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영 화3.5데미안 허스트의 New religion. 약을 처방하듯 스스로 죽음을 처방한 늙은 의사. 생의 종료가 진통의 수단이 되어버리는 어떤 시간에 대하여. 가스파 노에는 매번 정공법을 택한다. <LOVE>에서도, <돌이킬 수 없는>에서도, 이 영화에서도. 그의 대담함은 노골적이고 불쾌하고 적나라하지만, 한편으로는 돌려 말하지 않는 그가 있어 다행이라 생각한다.Like14Comment0
김현승4.0"꿈은 빨리 끝난다. 꿈 속의 꿈(인생)은 더욱 빨리 끝난다." 인간은 무엇을 남길 수 있는가. / 내용보다 화면을 먼저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1:1의 화면비로 시작한 영화는 2:1까지 확장되었다가 1:1의 두 화면으로 분할된다. 스크린의 아이픽스를 고려한다면 화면이 상당히 난잡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두 화면 중 하나에만 사건을 배치하는 연출은 훌륭했지만, 영화제의 세로자막까지 삼분할 된 스크린은 어지러움을 피하기는 어려웠다. 영화 자체의 문제는 아닌 셈이다. 화면이 두 개로 갈라짐으로써 일상을 다루는 영화의 내용은 더욱 풍성해진다. <소용돌이>는 동시적인 두 화면을 통해 반복과 대조를 표현한다. 특히 누워있는 사람과 앉아있는 사람을 스크린상으로 동일하게 담은 촬영방식은 나무랄데 없이 훌륭했다. / <심장보다 뇌가 먼저 부패하는 사람들을 위해> 영화는 거대한 꿈이고, 사람들은 그 안에서 상징을 본다. 스크린에 비친 사물은 무궁무진하지만 결국 관객에게 남는 것은 스크린 속 대상 그 자체가 아닌, 개념어로 전환된 의미와 상징이다. <소용돌이>에 따르면 인생은 단지 꿈 속의 꿈에 불과하다. 유한한 인간은 순식간에 흘러가는 인생이라는 영화에서 의미들을 모으며 살아간다. 그래서 기억은 소중하다. 과거의 표상은 변화하며, 기억은 진행성이 있다고 말한다. 인간은 과거의 의미를 끊임없이 추억하고, 그 추억은 현재의 상황에 알맞게 변환되어 다가온다. 이 영화의 수미상관을 담당하는 '애도'는 추억의 가장 강렬한 방식이다. 다시는 볼 수 없는, 즉 이제 기억으로밖에 남을 수 없는 누군가를 추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추억의 내면화와 끊임없는 상기를 담당하는 애도는 인간의 유한성이 내린 저주를 축복으로 전환한다. 그런데, 악마의 병이 퍼진다. 죽기 전에 뇌가 먼저 썪어버리는 치매는 소중한 사람들과의 기억을 전부 삭제한다. 죽을 것을 알고 있음에도 누군가는 나를 기억해주리라는 생각은 삶의 훌륭한 원동력이 된다. 그래서 더더욱 악마의 병 앞에 인간은 무기력해진다. 소중한 사람의 기억을 잃고, 또 소중한 사람을 잊었다는 것조차 잊은 치매 환자들과 잊혀진 사람들을 위하여. / BIFFLike9Comment0
sendo akira4.0피할수없는 생로병사앞에 사랑은 쇠약해지고 열정은 무감각해지고 차마 한쪽 눈을 감아버려 서로를 단절시킨다!! 화면에 틈을 벌려 비집고 들어가 만져주고 들어주고 웃어주고 싶지만 어찌할수없는 순리라는 소용돌이앞에서 그저 먹먹한 마음뿐인!! 한줌 사라지고 오롯이 남은 공간과 기억이라는 잔상만 그저 쓰다듬는다!!Like8Comment0
ygh_光顯4.0인생의 흐름을 소용돌이로 만들어버리는 이 무시무시한 질병 앞에서 영화가 내리는 축복이 참으로 값지면서도 안타깝게 느껴진다. 그래서 사실 별 거 없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매우 고귀하다. . . <스포일러> . . . . . . . . . . . . 남겨진 곳을 카메라가 담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데 있어서, 모든 과거의 것들이 가물가물한 꿈처럼 저장되고 하늘로 회귀한다.(오프닝에서의 하늘) 이 때의 회귀는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기억(영화)일 것이다. 그러니깐 꿈 속의 꿈은(극 중 아내는 삶은 꿈이라고 말하며, 다리오 아르젠토는 꿈 속의 꿈이 삶이라며 고쳐 말한다.) 제 3자에게 있는 것이고 이것이 진짜 삶이며 영화다. 자신의 삶을 누군가가 기억하면서 공허로서의 삶은 기억을 통해 다시 살게 된다고 볼 수 있다.(어쩌면 영생 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 사실을 기억하며 죽을 수도 없는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는 삶의 끝자락에서의 애도는 그래서 상당히 비탄스럽고 특별하게 느껴진다.Like7Comment0
