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
All We Imagine as Light
2024 · 드라마 · 인도, 프랑스,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이탈리아
1시간 50분 · 1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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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는 빛을 상상하는 게 어려워요” 시간을 훔치는 대도시 뭄바이, 같은 병원에 근무하는 프라바, 아누, 파르바티에겐 해결되지 않는 사정들이 있다. 그러나 세 여자의 우정은 작은 빛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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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평론가
4.5
빛이 있으라, 그러자 영화는 꿈꾸기 시작했다.
손정빈 기자
5.0
그 어둠이 우릴 덮쳐도… 고요하고 점잖다고 해서 영화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4월23일 공개)이 소심할 거라고 생각해선 안 된다. 인도영화로는 1994년 '스와힘' 이후 30년만인 2024년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심사위원대상을 받은 이 작품은 그 성취를 그저 행운으로 거머쥔 게 아니란 걸 증명한다. 법석 없이 그윽하게 야심을 실현해내는 파얄 카파디아 감독의 예리함과 대범함은 그의 첫 번째 장편 극영화를 이미 여느 영화로는 도달하지 못 할 경지로 이끈다. 이 작품은 한 여인의 처지를 비슷한 많은 사람들의 사연으로, 이 사연을 다시 도시의 분위기로, 그 분위기를 한 세계의 광경으로 확장한다. 그리고 한 사람은 물론 모든 세계를 휘감은 듯한 고독과 공허 속에서 기어이 빛을 찾아내 그 숱한 어둠을 견딘다.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은 프라바, 아누, 파르바티 각기 다른 세대 세 여성의 이야기다. 프라바는 아버지가 점찍은 남자와 얼굴 몇 번 본 뒤 결혼했고, 남편은 혼인 직후 독일로 일하러 가버렸다. 그 남자는 아마도 아내를 잊은 듯하다. 프라바는 남편과 통화한지 1년이 넘은 것 같다고 말한다. 아누는 비밀 연애 중이다. 집에선 결혼을 재촉하지만 그는 전혀 생각이 없고, 게다가 지금 만나는 남자는 이슬람교도다. 프라바와 아누가 간호사로 일하는 병원의 조리사인 파르바티는 20년 넘게 산 집에서 쫓겨날 처지다. 건물주가 임대 계약 관련 서류가 없다는 걸 꼬투리 잡아 법적으로 그를 압박하는 것. 남편과 사별하고 아들은 결혼해서 분가시킨 그는 자식에게 신세 지기 싫기에 당장 거리에 내쫓길 수도 있다. 다른 지역 출신인 세 여성이 뭄바이에 일하러 와 짊어지게 된 적막과 고통을 조금씩이나마 공유하고 위로한다는 점에서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을 연대와 지지에 관한 영화로 부르는 건 당연하다. 속내를 드러내지 않던 프라바는 감춰온 속마음을 파르바티에게 그리고 아누에게 털어 놓는다.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아누의 사랑을 지지해주는 건 결국 프라바와 프라바티다. 프라바와 아누는 결국 도망치듯 고향으로 돌아간 프라바티를 외롭게 두지 않기 위해 이사를 도와 그의 고향으로 함께 간다. 세 여자가 나란히 앉아 칠흑 같은 바다를 바라볼 때, 프라바를 흠모하는 의사 마노즈가 쓴 시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지금 당신은 밝게 타오르는 이웃집의 불빛. 난 그 빛을 보며 밤에도 온기를 느껴요." 여기서 만족했다면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은 비슷한 주제를 다룬 다른 평범한 영화들과 같은 선상에 놓이는 데 그쳤겠지만, 카파디아 감독은 그들의 스토리에 인도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맥락을 압축해 이 작품을 전진시킨다. 프라바의 단절된 관계와 아누의 금지된 사랑엔 젠더와 종교가 인도의 주요 정치 이슈 중 하나라는 게 함축돼 있다. 재개발 문제로 집에서 쫓겨나게 된 프라바티의 사정으로 인도 경제 상황을 꿰어내고, 남자친구 시아즈보다 성(性)에 더 적극적이고 프라바보다 더 진취적으로 인간 관계를 형성해가는 아누의 모습에선 극도로 보수적인 인도 사회·문화의 진보가 감지된다. 카파디아 감독은 세 여자의 사연을 개인 문제로 남겨두지 않고 사회 문제로 치환해 한 시대의 단면을 포착한다. 