 왜냐하면 분노 속에 방치되기 싫기 때문이다. 231p
김유성
읽고싶어요
https://n.news.naver.com/article/469/0000696693?ntype=RANKING A24에서 드라마 제작 중이라고 합니다!
상맹
4.0
언어라는 것은 완벽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온전한 언어의 발화는 뭉개지고 파열된 것에 있다. 탈식민주의의 여러 이론들을 브리콜라쥬와 자신의 삶과 함께 녹여낸 에세이라고 해야할까. 트린 티 민하와 스피박 그리고 파농 등 결코 해소되지 않은 소수자로서의 감정들을 젊은 예술가의 초상들과 선배 아시아인들의 투쟁과 함께 그려낸다. 히토 슈타이얼이나 학경 차 등 예술론과 예술가들에 대한 레퍼런스도 대단히 많다. 사회학으로 분류 되어야 할까 싶은 예술적 글의 형식도 너무 좋지만 글에서 돋보이는 미끄러지고 타협하지 않는 삶에 대한 태도 그리고 거시적으로 미시적으로 교차하면서 잊지 않고 분열해보일 것이라는 진정성 너무 기억에 남는다. 한국에서의 한국 남성으로서 얼마나 마이너 필링스에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을까는 스스로에게 씁쓸하지만 세계는 파열시키는 자들에 빚을 지고 있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언어로든 운동으로든.
나지수
4.0
마이너로 살아가는게 고통이라고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생각보다 많은 고민과 생각을 하고 산다는건 충분히 이해가 된다. 평소에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잘 정리해준 책의 앞부분은 굉장히 좋았다. 아시아인으로 백인들의 삶 가운데서 살아간다는게 어떤 의미인지는 아직은 이르지만 언젠간 내 나름의 정의를 내릴 순간이 찾아오지 않을까. 그 때를 위해 미리 중간 점검한 느낌이다.
Mel
3.5
Nearby Speaking 까지는 아니더라도 Nearby Listening은 누구나 할 수 있지 않을까. 아시안 아메리칸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공감하고 생각해 볼 법한 이야기가 담겨있다. 차별적으로 느껴지는 상황에 내가 예민한가? 고민한 적이 있다. 그 단편적인 경험만으로도 기꺼이 작가의 곁에 서서 이야기를 들었다. 마이너로 살아가기 때문에 예민하게 촉각을 곤두세우고 방어적으로 행동하며 스스로를 검열 할 수 밖에 없는 삶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으며 불편하고 꺼려지는 이야기를 외면하지 않고 깊이 파헤치려는, 개인적이고 이지적인 시도와 의지가 인상 깊다.
우주
4.0
마이너 필링스가 더이상 마이너하지 않을 사회를 위해 침묵 너머의 발화가 늘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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