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가진 게 없어도 행복해질 수 있어.
하지만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행복해질 수는 없어.
나는 두려워하면서 살고 싶지 않아.”
한국에서의 익숙한 불행보다
호주에서의 낯선 행복을 택한 노마드 청춘의 등장
거침없는 수다로 한국 사회의 폐부를 드러내는
글로벌 세대의 ‘문제적’ 행복론
사회 비판적 문제에서 SF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소재, 흡인력 있는 스토리 전개, 날렵하고 군더더기 없는 문장. 일본 대중 문학의 기수 오쿠다 히데오에 비견되며 한국 문학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 넣고 있는 작가 장강명의 장편소설 『한국이 싫어서』가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시리즈로 출간되었다. 한겨레문학상·수림문학상·제주4.3평화문학상에 이어 최근의 문학동네작가상까지, 문학상 4관왕 성취를 이룬 작가가 수상작들을 출간하기에 앞서 가장 먼저 선보이는 작품이다.
『한국이 싫어서』는 20대 후반의 직장 여성이 회사를 그만두고 호주로 이민 간 사정을 대화 형식으로 들려주는 소설이다. 학벌·재력·외모를 비롯해 자아실현에 대한 의지·출세에 대한 욕망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에서 평균 혹은 그 이하의 수준으로 살아가며 미래에 대한 비전을 꿈꾸지 못하는 주인공이 이민이라는 모험을 통해 자신만의 행복을 찾아 가는 과정을 담았다. 특히 1인칭 수다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전개 방식은 20대 후반 여성의 말을 그대로 받아 적은 듯 생생하고 경쾌하게 전달해 읽는 재미를 더한다.
등단작 『표백』이 청년 문제를 생산하는 ‘사회’의 한 단면을 통찰하고 최근 호평을 받은 『열광금지, 에바로드』가 사회와 거리를 둔 채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오타쿠라는 ‘개인’의 영역을 통찰했다면, 『한국이 싫어서』는 개인과 사회의 관계·사회에서 살아가는 개인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취할 수 있는 가능성의 한계를 모색한다. 깊이 있는 주제를 장강명 특유의 비판적이면서도 명쾌한 문장과 독자를 끌어당기는 흥미로운 스토리로 표현했다.
■‘단군 이래 가장 똑똑한 글로벌 세대’의 글로벌 행복론
20대 후반의 직장 여성 계나는 종합금융회사 신용카드팀 승인실에서 꾸역꾸역 근무하던 중 일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출퇴근의 지옥철은 더더욱 참지 못한 나머지 사표를 제출한다. 말리는 가족과 눈물로 호소하는 남자 친구, ‘외국병’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호주로 떠난 계나는 국수 가게에서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학원을 다닌다. 크고 작은 위기들을 극복하며 어학원을 수료한 뒤 회계학 대학원에 입학해 안정을 찾아 가던 계나는 남자 친구였던 지명으로부터 청혼에 가까운 고백을 받는다. 두 달 동안의 방학을 그와 함께 한국에서 지내게 된 계나는 안정적인 직장을 얻은 남자 친구와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을 사는 아파트까지, 많은 것이 갖추어진 생활을 하지만 여전히 한국에서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또다시 호주행을 선택하는데……. 첫 번째 출국이 한국이 싫어서 떠난 도피의 길이었다면 두 번째 출국은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한 도전의 길. 계나는 점차 자신이 원하는 행복한 삶에 가까워진다.
■취재에 기반한 사실적인 소설
취재는 장강명 소설의 특징 중 하나다. 내면적 성찰이나 관념적 상상력의 비중이 큰 일군의 문학들과 달리 장강명 소설은 취재하고 조사한 지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작품에 대한 짧은 언사나 소회가 대부분인 ‘작가의 말’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 역시 작품을 쓰는 데 도움 받은 사이트나 사람들에 감사를 표하는 내용이다. 페이지 터너로서의 장강명은 가능한 한 많은 것을 조사하고 취재한 다음 그것을 사실처럼 묘사하는 탁월한 능력에서 비롯된다. 『한국이 싫어서』 역시 각종 유학 정보 사이트와 관련 도서를 비롯해 실제 호주 유학을 경험한 인물과의 심층적인 인터뷰를 바탕으로 쓰였다. 유학 과정에서 겪은 몇 차례의 연애담과 크고 작은 사건들, 호주 시민권을 얻기까지 벌어지는 다양한 상황에 대한 사실적 묘사는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이다.
