퓰리처상 수상작 『올리브 키터리지』의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신작 소설!
* 출간 즉시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
* <워싱턴 포스트> <뉴욕 타임스> <북페이지> <라이브러리리즈>
<미니애폴리스 스타 트리뷴> NPR 선정 올해의 책(2016)
아름답고 정제된 문체, 삶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날카로우면서도 사려 깊은 시선으로 많은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온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올리브’라는 인물을 축으로 사람들의 다양한 삶을 보여주며 이를 통해 사랑과 이별, 상실과 외로움, 기쁨과 슬픔 그리고 희망 등 생의 다양한 측면을 그려냈던 『올리브 키터리지』, 애증이 교차하는 엄마와 딸 사이의 미묘한 심리를 다루면서 그들이 맞이하는 위태로운 한 계절을 그려냈던 『에이미와 이저벨』로 이미 한국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그의 신작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이 출간된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소설의 중심에는 늘 ‘사람’이 있었다. 그는 복잡 미묘한 인간관계와 다층적이고 때로는 모순적인 인간의 내면을 그려내는 데 탁월한 역량을 발휘해왔다.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아가는 한 여성 소설가의 이야기를 그린 『내 이름은 루시 바턴』 역시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이 소설에서 스트라우트는 처음으로 일인칭 화자를 내세워 하나의 소설을 완성하는 일과 한 인간이 인생의 의미를 정립하고 정체성을 형성하는 일이 어떻게 맞닿아 있는지를 정갈하고 담백하게 펼쳐낸다. 한층 더 깊어진 삶과 인간에 대한 통찰이 이백 페이지 남짓의 길지 않은 소설 속에 밀도 있게 담겨 있다.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을 통해 작가는 소설이란 가장 내밀한 이야기로 가장 보편적인 위로를 주는 것임을 다시 한번 증명한다. 2016년 맨부커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던 이 작품은 “만약 그녀가 『올리브 키터리지』로 퓰리처상을 수상하지 않았다면, 이 소설이 틀림없이 유력한 후보가 되었을 것이다”(<가디언>)라는 평을 들은, 스트라우트의 또하나의 걸작이다.
인생의 첫맛은 외로움이었다.
그럼에도 결국……
모든 삶은 경이롭다.
“지금은 내 인생도 완전히 달라졌기에,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다.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고. 어쩌면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을 거라고. 하지만 햇살이 내리쬐는 보도를 걷거나 바람에 휘는 나무 우듬지를 볼 때, 또는 이스트 강 위로 나지막이 걸린 11월의 하늘을 바라볼 때, 내 마음이 갑자기 어둠에 대한 앎으로 가득차는 순간들이 예기치 않게 찾아오기도 한다.” _본문 21쪽
소설 앞머리에서 화자가 밝히고 있듯이 “이것은 단순한 이야기이다.”(본문 10쪽)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은 어둠으로 가득했던, 그러나 반짝이는 순간들도 있었던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한 소설가의 이야기다. 소설의 화자인 루시는 지금으로부터 꽤 오래전 1980년대 중반에 병원에서 보낸 구 주, 그중에서도 오래 연락을 끊고 지내던 엄마가 갑작스레 찾아와 그녀를 간병해줬던 닷새를 회상한다. 당시 루시는 간단한 맹장수술을 받고 원인 모를 고열에 시달린다. 직장과 가사일로 바쁜 남편은 그녀를 보러 오지 못하고 그녀는 일인용 병실에 누워 남편과 어린 아이들을 그리워하며 외로움과 씨름한다. 입원한 뒤 삼 주쯤 지났을 무렵, 그녀 앞에 마법처럼 엄마가 나타난다. “안녕, 위즐.” 아주 오랫동안 듣지 못했던 애칭으로 그녀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를 듣자 루시는 단번에 몸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녀의 엄마는 침대 곁에 앉아 고향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풀어놓는다. 그들의 결혼생활, 불행한 결말을 맺었던 삶들에 대해서. 엄마의 이야기는 루시의 마음속 깊은 곳에 무겁게 가라앉아 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현재의 표면 위로 불러온다. 종조부의 차고에서 지내며 추위와 배고픔과 외로움에 떨던 날들, 부모님의 억압과 간헐적인 폭력이 이어지던 날들, 그래서 그토록 떠나고 싶어했던 고향 앰개시에 대한 기억을. 또한 그녀가 그토록 동경했던 뉴욕에서의 삶까지도. 그리고 루시는 서서히 깨닫는다. 그러한 기억들이 어떻게 그녀를 현재의 그녀로, 소설가로 만들었는지를.
“하지만 이건 내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내 것이다. 이 이야기만큼은.
그리고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이다.”
