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김혜리,
그녀가 사랑한 영화의 모든 계절
비평가가 듣고 싶은 찬사 중에는 이런 것이 있다. “당신의 글을 읽기 위해서 그 작품들을 봤어요.” 내가 김혜리에게 하고 싶었으나 아직 못 한 말은 이것이다. “당신처럼 써보고 싶어서 영화를 제대로 보기 시작했어요.” _신형철(문학평론가)
“인간은 각기 상대적 시간을 살아가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 우리의 시간은 무심히 일치한다.”
영화의 밀도와 미덕을 지적이고 시적인 자세로 이야기해온 씨네21 김혜리 기자. 두터운 팬층을 보유한 그녀가 간직한 영화 일기장을 공개한다. 2008년 《영화를 멈추다》 이후 10년 만에 내놓은 영화 에세이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에는 김혜리가 통과한 ‘영화의 모든 계절’이 담겨있다. “내 얼굴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내 음색은 전할 수 있는 그런 방식의 글”을 쓰고 싶었고 “내가 느끼는 촉각을 가능하면 생생하게 독자에게 전달하고 싶다”라고 말해온 김혜리는 이 책에서 영화로 만난 작고 소중한 ‘기억의 조각들’을 이야기한다.
“엷은 빛으로, 사방을 에워싼 어둠 속에서도 우리의 눈이 찾아가는 윤곽과 움직임과 색깔. 대낮에는 약하고 희미한 그것들이 개인의 생을 지탱한다.”(5쪽)
김혜리는 영화로부터 느낀 환희와 탄식을, 미소와 절망을 예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언어로 묘사하고 보여주는 한편, 영화관의 빛과 어둠을, 관객의 환호와 눈물을, 멀티플렉스의 백색소음을, 영화가 끝나고 비로소 다가오는 질문과 여운을 전한다. 삶은, 영화와 마찬가지로 “주시하지 않으면 내게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지 않으면 소중한 좋은 것들이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라고 말하는 김혜리는 독자를 그녀의 일기장에 초대하고, 영화라는 깊고 아늑한 미로를 함께 탐험하자고 손 내민다.
“당신처럼 써보고 싶어서 영화를 제대로 보기 시작했어요”
김혜리의 많은 독자들은, 그리고 그녀가 들려주는 영화 소개 라디오-팟캐스트의 수많은 청취자들은 ‘김혜리처럼 영화를 보고 싶다’, ‘김혜리처럼 영화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어왔을 것이다. 김혜리의 글은 일반적인 영화평과 어떻게 다르기에 이토록 수많은 이들이 ‘그녀를 통해 영화를 보고 싶다’고 말하는 것일까? “당신처럼 써보고 싶어서 영화를 제대로 보기 시작했다”는 고백과 함께 추천사를 시작한 신형철은 조심스럽고 신중하지만, 최선을 향해 나아가는 김혜리의 영화 글쓰기를 분석, 인용, 비유, 성찰 네 요소로 이루어진 예술작품이라고 표현한다.
“첫째, 분석. 분석이란 본래 해체했다가 재구성하는 일이어서 작품에 상처를 입히기 십상인데 그가 우아하게 그 일을 할 때 한 편의 영화는 마치 사지가 절단되어도 웃고 다시 붙으면 더 아름다워지는 마술쇼의 주인공처럼 보인다.
둘째, 인용. 그의 말이 지나치게 설득력이 있어 괜히 반대하고 싶어질 때쯤 되면 그는 그가 검토한 해외 인터뷰나 영화평들 중에서 중요한 코멘트를 적재적소에 인용해 독자로 하여금 이 영화의 모든 관계자들이 그의 글을 지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셋째, 비유. 그가 개념적, 논리적 서술을 훌륭하게 끝낸 후에 정확한 문학적 비유로 제 논지를 경쾌하게 재확인할 때면 그의 글은 매체(영상과 문장) 간 매력 대결의 현장이 되는데 그는 결코 영화를 이기려 들지 않지만 그렇다고 지지도 않는다.