■시사성 있는 소재를 통한 사회 비판적 소설
사회 비판적 시선이 두드러지는 시사적 소재를 통해 세대 문제를 비롯한 사회의 그늘을 조명하는 것 역시 장강명 소설을 관통하는 뼈대다.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장편소설 『표백』은 이미 모든 것이 완벽하게 존재해 더 이상 세상에 공헌할 길이 막혀 버린 탈색된 젊은이들, 즉 ‘표백’된 세대의 연쇄 자살을 그렸다. 최근 제주4.3평화문학상을 받은 『2세대 댓글부대』는 인터넷 저널의 순기능과 역기능을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정치권력과 그 사수인으로 살다 용도 폐기되는 낙오자들의 참혹상을 사실적으로 그리며 대중조작의 폭력성을 다루었다. 『호모 도미난스』 역시 형식은 SF 소설이지만 오로지 이기기 위해 유전자 스스로 진화를 거듭해 타인을 지배하는 ‘힘’을 갖게 된 새로운 인류 ‘호모 도미난스’에 대한 이야기로, 무자비한 사회를 출현시키는 과학 기술의 발전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보여 준다. 『한국이 싫어서』 또한 사표 내고 이민 가는 등, 소박한 욕망에 비해 적극적인 ‘행동’을 통해 처해 있는 상황을 변화시키려는 노력 없이 불만만 거듭하는 사람들의 소극적 태도를 비판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절망적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시의성 있는 소재와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특유의 통찰력은 장강명 특유의 색깔이 되어 가고 있다. 기존 작품들이 어두운 무채색 계열이었다면 이번 소설은 발랄하고 유머러스한 분위기라는 점에서 독자들의 흥미를 더욱 충족시켜 줄 것이다.
쁌쁗
3.0
쉽게 읽히고 쉽게 잊혀진다.
박범수
3.0
단기 탐사보도나 기획기사처럼 쓰여진 맞춤형 소설 같았다. 트렌디한 이슈를 빠르게 캐치한 후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에 맞게 현상을 나열하고 편집한 것처럼 보이는 구성이 두드러졌다. 그러나 깔끔한 문장과 성실한 취재가 인물과 사건에 아무리 생동감을 불어넣어도 독자의 흥미와 관심을 끄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기는 어렵다. 결국 깊이는 취재의 양이 아니라 소재를 바라보는 글쓴이 나름의 통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한국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자기만의 ‘왜’조차 없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두루뭉술한 결론을 정해두고 안타까움과 응원의 감정만으로 ‘어떻게’를 채워넣은 느낌이다. 한국 사회를 지금의 모습으로 만든 40대의 책임의식으로 소설을 썼다면, 스스로를 20대에 이입할 것이 아니라 20대와 40대를 어떻게 이을 지에 대한 관심을 가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옆에 있는 친구들에게 경의와 존경을 보내는 한 명의 20대로 감히 말하자면 계나를 포함한 한국의 젊은 사람들은 충분히 최선을 다하고 있다. 가족들에게 의지해 살아온 것에 대한 부채의식과, 선택하고 투자한 모든 것들이 비용으로 처리되어 영원히 사라질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고, 매 순간의 손익계산서를 두들겨 보면서 나만의 자산을 불려가는 게 지금의 20대다(그런 의미에서 자산성 행복과 현금흐름성 행복 운운하는 계나의 나이브한 대사는 낯간지러웠다. 행복은 삶의 목적이 아닌 과정의 부산물 아닌가?). 스스로를 구원하는 건 나 자신 뿐이라는 걸 젊은이들은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거기에 대고 어쨌든 무엇이든 하라고 옆에서 박수치는 게 잔소리가 아니고 뭔가. 그래도 소설을 재밌게 읽었기에 ‘꼰대치고 착하다’는 식으로 빈정거리고 싶지는 않다. 글쓰기를 대하는 작가의 태도가 굉장히 멋지기도 하고. * 르포르타주 <당선, 합격, 계급>이 읽고 싶어졌다. 거기에 이 소설이 주는 인상에 대한 답이 있을 것 같다.
