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라짜로
Lazzaro felice
2018 · 드라마/판타지/미스터리 · 이탈리아, 스위스, 프랑스, 독일
2시간 7분 · 12세

시간이 멈춘 것 같은 아름다운 시골 마을 인비올라타. 라짜로는 이웃들과 함께 마을의 지주인 후작 부인의 담배 농장에서 일하는 순박한 청년이다. 요양을 위해 마을을 찾아온 후작 부인의 아들 탄크레디와 라짜로는 둘만의 우정을 쌓는다. 자유를 갈망하는 탄크레디는 자신의 납치극을 꾸며 마을을 벗어나려고 결심하고, 라짜로는 그런 그를 돕는다. 한편, 납치 신고로 마을을 찾아온 경찰에 의해 이웃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고 라짜로는 홀로 남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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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As Lazarro (Trailer Theme)

Cotton Eye Joe

Prelude and Fugue: No. 8 in E-Flat Minor, BWV 853

Cotton Eye Joe

Prelude and Fugue: No. 8 in E-Flat Minor, BWV 853
이동진 평론가
3.5
부활로도 구원을 선물할 수 없는 세상의 쓸쓸한 성자 수난극.
Minju Park
5.0
우리는 라짜로가 가여워 울고 라짜로는 사람들이 가여워 운다
영화고독발버둥치며본다
4.0
1862년 빅토르 위고는 Les Misérables(불쌍한 사람들)를 통해 착취당하는 사람들을 연민하였고, 2018년 알리체 로르와커 감독은 행복한 라짜로를 통해 연민하는 Saint Misérable(불쌍한 성자)를 더욱이 연민하였다 . . 창작자는 창조주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나는 먼- 미래에 Dieu Misérable(불쌍한 신)으로도 구원 받지 못할 세상을 그리는 예술가가 나타날까봐 두렵다.
Annnn
4.5
내가 아는 선(善)의 냄새는 녹빛의 담뱃잎 향을 닮았지. 실향민이 된 천사에게서 나던 '그것' 말야.
HBJ
4.0
'행복한 라짜로'는 당해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탄 작품인데, 그럴 만한 참신함과 주제의식이 담긴 흥미로운 영화다. 순수한 시골 청년 라짜로를 따라가며, 그와 같이 사는 주변 인물들과 새로 만나는 인연들을 통해, 영화는 자본주의와 계급 사회에 대한 구슬픈 비판을 한다. 라짜로는 성경에서 나사로에 해당하는 이름이다. 나사로는 신약성서에서 두 인물의 이름인데, 하나는 예수의 열정적인 제자 중 한명이자 예수의 한마디에 부활을 한 인물이다. 다른 하나는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거지 나사로로, 생전에는 부자에게 무시를 받으며 고통스러운 생을 살다가 죽고 천국에 가게 된 우화다. 성경에 등장하는 두 동명이인의 이름을 이어받은 이 영화의 주인공은 어찌보면 이 두 성경 인물들의 합친 버전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 속 라짜로는 정말 바보라고 할 정도로 순수한 청년이며 돈이라고는 한푼도 없는 가난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런 순수함 때문에 그는 사람들한테 속고, 이용당하기만 한다. 여기에 영화는 인간의 역사와 동일하다고 볼 수 있는 계급사회의 역사성을 추가하며 순수한 정신과 호환이 안되는 추하고 악한 인간 사회를 비판한다. 주연 배우 아드리아노 타르디올로의 새하얀 피부와 뚜렷한 이목구비와 자연스럽게 헝클어진 검은 곱슬머리에 화룡점정으로 똘망똘망하게 빛나는 눈빛을 보면 5초 이내로 이 캐릭터가 때라고는 하나도 묻지 않은 순진한 사람임을 바로 느낄 수 있을 정도다. 이런 탄탄한 중심 연기가 있기에, 관객은 주인공의 특성에 처음부터 끝까지 몰입하며, 현대 사회라는 오즈에 천사가 갑자기 떨어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저 어둡기만 한 영화는 아니다. 주인공과 그를 통해 힘든 세상을 사느라 잠시 잊고 있던 순수함, 행복을 다시 맛보는 주변 인물들을 통해 인간의 또다른 본성, "인간다움"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시장과 경쟁의 논리가 지배하며 차가운 콘크리트 빌딩들이 올라간 현대 사회에서 우리 모두는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옛날 옛적에는, 로마의 국부과 될 로뮬루스와 레무스가 늑대의 젖을 빨던 시절에도 과연 그랬을까하는 인간사에 대한 서글픈 감독의 생각이 담긴 하나의 우화와도 같은 이 영화는 인간과 인간 사회에 대한 비관적이면서도 약간의 희망적인 낙관도 있는 메시지를 던진다. 하층민의 일상을 비전문 배우들과 함께 자연스럽게 그리는 이 영화에서는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의 바탕이 보인다. 특히 슈퍼 16mm 필름의 빈티지한 룩과 거친 질감은 주인공의 시련 많은 여정과 세상의 분위기를 더욱 풍만케 해줬다. 화사함과 창백함을 오가는 영상미부터 주인공에게 언제나 들어가는 아이라이트까지, 이 영화는 시각적인 연출로 이야기를 펼칠 톤을 완벽히 설정하며, 주인공의 문명 오디세이를 통해 인간을 탐험한다.
...
4.5
.
박찬현
3.5
