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히 쓸 체력과 부지런히 사랑할 체력.
이 부드러운 체력이 우리들 자신뿐만 아니라
세계를 수호한다고 나는 믿는다.”
매일 쓰는 몸과 마음의 힘
<일간 이슬아> 작가의 글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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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 이슬아 수필집』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를 쓴 이슬아 작가의 신작에세이가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이슬아 작가는 지금처럼 연재노동자로 살아가기 전부터 수년간 글쓰기 교사로 일해왔다. 처음에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니며 글쓰기를 가르쳐보고 싶다는 구직 전단지를 붙이는 것으로 시작한 ‘출장 글쓰기 교사 이슬아’의 이력은 KTX를 타고 내려가서 여수 글방을 열고, 어린 형제들을 위한 작은 글방, 망원동의 어른여자 글방, 청소년 글방 등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는 것으로 이어졌다. 최근에는 코로나 시국에 등교하지 못하고 ‘허송세월’하는 어린이들을 위하여 파주 자신의 집에서 ‘헤엄글방’을 열고 비대면 수업을 진행했다.
이 책은 이슬아 작가가 글쓰기 교사로 일했던 글방들에서 그가 가르치고 또 배운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는 더이상 글쓰기에서 재능의 유무를 따지지 않는다고 한다. 누구나 글을 잘 쓸 때와 못 쓸 때가 있는데, 글방에 더 많은 글을 꾸준히 가져오고 타인의 의견을 들으며 지난번의 글보다 더 나은 글을 가져오기 위해 부지런히 애쓴 사람만이 결국은 잘 쓰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이슬아 작가는 그 스스로가 ‘반복’과 ‘꾸준함’의 힘으로, 그 모든 굳건한 플랫폼과 권위의 장벽을 뛰어넘어 자기만의 판을 열어젖힌 작가였다.
꼬마부터 청소년, 남중생, 성인 여성에 이르기까지 이슬아 글방에 온 제자들이 담긴 빛나는 문장들부터 그들에게 전하고 또 배운 ‘글쓰기의 비밀’에 이르기까지, 『부지런한 사랑』은 글쓰기와 삶에 대한 영감과 사랑으로 가득한 에세이이다.
글쓰기 수업에서 나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너는 커서 네가 될 거야. 아마도 최대한의 너일 거야.”
아이들에게 그저 다음주의 글감을 알려주며 수업을 마친다. 얼마나 평범하거나 비범하든 간에 결국 계속 쓰는 아이만이 작가가 될 테니까. _‘재능과 반복’ 중에서
“글쓰기를 싫어하거나 두려워하는 아이도
글쓰기를 좋아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글쓰기 교사 이슬아의 이력은 전단지에 적힌 이 한 문장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가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에 쓴 에피소드에서 누드모델로 일하기 시작할 때 그러했듯이, 학자금대출 2천만 원을 갚기 위해 재기발랄한 <일간 이슬아> 구독자 모집 포스터를 SNS에 올리기 시작할 때 그러했듯이, 글쓰기 과외를 구하는 전단을 붙이러 다니던 2014년 봄, 스물세 살의 대학생 이슬아는 카페 알바 시급만으로는 월세와 생활비를 감당하기가 벅찼다.
그 당시엔 아직 책이 없는 작가였고, 다만 잡지사에서 근무했고 문학공모에서 작은 상을 탄 경력이 있을 뿐이었다. 그는 ‘글쓰기를 싫어하거나 두려워하는 아이도 글쓰기를 좋아하게’ 만들겠다는, 스스로도 믿을 수 없었던 문장으로 글쓰기 교사로서의 여정을 시작한다. 결코 확신할 수 없는 문장이었지만,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것은 스스로를 향한 다짐 같고 약속 같기도 한 말이었다.
사방이 꽉꽉 막힌 빼곡한 네모칸들로 가득한 원고지보다 유튜브와 축구공과 종잡을 수 없는 수다에 더 이끌리는 아이들에게 그는 같이 글을 써보자고 말을 걸었다. 아이들이 스스로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꺼낼 수 있도록 먼저 이슬아 자신의 일상과 생각에 대해 시시콜콜 털어놓았다. 그리고 그날 쓸 글감들을 신중하게 가려뽑아 그 글감의 의미와 아름다움에 대해 들려주며, 이슬아는 아이들과 함께 글방의 시간을, 원고지를 채워가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왜 그런 걸 써야 돼요?” “글쓰는 게 짜증나니까 그렇죠!”라며 젖은 눈으로 훌쩍훌쩍 코를 들이마시다가도, 결국 이슬아 선생님이 안내하는 글쓰기의 세계로 한 발짝 한 발짝 천천히 걸어들어왔다.