세 여자와 그들이 사는 세계에 관해 얘기하는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은 뭄바이라는 도시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뭄바이의 첫새벽과 그 속에 사람들을 담아낸 긴 패닝 쇼트(panning shot)로 문을 여는 이 영화는 프라바·아누·프라바티의 삶을 매번 대도시 한가운데로 부러 데려다 놓는다. 그건 사람으로 가득 찬 전철이기도 하고, 저마다 인생이 정신 없이 펼쳐지고 있는 거리이기도 하며, 인공 불빛만이 가득한 창문 앞이기도 하다. 그렇게 카파디아 감독은 인도에서 가장 큰 도시를 찬미하지도 경멸하는 법도 없이 그저 느끼려는 듯하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사람들은 뭄바이에 대해 말한다. "언젠가는 떠나야 할 것 같다"고, "고향에 돌아갈 일은 없다"고, "덧없음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그리고 프라바·아누·프라바티가 그렇게 산다. '우리가 빛이라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지금 이 순간 바로 이곳에서 우리가 빛이라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인정하려는 것 같다. 반대로 지금 이 순간 바로 이곳에서 우리가 빛이라 상상할 수 없는 모든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프라바·아누·프라바티는 서로를 인정한다. 그들은 뭄바이를 인정한다. 프라바는 마노즈의 시를 인정한다. 아누는 시아즈의 나약함을 인정한다. 프라바티는 고향의 바다를 인정한다. 그러나 프라바를 버린 남편을, 아누를 옭아매는 부모를, 프라바티를 몰아낸 건물주를 인정할 순 없다. 빛을 담은 이 영화는 그래서 빛이 아닌 그들을 한 장면에도 등장시키지 않는다. 그리고 빛이 될 수 없는 것들을 향해 프라바는 말한다. "이러지 마요. 다신 보고 싶지 않아요. 다시는요."
정환
4.5
상상한다는 것의 또 다른 의미는 본다는 것이지만, 새하얀 빛을 상상한다는 건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는 뜻과 같아서. 그래서일까, 이 영화는 보는 것보다 듣는 것이 중요하다. 빛에 눈이 멀어 암흑 속에선 도저히 빛을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는 말에서, 현재와 미래 중 무엇이 빛이고 암흑인 걸까. 이 세상에는, 떠나고 머무르는 것조차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깨달으며, 뒤늦게나마 정해진 운명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지금 이 순간에서 무력한 암흑을 느끼는 세대와. 아무리 그려봐도 선명히 떠올려지지 않을 미래들에 대한 무감각함 자체가 암흑인 세대가 공존한다. 아무리 오랫동안 한곳에 머물러 있더라도 나라는 존재를 기억한다는 것은 나의 몫도 아니고, 금방 떠나갔다고 해서 그 사람을 금방 잊을 거라는 것도 내 뜻이 아니기에, 어느 방면에서나 눈이 멀었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 같다. 무엇 하나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어차피 기억하지도(되지도) 못할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듣는 것이 아니었을까. 먼저 눈이 멀어 지나친 청춘에 대해 후회만 남은 이전 세대의 진심 어린 말을 들을 수 있다는 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길을 잃은 청춘에게는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어둠 속에서 우리를 춤 추게 만드는 것은 빛이 하는 일도 아니어서. 두려움 속에서도, 어떤 후회나 미련 속에서도, 소리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는 아니었을까. 이 영화의 모든 대사와 소리와 음악이 좋았던 것도 그래서는 아니었을까.
혁민
4.5
엔딩씬부터 크레딧까지 이어지는 Topshe의 "Imagined Light"라는 곡은 정말 근 1년 간의 개봉작 중 최고의 엔딩곡. 전반부에 두 여자 주인공 중 한 명이 모형 뇌에 청진기를 갖다대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어쩌면 이 영화는 고향을 떠나 뭄바이라는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흐르는 음악 내지는 소리 들을 화면으로 옮겨놓은 작품일 수도 있겠다. 대도시와 시골, 현실과 환상, 과거와 현재라는 서로 다른 레이어에서 출발한 소리들이 모여 빛으로 공명하는 엔딩.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싶은 영화를 만났다.
