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우4.0어쩜 이리 똑같을까? - 냉전 시기 미국이 끼친 해악이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재앙을 일으키고 있다. 똑같은 형태로. - 소외되고 무지한 이들에게 극우사상을 선전하고 그것을 신의 목소리로 포장하여 절대화 시킨다. 병이 어느 임계점을 넘어서면 약이 소용 없듯이, 민주주의는 어느 임계점에 도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민주주의는 나를 반대하는 사람에게도 관용을 보이겠다는 선언과 같다는 말이 뇌리에 남는다. (2025.07.26.)いいね36コメント4
조슈아4.0브라질 내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믿는 종교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카톨릭이라고 할 것이다. 아직까지는 카톨릭 인구가 가장 많지만(약 50~60%), 개신교를 믿는 인구(약 25~30%)도 오랜 시간 동안 증가했다. 문제는 그 개신교의 주류가 복음주의 꼴통들(종파 상으로는 오순절 계열이 다수)이었고, 군사정권 시절에는 물론이고 민주화 이후에도 그들의 영향력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8년 대선에서 보우소나루가 대통령이 된 것도, 2022년 대선에서 보우소나루와 룰라의 격차가 생각보다 크지 않았던 것도 복음주의 세력을 이용한게 컸다. 그리고 2022년 대선이 부정선거였다고 외치던 사람들은 브라질리아의 삼부광장에서 깽판을 벌이고 만다. 2년 전 워싱턴 D.C.의 국회의사당, 2년 후 서울의 서부지법과 너무나도 비슷한 양상이다.いいね16コメント0
보정4.0전광훈 같은 정치 먹사와 신도들이 바라는 나라가 요기있었네? 초반부터 한심한 광신도들 모습에 비웃음이 나왔지만, 실제 정치, 사회 영역 의 사람들에겐 현실이니 저런 이들 비웃는 것으론 아무런 대책이 안될 것. 문제는 과거처럼 무지를 인정하는 시대가 아니라 다들 인터넷, 유튜브 보고 스스로 똑똑하다 믿는 시대라 무엇으로 설득할 수 있을지 막막하게 느껴짐. 중세시대도 아니고 코로나를 기도로 막아 보겠다는 근본주의 기독교에 홀린 대통령 의 나라라니. 브라질만의 문제가 아니라 도람푸의 미국 이나 윤어게인 외치는 우리나라를 봐도 21세기가 맞나 참으로 갑갑. 닮은 꼴이 웃프다.いいね11コメント0
코뿔소5.0저기도 전광훈 목사와 윤석열같은 사람들이 있네. 우리나라의 미래모습이 되지 않을까 무섭다. 보우소나르도 부정투표 의심하며 쿠테타 벌이려다가 깜빵가있지 않나? 너무 비슷하다. 인간의 본성은 인종과 나라를 초월해 거스를수 없나보다. 왜 세상이 거꾸로 갈까. 진보적인 가치가 전세계적으로 점점 무시되는게 심히 걱정된다. 서로 큰피를 봐야지 중요한게 뭔지 인식하는 역사가 되풀이될까? 역사는 돌고돌고 인간이 만든 사회도 하나의 과학이라는 학문으로 설명이 가능한것처럼 하나의 파동이 되어 진보와 후퇴가 되풀이 되는거같다. 왜냐면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니깐. 1,2차 세계대전의 처참한 고통을 느낀 한세대가 거의 사라지자 세계는 다시 극우의 색깔이 스며드는것 같아서 공포스럽다. 내가 죽기전에는 극우정당이 집권당이 안되길 빈다.いいね7コメント0
Sangrae Lee4.0극우 트럼프의 혐오의 정치, 부정선거 주장, 의사당 침탈 극우 브라질 종교의 정치 깊숙히 개입, 부정선거 주장, 의사당 침탈 극우 한국 종교 역시 정치 개입, 부정선거 주장, 법원 침탈いいね5コメント0