샌드4.0영화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독특한 연출법은 사실 말하면 스포일러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프로그램 노트에도 써 있고 하니 따로 표시하거나 하지 않겠습니다. 사길 처음엔 제목이 볼텍스기도 하고 포스터에 글자도 휘갈기며 쓴 듯한 느낌이라 얼마나 정신없고 강렬한 영화를 또 만들었을까 싶었는데, 오히려 가장 서정적이고 슬픈 영화였습니다. 기존 영화가 불쾌함의 쾌감으로 가득한 영화들이라면 이 영화는 더 보편적이기도 하고 애초에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으니 더욱 진솔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의 필모에서 가장 다른 작품이기도 한데 가장 와닿는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소용돌이> 이후로 작품 세계가 어떻게 변할지 혹은 이전과 같을지에 대해서 궁금해질 정도로 확 꺾이는 지점에 있는 영화입니다. 근데 또 생각해 보면 애초에 평범한 걸 극도로 싫어하는 감독의 색이 그대로 나오는 연출 방식이나 있는 것을 그대로 끝까지 보여줘야 직성이 풀리는 장면들이 아무리 다른 얘길 하더라도 가스파 노에 영화구나 싶은 정도는 느껴졌습니다. 연출법으로 들어와서 크레딧을 시작부터 올리는 건 예전에도 많이 봤지만 이렇게 이분할을 대놓고 쓰면서 끝까지 진행하는 건 진짜 파격적이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500일의 썸머>의 오프닝에서처럼 아주 잠깐 쓰거나, 혹은 노에의 전작도 사실 그 영화는 단편이니까, 짧껜 쓸 수 있다고 쳐도 이렇게 한 편을 다 그렇게 만든 건 저한테는 상당히 신선하면서도 과연 이 시도를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결국엔 이 시도가 영화 속에서 적절하게 펼쳐졌는가와 관객이 이 두 화면을 동시에 보는 걸 버틸 수 있을까에 대한 지점을 어떻게 해결할지 의문이였습니다. 결과만으로 보면 저는 잘 썼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영화에서 두 사람을 보여줄 때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해서 감독들이 정말 많이 고민할텐데, 이 영화는 애초에 두 사람이 다른 행동을 하더라도 한 화면에 담을 수 있으니, 물론 장면을 두 번 혹은 하나로도 찍을 수 있을 장면을 두 대의 카메라로 찍어야 하는 수고로움은 있지만 편집으로 할 수 없을 행동과 감정의 섬세함을 온전히 다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을 잘 활용합니다. 영화 자체가 환자가 하루하루 겪어 가는 일상을 모두 보여주기도 해서 더욱 잘 맞는 방식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하루하루 일어나는 일을 다 보여주니까 사실은 좀 뻐근하기도 했는데, 영화는 한 지점을 지나면서 급격히 변화를 맞고 결국 그 때부터 슬픔이 밀려 오면서 다 끝까지 보고 나면 그 이전의 이야기도 그냥 지루한 게 아니라 사랑하는 이들의 모든 것을 다 담는다는 감상으로 저는 바뀌었습니다. 또 그게 자전적인 얘기라고 생각하면 더 뭉클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면 전반부보다는 후반부가 훨씬 울림이 크고, 그 감동이 전반부의 감상을 좋게 만들기까지 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두 화면이 동시에 나와서 이걸 볼 수나 있으려나 했는데, 노부부가 같이 겪어 가는 이야기다 보니까 양쪽 화면에 비슷한 내용이 펼쳐지고, 두가지를 막 번갈아 보는 게 아니라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끔 영화가 만들어져 있어서 저는 괜찮았는데, 사실 어지럽거나 집중도가 떨어진다고 해도 저는 충분히 수긍할 것 같습니다. 가스파 노에 영화들은 항상 좋은데도 좋다고 말하기가 참 어려웠는데, 이 작품은 제겐 노에의 최고작으로 보였습니다. 기존에 했던 얘기와는 완전히 다르지만, 어쩌면 본인의 모든 것을 담은 듯한 가장 사적이면서도 솔직하게 느껴지는 영화가 주는 울림이 기존 영화들이 주는 어떤 자극보다도 훨씬 짙게 느껴집니다.Like7Comment0