『내 이름은 루시 바턴』에서 작가는 루시 바턴이라는 일인칭 화자에게 목소리를 내어준다. 게다가 스스로를 ‘나’라고 지칭하는 이 소설의 화자는 소설가이다. 작품 중반부에 이르면 자신이 소설을 쓰게 된 이유와 경위에 대해 루시 바턴이 풀어놓는 이 짧지만 강렬한 이야기 자체가 곧 루시의 작품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즉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은 소설이 쓰인 계기(원인)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쓰인 소설(결과) 그 자체이다. 시작과 끝이 맞물린 뫼비우스의 띠처럼 원인과 결과가 맞물린 이 작품의 구성은 언뜻 단순해 보이는 이야기에 깊이를 부여한다. 『내 이름은 루시 바턴』은 소설가가 되는 일에 대한, 소설가로 사는 일에 대한, 그리고 소설을 쓰는 일에 대한 일종의 메타소설인 셈이다. 따라서 “책이 내 외로움을 덜어주었다 (…) 그래서 생각했다. 나도 사람들이 외로움에 사무치는 일이 없도록 글을 쓰겠다고!”(본문 34쪽) 말하는 루시 바턴의 목소리 뒤에서 우리는 오랜 세월 소설가로 살아온 작가 스트라우트의 존재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시간 순서에 관계없이 단편적인 기억의 조각들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는 이 소설의 구성 역시 스트라우트의 글쓰기 방식과 일치한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자신의 작업 방식을 이렇게 밝힌 바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선형적으로 소설을 쓰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떠오른 장면들을 ‘수집해’ 짤막하게 글로 옮긴 뒤 커다란 테이블 위에 펼쳐놓고 각 장면들의 연결성을 떠올리는 방식으로 글을 쓴다고. 그리고 단편적인 장면들을 수집하는 그 과정이 소설 쓰기에서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단계라고. 비교적 이야기성이 뚜렷했던 이전 작품들과 달리 조금 더 자유로운 서사로 얽힌 이 작품은 스트라우트 소설의 원형에 조금 더 가깝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작품을 통해 스트라우트가 하려는 일은, 그리고 해내는 일은 이전 작품들과 다르지 않다. 그것은 “인간의 조건에 대해 알려주는 것, 우리는 누구이고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하는지를 말해주는 것”(본문 114쪽)이다.
기억, 우리를 붙잡고 있는 것.
혹은 우리가 붙잡고 있는 것.
“나는 우리가 아이였을 때 품게 되는 아픔에 대해, 그 아픔이 우리를 평생 따라다니며 너무 커서 울음조차 나오지 않는 그런 갈망을 남겨놓는다는 사실에 대해 내가 아주 잘 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것을 꼭 끌어안는다. 펄떡거리는 심장이 한 번씩 발작을 일으킬 때마다 끌어안는다. 이건 내 거야, 이건 내 거야, 이건 내 거야.” _본문 217쪽
결국 『내 이름은 루시 바턴』에서 말하는 ‘인간의 조건’은 기억이다. 매 순간 한 겹씩 쌓인 그 기억의 총체가 ‘나’라는 사람을 구성하고 정의한다. 하지만 그 기억은 선연하고 명료한 기억이 아니라 흐릿하고 모호한 기억이다. 일부가 지워져 있거나 세월 속에서 뒤틀린 기억이다. 소설의 화자인 루시는 반복해서 자신의 기억이, 즉 자신의 진술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음을 밝힌다. 따라서 독자는 화자가 말하는 과거의 일화들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다. 기억은 그렇게 불완전하고 우리를 구성하는 것이 그 불완전함이기에, 타인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루시는 엄마가 어린 시절 자신이 받았던 고통과 상처를 떠올려주기를 기대하지만 끝내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두 사람의 기억은 어긋난다. 딸과 엄마
Heebyung Koh
4.0
루시 바턴이라는 주인공이 크라이슬러 빌딩이 보이는 뉴욕의 한 병원에 맹장 수술 후 9주 동안 입원을 한다. 결혼한 이후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어머니가 문병을 오게 되고, 닷새 동안의 대화를 나누게 된다. 이를 통해 떠올린 유년기와 과거의 기억들을 모아쓰게 된 이야기이다. 루시 바턴은 일리노이 주의 앰개시라는 시골마을에서 자랐다. 차고로 만든 몹시도 추운 집에서 당밀을 바른 빵을 먹으면서 자랐다. 아버지의 방관 하에 어머니에게 구타를 당하고, 다섯 살의 나이에 트럭에 혼자 감금되어 죽을 것과 같은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가난한 가정환경에 친구들로부터 따돌림도 받았으나, 추위를 피해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습관을 가졌고, 이러한 습관으로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시카고 외곽의 대학에 장학생으로 가게 되었다. 