김향기5.0열대의 묵시록이란 다큐멘터리에서는 브라질을 가리켜 신을 향한 믿음이 아니라 발전과 민주주의로 세워진 나라라고 표현한다. 브라질의 복음주의 이데올로기 역사를 다루는 다큐멘터리에 나온 이 나레이션은 글을 쓸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브라질은 우리의 사회보다 더 보수적인 복음주의적 색채를 지닌 나라이다. 그들은 이 복음을 통해 군사 독재를 마쳤고 발전과 민주주의를 이루고 있다 말한다. 그들의 말로는 그 과정에서 여러 실수는 있지만 그들이 이 체제를 고수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이며 그들을 통해 하나님이 계획을 이뤄가고 있다는 확신 때문이다. 그들은 신학자들과 목사들이 다스리는 신정체제를 확고히 자리잡았다. 이들의 자축은 과연 기독교인의 모범일까? 또 다른 십자군의 서막일까. 복음주의 체제 기반의 사회의 공통점은 발전과 민주주의에 있다. 그들은 시멘트로 자유에 대한 열망과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덧칠했다. 문제는 그 결과물이 점차 바벨탑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발전과 민주주의를 하나님께서 주신 성공의 열매로 보는 것. 그것이 우리의 가장 큰 착오였다. 난 그들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하나님을 향한 순수와 열망은 신앙인이라면 꼭 있어야 할 태도니까. 그런데 문제는 이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진다는 것과 그 수가 늘어남에 따라 위로와 공감이 없는 복음주의의 폭력을 낳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들이 점차 정치 세력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 전파가 아닌 수호를 위해 민주주의의 폭력성만을 답습하고 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작 복음의 소외된 자들, 소수자들을 위한 환대와 배려, 포용이 아닌 압제와 차별, 혐오를 조장하고 있다. 신앙과 신학적 차원에서도 여러 본질적인 질문들이 든다. 과연 이들이 믿는 예언과 각종 기적이라 일컬어지는 현상들이 성경에 부합한가? 그리고 그것이 과연 진짜라 볼 수 있는가? 그 현상을 믿는 게 믿음이라면 그것이 구원이라 볼 수 있는가. 그들은 보이지 않는 예수를 스스로 재단하여 믿는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기적이란 현상에 집중하지 않는다. 평범한 삶 가운데서 깊은 질문을 던지시는 지혜와 은혜에 집중한다. 하나님은 그 말씀들인 성경 그 자체를 전능함의 증거로 제시한다. 이 말씀의 깊이 안에 모든 것이 담겨있는데 우린 너무 보이는 것에 집중한다. 우리는 작은 믿음에 너무나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이 문자적인 현상에만 집중하는 현상은 우리가 예상치 못한 또다른 이데올로기를 낳는다. 바로 독재다. 한편, 대체 어떤 이유로 독재를 옹호하는 것일까 생각해봤다. 이들은 정치적 메시야를 곤고히 세워. 마치 자신들이 참 선지자 집단인 것처럼 자신을 포장하고 그 대표자를 선전 도구로 세운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문자적이며 배경과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비상식적인 독해는 이렇게 종교적 우민화와 독재를 표방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통치는 민주주의와 엄연히 다르다. 민주주의는 그저 수단일뿐 이것을 지나치게 신성화한 것은 또 다른 선동과 날조와 다름 없다. 그리고 예수님의 일면 중 폭력성을 드러내는 것, 심판과 묵시록이라는 ‘겉보기에’ 자극적인 것들에 집중한다. 자신의 폭력과 혐오를 합리화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 강성한 나라를 유지하기 위해 절대 다수를 옹립한다. 그래서 복음주의권 교회는 대형을 표방하고, 보편을 추구한다. 그들은 마지막 때를 기다리나 기다리지 않는다. 자신이 사는 이곳이 천국이기 때문이다. 돈과 시멘트로 바른 그들만의 성전. 