떠들며 먹고 마시다가
얼렁뚱땅 명문장이 탄생하는 날들
이 책에는 아이들이 쓴 재미있고 기발한 문장들이 책장 사이사이 삐뚤빼뚤한 손글씨의 원고지와 함께 실려 있다.
“언니랑 동생이 옆에 있어도 그리운 마음이 든다.” _열 살 최가희
“우리는 함께 뒤섞여 놀다가 서로의 여름 냄새에 대해 다 알게 되었다.” _열세 살 이형원
“달리는 사람들은 얼굴 살이 위아래로 훌렁거린다. 뛰다보면 바람이 날 밀어주는 느낌이다. 바람 생각을 하면서 뛰면 나는 어느새 1등이나 2등이 되어 있다.” _열두 살 우예린
“우리는 꼭 마지막이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는 영화를 찍으며 즐거움을 느꼈다.” _열세 살 오승린
“안녕! 나 같은 어린애야! 이제부터 내가 인생 사는 법을 알려줄게. (...) 내가 말한 것을 하면 인생이 행복해질 거야. 행복이란 너가 원하는 것을 하는 거야.” _열 살 김지온
“가끔 엄마에게 혼나고 혼자 있을 때면 이런 노래를 부른다. ‘어차피 화해할 인생~ 엄마는 나를 좋아하니까 밤이 되면 괜찮아지겠지’ 하며 나 자신을 위로한다.” _열 살 양휘모
아이들은 이렇듯 찬란한 문장들을 써놓고는, 기대감에 찬 눈빛으로 “이제 나가 놀아도 되죠?” 하고 이슬아 선생님을 바라본다. 자신이 쓴 원고지들을 챙겨갈 생각조차 하지 않고 마당으로, 바깥세상으로, ‘지구 바깥까지라도’ 튀어갈 듯이 와글와글 뛰어나가는 아이들. 그는 아이들의 원고지 아래에 자신의 독후감과 궁금한 것들, 더 듣고 싶은 이야기들을 메모하고, 때로는 그냥 ‘왕좋아!’라는 뿌듯한 감탄사를 남기기도 한다. 그리고 아이들이 책상에 흩어두고 간 원고지들을 추려 간직하고, 종종 그 찬란한 문장들을, 아이들이 새롭게 발견하고 써내려간 사물과 세계를 넋 놓고 바라보곤 했다.
최초의 제자는 나에게 글쓰기 교사의 숙명을 알려주었다.
“너는 꼭 내 글을 간직해줘.
너는 꼭, 내 글을 간직해줘.”
이슬아 작가가 처음 가르쳤던 어린 형제들의 원고를 자그마한 책으로 엮어주려고 준비할 때, 아홉 살 김세윤은 이런 문장을 썼다고 한다.
“내 글쓰기 선생님 성함은 이슬아야. 책이 빨리 완성되면 좋겠어. 너는 꼭 내 글을 간직해줘.”
아이가 글쓰기 교사인 자신에게 내리는 지령이자 숙명처럼 느껴졌던 이 문장을 이슬아는 곱씹는다.
“너는 꼭 내 글을 간직해줘, 너는 꼭, 내 글을 간직해줘.”
글쓰기 교사이자 작가 이슬아는 생각한다. 글쓰기는 인생의 디테일들을 모으고 간직하는 일이라고. 글쓰기는 모르는 것을 배우는 일이고. 자기애의 늪에도 자기연민의 덫에도 걸려들지 않고 나의 몸과 마음에 대해 탐구하는 일이라고. 동시에 항상 ‘나’를 주어로 놓는 이기적인 일상에서 벗어나 ‘남’을 주어로 놓고 그의 입장에서도 생각해보는 일이라고. 무턱대고 누군가를 욕하지 않고 손쉽게 착하다거나 나쁘다거나 가치판단을 하지 않으며, 한 사람을 납작하게 눌러 보지 않고 입체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라고. 타인의 한숨과 잔소리까지도 기억 속에 쟁여두었다가 “따옴표”라는 리본으로 소중히 묶어서 원고지 위에 숨을 불어넣어 되살리는 일이라고.
그리고 아이들이 또박또박 적어나가는 문장들로부터 이슬아 작가는 다시, 깨닫는다. 이 모든 글쓰기의 의미는 사랑과 맞닿아 있음을.
결국, 글쓰기는 ‘부지런한 사랑’이었다.
마음을 부지런히 쓰고 누군가를 골똘하게 관찰하고 그에 대해 생각하며, 자꾸만 편해지려 하는 몸을 부지런히 놀려 끊임없이 나 아닌 타자에게로, 더 넓은 세상으로 향해 가는 일이었다.
아이들의 빛나는 문장에 응답하고, 그 작은 몸들이 살아낸 커다란 일상을 기억하고 간직하는 동안, 이슬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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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부지런한 시선은 모든 것에 우선한다.