HBJ3.5'볼텍스'는 한 늙은 부부를 바라보는 드라마 영화다. 가스파 노에의 이번 작품은 놀라울 정도로 절제되고 차분하며, 상당히 가슴 아픈 이야기를 전한다. 가스파 노에하면 수위가 매우 높으며 강렬한 정사씬과 화려하고 과감한 비주얼 같은 것들이 떠오르긴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런 점이 전혀 없다고 볼 수 있다. 화려한 영상미나 강렬한 시퀀스들 없이 상당히 드라이하고 현장감있게 연출된 이 영화는 가스파 노에 작품이라는 생각이 안 들 정 도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서 또한 가스파 노에는 기술적인 과시를 하긴 하는데, 바로 완전히 스플릿 스크린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이다. 스플릿 스크린을 통해 인물들의 여러 시점을 동시에 관객들에게 보여주면서도 정보량을 너무 과하게 쏟아내진 않으며, 이야기를 굉장히 입체적으로 보여주려고 한다. 영화의 세 메인 캐릭터들을 연기하는 다리오 아르젠토, 프랑수아 레브런과 알렉스 뤼츠는 모두 굉장히 좋은 가족 연기 호흡을 펼치며, 치매로 붕괴해가는 생활과 갈등을 생생하게 표현한다. 이야기 자체는 '아무르' 같은 치매 관련 영화들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그 때문에 영화의 러닝타임이 과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안에 있는 인생과 꿈과 기억에 대한 이야기는 삶과 죽음의 무게를 더욱 더 가중시키며 관객들에게 묵직한 여운을 안긴다.Like6Comment0
Jay Oh
3.0
양옆에 놓여 부식되어가는 두 편의 꿈. 자극적이진 않으나 노에스럽지 않지도 않다. Ungrandiose decay, inevitably.
주 영 화
3.5
데미안 허스트의 New religion. 약을 처방하듯 스스로 죽음을 처방한 늙은 의사. 생의 종료가 진통의 수단이 되어버리는 어떤 시간에 대하여. 가스파 노에는 매번 정공법을 택한다. <LOVE>에서도, <돌이킬 수 없는>에서도, 이 영화에서도. 그의 대담함은 노골적이고 불쾌하고 적나라하지만, 한편으로는 돌려 말하지 않는 그가 있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김현승
4.0
"꿈은 빨리 끝난다. 꿈 속의 꿈(인생)은 더욱 빨리 끝난다." 인간은 무엇을 남길 수 있는가. / 내용보다 화면을 먼저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1:1의 화면비로 시작한 영화는 2:1까지 확장되었다가 1:1의 두 화면으로 분할된다. 스크린의 아이픽스를 고려한다면 화면이 상당히 난잡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두 화면 중 하나에만 사건을 배치하는 연출은 훌륭했지만, 영화제의 세로자막까지 삼분할 된 스크린은 어지러움을 피하기는 어려웠다. 영화 자체의 문제는 아닌 셈이다. 화면이 두 개로 갈라짐으로써 일상을 다루는 영화의 내용은 더욱 풍성해진다. <소용돌이>는 동시적인 두 화면을 통해 반복과 대조를 표현한다. 특히 누워있는 사람과 앉아있는 사람을 스크린상으로 동일하게 담은 촬영방식은 나무랄데 없이 훌륭했다. / <심장보다 뇌가 먼저 부패하는 사람들을 위해> 영화는 거대한 꿈이고, 사람들은 그 안에서 상징을 본다. 스크린에 비친 사물은 무궁무진하지만 결국 관객에게 남는 것은 스크린 속 대상 그 자체가 아닌, 개념어로 전환된 의미와 상징이다. <소용돌이>에 따르면 인생은 단지 꿈 속의 꿈에 불과하다. 유한한 인간은 순식간에 흘러가는 인생이라는 영화에서 의미들을 모으며 살아간다. 그래서 기억은 소중하다. 과거의 표상은 변화하며, 기억은 진행성이 있다고 말한다. 인간은 과거의 의미를 끊임없이 추억하고, 그 추억은 현재의 상황에 알맞게 변환되어 다가온다. 