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시대

![[내부] 구독권 할인 프로모션 보드배너_3차](https://an2-img.amz.wtchn.net/image/v2/3O-dFqcg8jb_tNrLh9idmw.png?jwt=ZXlKaGJHY2lPaUpJVXpJMU5pSjkuZXlKd0lqb2lMM1l5TDNOMGIzSmxMM0J5YjIxdmRHbHZiaTh4TXpBd05qSTVORGcwTVRBeE1EWTJJbjAuelRRQzQzcldySkhMUWkxeW1DdGh0V0g3aElpRnJDODFDcUZRdHNyUHN1aw==)
![[내부] 구독권 할인 프로모션 보드배너_3차](https://an2-img.amz.wtchn.net/image/v2/dJifk6CQ_JkYfQSaPz2meg.png?jwt=ZXlKaGJHY2lPaUpJVXpJMU5pSjkuZXlKd0lqb2lMM1l5TDNOMGIzSmxMM0J5YjIxdmRHbHZiaTh4TVRJMk1ERXdNVEU0TmpnME1Ea3dJbjAub3JCREJoN2RoZkRhSUNMeGtpcVk4eTBraFFPbzk4cy01S00wLXBuVEdrOA==)
어느 미래의 광야시대. 꿈꾸지 않는 자들은 영생할 수 있다는 비밀을 발견한 인류는, 비밀리에 계속 꿈을 꾸면서 역사에 혼동을 가져오고 시간의 오류를 만드는 ‘판타스머’들을 각성시키고자 한다. ‘빅 아더’는 판타스머를 깨우고 시간을 순차적으로 흐르게 만드는 사람들인데, 그중 한 빅 아더(서기)는 오랫동안 숨어서 꿈을 꾸는 판타스머(이양천새)를 찾아다닌다. 마침내 판타스머를 맞닥뜨린 빅 아더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꿈을 꿀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한다. 그렇게 판타스머는, 100년의 시간을 넘나들면서 네 번의 꿈을 꾼다. 비간의 <광야시대>는 무성영화 같은 프롤로그로 시작된다. 그리고 판타스머가 꾸는 꿈을 통해 SF, 표현주의, 누아르, 슬랩스틱 코미디, 스릴러 등 다양한 시대의 다양한 영화 장르들을 변주하고 오마주하면서, 마지막 꿈속에서 마침내 비간의 인장과도 같은 30여 분의 놀라운 롱테이크 신에 도달한다. 네 개의 꿈 장면은 판타스머의 존재를 제외하고는 각각 전혀 다른 장르와 인물들로 이루어진 짧고 매력적인 영화로, 영화 속의 영화로 콜라주 된다. 에필로그에 이르러 무너져 가는 극장들과 빛으로 사라지는 관객들까지, <광야시대>는 영화사 100년에 대한 비간의 애정 어린 헌사이며 극장의 시대에 대한 다소 이른 노스탤지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광야시대>가 증명하듯이, 판타스머처럼, 그리고 마치 비간 그 자신처럼, 꿈꾸는 이들은 새로운 영화를 만들어낼 것이고 극장의 시대는 계속 될 것이다. (박선영)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4O% 할인 곧 끝나요!
연간 구독권 할인 놓치지마세요.
WATCHA · AD
4O% 할인 곧 끝나요!
연간 구독권 할인 놓치지마세요.
WATCHA · AD
134340
5.0
꿈을 살게하고 삶을 꿈꾸게 만든다
샌드
4.5
아마도 모든 영화 감독이, 혹은 영화를 사랑하는 누구라면 한번은 영화에 관한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작품은 수도 없이 나온 영화 감독들이 영화에 관한 생각을 담은 영화 중에서도 아무도 안 하고 아무나 못하는 정말 비간이라는 훌륭한 작가 한 명 만이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접근과 방식으로 영화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해 풀어 놓습니다. 아직 장편이 세 편 뿐임에도 그 개성이 완전히 녹아 들어있음을 알아채도록 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제겐 놀라운 성과인데, 세 편 모두 비슷한 지점을 각기 다르게 건드린다는 점 역시도 대단한 면입니다. 극장이라는 공간의 힘이 점차 사라져 가고 긴 영화보다 짧은 영상을 더 매력적이라 여기는 시대에 그 반대를 어떻게 주장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비간은 꿈을 꾸고 보여주는 것으로 말합니다. 영화를 다루는 것은 꿈을 다루는 것이고 꿈을 다룬다는 것은 삶을 다루는 것이자 환상을 다루는 것이며 결국 나아가 마지맏 끝까지 가면 꺼지지 않고 녹지 않을 희망의 불씨를 되살리는 희망을 다루는 것이라 말하는 듯합니다. <홀리 모터스>의 시작과는 정반대의 지점에서 사그라지는 극장의 모습을 되찾는 가장 영화적인 시도가 담긴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영화에서 영화라는 꿈, 꿈이라는 영화를 어떻게 그릴 것인가에 대해선 서로 같아 보이기도 하고 다르게 보이기도 하는, 밀접해 보이기도 무관해 보이기도 한 이야기를 시공간의 제약 없이 이미지와 사운드로 엮어낼 수 있는 영화라는 예술 매체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만들었다는 점에 지독히 놀랍고, 최후에 가선 지금과는 달리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직접 전달하기까지 한다는 점에서 가장 사적인 메시지가 담긴 영화기도 했습니다. 초가, 꿈이, 영화가, 극장이 사라질 위기에도 그 아래에서 남아있는 마지막 불씨를 꺼뜨리지 않으려는 자들이 영화 안팎에서 벌이는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사투를 SF라는 장르와 소재에 담아서 스크린에 멋지게 구현하는, 무척이나 신비롭고 몽환적인 여운이 깊게 남는 작품이였습니다.