도시의 대학에 다니면서 예술가로 불리는 교수를 사랑하였고, 외향으로 자신을 판단하고 사회적 계급을 따짐에도 굳건하게 사랑을 이어가려고 하였지만, 단 한순간의 말 한 마디로 그러한 사랑을 접기도 하였다. 결국 나를 이해해 준다고 생각되는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고 두 딸을 낳게 된다. 하지만 풍요롭고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던 중에도 갑자기 어둠에 대한 앎으로 가득 차게 되는 순간들이 찾아오곤 한다. 사실일리 없는 기억의 방문을 받으며 공포감과 고통을 느낄 때가 있다. 유년기의 학대, 따돌림의 경험을 통해 작은 호의와 친절에도 누군가를 쉽게 사랑하게 되었으며, 다소 관계망상과 같은 사고를 하게된다. 어머니의 임종을 맞이하고 루시는 남편과 이혼을 하게 된다. 루시는 가정이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가족의 구성원임은 벗어날 수 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머니의 병문안 이후 9년 동안을 어머니를 찾아가지 않았다. 본인도 그 가정의 불완전성의 일부이다. 가족을 찾지 않음이 더 쉬운 방법임을, 자신의 행동이 배신임을 인정한다. 임종에 가까워서야 어머니를 찾아간다.어머니의 장례식은 없었다. 아버지의 장례식도 없었다. 잘못된 방법이라 말할 수 없고, 이러한 방법이 ‘루시의 가족’ 그 자체인 것이다. 루시는 타인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 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이는 타인도 나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음을 뜻한다. 어머니, 아버지, 언니, 오빠와 불완전하지만 그들의 방식대로의 관계회복을 하게되며, 수많은 비교와 고통 속에서도 흐르듯이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 소설 전반에 걸쳐 내가 우월하기 위해서 남을 내리누르는 것은 가장 저속한 행위라는 것을 강조한다.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나의 의미를 찾고자 했던 나의 모습을 뒤 돌아보게 했다. 마지막으로 기억이란 자유의지를 가진다. 내가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기억들도 불현 듯 나를 찾아와 공포라는 감정을 만들고 소리가 터져 나올 것 같은 상황을 만든다. 삶이란 현재를 제외하고는 모두 과거, 즉 기억이 된다. 그래서 삶은 현재에서 늘 써나가는 것이고, 추측으로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더블에이
3.0
리뷰보는데 문장이 아니라 행간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소설이라는 말이 있더라고, 공감갔어. 줄거리라고 해봐야 주인공인 루시 바턴이 병원에 입원하는데 눈을 떠보니 평소 연락도 서로 안 하고 소원하던 엄마가 발밑에 앉아계시는거야. 둘은 5일동안 과거의 얘기들을 나누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지. 루시네 집은 매우 가난했고 언뜻 언급되는 내용으로 볼때 좋은 양육환경에서 자란것같지도 않아. 하지만 루시는 그런 환경 속에서도 자기자신과 남을 사랑할줄아는 사람으로 성장해. 그게 이 소설이 하고 싶은 말인것같아. 지극히 내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ㅎㅎ 엄마랑 애틋하거나 애증인 사람들이 읽으면 더 와닿을것같은 소설이야. 물론 엄마와 딸 사이의 이야기가 전부는 아니야. 이 이야기의 주인은 온전히 루시바턴이니까. 생각하게 만드는 문장을 좋아하면 추천해!
소금
4.0
지극히 담백한 문장으로 자신의 삶을 말하고 있다. 자신에 대한 연민을 드러내지 않고, 담백하게 고백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자신의 가난, 나약한 모습, 엄마의 사랑을 갈구하는 모습 등……. 솔직해서 좋았고 그래서 슬펐다. 아름다운 장면들이 많았다. 화자는 기본적으로 다정한 시선을 갖고 있다. 나는 인간에 대한 믿음이 있는 소설을 좋아한다. 그래서 루시 바턴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좋았다. 슬프게 아름다웠다. 단숨에 읽었다면 더 좋 았을 것 같다.
PaperDoll
4.0
문장이 아니라 행간으로 전하는 아포리즘
아몬드꽃
2.0
가족이라는 이름의 굴레.
초…
3.0
시대, 나잇대, 문화권 그 무엇하나 루시와 공유하는 것이 없는데도 읽는 내내 루시 바턴에게 깊게 공감할 수 있던 책. 외국소설을 안 읽어버릇해서 번역체가 조금 거슬렸지만 이건 뭐 나의 부족함이고... 그럼에도 작가가 장면을 묘사하는 문장들이 좋았다 - 이건 딸을 사랑하는 한 어머니의 이야기예요. 불안전한 사랑이긴 하지만요. 왜냐하면 우리 모두 불완전한 사랑을 하니까요.
무지
4.5
슬픔이 눈부시게 찰랑찰랑거리는데 읽다보니 난 엉엉 울고 싶어졌다.
주하
3.0
엘리자베스 스트라우스는 쓸쓸하고 외로우면서 아름답고 다정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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