MayDay
3.5
“감싸는 어둠 속에서도 잔잔히 뻗는 빛무리같이” 일단, 영화에 사용된 모든 음악의 사운드 트랙을 다 다운받아 듣고 싶을 정도로 너무 좋았다. 이 영화는 광원의 중심처럼 환히 빛나는 빛이 아니라 꺼질듯 말듯, 무엇인가 빛의 중심을 가려도 잔잔히 뻗치는 빛무리같은 영화이다. 결혼, 종교, 사회, 복지 등으로 부터의 갈등과 소외된 세 사람의 삶을 따라 흘러가는 픽션의 스토리이지만, 찍어놓은 장면들은 다큐멘터리 형식을 섞어논 스타일이다. 섬세한 감정을 쫓는 카메라는 부드럽고 따뜻하다. 대도시의 뭄바이. 밤이 되면 번쩍이는 네온 사인과 아파트의 불빛들 사이로 누군가에게는 멋진 도시이자 희망찬 곳이겠지만 이 세 사람들에게는 그저 고민을 주는 명과 암이라는 경계를 지어주는 빛일 뿐이다. 빛이란, 주변이 한없이 어두울 때 가장 밝음을 띤다. 하지만 주변의 어두움을 단순히 두려움의 대상으로만 바라보고 탈피하려고 할 때 손에 잡히지 않는 것에 대한 고통에 끝없는 어둠을 헤매곤 한다. 만약 이 어둠을 받아들인다면 길을 안내해 줄 빛을 찾는다기 보다는 내 스스로가 어둠을 흡수하는 빛이 된다면 어떨까. 어두운 동굴에서 밝은 자연으로. 어두운 상상에서 밝은 현실로. 어두운 타향에서 밝은 고향으로. 그녀들이 주변을 인정함과 동시에 화면에도 자연적, 인공적 빛들이 서서히 눈에 들어온다. 어쩌면 불우한 상황에서 이겨내려는 여성들의 연대와 용기로 인해 희망찬 이야기 같지만 빛의 중심이 아닌 주변부의 빛무리라 표현한 것은 빛무리는 무엇인가에 가려져 잔잔히 빛나며 소멸할 것 같은 약한 빛이며 이것은 이 세사람이 사회를 바꿔나간다는 것보다 그러한 환경과 운명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마냥 희망찬 해피엔딩으로 볼 수는 없다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구름이 걷히고 자신의 가장 밝은 빛을 드러낼 수 있는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포기하지 말고 잔잔히 빛을 내주기를 바랄 뿐이다. 만약 미미한 빛, 이것조차 없다면 눈을 감은 것처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이미 답답함에 숨이 막혀버렸을테니 말이다.
오세일
3.5
영화를 보면서 미아케 쇼의 작품, 그중에서도 특히나 <새벽의 모든>이 자꾸만 떠올랐다. 은은한 음악의 선율이 곱게 깔린 채 이어지는 도시의 이미지들. 조곤조곤 내레이션을 내뱉으며 도시의 모습을 트래킹 하는 이미지들도 좋았지만, 롱 숏으로 거대한 뭄바이의 풍경을 가감 없이 담아낸 순간들도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단순히 풍경의 아름다움이 마음에 들어서가 아닌, 그 풍경이 품고 있는 세대의 아픔이 보였기 때문에 더욱 매혹된 것이 아닐까 싶다. 21세기의 고도화된 기술을 받아들인 인도의 사회. 그 안의 시민들도 다른 나라의 사람들과 같이 스마트폰을 쓰고, 깨끗한 지하철을 주 교통수단으로 이용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미지들의 내부에서는 여전히 바뀌지 않은 어떠한 사실이 보인다. 바로 여성이라는 존재를 대하는 태도. 얼굴을 가리는 부르카를 착용해야만 비로소 안전하게 거닐 수 있는 거리들, 원하는 배우자를 선택할 수 있는 권리의 소멸, 더 나아가 수동적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게 만드는 사회의 부조리한 차별과 대우들의 향연. 그렇기에 영화 내에 등장하는 모든 기술이 돋보이는 숏들은 필연적으로 모순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SNS 메시지를 통해 소통을 주고받는 과정이 화면에 등장하는 과정들. 기술적 진보는 받아들였지만 문화적 발전 앞에서는 눈을 감아버릴 뿐인 사회. 영화에서 키스, 배드씬들이 적나라하게 비추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이러한 체제에 순응하지 않는 여성상을 그려내야 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의 가장 영리한 지점은, 두 여인이 맺는 유대의 과정을 다루는 방식 그 자체에 있지 않을까 싶다. 보통 두 사람에 대한 더 나은 관계의 개선을 다룰 때의 가장 흔한 방식은 두 사람 간에 펼쳐지는 어떠한 사건을 등장시키고 그것을 해결함을 통해 더욱 끈끈해진 사이를 비추는 것일 텐데, 이 영화는 개개인이 경험한 각자의 사건을 통해 비로소 타인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는 과정을 밟아간다. 결국 인생의 해답은 과거에 있지 않다는 결론. 과거의 시간이 박제되어 있는 동굴이라는 공간에서 미래의 이미지를 그려보고, 본인의 곁을 떠난 남편의 족쇄로부터 해방되며 삶의 희망을 얻기도 한다. 세상이 아무리 과거에 머물러 있어도 개인이 미래를 꿈꿀 수만 있다면 언젠간 분명 더 찬란한 앞날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영화.
찌질이
4.0
빛이 안보여서 대신 당신을 상상해요
Jay Oh
3.5
빛이라 상상하는 것이 우리를 지탱해줄 동안, 선택과 포용이라는 진짜 빛이 깃들길. Awaiting the real light of cho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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