그들은 참으로 재밌는 캐치프라이즈를 내건다. 계시록의 바벨은 기독교를 무너뜨리려는 세력들이라 말한다. 문화와 사회에서 우위를 가진 자들로 이를 해석하기도 한다. 대개는 로마와 교회의 차이를 두고 말하지만. 현대 교회는 이 차이가 없다. 기독교를 방해하는 세력을 없애야 한다 하지만 그들이 악의 세력이라 지칭하는 자들은 역설적이게도 노동자와 소외된 자들을 위한 정책에 힘쓰는 자들이다. 그리고 가상의 적을 만들어 교인들과 노인들을 현혹시킨다. 정작 공산주의자와의 전쟁은 70년간 멈췄는데 말이다. 지금 기득권으로 서 있는 바벨은 다름 아닌 기독교인 자신들이다. 누가, 바벨일까. 그들이 남긴 유산은 다음과 같다. . . . 가난을 혐오하는 세대 갈등을 부추기는 세대 청년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세대 도파민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세대 사랑이 없는 세대 지구를 돌보지 않는 세대 예수를 조롱하는 세대 . . . 현대 기성세대는 자신들의 욕망을 그럴싸한 시스템에 포장하여 버티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우리는 엄정히 돌아봐야 한다. 정치적 악용의 끝은 결국, 복음을 떠나야 한다는 기독교 혐오만 앞당길 뿐이다. 놀랍도록 전 세계의 복음주의권 나라가 같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금의 청년들은 이미 알고 있다. 자신이 버려진 세대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에 기독교가 앞장선다는 것은. 그들은 기억할 것이다. 우리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박해와 지옥은 우리 스스로 만든다는 것을. 이조차 사탄의 함정이었다는 것을. 로마시대와 다르나 더 뼈 아픈 박해가 우릴 찾아올 것이다. 나태와 혼란과 폭력과 음란과 혐오와 분노와 죽음과 함께 그들이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일까? 하나의 나라일까? 이 나라를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는 것일까? 내 거로 만들고 싶은 것일까?いいね5コメント0
최형우
4.0
어쩜 이리 똑같을까? - 냉전 시기 미국이 끼친 해악이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재앙을 일으키고 있다. 똑같은 형태로. - 소외되고 무지한 이들에게 극우사상을 선전하고 그것을 신의 목소리로 포장하여 절대화 시킨다. 병이 어느 임계점을 넘어서면 약이 소용 없듯이, 민주주의는 어느 임계점에 도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민주주의는 나를 반대하는 사람에게도 관용을 보이겠다는 선언과 같다는 말이 뇌리에 남는다. (2025.07.26.)
조슈아
4.0
브라질 내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믿는 종교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카톨릭이라고 할 것이다. 아직까지는 카톨릭 인구가 가장 많지만(약 50~60%), 개신교를 믿는 인구(약 25~30%)도 오랜 시간 동안 증가했다. 문제는 그 개신교의 주류가 복음주의 꼴통들(종파 상으로는 오순절 계열이 다수)이었고, 군사정권 시절에는 물론이고 민주화 이후에도 그들의 영향력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8년 대선에서 보우소나루가 대통령이 된 것도, 2022년 대선에서 보우소나루와 룰라의 격차가 생각보다 크지 않았던 것도 복음주의 세력을 이용한게 컸다. 그리고 2022년 대선이 부정선거였다고 외치던 사람들은 브라질리아의 삼부광장에서 깽판을 벌이고 만다. 2년 전 워싱턴 D.C.의 국회의사당, 2년 후 서울의 서부지법과 너무나도 비슷한 양상이다.