SOSOHAN
4.0
내가 모르는걸 가르쳐줘서 고마워. 몰랐던 이야기를 잔뜩 들려주고 써줘서 고마워. 어떤 건 내가 알 것 같은 이야기이기도 했어. 어떤 글에 피드백을 적기 위해서는 내 삶의 경험치를 총동원해야 했어. 그걸 다 동원해도 모르겠는 이야기도 있었어. 더 잘 살아야 할 것 같았어. 계속 글쓰기 교사가 되려면 정말 그래야 할 것 같았어.
조니
3.0
한창 생각이 자라나는 어린 제자들에게 어엿한 글투를 만들어 주려는 담백한 선생님이다. 슬아 선생님은 글맵시와 더불어 어린 작가들이 자신도 모르고 지나쳤을 속사정까지 되짚어 준다. 선생님의 시각은 섬세하다. 수업 노하우가 탁월해서가 아닌, 글 속에 투영된 어린 작가들의 생각과 결을 훔쳐 보고 소중히 배워 볼 줄 아는 겸손이 있기 때문이다. 짧고 평범한 문장들에서 특별한 기억을 펴내는 그의 경청은 참 곱다. - 큰따옴표가 상대에게 관심있 게 귀를 기울였다는 오붓한 증거라니.
정선주
3.5
가끔 무언가를 너무 사랑해서 나까지 같은 대상을 사랑하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이슬아의 글방에 내가 앉아 있었다면, 나는 글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나 자신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랐을 것이다.
김창희
5.0
아이들의 글을 읽으면 눈물이 나려고 한다.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 내가 가지지 못했던 영민함. 그래서 부러움. 순수를 잃어 부끄러운 마음. 걔네들의 앞날에 대한 기대. 참회같은 게 얄팍한 마음의 그릇을 채우고 울컥 넘치려 한다. 하지만, 거기서 울어버리면 그 감정들은 뭉뚱그려서 그냥 슬픔이 될테고, 나는 "참 따뜻한 이야기야. 그걸 보고 울 수 있는 나는 따뜻한 사람이야." 하고 말 걸 안다. 연민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해 자세를 고쳐앉는다. 배에 힘을 주고 계속 읽는다. 그건 이슬아의 덕분이다. 이슬아는 읽는 사람을 더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드는 관 찰자다.
서윤
4.0
언니에 대한 칭찬의 말 (비스와바 심보르스카) 우리 언니는 시를 쓰지 않는다. 아마 갑자기 시를 쓰기 시작하는 일 따위는 없을 것이다. 시를 쓰지 않았던 엄마를 닮아, 역시 시를 쓰지 않았던 아빠를 닮아 시를 쓰지 않는 언니의 지붕 아래서 나는 안도한다. 언니의 남편은 시를 쓰느니 차라리 죽는 편을 택할 것이다. 제아무리 그 시가 ‘아무개의 작품’이라고 그럴듯하게 불린다 해도 우리 친척들 중에 시 쓰기에 종사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언니의 서랍에는 오래 된 시도 없고, 언니의 가방에는 새로 쓴 시도 없다. 언니가 나를 점심식사에 초대해도 시를 읽어 주기 위해 마련한 자리는 아니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녀가 끓인 수프는 특별한 사전 준비 없이도 그럴싸하다. 그녀가 마시는 커피는 절대로 원고지 위에 엎질러질 염려가 없다. 가족 중에 시 쓰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는 그런 가족들은 무수히 많다. 그러나 결국 시인이 나왔다면 혼자만의 문제로 끝나는 법은 없다. 때때로 시란 가족들 상호간에 무시무시한 감정의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세대를 관통하여 폭포처럼 흘러간다. 우리 언니는 입으로 제법 괜찮은 산문을 쓴다. 그러나 그녀의 유일한 글쓰기는 여름 휴양지에서 보내온 엽서가 전부다. 엽서에는 매번 똑같은 약속이 적혀 있다. 돌아가면 얘기해 줄게. 모든 것을, 이 모든 것을.
영아
3.0
글을 쓰다보면 당연한 걸 잊고 만다.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것들. 스케치 없이 완성 된 그림의 결과물이 어떤지는 중요치 않다. 스케치 할 때만이 느낄 수 있는 과정들을 잊고 살았다는 얘기이다. 이슬아가 가르치던 어린 작가들을 통해 그것들을 다시 배웠다. 소년도, 노인도 되지 못한 내 글은 초심자의 마음이 필요하고, 꾸준함이 필요하고, 그 무엇도 아닌 내 자신이 되는게 필요하고. 어쩌면 어른이 되는 과정은 쉬웠던 유년의 그것들이 어려워지는 과정이 아닐까.
유려
3.0
나도 글방 같은 곳 다녀보고 싶다. 이슬아 작가 같은 선생님 만날 수 있음 행운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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