怒りの日
Vredens dag
1943 · ドラマ · デンマーク
97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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鬼才、カール・Th・ドライヤー監督によるドラマ。ノルウェーの小さな村で暮らす牧師・アブサロンの後妻に迎えられたアンヌは、アブサロンの息子・マーティンと惹かれ合う。しかし、彼女には魔女狩りの手が迫っており…。※9月25日より発売日変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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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h
4.0
고할 것 있는 자의 침묵 고할 것 없는 자의 자백 #오도 #눈망울
Jay Oh
4.0
"믿음대로 될지어다"의 이면. The other side of faith.
Cinephile
4.5
안느의 마지막 참회는 마치 동서고금을 거쳐 스러진 수많은 레이디 맥베스들을 위한 최후 변론처럼 다가온다. 제도나 구습이 아닌 자신을 정녕 믿고 사랑하는 자가 그 '악녀' 밖에 없음을 이해하면, 간명해 보이던 선악 구도의 대립은 한없이 무의미하게 보인다.
Sleep away
4.5
정말 어이없을 정도로 유치하고 어리숙한 사고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끔찍한 마녀재판의 과정을, 정말이지 보다가 질식하겠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장엄하고 엄격한 형식미를 통해서 보여주는데, 그 간극에서 오는 끔찍함 때문에 토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특히 엄청나게 진지한 얼굴로 괴로워하고 있는 앱실론이 가지고 있던 죄의식의 정체가 죄없는 헤를로프 마르테를 화형시켰기 때문이아니라 헤를로프 마르테가 죽기전에 안나의 어머니도 마녀로 고발했는데 그 얘길 듣고 가만히 있었던 자신을 용서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라는 사실이 엄청난 충격과 공포를 안겨 주었다. 그런데 이 앱실론이라는 인물을 생각해보면 그게 너무 너무 개연성이 있어 보이는 설정이라서 더 충격적인 것이다. 아마 이 앱실론이라는 인물은 신앙에도 충실하고 남들에게도 존경받는 위치의 성직자였을텐데 그 점을 생각해보면 정말이지 정신이 아득해진다. 심지어 그의 얼굴은 이 영화속에서 ‘질서’ 그 자체로까지 보이는 것이다. 그의 그 어리숙하고 엄격하고 잔인한 질서 속에서 이해하기 어려우리만치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도 못하고 드러내고 있는 안나의 무방비한 행동을 보고있으면 정말이지 공포스럽기 짝이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상대는 그의 후계자임이 분명해서 거의 백퍼센트 배신을 예감할 수 밖에 없는 마틴이니 그 공포는 더욱 커질 수 밖에 없다. 뒤를 보지 않아도 파국은 자명한 일이다. 이 질서속에는 도무지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마틴이 갑자기 ‘악마의 힘을 이용했다니?’하며 자연스럽게 뒤로 빠질때 그에게는 그 어떤 섬세한 연기력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냥 대충 시늉만내도 세계는 그의 복귀를 당연한듯 받아드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 예측불허의 요소라곤 하나도 없었으며 모든 것은 그저 질서에따라 기계적으로 이루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 거대하고 질서정연하며 장엄하기까지한 야만이 주는 공포가 정말 견디기 힘들만큼 끔찍했다. 이 모든 것들이 어느정도는 현실이었을테고 지금도 어떤면에서는 현실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도무지 인간에대한 회의가 들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저 시대 저 문화권 안에서는 오직 저런식으로만 인간 세상이 돌아갔을까? 눈치 있는 자들은 그저 숨죽이며 간신히 버텨냈을까? 어땠을까? 정말 모르겠다.
혁민
4.0
욕망을 응시할 용기가 없는 자들의 도피처로 전락한 종교. 가치관과 신념 체계의 모순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자들의 도피처로 전락한 욕망. 끝 없는 도피. 끝 없는 순환. 그래서 인물의 좌우 구도가 바뀔 이유가 없는 장면인데도 굳이 바꿔서 찍은 샷이 많은지도 모르겠다.