보정
4.0
전광훈 같은 정치 먹사와 신도들이 바라는 나라가 요기있었네? 초반부터 한심한 광신도들 모습에 비웃음이 나왔지만, 실제 정치, 사회 영역 의 사람들에겐 현실이니 저런 이들 비웃는 것으론 아무런 대책이 안될 것. 문제는 과거처럼 무지를 인정하는 시대가 아니라 다들 인터넷, 유튜브 보고 스스로 똑똑하다 믿는 시대라 무엇으로 설득할 수 있을지 막막하게 느껴짐. 중세시대도 아니고 코로나를 기도로 막아 보겠다는 근본주의 기독교에 홀린 대통령 의 나라라니. 브라질만의 문제가 아니라 도람푸의 미국 이나 윤어게인 외치는 우리나라를 봐도 21세기가 맞나 참으로 갑갑. 닮은 꼴이 웃프다.
sundance
3.5
브라질 밖에서도 유효하며, 지금 생각해봄직한 이야기
코뿔소
5.0
저기도 전광훈 목사와 윤석열같은 사람들이 있네. 우리나라의 미래모습이 되지 않을까 무섭다. 보우소나르도 부정투표 의심하며 쿠테타 벌이려다가 깜빵가있지 않나? 너무 비슷하다. 인간의 본성은 인종과 나라를 초월해 거스를수 없나보다. 왜 세상이 거꾸로 갈까. 진보적인 가치가 전세계적으로 점점 무시되는게 심히 걱정된다. 서로 큰피를 봐야지 중요한게 뭔지 인식하는 역사가 되풀이될까? 역사는 돌고돌고 인간이 만든 사회도 하나의 과학이라는 학문으로 설명이 가능한것처럼 하나의 파동이 되어 진보와 후퇴가 되풀이 되는거같다. 왜냐면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니깐. 1,2차 세계대전의 처참한 고통을 느낀 한세대가 거의 사라지자 세계는 다시 극우의 색깔이 스며드는것 같아서 공포스럽다. 내가 죽기전에는 극우정당이 집권당이 안되길 빈다.
Sangrae Lee
4.0
극우 트럼프의 혐오의 정치, 부정선거 주장, 의사당 침탈 극우 브라질 종교의 정치 깊숙히 개입, 부정선거 주장, 의사당 침탈 극우 한국 종교 역시 정치 개입, 부정선거 주장, 법원 침탈
인터넷닷컴
3.5
왜 항상 빌런들은 논리가 부족할까, 광신도 없으면 방구석악플러 밖에 안됨.
김향기
5.0
열대의 묵시록이란 다큐멘터리에서는 브라질을 가리켜 신을 향한 믿음이 아니라 발전과 민주주의로 세워진 나라라고 표현한다. 브라질의 복음주의 이데올로기 역사를 다루는 다큐멘터리에 나온 이 나레이션은 글을 쓸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브라질은 우리의 사회보다 더 보수적인 복음주의적 색채를 지닌 나라이다. 그들은 이 복음을 통해 군사 독재를 마쳤고 발전과 민주주의를 이루고 있다 말한다. 그들의 말로는 그 과정에서 여러 실수는 있지만 그들이 이 체제를 고수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자이며 그들을 통해 하나님이 계획을 이뤄가고 있다는 확신 때문이다. 그들은 신학자들과 목사들이 다스리는 신정체제를 확고히 자리잡았다. 이들의 자축은 과연 기독교인의 모범일까? 또 다른 십자군의 서막일까. 복음주의 체제 기반의 사회의 공통점은 발전과 민주주의에 있다. 그들은 시멘트로 자유에 대한 열망과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덧칠했다. 문제는 그 결과물이 점차 바벨탑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발전과 민주주의를 하나님께서 주신 성공의 열매로 보는 것. 그것이 우리의 가장 큰 착오였다. 난 그들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하나님을 향한 순수와 열망은 신앙인이라면 꼭 있어야 할 태도니까. 그런데 문제는 이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진다는 것과 그 수가 늘어남에 따라 위로와 공감이 없는 복음주의의 폭력을 낳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들이 점차 정치 세력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 전파가 아닌 수호를 위해 민주주의의 폭력성만을 답습하고 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작 복음의 소외된 자들, 소수자들을 위한 환대와 배려, 포용이 아닌 압제와 차별, 혐오를 조장하고 있다. 신앙과 신학적 차원에서도 여러 본질적인 질문들이 든다. 과연 이들이 믿는 예언과 각종 기적이라 일컬어지는 현상들이 성경에 부합한가? 그리고 그것이 과연 진짜라 볼 수 있는가? 