넷째, 성찰. 그는 영화 서사에 잠복돼 있는 ‘윤리적’ 쟁점에 극히 민감한데 그럴 때마다 특유의 실수 없는 섬세함을 발휘해 현재로서는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최선이 이것이겠다 싶은 결론을 속삭여주곤 한다.” (신형철 추천사 중에서)
1월의 결기, 7월의 분주함
“여기 사랑이 그녀가 우리가 있다”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는 비교적 최근에 해당하는 2014년부터 2017년 1월까지 <씨네21>에 실린 ‘김혜리의 영화의 일기’ 중 선택한 글을 영화 관람 날짜 기준으로 열두 달 목차로 재편한 책이다. 매월 테마로 붙은 제목들이 하나같이 영화의 장면과 영화 속 인물, 그리고 이를 보고 있는 김혜리의 표정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한다.
연초의 설렘과 막막함을 표현한 1월 ‘내일을 위한 시간’, 2월 ‘말 바보’, 3월 ‘어쩔 줄 모름’에서는 우리가 해야 하는 혹은 할 수 있는 선택지를 가늠해보게 하고, 떨림과 사귐의 계절 4월 ‘괜찮다, 괜찮다’와 5월 ‘사랑은 예외 없이 난해하다’에서는 조용한 위로와 격려의 목소리를 건넨다. 여름으로 접어드는 6월 ‘시간을 달리는 소녀’, 7월 ‘슬픔이 기쁨에게’, 8월 ‘버팀으로써 진격하는’에서는 아다치 미츠루 만화에서와 같이 작열하는 태양 아래 청춘의 우정과 사랑이 노래하는 풍경이 저절로 그려지고 9월 ‘흔적과 동거하기’, 10월 ‘태도에 관하여’, 11월 ‘우리 방식을 굳이 남에게 설명하려고 하지 마’에서는 다가오는 것들에 다가가는 자세를 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12월 ‘익숙한 이름의 재해석’에서는 지금껏 당연하다 여겨온 플랜A 대신 플랜B를 생각해볼 기회를 준다.
김혜리는 <캐롤>에서 “때로 사랑이 우리에게 주는 최대의 선물은 관점이다”라는 생각을 발견하고, 리처드 링클레이터의 <보이후드>에서는 ‘인생은, 모른다는 사실을 철저히 알아가는 과정’이라는 뻔하지 않은 생각을 길어낸다. 신카이 마코토의 <늑대아이>에서 ‘흔적과 동거하는 삶’을 보여주는 한편 노아 바움벡의 <프란시스 하>에서 ‘비로소 제대로 된 1인분의 사람’에 대해 고민한다. 그렇게 1월의 결기, 7월의 분주함이 영화의 일기, 행간에 읽힌다.
“나는 영화를 보는 동안 가장 살아있다고,
내가 잠시 더 나은 인간이 된다고 느꼈다.”