이 영화의 수미상관을 담당하는 '애도'는 추억의 가장 강렬한 방식이다. 다시는 볼 수 없는, 즉 이제 기억으로밖에 남을 수 없는 누군가를 추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추억의 내면화와 끊임없는 상기를 담당하는 애도는 인간의 유한성이 내린 저주를 축복으로 전환한다. 그런데, 악마의 병이 퍼진다. 죽기 전에 뇌가 먼저 썪어버리는 치매는 소중한 사람들과의 기억을 전부 삭제한다. 죽을 것을 알고 있음에도 누군가는 나를 기억해주리라는 생각은 삶의 훌륭한 원동력이 된다. 그래서 더더욱 악마의 병 앞에 인간은 무기력해진다. 소중한 사람의 기억을 잃고, 또 소중한 사람을 잊었다는 것조차 잊은 치매 환자들과 잊혀진 사람들을 위하여. / BIFF
sendo akira
4.0
피할수없는 생로병사앞에 사랑은 쇠약해지고 열정은 무감각해지고 차마 한쪽 눈을 감아버려 서로를 단절시킨다!! 화면에 틈을 벌려 비집고 들어가 만져주고 들어주고 웃어주고 싶지만 어찌할수없는 순리라는 소용돌이앞에서 그저 먹먹한 마음뿐인!! 한줌 사라지고 오롯이 남은 공간과 기억이라는 잔상만 그저 쓰다듬는다!!
ygh_光顯
4.0
인생의 흐름을 소용돌이로 만들어버리는 이 무시무시한 질병 앞에서 영화가 내리는 축복이 참으로 값지면서도 안타깝게 느껴진다. 그래서 사실 별 거 없어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매우 고귀하다. . . <스포일러> . . . . . . . . . . . . 남겨진 곳을 카메라가 담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데 있어서, 모든 과거의 것들이 가물가물한 꿈처럼 저장되고 하늘로 회귀한다.(오프닝에서의 하늘) 이 때의 회귀는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기억(영화)일 것이다. 그러니깐 꿈 속의 꿈은(극 중 아내는 삶은 꿈이라고 말하며, 다리오 아르젠토는 꿈 속의 꿈이 삶이라며 고쳐 말한다.) 제 3자에게 있는 것이고 이것이 진짜 삶이며 영화다. 자신의 삶을 누군가가 기억하면서 공허로서의 삶은 기억을 통해 다시 살게 된다고 볼 수 있다.(어쩌면 영생 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 사실을 기억하며 죽을 수도 없는 소용돌이처럼 휘몰아치는 삶의 끝자락에서의 애도는 그래서 상당히 비탄스럽고 특별하게 느껴진다.
샌드
4.0
영화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독특한 연출법은 사실 말하면 스포일러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프로그램 노트에도 써 있고 하니 따로 표시하거나 하지 않겠습니다. 사길 처음엔 제목이 볼텍스기도 하고 포스터에 글자도 휘갈기며 쓴 듯한 느낌이라 얼마나 정신없고 강렬한 영화를 또 만들었을까 싶었는데, 오히려 가장 서정적이고 슬픈 영화였습니다. 기존 영화가 불쾌함의 쾌감으로 가득한 영화들이라면 이 영화는 더 보편적이기도 하고 애초에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으니 더욱 진솔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의 필모에서 가장 다른 작품이기도 한데 가장 와닿는 작품이기도 했습니다. <소용돌이> 이후로 작품 세계가 어떻게 변할지 혹은 이전과 같을지에 대해서 궁금해질 정도로 확 꺾이는 지점에 있는 영화입니다. 근데 또 생각해 보면 애초에 평범한 걸 극도로 싫어하는 감독의 색이 그대로 나오는 연출 방식이나 있는 것을 그대로 끝까지 보여줘야 직성이 풀리는 장면들이 아무리 다른 얘길 하더라도 가스파 노에 영화구나 싶은 정도는 느껴졌습니다. 연출법으로 들어와서 크레딧을 시작부터 올리는 건 예전에도 많이 봤지만 이렇게 이분할을 대놓고 쓰면서 끝까지 진행하는 건 진짜 파격적이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500일의 썸머>의 오프닝에서처럼 아주 잠깐 쓰거나, 혹은 노에의 전작도 사실 그 영화는 단편이니까, 짧껜 쓸 수 있다고 쳐도 이렇게 한 편을 다 그렇게 만든 건 저한테는 상당히 신선하면서도 과연 이 시도를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까 싶기도 했습니다. 