그 현상을 믿는 게 믿음이라면 그것이 구원이라 볼 수 있는가. 그들은 보이지 않는 예수를 스스로 재단하여 믿는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기적이란 현상에 집중하지 않는다. 평범한 삶 가운데서 깊은 질문을 던지시는 지혜와 은혜에 집중한다. 하나님은 그 말씀들인 성경 그 자체를 전능함의 증거로 제시한다. 이 말씀의 깊이 안에 모든 것이 담겨있는데 우린 너무 보이는 것에 집중한다. 우리는 작은 믿음에 너무나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이 문자적인 현상에만 집중하는 현상은 우리가 예상치 못한 또다른 이데올로기를 낳는다. 바로 독재다. 한편, 대체 어떤 이유로 독재를 옹호하는 것일까 생각해봤다. 이들은 정치적 메시야를 곤고히 세워. 마치 자신들이 참 선지자 집단인 것처럼 자신을 포장하고 그 대표자를 선전 도구로 세운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문자적이며 배경과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비상식적인 독해는 이렇게 종교적 우민화와 독재를 표방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통치는 민주주의와 엄연히 다르다. 민주주의는 그저 수단일뿐 이것을 지나치게 신성화한 것은 또 다른 선동과 날조와 다름 없다. 그리고 예수님의 일면 중 폭력성을 드러내는 것, 심판과 묵시록이라는 ‘겉보기에’ 자극적인 것들에 집중한다. 자신의 폭력과 혐오를 합리화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 강성한 나라를 유지하기 위해 절대 다수를 옹립한다. 그래서 복음주의권 교회는 대형을 표방하고, 보편을 추구한다. 그들은 마지막 때를 기다리나 기다리지 않는다. 자신이 사는 이곳이 천국이기 때문이다. 돈과 시멘트로 바른 그들만의 성전. 그들은 참으로 재밌는 캐치프라이즈를 내건다. 계시록의 바벨은 기독교를 무너뜨리려는 세력들이라 말한다. 문화와 사회에서 우위를 가진 자들로 이를 해석하기도 한다. 대개는 로마와 교회의 차이를 두고 말하지만. 현대 교회는 이 차이가 없다. 기독교를 방해하는 세력을 없애야 한다 하지만 그들이 악의 세력이라 지칭하는 자들은 역설적이게도 노동자와 소외된 자들을 위한 정책에 힘쓰는 자들이다. 그리고 가상의 적을 만들어 교인들과 노인들을 현혹시킨다. 정작 공산주의자와의 전쟁은 70년간 멈췄는데 말이다. 지금 기득권으로 서 있는 바벨은 다름 아닌 기독교인 자신들이다. 누가, 바벨일까. 그들이 남긴 유산은 다음과 같다. . . . 가난을 혐오하는 세대 갈등을 부추기는 세대 청년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세대 도파민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세대 사랑이 없는 세대 지구를 돌보지 않는 세대 예수를 조롱하는 세대 . . . 현대 기성세대는 자신들의 욕망을 그럴싸한 시스템에 포장하여 버티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우리는 엄정히 돌아봐야 한다. 정치적 악용의 끝은 결국, 복음을 떠나야 한다는 기독교 혐오만 앞당길 뿐이다. 놀랍도록 전 세계의 복음주의권 나라가 같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금의 청년들은 이미 알고 있다. 자신이 버려진 세대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에 기독교가 앞장선다는 것은. 그들은 기억할 것이다. 우리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박해와 지옥은 우리 스스로 만든다는 것을. 이조차 사탄의 함정이었다는 것을. 로마시대와 다르나 더 뼈 아픈 박해가 우릴 찾아올 것이다. 나태와 혼란과 폭력과 음란과 혐오와 분노와 죽음과 함께 그들이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일까? 하나의 나라일까? 이 나라를 하나님께 드리고자 하는 것일까? 내 거로 만들고 싶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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