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폭풍 속에 쉬어가
O Riso e a Faca
2025 · 드라마 · 포르투갈
3시간 37분

세르히오는 사막과 정글을 잇는 도로 건설 사업의 타당성을 조사하기 위해 서아프리카의 기니비사우로 향한다.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은 풍토병과 기묘한 만남들이다. 세르히오는 ‘유럽의 백인 남성’을 호기심으로 반기는 사람 혹은 경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중심을 잡으며–한편으론 수동적이고 순진한 태도로–현지의 환경에 동화하려 한다. 그 과정에서 만난 매력적인 두 인물 디아라와 기는 세르히오의 욕망과 진심을 시험한다. 바를 운영하는 현지인 디아라, 브라질에서 이민 온 논바이너리 기 그리고 세르히오 사이에는 묘한 성적 기류가 흐르고, 이들의 관계는 신식민주의의 역사적, 정치적, 문화적 거대 담론을 보다 개인적이고 내밀한 서사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78회 칸영화제 주목할만한시선 상영작으로, 디아라를 연기한 클레오 디아라가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이주현)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
drad___nats
4.0
다큐멘터리적 픽션을 가능케하기 위해 3시간 반이라는 긴 영화의 70프로 가량을 쏟는 <난 폭풍속에 쉬어가>의 여운이 길게 남는다. 주인공 세르지오는 도로 건설 사업을 위해 서아프리카로 떠났지만 영화는 그가 노동하는 시간보다 그가 잉여의 시간에 그곳이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동일한 수준의 욕망을 교환하는데 인물들간의 서로 다른 층위가 욕망을 교란시키는 과정들이 매우 흥미롭게 그려진다. 정말 수다스러운 영화라고 할 수 있겠는데, 중심 사건 없이 긴 러닝타임을 끌어간다는 점에서 라우라 시타렐라의 <트렌케 라우켄>이 떠오르기도 했다. <트렌케 라우켄>의 동력이 미스테리의 보존이라면 <난 폭풍속에 쉬어가>의 동력은 아이러니의 보존이다. 욕망의 교환이 아이러니를 낳고 그 아이러니를 (단어 그대로의 의미로) 온몸으로 겪는 주인공 세르지오는 아미 그들의 삶에 감염된 존재이다. 그것이 서아프리카의 풍토병보다 때로는 더 세르지오를 지치게 만드는 것도 같다. 그러나 어떤 사건에도 종속되지 않는 아이러니가 후반부의 다큐멘터리적 픽션을 가능케 만들고 나아가 세르지오를 고국으로 돌아가야겠다는 결심 대신 이곳 사람들의 삶의 중심부로 데려간다.
🐧🐤🐦
3.5
나 쉴 곳은 오직 폭풍뿐 영화를 보는 동안 “좋아, 지옥에는 내가 간다”던 허클베리 핀 허크의 말이 떠올랐다…… 세계가 바다라면 바다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은 멈춰 서 있는 순간에도 끊임없이 파도를 감각해야만 한다 내가 몸을 담고 살아가는 세계의 한계들, 아름다움들, 추악함들을 감각하지 않는 것은 자신에게만 무해하고 정적인 어떤 세계를 열어 놓은 것일 뿐이며, 사실상 그것은 세계가 될 수 없고, 거울로 가득한 방에 스스로를 가둔 상황과 다름없다 멈추지 않고 출렁이는 바다의 정동을 감각하는 것은 고단한 일이다 그러나 어떤 선택을 앞두고 있을 때 “지옥은 내가 간다”고 되뇌여 본다던 겐자부로의 말처럼, 선택을 해야 한다면 돌아보지 않을 수 있는 방향을 선택하는 것이 좋고, 의구심을 가지고 내 삶을 돌아보지 않을 수 있는 선택은 대체로 고단하고, 귀찮고, 괴롭다 그리고 나를 언제나 더 나은 방향으로 데려간다 제국주의적 시선의 대척점에 서 있는 듯 보이고, 망설임 없이 주민들에게 물과 술을 나눠 주고, 도살당하는 염소를 살리려는 시도를 하는 세르지오는 ‘좋은 사람’처럼 보인다 그는 ‘좋은 사람’이기에 더러운 돈을 받지 않으려 하고, 착취하지 않으려 하고, ‘좋은 일’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한다 그럼에도 그는 더러운 돈을 거부할 처지가 되는 자신에 대해, ‘좋은 일’의 기준을 고민하면서 선의를 베풀 권력을 가진 자신에 대해, NGO가 물과 식량을 나눠 주는 일이 가진 권력의 불균형에 관해 알지 못한다 세르지오는 시대를 불문하고 언제나 참 많다… 인지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일은 그리 많지 않다 인지 너머에는 더 큰 무지가 있다 영화는 다음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세계의 큰 정동, 즉 폭풍에 기꺼이 나를 맡겨야 한다고 말하는 듯했다 별개로… 원제보다 지금 제목이 훨씬 좋은 것 같으다
샤프
4.0
세르지오가 잘생겨서 끝까지 봤네… 간신히. 섹스를 안 하는 씬, 염소 사려는 씬, 술집 대화하는 씬, 드라이브 씬 등 낭중지추되어 있는 장면들이 노골적인가 싶다가도 아냐, 그것들 덮여 있었을 뿐이지 언제고 부유하고 있던 정동이었다고, 그러니 보여줄 땐 보여주는 이 영화를 긍정할 수 있었다. 어느새 내 두 눈이 되어버린 카메라로, 극한의 참여관찰법을 수행하는 주체로서 존재해 보기, 시시로 틈입하는 이국의 리듬과 낯선 언어 속에서 라포 쌓아지기, 현실과 허구를 넘나들면서, 기실 모든 만남은 허구라고, 현실은 허구를 반영한다고, 말해보면서. (가장 좋았던 장면은 역시 관전플에서 쓰리썸까지의 시퀀스. 그것은 너무나도 적확하게 영화 전체를 유비하고 있다. 세르지오는 삽입당하는 동시에 그것의 대립쌍으로서의 성적 행위를 수행한다. 침대 위에서 객체와 주체는 계속 뒤바뀐다. 그는 그 사건에 참여되고, 참여하고, 연루되고, 나아가 감염하는 존재다. 생각해 보니 이 영화를 이렇게 요약할 수도 있겠네.) (2025 부국제)
김병석
3.5
국적이나 인종 같은 불가역적 배경을 조건 삼아 삶을 해독하려 드는 시대, 더 이상 타자로서 타자를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고 일침을 놓는 현실에 픽션은 대답한다. 폭풍 속에서 쉬는 것, 진창의 한가운데 저벅저벅 들어가 타인의 역경을 절절히 알아가는 것, 그런 꾸준함으로 오늘을 맞는 것이 모르는 이를 향해 한 뼘 다가가는 길이라며 말이다.
애상(爱像)가
5.0
부국제 일정 중이라 자세한 평은 남기지 않지만 부국제에 있으시고 이 영화를 볼 지 고민 중이시라면 감히 추천드리고 싶다. 긴 러닝타임이지만 이 영화는 그 긴 러닝타임을 지나왔기 때문에 의의를 가지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p.s. 이 영화를 두고 감독이 원래 염두한 제목은 ‘웃음과 칼’이였다고 한다. 배급사의 반대로 수정된 제목이라고 하니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김현정
3.0
백인을 흑인 섬에 가두고 존나 팬다. 이걸 동양인의 나라 영화제에서 보고 있는 게 웃기다.
조재훈
3.5
모래폭풍 속 흔들리는 깃발처럼. /BIFF 2025
홍준영
4.5
픽션적 방법론은 진실을 위한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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