Fridaythe13th
5.0
시간에 녹아 종말을 맞이해도 우리가 꿈을 꾸는 순간 몇 번이고 되살아나는 것들에 대해. -30th BIFF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 상당히 정형화되고 친절함에도 모든 디테일들이 치밀하게 설계된 꿈을 꾸는 듯한 느낌의 영화로, 꿈과 현실, 그리고 기억과 영화에 대한 테마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20세기 시네마에서 21세기로의 자취를 차근차근 따라가는 듯한 구조 속에서, 종말을 맞이한 것들(인간의 유한한 수명과 기억, 영화 등등)을 비추며, 이를 통해 또 한번의 꿈을 꿈으로 되살려낸다. 꿈을 꾸는 것은, 기억을 떠올린다는 것이자 이미 종말을 맞이한 것들을 다시 마주하려는 행동이라는 점에서, 무엇보다 영화적인 의미에서 읽힌다. 꿈 자체를 영화로 본다면, 꿈을 꾸는 주체는 자연스레 관객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이 점에서 광야시대는 영화 자체보다 관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듯 보이기도 한다. 몽환자는 꿈을 꾸기 때문에 늙어가는데, 마치 우리가 영화를 보기 위해,꿈을 꾸기 위해 시간을 대가로 내놓는다는 점에서 동일한 이야기같아 보인다. 광야시대는 꿈을 꾸지 않는 시대, 꿈이 종말을 맞은 시대로 읽히지만 그럼에도 누군가 꿈을 꾸는 순간 종말을 맞이했던 기억들과 영화들이 결국 되살아난다는 점에서, 꿈 자체는 시간에 의해 타버리는, 필멸적인 것임을 긍정하면서도 우리가 적극적으로 주도하고 참여한다면 언제든 부활시킬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단점이라면, 이 놀라운 설정의 이면 대부분을 너무나 친절하게 설명한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감성적인너구리
보고싶어요
이건 내가 꼭 본다.
Ozu
4.0
무성영화부터 독일 표현주의, 필름 누아르를 거쳐 멜로, 엔딩의 메타시네마적 선언까지 챕터마다 시대와 장르를 넘나드는 이 영화는 비간 감독이 바치는 영화사 전체에 대한 러브레터이자, 시네마 자체에 대한 오마주 같다. 영화를 본 게 아니라, 영화라는 꿈을 꾸다 나온 기분. 경이롭다.
배 윤 서
4.5
타오르는 극장 안 상상의 필멸, 꺼져가는 극장 밖 투영의 불멸. - BIFF 2025
티후김이박모미지도원시야웅현빈
4.0
영화를 '본다'는 것, 이로 인해 꿈을 꾼다는 것, 영화가 존재하고 광야시대가 있어야만 하는 이유. - BIFF 2025. 여섯째 날. 두번째. ----- 제 78회 칸영화제 특별상 수상 부국제서 이양천새를 만날 수 있다면?
..
5.0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는 카프카의 말처럼,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 영화 <광야시대>는 더이상 사람들이 꿈꾸지 않는 세상을 다룬다. 꿈꾸지 않으면 영생할 수 있기에 꿈의 대가는 너무나도 가혹한 듯 보인다. 영화는 에필로그와 프롤로그 격인 이야기 사이에 4개의 작은 단편 영화들이 들어가있으며 각각의 이야기는 시간순대로 40년, 70년, 90년, 99년에 해당한다. (시대에 따라 화면비가 달라지는 것이 흥미롭다.) 이 4개의 이야기를 느슨하게나마 연결하는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각각의 영화가 청각, 미각, 후각, 시각의 이미지를 중요하게 다룬다는 점이다. 단편 영화들은 그 영화들 자체로도 뛰어난 완성도를 가지고 있지만 네 영화의 결말이 모두 비슷해 보인다는 점에서 특별해보인다. 결말은 판타스머가 각각의 감각을 통해 일종의 파멸을 한듯 보인다. 귀를 멀게하고 거울 세계에 들어오게 하거나, 쓴 돌을 통해 불러온 요괴가 아버지와의 안좋은 기억을 마주하게 한다거나, 후각의 속임수를 통해 부를 얻지만 죽거나, 새로운 세기의 태양을 연인과 함께하지만 죽는다. 이러한 결말들은 제 살을 깎으며 타오르는 촛불과도 닮아보인다(첫번째 에피소드의 개구리 일화도 떠오른다.) 촛불은 영화 내내 꿈과 영화를 상징하는데 그렇다면 광야시대는 우리에게 자기 파멸적인 영화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것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에피소드의 결말들은 단순한 비극처럼 보이지 않으며, 감독의 gv 표현을 빌리면 자아회복, 영어 제목을 빌리면 부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비단 영화 속 인물 뿐 아니라 관객들에게도 페이소스를 비롯한 여러 감정을 환기시킨다. 다시 에필로그에 이르면 관객을 직접적으로 판타스머의 위치에 끌어들인다. 그리고 부활 후에도 다시 꿈꾸는 행위를 이어나가기를 기도한다. 아무리 세상이 힘들지라도. 영생이 가능한 세상에서 스스로의 시간을 깎아먹으며 꿈을 꾸는 것. 힘든 세상에서도 스크린 앞에 더 큰 비극이 있을지 모르지만 극장을 찾는다는 것. 감각적 이미지를 통해 우리 마음속 얼음을 깨는 도끼를 마주한다는 것. 그 행위들이 100년동안 지속되어온 것의 존경과 미래에도 지속되었으면 하는 기도가 담긴 걸작으로 느껴진다.
더 많은 코멘트를 보려면 로그인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