결국엔 이 시도가 영화 속에서 적절하게 펼쳐졌는가와 관객이 이 두 화면을 동시에 보는 걸 버틸 수 있을까에 대한 지점을 어떻게 해결할지 의문이였습니다. 결과만으로 보면 저는 잘 썼다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영화에서 두 사람을 보여줄 때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해서 감독들이 정말 많이 고민할텐데, 이 영화는 애초에 두 사람이 다른 행동을 하더라도 한 화면에 담을 수 있으니, 물론 장면을 두 번 혹은 하나로도 찍을 수 있을 장면을 두 대의 카메라로 찍어야 하는 수고로움은 있지만 편집으로 할 수 없을 행동과 감정의 섬세함을 온전히 다 전달할 수 있다는 점을 잘 활용합니다. 영화 자체가 환자가 하루하루 겪어 가는 일상을 모두 보여주기도 해서 더욱 잘 맞는 방식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하루하루 일어나는 일을 다 보여주니까 사실은 좀 뻐근하기도 했는데, 영화는 한 지점을 지나면서 급격히 변화를 맞고 결국 그 때부터 슬픔이 밀려 오면서 다 끝까지 보고 나면 그 이전의 이야기도 그냥 지루한 게 아니라 사랑하는 이들의 모든 것을 다 담는다는 감상으로 저는 바뀌었습니다. 또 그게 자전적인 얘기라고 생각하면 더 뭉클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생각해 보면 전반부보다는 후반부가 훨씬 울림이 크고, 그 감동이 전반부의 감상을 좋게 만들기까지 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두 화면이 동시에 나와서 이걸 볼 수나 있으려나 했는데, 노부부가 같이 겪어 가는 이야기다 보니까 양쪽 화면에 비슷한 내용이 펼쳐지고, 두가지를 막 번갈아 보는 게 아니라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끔 영화가 만들어져 있어서 저는 괜찮았는데, 사실 어지럽거나 집중도가 떨어진다고 해도 저는 충분히 수긍할 것 같습니다. 가스파 노에 영화들은 항상 좋은데도 좋다고 말하기가 참 어려웠는데, 이 작품은 제겐 노에의 최고작으로 보였습니다. 기존에 했던 얘기와는 완전히 다르지만, 어쩌면 본인의 모든 것을 담은 듯한 가장 사적이면서도 솔직하게 느껴지는 영화가 주는 울림이 기존 영화들이 주는 어떤 자극보다도 훨씬 짙게 느껴집니다.
청소년관람불가
3.5
치매와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아무리 끊겨 있어도 연결이 된다. 각자 연결이 되어있지만 끊겨져 있는 상황들이 보여진다
HBJ
3.5
'볼텍스'는 한 늙은 부부를 바라보는 드라마 영화다. 가스파 노에의 이번 작품은 놀라울 정도로 절제되고 차분하며, 상당히 가슴 아픈 이야기를 전한다. 가스파 노에하면 수위가 매우 높으며 강렬한 정사씬과 화려하고 과감한 비주얼 같은 것들이 떠오르긴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런 점이 전혀 없다고 볼 수 있다. 화려한 영상미나 강렬한 시퀀스들 없이 상당히 드라이하고 현장감있게 연출된 이 영화는 가스파 노에 작품이라는 생각이 안 들 정 도다. 그럼에도 이 영화에서 또한 가스파 노에는 기술적인 과시를 하긴 하는데, 바로 완전히 스플릿 스크린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하는 것이다. 스플릿 스크린을 통해 인물들의 여러 시점을 동시에 관객들에게 보여주면서도 정보량을 너무 과하게 쏟아내진 않으며, 이야기를 굉장히 입체적으로 보여주려고 한다. 영화의 세 메인 캐릭터들을 연기하는 다리오 아르젠토, 프랑수아 레브런과 알렉스 뤼츠는 모두 굉장히 좋은 가족 연기 호흡을 펼치며, 치매로 붕괴해가는 생활과 갈등을 생생하게 표현한다. 이야기 자체는 '아무르' 같은 치매 관련 영화들과 크게 다르지 않으며, 그 때문에 영화의 러닝타임이 과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안에 있는 인생과 꿈과 기억에 대한 이야기는 삶과 죽음의 무게를 더욱 더 가중시키며 관객들에게 묵직한 여운을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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