이모
3.5
세상 어디에도 낙원은 없다. 각자 다른 기준 속에서 조금 나은 곳이 있을 뿐
고니
3.0
워홀러들의 일기를 그대로 옮긴 것 같은 현실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쌀강
4.0
첫 장 딱 넘기니까 눈물 나더 라. 그 막막하고 무거운 마음을 잘 아니까, 계나랑 내가 뭘 그렇게 닮았다고 응원하게 되는거야. 사실 난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서,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고 당장 호주로 떠날 것도 아니지만... 누군가의 십 여년을 한시간 반 만에 읽는다는게 좋았어. 다윤아 항상 고마워! 사실 우린 한국을 떠나고 싶은게 아니라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곳에서 머무르고 싶은 거지. 가만히 고여있던 자리가 버거웠던 거야. 일 년 만에 마주한 넌 네가 행복할 수 있는 곳을 찾은 채 충분히 행복해하는 것 같아서 기뻤어. 다시 돌아오는 순간까지 빈틈없이 행복하길. 이 글을 읽을 리 없겠지만 고마운 마음 가득 담아서 남길게. 책 빌려줘서 고마워 정말 많이!
슬슬
5.0
내 얘긴가 싶어서 눈물 훔치며 쓱싹 읽어내렸다. 이사회 이 나이의 여자로 살아가는 절망과 잃어버릴 수없는 희망.
강귀은
4.5
결국, 자아실현과 신분상승을 모두 원하는 게 나의 욕망이고 원하는 삶인데, 그것이 한국에서는 불가능할 거 같아서, 그래서 행복할 수가 없을 거 같아서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한 거잖아? 책을 다 보고나서 처음에는 계나의 용기와 결단력이 멋있다고 생각했어. '부럽다, 나에게는 저렇게 실행에 옮길 담대한 용기가 없는데'. 그런데 생각을 곱씹어보았더니 조금은 의문점들이 생겼고 생각이 바뀐 부분들. 그리고 나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되었고 생각한 것들. 일단 맞아. 계나는 스스로 현 처지에 머물러 있는 고통의 불평과 신세한탄만을 늘어놓고 결국은 그 삶을 바꾸고자 끊임없이 생각하고 고군분투할 의지는 없는, 그런 모순적인 사람이 아니야. (예전에 어떤 책에서 읽었던 구절이 생각나서. '세상은 모순으로 가득차 있다. 모순에 가득차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걸 바꾸려들지 않고 그저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가장 큰 모순이다.') 꽤 긴 시간동안 고민했고 갈등도 하면서 결국은 한국을 떠나기로 한 결심을 이내 실행으로 옮기는 결단력을 보이지. 그리고는 호주로 떠나게 되. 당연하지, 타지에서도 물론 고생하는 삶은 똑같다는 거. 계나 역시 호주로 가서 약 6년동안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온갖 고초들을 다 겪어가면서 자기계발도 하고(영어가 엄청 늘어났지. 물론 자신의 노력의 결과물.) 결국 시민권을 따내고야 말아. 정말 대단한 일이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맨몸으로 그렇게 버티고 맞서나가면서 행동하는 거, 그리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데로 움직이고 선택하고 결단하는 것이. 그런데 , 그런 의문이 들더라. 그래서 계나는 자아실현과 신분상승의 가능성을 본 것으로 결국 한국을 떠나 호주에 있는 것이 더 행복할 거라는 결론을 내고는 다시 한국을 떠나는 것으로 끝나거든. 아까도 말했듯이, 계나가 호주에 맨 몸으로 부딪히고 겪으면서 자립하고 성장한 그 삶들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하고 인정해. 계나는 말만하거나 쉽게 포기하지않고 계속 부딪히고 결국 시민권도 따냈잖아. 