영화 행복한 라짜로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과 상당히 밀접해 있는 영화다. 같은 시대 상의 계급구조와 그에 따른 갈등을 서사로 삼고 있지만 기생충과 행복한 라짜로가 표현하는 영화의 방식은 상이하다. 이 영화의 제목인 행복한 라짜로와는 달리 영화 상에서 구현되어 있는 라짜로의 삶은 전혀 행복하지 못하다. 성자란 무엇인가, 이 시대의 구원을 바라는 만민의 백성에게 조차 사랑받지 못하며 그저 연민의 대상으로서 방관의 존재가 될 수 밖에 없는 성자인 라짜로는 그저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다. 백열 전구가 부족하고 좁은 방안에서 살을 맞닿으며 살아가고 있는 인비올라타의 담배 농장에서 소작농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그곳의 영주인 루나 후작 부인에게 현대판 소작농으로서 착취와 노예 봉건제의 삶을 살아가는데 현대 법으로 임금과 급여의 지급 없이 노동력을 착취하는 소작농 행위는 범법 행위로서 금지되어있다는 사실을 은폐한 체 인비올라타의 주민들을 핍박한다. 루나 후작의 아들인 탄크레디의 납치 자작극으로 인해 경찰이 오게 되고 소작농으로서 불법 착취가 자행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루나 후작은 체포되고 공동체는 해체된다. 이 영화는 이 부분으로부터 분위기가 반전된다. 마을의 사람들은 라짜로라는 이름을 시도때도 없이 불러대는데 마치 성자인 라짜로에게 구원의 기도를 내뱉는 회중마냥 짜증이 날 정도로 불러댄다. 그들의 부름에 응답이라도 하듯, 그들의 소망에 하나하나 최선을 다한다. 부르주아인 후작에게 착취당하는 프롤레타리아 소작농, 그런 그들에게 착취당하는 라짜로란 인물로서 사회 구조적 계급 체계는 계속되서 순환되어지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동시에 라짜로의 성인군자적인 면모를 부각시킨다. 대 사기극이 자작 납치극에 의해 종결된 이후 마을의 주민들은 모두 도시로 와해된다. 감독은 이 부분에 대해 노골적인 착취의 시대에서, 더 새롭고 유혹적인 착취의 시대로의 전환이라고 밝혔다. 라짜로는 열병으로 인해 절벽에서 추락하여 사망하는데 보이스 오버로 작용하던 성자의 이야기가 영화의 프레임에 덧씌어진다. 그의 시체를 보며 발톱과 이빨을 드리우며 포식하려던 늑대는 처음 맡게 되는 냄새에 동작을 멈춘다, 선한 사람의 냄새였던 것이다. 늑대의 울음 소리에 의해 라짜로는 부활하고 라짜로는 도시로 향한다. 세월의 흔적이 할퀴고 지나가지 않은 라짜로는 이미 많은 세월이 지나간 도시로 향한다. 여기서 이 영화는 시간 여행과 같이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된다. 봉건제도의 사회에서 자본주의적 시대로의 연결로 한 시대에서 더 큰 시대로의 시간 여행을 경험한다. 그가 처음 만나는 니콜라는 이민자들에게 일자리를 주선하는 브로커로 변모해 있었고 소작농과 지주에서 자본가와 노동자의 착취 구조의 변주를 포착한다. 두 번째로 안토니아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의 가족들은 절도나 사기로 하루하루를 전전긍긍하며 살아가고 있다. 숲에 의해 나포된 채 방황했던 그들은 자유로운 몸이 되었지만 더 큰 자본주의라는 이름의 숲을 맞땋뜨리면서 사회로부터 아무런 교육도, 지원도 수급도, 1인 생산 능력도 무마된 채로 사회 속에 경직되어 노동자의 삶을 살고 있다. 과거의 프롤레타리아에서 현대의 노동계급으로 명칭만 바뀌었을 뿐 그대로 무산층인 것이다. 세 번째 인물은 탄크레디이지만 그들의 가족은 은행이라는 사회의 기업에 앞에 무릎꿇고 모든 재산을 강탈당했다. 인비올라타의 주민들은 탄크레디에게 초대를 받지만 그 또한 무산층일 뿐 과거에 영광에 취해있다. 초대를 받고 간 주민들은 후작 부인과 재회하지만 그녀의 집에서 퇴짜를 맞는다. 여기서 소작농과 지주의 관계에 대한 회복과 화해는 결렬된다.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성당에서 들려오는 노래 소리에 성당으로 가게 되는데 만민을 사랑해야 하는 예수의 가르침을 믿는 수녀들은 역설적으로 그들을 매몰차게 대하며 쫓아낸다. 음악이 성당 밖으로 빠져나와 그들에게 따라오는 것으로 그들을 물리적으로 구제하는 것을 불가능하지만 정신적인 위로를 주는 것은 아직까지 가능하다고 말한다. 노래 소리와 함께 길을 떠나며 인비올라타의 소작농 시절로의 귀향을 얘기하는 그들을 보며 라짜로는 눈물을 흘린다. 라짜로는 새총을 들고 은행으로 간다. 그러나 아무리 성자라고 할지라도 자본주의의 실체없는 구조 앞에서는 무력하기만 할 뿐이다. 자본주의의 치세와 권세 앞에 굴종해야하는 인비올라타의 주민들. 라짜로는 비호해야할 어린 양들인 백성들에게 살해당하고 그를 지켜보던 늑대로 부활하며 도로를 뛰쳐간다. 영화 행복한 라짜라로는 초현실적인 내용을 바탕으로 이탈리아의 네오리얼리즘에 기반하여 16mm 필름의 거친 질감과 1.66:1의 화면비를 통해 그들의 절망적인 삶을 스크린으로 조명한다. 사화 구조 속에 뿌리 내려있는 이 현 시대의 계급체제는 기생충이 내포하고 있는 메세지와 교접한다. 무엇에 분노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실향민들은 오늘도 길거리를 배회하는 어린 양들은 오늘도 행복한 라짜로의 이름을 부르며 또다른 라짜로를 찾기 위해 길을 나설 것이다. 구원 따위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을 알면서도.
석미인
3.5
스포일러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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