“보고 듣는 행위는, 내가 우연히도 잡지 기자를 생업으로 삼아 영화에 집중하기 전까지 시각과 청각이 기능하는 사람이 살아있다면 하기 마련인 다분히 소극적인 활동이었다. 그러나 극장의 어둠 속에 앉아있는 동안이 내 삶에서 가장 감각이 활성화되고 다수의 타인을 공정하게 판단하고자 노력하고, 세계의 아름다움과 추함을 낱낱이 실감하는 시간이라는 사실이 분명해지면서 사태는 역전됐다. 사물과 개인은 현실과 달리 프레임 안에서 하나하나 뚜렷한 나머지 나를 최고로 감정적인 동시에 이성적인 상태로 밀어갔다. 말하자면 나는 영화를 보는 동안 가장 살아있다고, 내가 잠시 더 나은 인간이 된다고 느꼈다.” (서문 중에서)
자크 오몽이 썼듯 우리의 감정을 자극하는 것은 결국 타자의 얼굴이며, 존 버거가 <포켓의 형태>에서 화가의 예를 들어 말한 바와 같이, 영화 관람자 역시 자신이 보낸 응시를 되돌려줄 화답의 시선을 대상에게서 구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영화가 왜 좋은지, 어떻게 좋은지 늘 궁리하고 두루 알고 싶어 한다. 다행히 《나를 보는 당신을 바라보았다》를 만난 독자들은 김혜리라는 조심스럽고 신중한 안내자의 목소리를 따라 영화를 ‘본다는 것의 의미’와 영화를 다시 새롭게 체험할 기회를 얻는다. 김혜리는 영화로부터 길어낸 영화의 울림을 전하면서, 독자로 하여금 하나의 작품이 왜 좋은지와, 어떻게 좋은지를 스스로의 맥락 위에서 질문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건 영화 주간지 기자로 20년을 지내온 김혜리의 일기장에 담긴 생각과 이야기들이 단지 편안하고 소소하기만 한 넋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인터뷰에 나설 때처럼(“질문을 갖고 사람을 만난다는 것, 그 사람에 대해 내가 더 집중하게 되는 거예요. 보통 사람을 만날 때 대단히 느슨하게 만났구나 싶은 깨달음이 생기고.”) 대단히 긴장된 자세로 영화와 만나고 영화와 사귀며 영화와 싸우고 영화를 쓴다. 곧 이 영화의 일기는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한 안간힘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김혜리는 책을 잡은 당신과 우리들에게 그리고 영화에게 동료애를, 그리고 조용한 인사말을




이윤근
4.0
씨네21의 영화 평론가 김혜리씨가 쓴 영화평을 모아 놓은 책이다. 개인적으로 영화를 무척 좋아하고 즐겨 보는 편이지만, 이 책을 보면 영화를 보는 나의 태도에 대해 부끄러움이 느껴진다. 영화평은 영화를 좀더 잘 이해하기 위한 보조 수단 정도로 생각하기 마련인데, 이 책을 보면 평론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문학이라는 생각이 든다. 평론이라기 보다는 영화를 주제로 한 수필이라 칭함이 적당할 듯 하다. 이동진 평론가의 눈부신 이성적 분석과 대비되어 김혜리 평론가는 파스텔 톤의 감성적 해석이 돋보인다. 그래서 그 영화를 꼭 보고 싶게 만든다. 서문의 한 구절을 소개한다. 이 문장만 보아도 작가 김혜리를 조금 이해할 수 있으리라. “바깥 세계와 나를 단절하고 어둠 속에 숨죽이고 있으면 “빛이 있으라”라는 신의 명이 떨어진 듯, 영사실 창에서 백광이 쏟아지고 하나의 생애가 시작된다. 그것은 나의 삶이 아니지만 앞에 썼듯 딱히 나의 삶이 아닌 것도 아니다. 영화 한 편 안에도 무수한 삶과 죽음이 있다. 테이크는 지속되는 동안 현재 진행형의 삶이며 편집은 한 쇼트의 죽음이자 다음 쇼트의 탄생이다.”
성유
4.5
인생은 미래의 어딘가에서 반드시 나를 기다릴 안온한 품을 향해 무릎이 깨져도 달려가는 것이다. 또는 나를 향해 달려오고 있을 누군가를 더 강한 모습으로 기다리는 일이다.
강중경
3.5
우리 첫째 녀석은 연필을 잡을 때 앞으로 15도 정도 기울여서 쓰더니, 얼마 전부턴 자기 몸쪽으로 15도 기울여서 쓰기 시작했다. 낮잠은 죽어도 자기 싫어하면서도 팔베게를 해주면 오른 다리를 내 허벅지에 올리고 3분 안에 잠이 들어버리곤 한다. 사랑하는 것을 바라볼 때 우리는 유심히 그리고 세심하게 보게 된다. 김혜리 평론가가 영화를 대하는 시선에서 그것을 느꼈다. 참 사랑하고 있구나 하며. 고마운 미래의 최버핏 양에게...