그런데 내가 의문이라는 건, 계나가 처음에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했던 이유 중에 자아실현에 관해서말이야 계나가 잠시 한국에 들어왔을 때 자주 하는 말이 있어. (특히 예나랑 예나 남자친구를 보면서) 한국에서 웨이트리스를 하는 것과 호주에서 웨이트리스를 하는 것의 대우는 너무도 다르다고. 그러면서 예나의 남자친구에게 한국에서 대우도 못받아가며 음악하지말고 호주로 오라고 하지. 그걸 원치 않는 동생과 동생의 남자친구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해. 예나가 계속해서 비교하는 그 '대우'란 게 뭘까? 내려깔지않고 무시하지 않고 인간으로써의 존중, 그리고 돈. 이지 않을까싶거든. 그리고 계나가 그 동안에 호주에서 시민권을 따기위해 열심히 산 것은 맞지만, 자아실현의 직업을 만나기위해 여정을 떠난 적이 있던가? 싶은거야. 그저 시민권을 따겠다는 목적으로 '살기위해' 열심히 살아온 것인데. 그런 삶이, 한국에서의 삶과 무엇이 다르냐는거지. 그래서 그런 의문을 가진거야. 한국에서 지명의 부모님에게 받았던 비참함, 그로인한 자존심의 스크래치 등등이 한국에서의 도피 그러니까, 회피가 아니었을까 하는 의문. 자아실현을 위해서라면 겪어나갈 고충과 희생, 노력과 기나긴 시간의 터널을 지나야하는 건 어디건 비슷하잖아. 그런데 호주와 우리나라의 차이라면 그 과정에서 받는 임금과 사람들의 인식차이. 그것이 계나가 말하는 '대우'겠지? 그런걸 비교해보았을 때, 호주가 더 희망이 있겠다고 말한 건 결국 신분상승에 대한 욕망아닐까. 그렇다면, 어쨌든 자아실현의 문턱은 어딜가나 비슷하게 어렵다는 전제를 두면 호주가 더 나아. 그 과정 속에 무슨 일을 하던간에 인간적인 대우를 더 받고 임금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 인간적인 대우를 또 비교해보자면. 한국에서 받는 무시와 차별따위와 외국에서 계나가 겪는 인종차별은 어떻게 다뤄야하냐는 거야. 근데 계나의 태도를 보면 인종차별은 견딜 수 있는 일로 받아들여지는거같거든. 결국 그 모든 과정과 선택이, 옳았다는 결과를 내기위해 더 한국을 악랄하게 그리고 호주의 장점만을 부각해서 인상을 남기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거지. 뭐 그런 모든 것들 떠나서 사실 내가 계나의 선택을 왈가왈부할 이유가 없지! 그럴 필요도 없고! 그리고 계나의 자아실현에 신분상승이 큰 차지를 위치하고 있다면 그 모든 과정이 결국 자아실현의 과정이기도 하고. 그 과정에 뿌듯함과 행복감을 느끼면 그걸로도 사실 엄청 충만한 삶이지!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해 본 건, 내가 원하는 삶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고, 나라면? 하고 대입해봐서. 결국 내가 원하는 삶을 알고싶어서 난 계속 책을 읽는거 같거든. 그리고 그 생각의 계기를 또 이 책이 만들어주었네. 그리고, 계나가 한국에 대해 품는 인상들을 다시 곱씹고 생각해봐야만하는데, 대중의 인식에 휘둘려서 '헬같은 대한민국' 따위의 결론도출말고 진짜 내 경험과 판단에 반추해보는 것.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 내린 결론속에서, 내가 원하는 삶과 밸런스를 맞추고 그 원하는 삶으로 가는 노력의 과정을 도출해보는 것. 이것이 다음단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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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떠나던 날 정혈이 터졌다는 이야기를 남자가 썼다는게 너무 괘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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