KB24
5.0
1. 등잔 밑이 어둡다 했던가. 마녀는 놀랍게도 주의 집에 버젓이 거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그곳에 어쩔 수 없이 끌려왔기에 악마로 타락했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까? 어쨌든, 인간의 보편적 윤리나 죄책감은 가볍게 무시하는 악마의 달콤한 속삭임 앞에, 젋은 남자는 그 순간의 짧은 쾌락의 대가가 파멸이란 것을 인지하면서도, 기다렸다는 듯이 가볍게 금기를 뛰어넘는다. 2. 결정적 순간에 악마도 울고 갈만큼 뻔뻔함으로 무장한 채, 망자의 뒤로 숨 어 버린 젊은 남자와, 거침없이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고백하는 악마를 대비시키며, 그렇게 그순간에 영화는 끝난다. 이쯤되면 귀향하기 전, 젋은 남자의 과거가 궁금해질 지경. 3. 최소한의 움직임만으로도 인물의 감정의 뉘앙스와 흥미로운 테마들을 빠짐없이 포착한다. - 서울아트시네마.
오세일
4.5
종교가 인간의 질서 위에 군림하여 그들의 삶을 강제적으로 정립하고, 기득권의 이념에 맞지 않는 모든 자들은 마녀로 몰고 가며 규탄한다. 인간의 구원을 위해 탄생한 종교라는 개념의 아이러니. 아마도 이러한 아이러니가 가장 잘 드러나는 순간은 잔 다르크의 이야기에 있을 것이고, <분노의 날>은 잔 다르크에게 가려진 또 다른 여성들의 마녀사냥에 대한 불합리를 스크린에 재현한다. 어쩌면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가 새로운 시선으로 다시 쓴 <잔 다르크의 수난>. 다만 <분노의 날>은 잔 다르크와 같은 투쟁적 여성에 대한 일종의 영웅 서사가 아닌, 시대의 질병에 매몰된 서민 여성의 삶에 대한 비극을 중점으로 다룬다. 그저 거짓된 삶에서 벗어나 진실한 사랑을 하고 싶었을 뿐인 안느의 바람은, 어느샌가 파렴치한 마녀가 꾸민 유혹적 죄악이 되었다. 그녀의 몸을 탐하고 얻기 위해 성직자로서의 진리를 저버린 목사. 그리고 아버지의 아내, 즉 본인의 새엄마인 것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그녀에 대한 욕망을 놓지 못한 아들. 그들의 사이에서 안느가 벌인 일은, 사랑하지 않는 목사를 증오하는 동시에 마음이 가는 대로 그의 아들을 사랑한 것뿐. 거짓을 부정하고 진실을 포용하였기에 끝내 마녀가 된 안느. 영화의 마지막에서 본인 스스로를 마녀로 지칭하며 타인의 압박 하에 모든 죄를 털어놓는 장면에서의 안느는, 끝내 삶의 마지막 순간마저 거짓으로 점철될 수밖에 없었던 그녀와 같은 처지에 놓였던 당대 여성들의 모습을 상징하게 된다. 여타 드레이어의 영화가 모두 그러했듯, <분노의 날>의 숏 또한 일정하게 정갈함을 유지한다. 그리고 모든 인물들이 영화에 필요한 최소한의 연기만을 선보일 뿐, 그 이상의 운동적인 분출을 지양한다. 하지만 드레이어와 브레송의 차이가 있다면, 드레이어는 인물들의 얼굴(감정)에 집중한다는 점이다. 극의 초반 본인의 목숨을 구해주지 않아 목사를 증오하게 된 마녀로 지칭당한 여성의 표정, 그리고 점점 개인의 삶에 대한 주체를 되찾아가면서 미묘한 표정의 변화를 겪던 안느. 이것이 둘의 (종교) 영화에서 각기 다른 숭고함이 묻어나는 이유가 아닐까. 브레송은 드레이어의 <잔 다르크의 수난>을 싫어했지만, 드레이어는 <잔 다르크의 수난>의 정신적 후속작과도 같은 <분노의 날>을 통해 그에 응수했다. 이처럼 거장들의 흥미로운 대치.
K.
5.0
위선과 광기의 세계를 집요히 담아내는 최면적인 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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