h01iday
4.5
영화는 내가 유일하게 아는 (잠을 제외한) 임사체험이자 임생체험을 제공했다. 바깥 세계와 나를 단절하고 어둠 속에 숨죽이고 있으면 "빛이 있으라!"라는 신의 명이 떨어진 듯, 영사실 창에서 백광이 쏟아지고 하나의 생애가 시작된다. 그것은 나의 삶이 아니지만 앞에 썼듯 딱히 나의 삶이 아닌 것도 아니다. 영화 한 편 안에도 무수한 삶과 죽음이 있다. 테이크는 지속되는 동안 현재 진행형의 삶이며 한 쇼트의 죽음이자 다음 쇼트의 탄생이다. 죽음이 삶에게 그러하듯, 쇼트가 끝나기 전에 우리는 그 생의 의미를 깨닫지 못한다. 인간은 삶에 포함돼 있지 않을 때 그것의 전경을 조감할 수 있다. 그래서 예술이 유용하다.
김동원
4.5
김혜리 기자님의 얘기를 직접 들어 볼 기회도 여러번 있었고 필름클럽도 자주 들었지만, 매번 나는 그녀의 매력이 '말'로는 잘 드러나지 못한다는 생각을 많이 해왔다. 내용적인 면이 아니라 순전히 기술적인 면을 얘기하는 건데 뭐랄까.. 말투나 목소리가 듣는이의 집중력을 떨어뜨린달까. 워낙 톤이 중저음이시라 그런지도 모르지만 암튼. 방송보다는 글로 얘기해야 하는 분이란 게 평소 내 생각이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혜리씨는 많은 영화 평론가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분이다 기능적으로 수사(修辭)가 적고 논리적이며 읽기 쉬운 글을 쓰는 점도 좋아하지만, 영화를 이성적인 날카로움보다는 정서적인 따뜻함으로 바라보는 글을 쓰는 점이 감성적인 영화보기를 하는 나한테는 가장 잘 맞기 때문이다 . 예를들면 '로마'의 해변씬을 보면서 빨간 안경 횽님은 뭔가, 패닝과 롱테이크를 통해 알폰소 쿠아론이 보여주는 미학적 특수성과 기저에 깔린 보편성 같은 걸 말할 것 같지만. . 혜리 누나는 클레오의 정서적 울분, 그럼에도 놓을 수 없는 모성 본능과 사랑을 얘기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 . (분명 정성일씨는 빔 벤더스의 구원과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불안, 네오리얼리즘 같은걸 언급할거다. 먼 소린지는 나도 모른다) . 내가 지금 먼 얘기 하는지도 모르겠다 . 암튼 결론은 나 김혜리 기자님 좋아한단 얘기. 누나, 나 문라이트 누나 뒷자리에서 봤던 사람,,, 그래서 그 영화 만점 줬어요 사랑합니다. . . 요 책. 웬만하면 많이들 봤을만한 40편의 영화들에 대한 혜리 기자님의 '영화의 일기'가 실려있는 책이다. 잘 읽히고, 또 알만한 영화가 많아 더 재밌으니 영화 좋아하면 한 번 읽어보시라 . 아니다. 우리 혜리 누나가 썼으니 꼭 읽으시라 . - 나는 문득 이해한다. 세상 어느 곳에서도 휴식할 수 없는 영혼들이 스크린에서 자신의 거처를 발견하는 이유를.
이준호
4.0
이렇게 영화를 보고 싶다
까망콩
4.0
김혜리는 평론과 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몇 안되는 평론가가 아닐까. 영화와 인간의 삶에 대한 애정, 그리고 파괴와 죽음에 대한 모순적 끌림이 밀도높은 문장들 속에 짙게 배어있다.
권윤정
3.0
영화 속 모든 장면과 설정을 쓸모 있는 것으로 만드는 관찰력과 물 흐르듯 흘러가는 유연한 문체가 매력있으나, 피상이 아닌 심연을 맛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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